이 다큐멘터리에서 퀘이커 이야기가 가장 본격적으로 나오는 곳은 <제4부 Conquer by a Drawn Game>입니다. 제2부에도 퀘이커 출신 인물들이 짧게 언급되지만, 퀘이커의 평화주의와 혁명정부의 충돌을 하나의 역사적 문제로 다루는 것은 제4부입니다.
1. 제4부: 필라델피아 퀘이커들의 ‘중립’과 박해
영국군이 필라델피아로 진격하는 1777년 부분에서 등장합니다. 시간상으로는 브랜디와인 전투를 앞두고 워싱턴이 필라델피아로 이동하는 대목부터, 필라델피아가 함락되는 대목까지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미국 애국파 지도자 필립 스카일러의 매우 적대적인 말을 인용합니다.
“퀘이커들은 일반적으로 양의 옷을 입은 늑대들이다.”
그 뒤 역사학자가 퀘이커를 직접 설명합니다.
“어떤 중립적 입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전쟁 중 퀘이커에게 일어난 일이다. 퀘이커는 평화주의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혁명기의 미국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즉 다큐는 퀘이커들이 반드시 영국을 적극 지지해서 의심받은 것이 아니라, <전쟁 참여와 새 정부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의심받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혁명정부는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의 편”이라는 논리를 적용했습니다.
사라 피셔와 남편 토머스 피셔
이 부분의 중심인물은 필라델피아의 퀘이커 여성 <Sarah Fisher·사라 피셔>입니다. 그녀의 일기가 여러 차례 낭독됩니다.
영국군이 필라델피아로 접근하자 미국 대륙회의와 펜실베이니아 당국은 사라의 남편 <Thomas Fisher·토머스 피셔>를 포함한 부유한 퀘이커 여덟 명이 영국군과 내통한다고 의심했습니다. 이들은 새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라는 요구를 거부했고,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버지니아주 윈체스터로 추방되었습니다.
당시 사라는 어린 두 아들을 돌보고 있었고 임신 8개월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체포된 뒤 자신과 가족이 “무해한 사람들”인데도 애국파의 폭력과 약탈에 노출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녀의 관점에서 미국 독립군은 자유의 해방자가 아니라 양심을 강요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라 피셔와 남편이 완전히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었다고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남편은 자신을 여전히 영국 국왕의 신민으로 생각했고, 사라의 일기에서도 영국군의 진입을 어느 정도 안도하며 바라보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녀의 핵심 입장은 군사행동에 참여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큐는 이 모호함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퀘이커의 중립은 애국파에게는 친영 충성주의처럼 보였고, 퀘이커 자신에게는 폭력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신앙적 양심이었습니다.
2. 제2부: 퀘이커 출신이지만 군인이 된 너새니얼 그린
제2부 <An Asylum for Mankind>에서는 George Washington의 핵심 장군 <Nathanael Greene·너새니얼 그린>이 퀘이커 출신으로 소개됩니다.
내레이션은 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로드아일랜드 출신의 퀘이커였던 너새니얼 그린은, 자신이 ‘필요성의 문제’라고 부른 상황 앞에서 평화주의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린은 퀘이커 공동체에서 성장했지만 군사훈련에 참여하고 무기를 소지하면서 공동체와 충돌했습니다. 결국 그는 평화주의보다 혁명전쟁 참여를 선택했습니다. 다큐에서 이 언급은 워싱턴이 보스턴을 포위하고 있던 1775년 후반의 이야기 가운데 나옵니다.
그린은 퀘이커가 혁명기에 경험한 또 하나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사라 피셔 부부는 양심적 비참여를 택했고, 너새니얼 그린은 폭정에 맞선 전쟁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퀘이커 공동체 안에서도 입장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이들은 흔히 <Free Quakers·자유 퀘이커>라고 불리는 별도 흐름을 형성하게 됩니다.
3. 제2부: 토머스 페인의 퀘이커적 배경
같은 제2부에서 <Common Sense·상식>의 저자 Thomas Paine도 “퀘이커인 코르셋 제조업자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아버지는 퀘이커였고 어머니는 성공회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다큐는 페인을 퀘이커 사상가로 깊이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의 평등주의, 세습군주제 비판, 평민적 언어에는 퀘이커 문화의 흔적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페인 자신은 정통적인 퀘이커 신앙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장혁명을 지지했으며 훗날 제도종교에도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따라서 페인은 <퀘이커교도>라기보다 <퀘이커 가정에서 성장한 급진적 계몽사상가>라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퀘이커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
이 다큐에서 퀘이커 이야기는 분량이 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혁명의 도덕적 모순을 드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혁명가들은 양심과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혁명에 동참하지 않는 퀘이커의 양심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위한 혁명이 개인에게 충성을 강요할 때, 그 혁명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것이 제4부의 퀘이커 이야기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애국파의 관점에서는 전쟁 중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군대에는 식량과 돈과 병사가 필요했고, 중립을 주장하는 부유한 시민들이 영국군에 도움을 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퀘이커의 관점에서는 국가가 바뀌었다고 해서 살인과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구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큐 전체는 미국혁명을 자유의 탄생으로 높이 평가하지만, 퀘이커 이야기를 통해 다음 사실도 보여줍니다.
<미국의 종교 자유는 처음부터 완성된 원칙이 아니었다. 혁명정부도 전쟁과 국가안보를 이유로 양심의 자유를 억압했다.>
그래서 세진님이 퀘이커 관점에서 다시 보신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4부의 필라델피아 함락 전후, 사라 피셔 가족과 추방된 퀘이커들 이야기>입니다. 제2부의 너새니얼 그린은 그와 반대되는 선택, 곧 평화주의를 포기하고 혁명군 장군이 된 퀘이커의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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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지적하신 대로 제4부의 초반부, 즉 1777년 late autumn부터 1778년 여름까지 영국군이 필라델피아를 점령했다가 철수하는 시기를 다룰 때 필라델피아 퀘이커(Quakers)들이 겪은 비극과 박해가 매우 깊이 있게 묘사됩니다.
그들이 제4부에서 마주한 <중립>의 대가와 박해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 평론할 수 있습니다.
1. 필라델피아 점령기: '중립'이라는 이름의 오해
1777년 9월, 영국군의 윌리엄 하우 장군이 대륙회의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를 점령했습니다. 이때 필라델피아의 주류 세력이자 막강한 경제력을 쥐고 있던 퀘이커 공동체는 철저한 <정치적·군사적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따라 영국의 조지 3세에게도, 워싱턴의 대륙군에게도 총을 겨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시에 이러한 중립은 양측 모두에게 '배신'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영국군의 시선: 영국군은 퀘이커들이 자신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거나 군수 물자를 무상으로 공급하지 않는다는 점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패트리어트(애국파)의 시선: 밸리포지의 혹독한 겨울 막사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던 워싱턴의 대륙군이 보기에, 따뜻한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영국군과 공존하며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퀘이커들은 사실상의 '로열리스트(충성파)'이자 반역자였습니다.
2. 제4부에서 묘사되는 구체적인 박해
1778년 6월, 국제 정세의 변화(프랑스군의 참전)로 인해 영국군이 필라델피아에서 전격 철수하고, 패트리어트 조지 워싱턴의 군대가 다시 필라델피아를 탈환하면서 퀘이커들에 대한 본격적인 보복과 박해가 시작됩니다.
재산 몰수와 가택 수색: 대륙군과 패트리어트 민병대는 필라델피아에 남아있던 퀘이커들의 집을 수색하여 영국군에게 부역했다는 혐의를 씌웠습니다. 전쟁 자금을 조달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막대한 재산과 토지가 강제로 몰수되었습니다.
강제 추방과 감금: 재판도 없이 수많은 퀘이커 지도자들이 '잠재적 스파이'로 낙인찍혀 버지니아 등 외지로 강제 추방되거나 감금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퀘이커가 혹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사법외적 처형: 다큐멘터리는 일부 퀘이커 교도들이 영국군에게 식량을 팔았거나 길을 안내했다는 사소한 혐의만으로 패트리어트 군정에 의해 군중 앞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던 참상을 가감 없이 고발합니다.
3. 평론적 관점: 광기의 시대, 평화주의가 치른 대가
켄 번즈와 제프리 C. 워드는 제4부의 이 파트를 통해 미국 혁명이 지닌 가장 어두운 내전(Civil War)의 속성을 폭로합니다.
패트리어트들이 외친 <자유>와 <권리>는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선택적 가치였습니다. 폭력과 광기가 지배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무기를 들지 않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퀘이커들의 도덕적 신념은 '회색분자의 비겁함'으로 매도당했습니다. 번즈는 밸리포지에서 살아남은 대륙군의 숭고함 바로 뒤편에, 중립을 지켰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약탈당하고 처형당해야 했던 필라델피아 퀘이커들의 비극을 배치함으로써, 승리의 역사에 가려진 '이상주의의 함정'을 날카롭게 성찰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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