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인의 포로들 - 제1부 그 후 40년 MBC930903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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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74 views May 22, 2023 #MBC #MBC다큐
6.25 40주년 특집 MBC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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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7 seconds브라질 상파울루시에서 약 50km
0:2424 seconds그것은 평소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되고
0:3333 seconds있었다
0:4747 seconds철창 저 안쪽에서는 어떠한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 지재팀은 브라질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0:5454 seconds겹겹의 철문을 통과해야 했다
1:071 minute, 7 seconds[음악]
1:171 minute, 17 seconds[음악]
1:191 minute, 19 seconds상파울로 중범죄 정신질환자 수용소 이곳에는 브라질 법무부가 치료감호의 필요가
1:271 minute, 27 seconds있다고 판단한 300여명의 범죄자들이 수용돼 있다
1:431 minute, 43 seconds강도와 살인 강간 방화 등 중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 언제 다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1:521 minute, 52 seconds까닭에 이들은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 소용돼 있다
1:581 minute, 58 seconds[음악]
2:102 minutes, 10 seconds바로 여기에 폭격 중인 단 한 사람의 동향이
2:242 minutes, 24 seconds괜찮으십니까 건강이 어떠세요 건강하세요 저는 한국인이 왔다
2:312 minutes, 31 seconds여기
2:442 minutes, 44 seconds얼마쯤 되겠습니까 지금 몇 년째 계세요 이렇게 언제 여기 오셔서
3:003 minutes오래돼서 이제 저쪽으로
3:103 minutes, 10 seconds감속하고 합시다 저희는 김씨는 얼핏 정상인처럼 보였다
3:203 minutes, 20 seconds그런데 차츰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3:423 minutes, 42 seconds내 친구가
3:523 minutes, 52 seconds몇 번 열 방문했어요 친구가 어떤 분이야
4:024 minutes, 2 seconds기억나세요 누가 누군지
4:194 minutes, 19 seconds누군지 아시겠어요
4:314 minutes, 31 seconds바로 37년 전 김만수씨 자신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4:394 minutes, 39 seconds모르시겠어요 이분 누군지 아시겠어요 김창완씨
4:434 minutes, 43 seconds[음악]
4:454 minutes, 45 seconds기억나세요 그런 사람에게 37년 전
4:534 minutes, 53 seconds옛 동료의 모습을 기억하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5:315 minutes, 31 seconds이 사람들이 나를 나를 찾고서 일단 안 된다고
5:405 minutes, 40 seconds알죠 알겠습니다 많이 당신들이 한국에 간다면 나도 갈 수
5:505 minutes, 50 seconds있어요 김만수 씨는 세 사람을 살해한
6:026 minutes, 2 seconds정죄인이다 64년 그는 처음 한 브라질인을 청산한 죄로 구속됐다 그런데
6:096 minutes, 9 seconds재판부의 정신감정 결과 그는 정상이 아님이 판명된 11년간 감호소 생활을 하다 석방 그 후 몇 년쯤지나 그는
6:186 minutes, 18 seconds다시 조센징이라고 놀렸다는 이유로 일본인 두 사람을 살해했다 그 일로 14년째 폭격 중인 김씨는 만 예수살
6:286 minutes, 28 seconds도국적자로 한국의 강원도 출신이라 기록돼 있다
6:376 minutes, 37 seconds한국당에서 본다면 지구의 정 반대편에 있는 멀고만 브라질 땅이 사회에서도 완전히
6:456 minutes, 45 seconds격리 수용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정신질환자 집단 한국의 강원도 출신 김만수 씨는
6:526 minutes, 52 seconds어떻게 해서이 서글픈 태열에 끼어들게 된 것일까
7:037 minutes, 3 seconds[음악]
7:117 minutes, 11 seconds[음악]
7:197 minutes, 19 seconds[음악]
7:227 minutes, 22 seconds이곳의 유일한 즐거움은 식사 시간이다 환자들은 10년이고 20년이고 기약 없는 세월을 오로지
7:317 minutes, 31 seconds철창박 자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7:377 minutes, 37 seconds[박수]
7:397 minutes, 39 seconds이 속에서 그 외모 때문에라도 어쩔 수
7:467 minutes, 46 seconds없이 눈에 띄는 유일한 경향이며 한국인인 김만소식 그의 식사 습관은 매우 독특하다 한끼
7:547 minutes, 54 seconds밥조차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하는 끈질긴 불안과 처져 그것은
8:008 minutes43년 전 그 끔찍한 전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1950년
8:098 minutes, 9 seconds[박수]
8:118 minutes, 11 seconds6월 그의 여름에 포성은 뒤틀린 그의 운명에 첫 신호탄이었다 김만수 씨와 같은 모든이 땅의
8:198 minutes, 19 seconds청년들은 누구도 결코 동족 성전에 비극을 비켜갈 수 없었다
8:288 minutes, 28 seconds전쟁은 무수한 죽음을 낳고 있었다 그 속에서 포로라는 이름의 생존자도 늘어만 간다
8:368 minutes, 36 seconds51년 3월 거제도에 집결된 포로의 손은 무려 17만 이후 계속된 2년여의 포로 생활은 더할 수 없는
8:448 minutes, 44 seconds지역과 깊은 절망의 나날이었다 김만수 씨도 그들 포로 중에 한
8:548 minutes, 54 seconds사람이었다 그리고 휴전과 함께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택했던 한국인 이른 여섯 명 중에 한
9:039 minutes, 3 seconds사람이었다 56년
9:119 minutes, 11 seconds우여곡절 끝에 브라질 입국에 성공한 그가 이제 다시 이렇게 갇혀 사는 신세가 됐다
9:219 minutes, 21 seconds처음에 김씨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착실히 일을 했다 그러나 브라질에 온지 10년도 채 못 돼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9:309 minutes, 30 seconds것이었다 숨막히는 전쟁의 공포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해야 했던
9:389 minutes, 38 seconds포로수용소의 악몽은이 낯선 땅에서까지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그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9:469 minutes, 46 seconds스스로 돌아버리는 이길 뿐이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40년 전 그때 포로와 같은 생활을
9:549 minutes, 54 seconds다시금 반복하고 있다
9:589 minutes, 58 seconds[음악]
10:0410 minutes, 4 seconds상파울루시에서 250km 떨어져 있는 로레나 김만수 씨와 같은 포로 출신으로
10:1110 minutes, 11 seconds근 20년간 소식 두절이라는 한 노인을 지재팀이 찾아 나섰다
10:2610 minutes, 26 seconds브라질의 온 이래로 결혼도 하지 않고 내내 혼자 살고 있다는 노인이다 안녕하세요
10:4010 minutes, 40 seconds무슨 책이요 여기서 뭐 하세요 그러면 여기서요
11:0311 minutes, 3 seconds[음악]
11:1711 minutes, 17 seconds[음악]
11:5211 minutes, 52 seconds[음악]
12:1912 minutes, 19 seconds[음악]
12:3412 minutes, 34 seconds[음악]
12:4012 minutes, 40 seconds집주인은 거의 1년째 단 한 사람의 친척도 친구도 그를 찾지 않았다고 전한다
12:4812 minutes, 48 seconds[음악]
12:5412 minutes, 54 seconds그래도 그는 혼자 늘 분주하다 텃밭에 약초를 심어서 그것으로 자기만의 명약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13:0413 minutes, 4 seconds의원이신 조보에게서 약제법을 배웠다
13:0713 minutes, 7 seconds[음악]
13:1713 minutes, 17 seconds고향인 화매도 성화에서 그는 참으로 멀리까지 떠나왔다 그만큼 전쟁에서 멀어지고 싶었기에
13:2413 minutes, 24 seconds이곳에 함께 온 동료들에게도 소식 한번 전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모든 기억들로부터 멀어지고자 자기
13:3413 minutes, 34 seconds자신마저 짐짓 외면하면서
13:3813 minutes, 38 seconds[음악]
13:5213 minutes, 52 seconds전쟁이 끝난지도 언 40년이다 북한으로의 성환을 거부하고 나만의 남기도 싫다 하여 제3국을 선택했던
14:0214 minutes, 2 seconds이른바 반공포로 이룬 6명 그들 중 쉰 다섯 명이 이곳 브라질로 온지도
14:0914 minutes, 9 seconds37년이 흘렀다 그래서 이제 아야 코 아들이 파울라란 말이야
14:1714 minutes, 17 seconds처음 이곳에 올 때는 20살 청년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철호의 노인들이 됐다 상파울루에서
14:2514 minutes, 25 seconds의류업으로 자리를 잡은 이춘영씨댁에 모임에선 정신병자 감호소에 김만 셋이나 로레나의 이미요시의 소식조차 끊긴지
14:3414 minutes, 34 seconds오래다 그러나 이들도이 여전히 전쟁의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14:4214 minutes, 42 seconds그들과 다름없다
14:5114 minutes, 51 seconds이들 중 3분의 1은 아직도 브라질로 귀화하지 않았다 40년 가까이 무극적자인 채로
14:5914 minutes, 59 seconds살아왔다 국적의 난에다가 뭐
15:2215 minutes, 22 seconds무슨 뭐 무슨 사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옛날에는 아마존이 그럴 때는
15:2915 minutes, 29 seconds비엔날이면 상당히 그리고 촬영하고 어떻게 하다가 내가이 문식을 가지고 만나는 생각만 생각할
15:3715 minutes, 37 seconds때 지금 말하고 그랬어요
15:4515 minutes, 45 seconds이 모임이 만약에 텔레비전 나만의 보이게 되면 북한으로도
15:5515 minutes, 55 seconds가는 거예요 사진이
16:0316 minutes, 3 seconds[음악]
16:0816 minutes, 8 seconds북한에 가는가 하는가요
16:1916 minutes, 19 seconds[음악]
16:3316 minutes, 33 seconds우리 가운데 제일 나이가 어린 사람이 얘가 제일 어려워요
16:4416 minutes, 44 seconds그래서 우리가 이제 무슨 얘기를 한다던가 해약을 한다든가 항상이지 우리네처럼 이렇게 이렇게
16:5216 minutes, 52 seconds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래서 얘기가 제대로 제대로 못해 그리고 여기 와서 이제 브라질 여자하고 결혼을 하기까지 말이야
17:0217 minutes, 2 seconds동탄이지 그렇게 됐다고 그래서 뭐 형제지 뭐 이게 제일 우리가 지금 부모 형제가 여기 지금 누가 같이
17:1117 minutes, 11 seconds와서 삽니까이 형제가 완전히 지금 이제 뭐 둘도 없는 한국에 있는 형제보다도 여기에 같이
17:2017 minutes, 20 seconds사는 형제들이 형제예요 이 형제들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17:2717 minutes, 27 seconds어리다는 유필영 씨는 요기요가 터진 그 해 17살이었다
17:3617 minutes, 36 seconds그랬던 그가 낯선 땅 브라질에 한 칸 집이나마 마련하여 불이 내리기까지에는 그 한
17:4317 minutes, 43 seconds겁이 한 고비가 전장에 사투와 다름없었다
17:5417 minutes, 54 seconds브라질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반평을 선반공으로 일하면서
18:0218 minutes, 2 seconds삼남 1녀를 주는 동안 어느새 모국어도 조금씩 잊어 먹었다
18:1418 minutes, 14 seconds외동딸에게는 윤자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준 요시였다
18:2118 minutes, 21 seconds[음악]
18:2318 minutes, 23 seconds이제는 막내까지 모두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얻었으니 요시 부부에게는 더 이상 걱정거리가 없다
18:3118 minutes, 31 seconds그런데 마음의 여유 탓인지 요즘은 가장인 거가 자꾸 약해집니다
18:3918 minutes, 39 seconds3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도 결코 설명하기 힘든 그만의 아픔이 있다면
18:5118 minutes, 51 seconds남편께서 사시면서 고향에 가고 싶어 하신다던가 아니면 부모님이랑 형제들 보고 싶다고
18:5918 minutes, 59 seconds하는 거 그런 거 옆에서 좀 자주 보셨어요
19:0919 minutes, 9 seconds[음악]
19:3819 minutes, 38 seconds[음악]
19:5619 minutes, 56 seconds[음악]
20:1420 minutes, 14 seconds[음악]
20:3320 minutes, 33 seconds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그것을 생각하지 참 기가 매기자구요
20:4120 minutes, 41 seconds부모네도 만나고 싶지 못하고 경제도
20:5320 minutes, 53 seconds그래서 늘 원하는 것은 한국 통일을
21:0321 minutes, 3 seconds빨리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님 얼굴 좀 기억하세요
21:1021 minutes, 10 seconds내가이 그
21:2221 minutes, 22 seconds어머니가 그날을 잊지 못하겠어요
21:3421 minutes, 34 seconds17 나이에 따라온 고향 그리고 어머니 그는 언젠가 돌아갈 기회가 오리라고 믿었다
21:4321 minutes, 43 seconds그러나 54년 2월 제3국 인도로 향해 인천항을 떠난 뒤 그는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21:5121 minutes, 51 seconds[음악]
22:1022 minutes, 10 seconds[박수]
22:1122 minutes, 11 seconds[음악]
22:1722 minutes, 17 seconds요
22:1922 minutes, 19 seconds[음악]
22:2922 minutes, 29 seconds[박수]
22:4322 minutes, 43 seconds1954년 2월 24일 중립국행을 선택한 이런 여섯 명의 반공포로들은
22:5022 minutes, 50 seconds인도의 남단 마두라스 항에 도착했다 항구는 un의 중립국 관리위원단으로 활약한 인덕원에 대한 환영 열기로
22:5822 minutes, 58 seconds가득했다 그 뒷전에서 반공포로의 초란 하선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인도는 어디까지나
23:0623 minutes, 6 seconds제3국으로 가기 위한 임시 대기소에 불과하였다
23:1123 minutes, 11 seconds[음악]
23:2223 minutes, 22 seconds[음악]
23:2523 minutes, 25 seconds그로부터
23:3123 minutes, 31 seconds[박수]
23:3323 minutes, 33 seconds40년 인도에서 크게 성공했다는 한 한국인 사업가의 얘기가 한국에까지 전해왔다
23:4823 minutes, 48 seconds델리시에서 약 1500km 떨어진이 대규모 채석장의 소유자가 바로 그 한국인이라고 한다
24:0324 minutes, 3 seconds종 장비를 동원해하는이 사업은 적지 않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24:1724 minutes, 17 seconds바로이 사업을 벌여놓고 부지런히 현장을 뛰는 한국인 지기철씨 그는
24:2424 minutes, 24 seconds54년 2월 마도라상의 첫 발을 드디었던 그 반공포로 중에 한 사람이다 그때 마도라스에서
24:3324 minutes, 33 seconds곧장 델리행 기차를 타러 가던 일행의 맨 앞줄에 섰던이 사람 그는 인도로는 배 위에서부터
24:4024 minutes, 40 seconds한국인 포로 이룬 6명의 리더 역을 맡았었다
24:4924 minutes, 49 seconds일제 말 관동군에서 팔로군을 거쳐 북한 인민군 소좌였던 그는 도로가 돼 급기야 중립국 인도에까지
24:5824 minutes, 58 seconds이른다 파란만은 한국 현대사 그 역사가 어쩌면 그를 여기까지
25:0625 minutes, 6 seconds몰고 온 것인지 모른다 넓은 땅에 가서 큰 돈을 벌어 당당히
25:1425 minutes, 14 seconds고국을 찾겠다는게 당시 그의 희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멕시코 행을 원했다 그러나 멕시코 입국이 끝내 허락되지
25:2225 minutes, 22 seconds않자 동료 8명과 함께 결국 인도에 놀라 앉았다 그리고
25:2825 minutes, 28 seconds40년 그는 대사업가로 변신했다 화강암을 수출하는이 사업장에서는 연간 800만 달러의 소득을 올린다
25:3825 minutes, 38 seconds전쟁과 사상대립에 지친 그에게 비난처를 제공해주었던 이곳 인도에서 그는 당당히 살아갈 길을 찾아낸
25:4625 minutes, 46 seconds것이었다 지사장 댁은 델리시 고급 주택가에
25:5925 minutes, 59 seconds있다 아이들은 모두 외국에 유학을 보냈고 집에는 늘 아내와 하인들 뿐이다 이만큼 자리를 잡았는데도
26:0826 minutes, 8 seconds지기철 씨는 이쯤에서 안주할 마음이 없다 조국을 떠나던 그날부터 그는 이미
26:1426 minutes, 14 seconds자신의 터전을 잃어버린 탓인지 모른다 그때 내가 배를 탈 적에는
26:2426 minutes, 24 seconds완전히 반렵자가 되었구나 이렇게 못을 박혀서 가지 외국을 나가야 되겠느냐 아무튼 많이
26:3326 minutes, 33 seconds울었어요 내가 그때 섭섭하고 썼다고 생각한 것은 내 자신은 방공을 해왔는데
26:3926 minutes, 39 seconds아직도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빨개를 취급하고 지금이 대통령까지 이러니까 우리의 설
26:4826 minutes, 48 seconds곳이 없지 않느냐 미국에 가면 죽을 놈이고 대한민국에서까지 기다리니까 그런 우리가 갈 나라가 어디냐
26:5626 minutes, 56 seconds어디로 간다는 거야 한국전쟁 당시 포로의 관리를 맡은
27:0427 minutes, 4 seconds미군은 해당초 귀순자와 전쟁 포로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것은 큰 실수였다
27:1127 minutes, 11 seconds미군은 단지 제네바 협정에 의한 위생관리 물자 공급 등만 철저히 하면 된다고 봅니다
27:1927 minutes, 19 seconds그들은이 전쟁이 이념 전쟁이라는 중대한 사실을 신중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27:2627 minutes, 26 seconds그런 허술한 관리하에 침공포로들은 수용소 내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등 집단 행동에 돌입했다
27:3327 minutes, 33 seconds[음악]
27:3527 minutes, 35 seconds사상대립이 목숨을 건 싸움으로 번져갔다 마침내
27:4727 minutes, 47 seconds52년 6월 거제도에서는 포로 심사를 반대하는 침공포로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27:5627 minutes, 56 seconds[음악]
28:0128 minutes, 1 second법동은 수십의 사상자를 내고 간신히 진압된다 반공포로와 침공포로는 비로소
28:0828 minutes, 8 seconds분리수용되었다 그러나 이미 좌익사상에 철조망 안에서 많은 반공포로들이
28:1628 minutes, 16 seconds피살 암내 장비였으며 우익 자치조직에 의한 좌익의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
28:2328 minutes, 23 seconds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철조망 안에서는 포로들끼리 그렇게 치열한 사상전을 치루어야 하였던 것이다
28:3328 minutes, 33 seconds[음악]
28:3628 minutes, 36 seconds그렇게 싸운 거예요 그래서 잠은 입장에서 벌에 성산에 우리 거제도가 있을 때는 한자기서는 인민군 노래가 나오고 하늘은
28:4528 minutes, 45 seconds이렇게 되는데 그러니까 또 그걸 그렇다고 그 노래를 그 안에서 설을 찔러주고 싸우고 그래서 그 내막적으로 사람 죽는
28:5428 minutes, 54 seconds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게 만수전은 아니지만 아마 10명 이상 되었어요 제가 있는 그 83 수용소에서
29:0229 minutes, 2 seconds보니까 우리에게 거대한 이게 지금 나쁘다 그러니까 나는 어떠한 기회를 만들어 외부에서 좀 가서 있다가
29:1129 minutes, 11 seconds통일이나 대구 정말 그야말로이 사람들이 어떤 이렇게 좋을 때 한번 가자 그런 일을 봤는데
29:2529 minutes, 25 seconds어디에 간들 형제끼리 싸우고 죽이는 그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가난하고 무조건 낯선이 땅도 그래서
29:3429 minutes, 34 seconds당시에 한국 청년들 눈에는 천국처럼 보였다
29:5029 minutes, 50 seconds그래서 눌러 살게 된 인도 일제 때 사진학교를 다녔던 채시로서는 그럭저럭
29:5729 minutes, 57 seconds먹고살 기술은 있는 셈이었다 한때 인도 문공부에서 사진 수정하는
30:0430 minutes, 4 seconds일을 하며 그는 인도 국적도 얻었다 자진예술가로 성공해 보겠다던 젊은
30:1030 minutes, 10 seconds시절의 꿈은 자연히 사라져갔다 제인철
30:2130 minutes, 21 seconds씨는 그 후 오랫동안 인도 주제 한국 대사관에서 허드렛일을 보아왔다 지금도 이곳에 딸린 석수에서
30:2930 minutes, 29 seconds티벳 출신의 동거인과 함께 대사관에 허드렛일을 보아주며 살아간다
30:3930 minutes, 39 seconds[음악]
30:4530 minutes, 45 seconds그에게는 전쟁 전에 북에서 결혼한 아내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포로가 된 이상 가족의
30:5230 minutes, 52 seconds안전이 보장될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송환을 거부하고 제3국을
31:0131 minutes, 1 second선택했다 그러나 인도행 배 안에서도 그는 그것이 최후의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31:1031 minutes, 10 seconds외국에 나가 있다 보면 고향 함흥으로 돌아갈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를 기다리며 그는 사진 공부를 좀
31:1831 minutes, 18 seconds더 폭넓게 해보겠다는 야심도 가졌어
31:2131 minutes, 21 seconds[음악]
31:3731 minutes, 37 seconds그러다 40년 세월이 흘렀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저 밥해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이야기며
31:4531 minutes, 45 seconds그는 하루하루 살아간다 섬성한 백발 앞에서
31:5231 minutes, 52 seconds피어 보지도 못한 예술가의 꿈은 한갓 옛 얘기가 된다
32:0432 minutes, 4 seconds돌이켜보면 인도의 첫발을 내렸을 때만 해도 모두에겐 꿈들이 컸다 전쟁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드디어 그
32:1332 minutes, 13 seconds살육의 땅을 탈출해 나왔으니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때 그들의 나이 20살
32:2032 minutes, 20 seconds안팎이었다 벌어들은 당시 인도 정부가 제공한 이곳에서 제3국에 입국 허가를
32:2832 minutes, 28 seconds기다렸다
32:4232 minutes, 42 seconds당시 제26 야전병원이었던 자리는 지금도 인도군의 막사로 쓰이고 있다 40년의 세월에도 변한 것이 없는
32:5132 minutes, 51 seconds이곳 그러나 그때에 기다림은 40년보다도 더 길고 지리한 시간이었다
32:5832 minutes, 58 seconds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인도의 노래로 향수를 달래면서 오로지 새로운 땅으로 떠날 날만을 기다렸던
33:0533 minutes, 5 seconds포로들 그 기다림이 2년여나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었다
33:1233 minutes, 12 seconds[음악]
33:1833 minutes, 18 seconds스위스와 스웨덴은 애당초 받지 않겠다고 했다 멕시코는 6개월을 끌다가 난색을 표명해왔다 어른들은
33:2733 minutes, 27 seconds갈데 없는 국제 난 민신세였다
33:4533 minutes, 45 seconds인도 대기 2년째 마침내 포로들에게 희소식이 찾아들었다 브라질에서 이들의 입국을 허락한다는
33:5333 minutes, 53 seconds것이었다
33:5533 minutes, 55 seconds[음악]
34:0334 minutes, 3 seconds56년 2월 브라질을 선택한 쉰 5명의 포로들이 인도를 떠났다
34:1034 minutes, 10 seconds포러스용소와 인도의 수용소 모두 6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청산하는 순간이었다
34:1834 minutes, 18 seconds뒤에 이어 아르헨티나에서도 입국을 허락했다
34:2234 minutes, 22 seconds[음악]
34:5234 minutes, 52 seconds[음악]
35:1635 minutes, 16 seconds한복 청진의 고향인 현동화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 받아내 6.25를 맞아 인민군의 징집됐다
35:2535 minutes, 25 seconds그해 10월 강원도 화천에서 포로가 된 그는 당시 19살이었다 가족이 모두 몰살했다는
35:3335 minutes, 33 seconds소문을들은 그는 미련없이 제3국을 선택했었다 마는
35:4935 minutes, 49 seconds그때 만약 그 부모가 서울에 내려오셨다고 하는 것을 알았으면 절대로 여기 나오질 않았을 겁니다 또
35:5735 minutes, 57 seconds친구들도 많이들 내려왔고 그래서 여기 나오게 된 것도 역시 이것이 일종의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이렇게
36:0636 minutes, 6 seconds좀 인도에 남게된 8명의 삶은 지난 40년간 저마다 또 얼마나 달라졌는가
36:1536 minutes, 15 seconds그 중에서이 사람 장기화 씨는 동료들과의 접촉도 끊긴지 오래라고 한다
36:2536 minutes, 25 seconds치즈 팀은 그를 찾아보기로 했다
36:2936 minutes, 29 seconds[음악]
36:4836 minutes, 48 seconds치즈팀이 수소문한 결과 네팔계의 식목사라는 분이 장씨의 소식을 갖고 있었다
37:0337 minutes, 3 seconds이가도 당신은 초라한 행색으로 가끔 식목사의 교회에 찾아오고 교회는 바로 그에게
37:1137 minutes, 11 seconds도움을 주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분이 1인 지금 프랑스
37:1937 minutes, 19 seconds사람들이 거의 마두리예요 프랑스 바드로 그는 네팔씩 성인 바하드루라는 성을 쓰면서
37:2737 minutes, 27 seconds인도의 극빈층인 네팔 사람 행세를 하며 산다고 했다
37:3637 minutes, 36 seconds식목사가 장시에 오래전에 주소라고 적어준 것은 델리시에서 30km 쯤 떨어진
37:4437 minutes, 44 seconds외곽에 빈민지대였다
38:0038 minutes아무거나
38:1938 minutes, 19 seconds노동을 하며 떠도는 장씨는 네팔로 같다는 소문도 있었다 같은 반공포로 출신 중에서도
38:2738 minutes, 27 seconds장씨의 집에 가본 사람은 없었다 제재팀이 그를 만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38:4038 minutes, 40 seconds그랬는데 바로 마을 입구에서 인도인과는 다른 웬 낯익은 모습이
38:4738 minutes, 47 seconds발견됐다 장기하시세요
39:0039 minutes저는 반갑고도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집에까지 찾아온 한국 사람은 이제까지
39:0739 minutes, 7 seconds아무도 없었던 까닭이다
39:1539 minutes, 15 seconds[박수]
39:2439 minutes, 24 seconds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야
39:3739 minutes, 37 seconds이름이 뭐예요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39:4239 minutes, 42 seconds[음악]
39:4539 minutes, 45 seconds퀘어입니다 제임스의 엄마는 듣던 대로 네팔 여인이었다 당신은 아내를 병으로 잃고이 여자와
39:5439 minutes, 54 seconds다시 만났다
39:5839 minutes, 58 seconds[음악]
40:0640 minutes, 6 seconds경북 신의주 출신 부모가 모두 천도교 신자였던 그는 전쟁이 끝나고 북한에 돌아가 봤자 가족이 살아남아 있을
40:1340 minutes, 13 seconds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홀연히 택한 제3국에서의 삶은 새삼스러울 것이 못됐다 그
40:2340 minutes, 23 seconds병남지탄 엉색한 집안에서 그는 닥치는 대로 노동을 하며 연명하고 있다
40:3240 minutes, 32 seconds배운 것도 없고 가족도 없는 처지에 조국마저 떠나 산다는 것은 더욱
40:3940 minutes, 39 seconds고달픈 일이었다 내가 실수했다는 것이
40:4740 minutes, 47 seconds당근 내가 질서를 내서 내가 상당히 일생을 내가 많이 느끼게 됩니다 지금
40:5440 minutes, 54 seconds끝내자들 수술을 느끼는 거야 우리 한국에 내가
41:0241 minutes, 2 seconds그런데도 그것이 있었다면 한국으로서
41:1041 minutes, 10 seconds연결을 입어진 나서 느끼지요 한번
41:2041 minutes, 20 seconds실수한 다음에 할 수 없이 되는 걸로
41:2841 minutes, 28 seconds첫째는 부관에서 살았다는 건 내 일생에
41:3941 minutes, 39 seconds두 번째는 내 한국 에 포르노 석방될 때 내가 한국을
41:4841 minutes, 48 seconds왔구나 하는 것이 두 번째 잘못이 있고 실수가
41:5441 minutes, 54 seconds[음악]
42:4842 minutes, 48 seconds[음악]
42:5742 minutes, 57 seconds[음악]
43:1043 minutes, 10 seconds40년의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23세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선택이란
43:1743 minutes, 17 seconds배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43:2143 minutes, 21 seconds[음악]
43:3843 minutes, 38 seconds이제 아무것도 더 필요 없다고 하는이 소박한 이국 여자와 함께 더
43:4643 minutes, 46 seconds잃을 것도 없는이 빈민가에서 그는 초라한 노년을 맡고 있다
44:0544 minutes, 5 seconds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 사상의 대립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했던 것이
44:1344 minutes, 13 seconds결과적으로 그를 너무 먼 곳까지 흘러나오게 했다
44:2444 minutes, 24 seconds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국에 남아있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장 오래 전쟁을 앓고 있다
44:3444 minutes, 34 seconds고향 생각이 간절할 때면 그는 이곳 자문화강에 손을 씻는다
44:4744 minutes, 47 seconds그러나 되돌아 건너기엔 너무 먼 곳까지 그는 세월의 강을 건너왔다
44:5544 minutes, 55 seconds게다가 이제는 너무 지쳐버렸다
44:5844 minutes, 58 seconds[음악]
45:0345 minutes, 3 seconds뭐 부모님 뭐 있어요 주소 같은 거 형제분
45:1045 minutes, 10 seconds성함은 다 잊어버리셨어요
45:3045 minutes, 30 seconds새삼스럽게 더 전해야 할 인사도 그에게는 없다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조국을
45:3745 minutes, 37 seconds떠나던 그 순간 고향과 가족도 함께 포기했었다 지난 40년
45:4545 minutes, 45 seconds떠돌며 지탱해온 삶의 무게는 그 선택의 당연한 대가였는지 모른다
45:5245 minutes, 52 seconds이제는 갈 수 없는 조국을 향해 지난 40년 거친 세월을 향해 그는
45:5945 minutes, 59 seconds그저 오래오래 손을 흔들 수 있을 뿐이다
46:0346 minutes, 3 seconds[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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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들 - 제1부 그 후 40년>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76인의 포로들 - 제1부 그 후 40년>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 체결 당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했던 반공포로 76명의 삶과 궤적을 추적한 MBC의 6.25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이다. 전쟁과 이념 대립의 최전선이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은, 민족 상쟁의 비극과 수용소 내부의 참혹한 혈전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과 분단의 땅을 모두 등진 채 낯선 이국으로 떠났다. 본 작품은 그로부터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1993년, 브라질과 인도 등 지구 반대편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노년을 맞이한 포로들의 비극적 실상을 취재하여 한국 현대사의 잊힌 단면을 생생히 조명한다.
[요약: 전쟁의 트라우마와 제3국에서의 이방인 삶]
다큐멘터리의 전반부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중범죄 정신질환자 수용소에 격리된 김만수 씨의 충격적인 삶을 조명하며 시작한다. 강원도 출신의 김만수 씨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치명적인 전쟁 공포와 악몽으로 인해 브라질 이주 후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결국 그는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법무부의 치료감호 처분을 받아 겹겹의 철창 속에 갇힌 채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식사 시간조차 불안과 초조함을 거두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40여 년 전의 전쟁이 한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어떻게 철저히 파괴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동료들과 소식을 끊은 채 은둔하며 약초를 다리며 사는 노인이나, 브라질 현지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삼남매를 키워낸 유필영 씨 등 브라질에 정착한 다른 포로들의 삶 역시 평온해 보이지만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40년 가까이 어느 나라의 국적도 갖지 않은 무국적자로 살아왔으며, 고향과 부모를 향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살아가는 이방인들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북한의 친지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서로의 소식을 숨기기도 했던 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의 그늘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인도의 낯선 환경 속에 남겨져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해 온 포로들의 다채로운 궤적을 따라간다. 1954년 인도행 배 위에서 76명 포로의 리더 역할을 맡았던 지기철 씨는 연간 800만 달러 규모의 화강암 채석장을 운영하는 성공한 대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떠나던 순간 자신들을 '빨갱이'나 '배신자'로 취급했던 남북한 당국의 시선과 현실에 대한 깊은 서운함과 상처를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다.
반면, 과거 예술가의 꿈을 품었으나 대사관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채씨, 그리고 네팔계 여인과 인도의 가난한 빈민가에서 하루하루 노동으로 연명하는 장기화 씨의 초라한 노년은 역사의 거센 풍랑 속에서 개인이 겪어야 했던 비극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장기화 씨는 20대 젊은 날 자신이 내렸던 제3국 선택을 '일생의 실수'라 회한하며, 되돌아갈 수 없는 세월의 강 앞에서 안타까운 눈물을 흘린다. 고향 신의주의 부모님이 천도교 신자라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타국으로 떠나왔던 그의 고백은 거대한 역사의 톱니바퀴 아래 짓눌린 개인의 무력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평론: 거대한 이데올로기 아래 소외된 개인의 존엄]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인 분단과 이념 갈등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유랑과 비극으로 내몰았는가를 냉정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포착해낸 수작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단순한 포로 수용 시설이 아니라, 미군의 무지와 방치 속에서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의 유혈 사상전이 매일같이 펼쳐지던 참혹한 자갈밭이었다. 철조망 안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암살을 목도한 20대 청년들에게 제3국 선택은 배신이나 변절이 아니라, 오직 살기 위한 탈출구이자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도피처로 택한 제3국 역시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대가는 평생에 걸친 이방인으로서의 고독, 치유되지 않은 정신적 트라우마, 무국적의 방황이었다. 성공한 사업가든, 정신병원 수용자든, 빈민가의 노동자든 상관없이 이들 모두는 4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한국전쟁의 비극적 연장선 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이 작품은 거대한 국가주의 담론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개인의 존엄과 고통이 어떻게 소외되고 잊혔는가를 참담하게 증명한다. 남과 북 어느 편도 들지 않은 채 제3의 길을 택했던 76명의 포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남과 북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며 세계의 변방으로 흩어져야 했다. MBC 제작진의 집요하고 절제된 취재는 이들의 유랑사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분단의 현재진행형 비극으로 끌어올린다. 분단의 상처가 단지 한반도라는 지리적 공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철창과 빈민가까지 길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음을 묵직하게 입증하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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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인의 포로들 – 제1부 그 후 40년> 800단어 요약·평론
MBC가 1993년에 제작한 <76인의 포로들 – 제1부 그 후 40년>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한 포로들의 40년 후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이들을 단순히 “반공포로”나 “귀순 거부 포로”라는 정치적 범주로 다루지 않는다. 전쟁과 냉전이 한 인간의 정신, 가족, 국적, 고향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브라질과 인도에 흩어진 생존자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중범죄 정신질환자 수용소에서 시작한다. 그곳에는 한국인 김만수가 수십 년째 갇혀 있다. 그는 한국전쟁 포로였고, 휴전 뒤 남한이나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3국을 선택한 76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56년 브라질에 도착한 뒤 처음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성실하게 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 그는 브라질인 한 명과 일본인 두 명을 살해해 치료감호소에 수용되었다. 특히 일본인들이 자신을 “조센징”이라고 모욕했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설명은 그의 정신이 식민지 경험, 전쟁, 포로수용소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김만수의 삶은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례다. 다큐멘터리는 그를 단순한 살인범으로 규정하지 않고, 전쟁의 공포와 포로수용소의 기억이 수십 년 동안 정신을 잠식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유를 찾아 한국을 떠났지만 다시 철창 안에 갇혔다.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려 했던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포로가 된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40년 전 포로와 같은 생활을 반복한다”고 표현한 것은 그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제작진은 브라질 로레나에서 혼자 사는 또 다른 포로 출신 노인을 찾아간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동료들과 연락도 끊은 채 약초를 재배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과거와 고향, 동료들을 모두 외면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전쟁 기억을 견디는 또 다른 방식이다. 김만수가 기억에 압도되어 정신적으로 붕괴했다면, 이 노인은 기억을 차단함으로써 생존했다. 그러나 그 고립 역시 온전한 치유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지우는 삶에 가깝다.
브라질에 정착한 다른 포로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 어떤 이는 의류업으로 성공했고, 어떤 이는 브라질 여성과 결혼해 자녀들을 키웠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40년 가까이 브라질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채 무국적자로 살아왔다. 이들은 한국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브라질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다. 포로 동료들을 “한국에 있는 형제보다 가까운 형제”라고 부르는 장면은 가족과 조국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를 대신 가족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17세에 전쟁을 겪고 브라질로 온 유필영의 이야기는 특히 애잔하다. 그는 브라질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들을 키우며 생활 기반을 만들었지만, 노년이 되자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다시 강해진다. 그는 1954년 인천항을 떠난 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으나 결국 40년 동안 돌아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그날을 잊지 못하겠다”는 그의 말은 전쟁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빼앗는지를 설명한다. 전쟁은 생명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귀향의 가능성, 가족 관계, 언어와 기억까지 파괴한다.
다큐멘터리 후반부는 인도에 남은 포로들을 다룬다. 지기철은 화강암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일제 말 관동군, 중국 팔로군, 북한 인민군을 거쳐 포로가 된 복잡한 이력의 인물이다. 그는 넓은 외국 땅에서 돈을 벌어 당당하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품었지만, 인도에서 성공한 뒤에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반공을 선택했는데도 남한으로부터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그의 증언은 냉전 체제가 개인의 실제 경험보다 정치적 낙인을 우선시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채시로는 사진가의 꿈을 접고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간다. 전쟁 전에 북한에 아내가 있었지만, 포로가 된 자신 때문에 가족이 위험해질 것을 우려해 송환을 거부했다. 그는 언젠가는 함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40년이 지난 뒤에는 예술가의 꿈도 귀향의 희망도 사라졌다.
가장 비참한 사례는 장기화다. 그는 인도 빈민촌에서 네팔인처럼 살아가며 일용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는 제3국을 선택한 일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로 회고한다. 제작진이 그에게 가족의 이름과 주소를 묻지만,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잊었다. 다큐멘터리는 그가 강가에서 손을 씻는 모습을 통해 “되돌아 건너기에는 너무 먼 세월의 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대표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장점은 포로들의 선택을 이념적 충성이나 배신으로 단순화하지 않는 데 있다. 이들은 확고한 정치철학에 따라 제3국을 택했다기보다,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느낀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대부분은 20세 안팎이었다.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었고, 포로수용소 안에서는 좌우익 포로들이 서로를 살해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택을 훗날의 안정된 관점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작품에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냉전적 언어가 남아 있다. 포로들을 주로 “반공포로”라고 부르고, 제3국행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의 장난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군의 포로관리 실패와 수용소 내 좌우익 폭력을 언급하지만, 국가들이 이들을 사실상 무국적 난민으로 방치한 책임은 충분히 파고들지 않는다. 또한 브라질과 인도 사회에서 이들이 겪은 인종차별, 노동착취, 법적 불안정에 대한 구조적 분석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76인의 포로들>은 한국전쟁을 전투와 정치회담 중심으로 기억하는 기존 서사에 중요한 균열을 낸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전쟁은 1953년에 끝나지 않았다. 전쟁은 김만수의 정신질환 속에서, 유필영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 속에서, 채시로의 좌절된 예술가의 꿈 속에서, 장기화의 빈민촌 생활 속에서 계속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전쟁 이후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제3국행 포로들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국가와 이념이 한 인간의 귀속과 존엄을 박탈했을 때 어떤 긴 비극이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한국전쟁의 후일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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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인의 포로들 - 2부 떠나간 자의 비가 MBC930903방송
MBC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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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40주년 특집 MBC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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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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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seconds세계 각국의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 브라질
0:1818 seconds[음악]
0:3030 seconds그러나 상파울루에서 250km 쯤 떨어진 보뚜가뚜시에만 가도 한국인 이민자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0:3939 seconds아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교수까지 지인은 한국인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0:5656 seconds혼자 사시나요
1:111 minute, 11 seconds안녕하세요
1:251 minute, 25 seconds[음악]
1:321 minute, 32 seconds서울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1:391 minute, 39 seconds그는
1:441 minute, 44 seconds[박수]
1:481 minute, 48 seconds5년 전 뇌의 별로 수술을 받은 후 은퇴를 했다 30대의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1:551 minute, 55 seconds조립대학 의대 교수까지 지냈던 사람 그는 6.25 때 포로가 돼 제3국을
2:022 minutes, 2 seconds선택했던 바로 그 일흔 여섯 명의 반공포로 중 한 사람이다
2:152 minutes, 15 seconds면서요
2:182 minutes, 18 seconds[음악]
2:492 minutes, 49 seconds혼자 계세요 혼자 뭐라고요 혼자서
2:562 minutes, 56 seconds빨리 해요 가족 없이
3:123 minutes, 12 seconds일단 엄마
3:243 minutes, 24 seconds[음악]
3:373 minutes, 37 seconds들은 현재 이혼한 전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은퇴한 꿀은 그 자식들의 방문을
3:443 minutes, 44 seconds기다리는 일이 임씨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다고 한다 혼자서 보내야 하는 많은 시간을 그는
3:513 minutes, 51 seconds카세트나 비디오에 의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에게는
4:024 minutes, 2 seconds넉넉하지는 않지만 겨우 밥은 먹을 만큼의 연금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필요한 가족은
4:094 minutes, 9 seconds없다 침착한 사람 찾아볼 수도 없다 그가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4:164 minutes, 16 seconds탓이다 북한에서 고향이 어디 시장 했죠
4:464 minutes, 46 seconds[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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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6 minutes, 9 seconds읽고 병들면서 그에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만 남은 듯했다
6:166 minutes, 16 seconds미움과 사랑과 그리고 어머니
6:206 minutes, 20 seconds[음악]
6:346 minutes, 34 seconds브라질 대중가수의 음성에 마음이 움직이는 그는 자신의 얘기처럼 브라질 사람이 다 됐다
6:426 minutes, 42 seconds그러나 모국어를 잊었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40년 전에 그 순간들
6:506 minutes, 50 seconds[음악]
6:576 minutes, 57 seconds에도 불구하고 고향인 부부로의 성환을 끝내 거부한 반공포로는 2만 6천명에 달했다
7:057 minutes, 5 seconds그들 중 대부분은 나만의 남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 가운데 단 이런 여섯 명의 포로가 제3국
7:157 minutes, 15 seconds행을 원했다 고향도 가족도 포기한 그들에게는 사상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단지 자유를
7:237 minutes, 23 seconds선택했던 것이다
7:247 minutes, 24 seconds[음악]
7:307 minutes, 30 seconds인도에서 인연을 더 기다린 끝에 그들 중 쉰 5명은 브라질에 도착했다
7:387 minutes, 38 seconds56년 2월 하나님의 도시 리오는 전쟁과 오랜 수용소 생활에 지친 청년들을
7:467 minutes, 46 seconds폭군이 맞아 좋았다 갈레오 국제공항에 맞붙은 이곳 꽃섬의
7:537 minutes, 53 seconds임시 숙소에서 그들은 약 2개월간 머물렀다
8:018 minutes, 1 second37년 전 그날 이인 낯선 땅에 첫발을 내리던 그 순간 벌어들을 마중 나온 뜻밖의 한국인이
8:098 minutes, 9 seconds있었다 일명 미다 할아버지라 불리는 장승호씨 고향의 충청도라는 장씨는 공항으로
8:178 minutes, 17 seconds떡을 싸왔었다 그리고 그 후 1년여 버러들의 뒷바라지를 했고 결국 그들 중 김창완씨를 당신의
8:268 minutes, 26 seconds사위로 맞았다
8:278 minutes, 27 seconds[음악]
8:428 minutes, 42 seconds일제시대 10대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인 아내를 얻었던 장씨는 1927년 이곳 브라질로 농업이
8:518 minutes, 51 seconds이민을 와서 한국말도 아예 잊고 있었다 그랬는데 꼭 30년 만에 한국인들을 만날 수
8:598 minutes, 59 seconds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때 포로 출신 사위와 장인이 함께 늙어간다
9:089 minutes, 8 seconds상파울루에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처음 1년간 10여 명의 포로들은 미다 할아버지 장씨 집에서
9:159 minutes, 15 seconds신세를 졌었다 그때 포로들에게 미다 할아버지는 마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9:249 minutes, 24 seconds[음악]
9:269 minutes, 26 seconds고향과 부모를 떠나 일본 땅에 돈벌러 갔던 것이 그의 나이 18살 때였다 그 홀은 그 역시 고향에 돌아가지
9:349 minutes, 34 seconds못했다 남미 대륙에 옮겨와 어느새 대가족을 이루어 살면서도 그에겐 늘 그리운 조국이었다
9:429 minutes, 42 seconds벌어들과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소중했다 안녕하십니까
9:599 minutes, 59 seconds[음악]
10:0110 minutes, 1 second함께 그를 중심으로 서로 의지하며 쉰다섯 명의 반공포로 출신들은
10:0810 minutes, 8 seconds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처음엔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한 가지씩 기술을 익혀 기반을 잡았다
10:1510 minutes, 15 seconds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 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10:2510 minutes, 25 seconds그러나 그들 모두에게이 낯선 사회에서의 적응이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었다
10:3310 minutes, 33 seconds이 뜻이 내 한 거리 김이라는 낯익은 이름의 간판이 걸려 있다
10:4210 minutes, 42 seconds[음악]
10:4310 minutes, 43 seconds이 식당의 주인은 김씨의 아버지는 한국인으로 여기에서 전자제품 수리를 하며 살아왔다
10:5510 minutes, 55 seconds그랬는데 김씨는 5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11:0311 minutes, 3 seconds브라질에 온 쉰 다섯 명의 포로 출신 중 한 사람이었던 김관사 씨 그는 한국사람과의 접촉을 일체 끊고
11:1211 minutes, 12 seconds살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자신의 반공포로 출신이라는 것을 잊지 못했다
11:1911 minutes, 19 seconds사망원인은 암이었으나 그에게는 그보다 더 깊은 병이 있었다 아주 자기는 이북의
11:2911 minutes, 29 seconds국적도 없고 대한민국의 국적도 없고 브라질도 없다는 겁니다 결코 자기가 설탕이 어디냐라는 것을
11:3811 minutes, 38 seconds했어요 아주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 그 술을 많이 들어서 건강을 해쳤는데
11:4711 minutes, 47 seconds술 들게 된 원인은 그 마음에 전쟁으로써 부모를 떠나서 그
11:5411 minutes, 54 seconds고독을 이기지 못해서 술 먹으면서 그 끝내 자기가 설탕이 어딘가 하는 것을 생각하다가
12:0112 minutes, 1 second돌아가신 것 같아요 김씨는
12:0612 minutes, 6 seconds[음악]
12:1012 minutes, 10 seconds죽어서도 하나의 번호로 남았다 거대한 남미 대륙도 끝내 그의 안식처가 돼주지 못한
12:1712 minutes, 17 seconds것이다
12:1812 minutes, 18 seconds[음악]
12:3212 minutes, 32 seconds정렬의
12:3412 minutes, 34 seconds[음악]
12:3812 minutes, 38 seconds탱고가 이들의 삶과 사랑을 말해주듯 유럽계 이민의 문화가 지배적인 이곳 아르헨티나
12:4612 minutes, 46 seconds[음악]
12:4712 minutes, 47 seconds[박수]
12:5012 minutes, 50 seconds[음악]
12:5312 minutes, 53 seconds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00km 쯤 떨어진 항구도시 마르델 블라다에는 세계 각국의 선박이
13:0013 minutes드나든다
13:1513 minutes, 15 seconds원양어선 호프 치료가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출항을 앞둔 이런 순간이면 선장인
13:2213 minutes, 22 seconds정주원 씨는 종종 묘한 감회에 쌓이곤 한다 그는 40년 전 인도군 수성선을 타고 인천항을 떠나던
13:3113 minutes, 31 seconds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정선장도 그렇게 조국을 떠나온 이런 여섯 명의 포로 중 한 사람이다
13:4013 minutes, 40 seconds그로부터 40년 그날의 포로는 세계의 바다를로 가는 원양어선의 선장이 된 것이다
14:0414 minutes, 4 seconds오늘 출항에 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내일 지불하기로 한 봉급을 지금 당장
14:1214 minutes, 12 seconds달라는 선원들의 요구였다
14:2414 minutes, 24 seconds들어왔습니다
14:2914 minutes, 29 seconds[음악]
14:4014 minutes, 40 seconds[음악]
15:0715 minutes, 7 seconds이들 앞에서 동양인 정선장의 리더십은 아주 조심스럽게 발휘되어야 한다
15:1715 minutes, 17 seconds협상은 정선장의 양보로 끝났다 봉급을 하루 앞당겨 지불했다 그러자 선원들은 다시 출항을 내일로
15:2615 minutes, 26 seconds연기했다 돈을 쓸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15:4815 minutes, 48 seconds정선장은 하루 저녁을 더 가족들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5:5415 minutes, 54 seconds[음악]
15:5615 minutes, 56 seconds결혼을 하고도 한 동네에 사는 아들네와 딸네들로 정선장 댁은 늘 활기에 넘친다
16:0316 minutes, 3 seconds외손녀의 친선녀 그동안의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고향과 부모를 떠나와 있는 그
16:1016 minutes, 10 seconds고독감을 정신은이 가족들을 통해서 메우려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보기 드물게 출가한 아들 딸들을
16:1816 minutes, 18 seconds곁에 거느리며 산다 평양 제일고보 졸업반인 18살의 유교를 맞았던 그는 전장의 사육과
16:2616 minutes, 26 seconds수용소 안에서도 끊이지 않았던 런던이라는 사상대립의 혐오를 느꼈다 그래서 결국 조국을 떠나기로
16:3416 minutes, 34 seconds결정했었다 정치가들의 농락이라고요
16:4716 minutes, 47 seconds그러면 그 사람들이 만드는 걸 가지고 엉뚱하게 우리만의 희생당할 필요가 없지 않았습니까
16:5716 minutes, 57 seconds언제든지 좋은 시대가 오면 안 하고 있는 기회가 있더라 그 욕심이지요
17:0817 minutes, 8 seconds[음악]
17:1017 minutes, 10 seconds일단 우리가 군대 나올 때는 선수를 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에서 볼 때에는 마지막
17:1717 minutes, 17 seconds피한강을까지 싸운다고 해가지고 포로 된 거부터 죄라고요
17:2417 minutes, 24 seconds조국이라는 그런 그거는 없습니다 왜 엄연히 대한민국도 있으니까 딱 이분만 내적이 아니거든요
17:3217 minutes, 32 seconds말하자면 조선 옛날에 그 조선도 있으니까 저희들끼리 만들어 가지고
17:4117 minutes, 41 seconds또 외우세요
17:5417 minutes, 54 seconds그러면 지금 그 아드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왜 아르헨티나에 와서 사시는지 알고 계세요
18:0418 minutes, 4 seconds[음악]
18:1318 minutes, 13 seconds인생이 그렇게 지칭을 했다 인생이 그러니 가수
18:2218 minutes, 22 seconds님의
18:3918 minutes, 39 seconds[음악]
18:4218 minutes, 42 seconds인생관을 볼 때는 한 가지는 내 팔자가
18:5018 minutes, 50 seconds아버지 팔자가 이렇게 떨어져서 사야 될 가능성이기 때문에
18:5918 minutes, 59 seconds아버지는 아들
19:0119 minutes, 1 second[음악]
19:0419 minutes, 4 seconds구스따버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전쟁과 맞닥뜨려졌던 그는 자신의 인생 항로를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19:1319 minutes, 13 seconds그것은 결과적으로 그가 학창시절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었다
19:2019 minutes, 20 seconds훗날 자신이 고깃배를 타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19:2519 minutes, 25 seconds[음악]
19:3719 minutes, 37 seconds56년 아르헨티나로 온 반공포로 출신은 1차 7명 2차 5명이었다
19:4519 minutes, 45 seconds처음 그들은 이곳 난민 수용소에 짐을 풀었다
20:0420 minutes, 4 seconds천주교 단체가 운영하는이 난민 수용소에서 한국의 반공포로들은 당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탈출해온
20:1220 minutes, 12 seconds난민들과 함께 수영됐다고 한다
20:2520 minutes, 25 seconds56년 그해 반공포로들은 이곳에서 한 달여를 묵으며 일자리를 찾았다
20:4220 minutes, 42 seconds박창근 홍일성 이미 간식 등 낯익은 코리아누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20:5320 minutes, 53 seconds그리고 7년 후부터 이곳에도 정식으로 한국인 이민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21:0021 minutes조금이라도 먼저 와 있었다는 이유로 반공포로 출신들은 그들을 마중 나가고 길을 안내했다
21:1221 minutes, 12 seconds이미 간신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다 하르헨티나 약대를 다닌 그는 현재까지 이곳
21:1921 minutes, 19 seconds뉴스의 제약회사에서 약사로 근무하고 있다
21:2821 minutes, 28 seconds그런 그에게 최근 북한의 동생으로부터 한 통에 편지가 왔다 김일성대 화학부 1년 재학 중
21:3521 minutes, 35 seconds인민군의 징집된 이후 소식조차 알 수 없었던 가족들이었다 고향을 떠나올 때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21:4621 minutes, 46 seconds동봉해 온 사진 속의 부모님은 너무도 열로해 계셨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들
21:5421 minutes, 54 seconds하나가이 타국에 살아있다는 사실도 모르신 채 그나마 형제라도 살아있는 것에
22:0222 minutes, 2 seconds감사해야 하는 임익간식 그러나 이렇게 떨어져서 너무도 궁핍해 보이는 아우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22:1122 minutes, 11 seconds수밖에 없다 동생의 편지하기를 내가 잘했는지 모르는지 당신이 너의 양심에
22:2522 minutes, 25 seconds그러니까 선생님 하신 일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을 어머니 아버지는
22:3622 minutes, 36 seconds학생 출신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22:4222 minutes, 42 seconds[음악]
22:4422 minutes, 44 seconds맥이나
22:4822 minutes, 48 seconds[음악]
22:5022 minutes, 50 seconds[박수]
22:5222 minutes, 52 seconds[음악]
22:5622 minutes, 56 seconds북으로의 성환 거부 그것은 고향과 가족을 포기하는 뼈아픈 결단을 요구했다
23:0423 minutes, 4 seconds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돌아간 많은 포로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어머니 곁에 돌아갈까 했었다
23:1823 minutes, 18 seconds그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어떤 쪽이었던 그에겐 부모님만은
23:2523 minutes, 25 seconds자신을 이해해 주실 것이라 하는 믿음이 있었다
23:3323 minutes, 33 seconds그랬던 임시도 이제 환갑을 넘겼다 1년 전
23:4123 minutes, 41 seconds아내마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고 그는 갈데 없는 홀아비 신세가 되었다
24:1124 minutes, 11 seconds통일이 되면 그때나 고향에 가서 부모님 묘지를 찾겠다는 것이 요즘 그의 유일한 소망이다
24:2024 minutes, 20 seconds걷다가 올 정년퇴직 후에는 이곳 남미의 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해 보려는 나름의 계획도 있다
24:2924 minutes, 29 seconds그러나 고향에 갈 수 있는 날까지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그는
24:3624 minutes, 36 seconds점점 자신이 없다 몇 년 전
24:4724 minutes, 47 seconds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건강했던 아내였는데 아내도 떠났고 이제는
24:5424 minutes, 54 seconds딸아이 가브리엘라도 떠난다 가브리엘라는 제기를 찾는다면 캐나다로가 있다
25:0325 minutes, 3 seconds남도
25:0625 minutes, 6 seconds[음악]
25:0725 minutes, 7 seconds북도 싫다 하여 조국을 떠나오던 바로 그때처럼 그는 다시 철저히 혼자가 된다이
25:1625 minutes, 16 seconds곡이 아닌 고향에서라면 혼자 맞는 노년이 이렇게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25:2725 minutes, 27 seconds[음악]
25:3025 minutes, 30 seconds지난해 브라질 상파울로에는 한국 광장이라는 새로운 공원이 생겼다
25:3725 minutes, 37 seconds낯선 배려 그 힘겨운 세월을 뚫고이 땅에 뿌리내린 한국인 올해로 어느덧 브라질리민
25:4625 minutes, 46 seconds30주년을 맞이한다
25:5825 minutes, 58 seconds그러나 반공포로 출신의 이들은 벌써 7년 전에 이들끼리의 30주년 기념식을 가졌었다
26:0726 minutes, 7 seconds30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떠돌며 지탱해온
26:1526 minutes, 15 seconds서로의 삶을 위로해
26:1826 minutes, 18 seconds[음악]
26:3026 minutes, 30 seconds[음악]
26:4026 minutes, 40 seconds그 자리에서 김시봉 씨의 노래가 빠질 수 없었다 세계적인 성악가가 꿈이었던 그는 전장의 포화
26:4926 minutes, 49 seconds속에서 왼쪽 귀청을 잃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목 수술까지 받은 뒤 상대마저 온전치
26:5626 minutes, 56 seconds않게 되었다
27:0427 minutes, 4 seconds[박수]
27:0627 minutes, 6 seconds[음악]
27:0927 minutes, 9 seconds김시봉 씨의 불안한 노래는 마치 뒤틀린 첫을 반공포로들의 운명을 대변하는 듯한데
27:1627 minutes, 16 seconds이제는 모임에서조차 모습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이름들이 하나둘이 있다
27:3127 minutes, 31 seconds그런데 역시 나중에는 알콜을 자꾸만 중독이 되데요 안민덕 씨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27:4227 minutes, 42 seconds용접기술도 있고 회사에서 미국 회사에서도 일 잘했어요 강사권 목사는 브라질에 함께 왔던
27:4927 minutes, 49 seconds쉰다섯 명의 동료 중 거의 10명 이상이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27:5827 minutes, 58 seconds제가 알 수가 없어요 강 목사 자신도 최근 가족과 별거해
28:0928 minutes, 9 seconds혼자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믿음의 힘으로도 미처 다 다독거리기 힘든 깊은 상처가 그에게도 있는
28:1728 minutes, 17 seconds모양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 자신도 뭔가 이상이 있지 않는다고 내 자신이
28:2628 minutes, 26 seconds의심해요 왜냐하면 그 상대들이 어떤 사람들이 그 생각할 때
28:3428 minutes, 34 seconds뭔가 그 전쟁에서의 복음 속에서 자라난 그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
28:4228 minutes, 42 seconds성격상 기질적으로 봐 가지고 뭐 이상한 점이 있다고 저희 집사람처럼 아들들까지도
28:5028 minutes, 50 seconds그렇게 이해가는 걸 제가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수행하지 않고 자기가 조심하지 않게 되면은 그
28:5828 minutes, 58 seconds뭔가 그 전쟁이 그 전쟁 요소다 우리 그 생활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제가
29:0629 minutes, 6 seconds전쟁이 그들에게 남긴 상처 그것은 40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끈질긴
29:1429 minutes, 14 seconds악몽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잔혹한 죽임과 죽음 근무를 공포와 절망
29:2229 minutes, 22 seconds그들에게 전쟁은 그러한 것들을 의미했다
29:2929 minutes, 29 seconds[음악]
29:3829 minutes, 38 seconds상파울루시에서 비행기로 2시간 이곳 고이아스시에 다시 주일이 찾아왔다
29:4829 minutes, 48 seconds[박수]
29:5029 minutes, 50 seconds어디 아빠가이 도시에서 동양인을 만나보기란 쉬운
29:5729 minutes, 57 seconds일이 아니다
30:0530 minutes, 5 seconds[박수]
30:1330 minutes, 13 seconds그런데이 교회의 목사는 동양인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다 브라질 장로교단 소속의 이준희 목사
30:2230 minutes, 22 seconds이곳 토박이도 아닌 그는 유창한 포르투갈어로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30:4930 minutes, 49 seconds성가대에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아내만은 남편 이목사의 저 설교 속에 어떤 깊은 뜻이 더 담겨 있다는 것을
30:5830 minutes, 58 seconds알고 있다 그러나 아들은 짐작하기 힘들다 아버지이 목사가 저리도 목청껏 애쓰시는 또
31:0731 minutes, 7 seconds다른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준희 목사 또한 반공포로 출신이다
31:1631 minutes, 16 seconds[음악]
31:1931 minutes, 19 seconds그 전쟁에서 증오를 펴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한 청년이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누구보다도
31:2931 minutes, 29 seconds많은 사랑과 용서를 얘기하게 된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31:4431 minutes, 44 seconds비참한 그 환병 비참한 그 고생 그런 건 제가 좀
31:5231 minutes, 52 seconds잊어버리려고 했어요
31:5331 minutes, 53 seconds[음악]
31:5531 minutes, 55 seconds사람이 쓰인 것 같은 그런 환경에서 잊지 못하고
32:0432 minutes, 4 seconds사실 솔직히 사람으로 선거
32:1632 minutes, 16 seconds잊어버리는게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다시 기억할 때는 제
32:2532 minutes, 25 seconds마음이 아파요 그런 고생을 다시 기억해 갔다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32:3632 minutes, 36 seconds고생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1954년 조국을 떠나던 그 순간부터
32:4532 minutes, 45 seconds그는 전쟁의 모든 기억들을 잊고자 했다 그때 인도로 가던 선상에서 나란히 사진을 찍었던 강희동 씨와
32:5332 minutes, 53 seconds그가 지금은 모두 브라질에서 목사가 됐으니 우연치고는 미워한 우연이다
33:0433 minutes, 4 seconds전쟁 전 북한에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그는 브라질에 와서 정식으로 신학 공부를 했다 그리고
33:1333 minutes, 13 seconds목사가 돼 한국인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만날 수 없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33:2533 minutes, 25 seconds40분을 달려온 원주민 마을 여기에도 그는 개척교회를 세웠다
34:2134 minutes, 21 seconds[웃음]
34:2534 minutes, 25 seconds그들을 위해 일하는이 동양인 목사에게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34:5334 minutes, 53 seconds[박수]
34:5434 minutes, 54 seconds[음악]
35:0035 minutes그는 어쩌다이 먼 땅에까지 와서 어쩌면 아무 상관도
35:0735 minutes, 7 seconds없을이 사람들과 이렇게 사랑과 용서를 노래하게 됐는가
35:1435 minutes, 14 seconds[음악]
35:2235 minutes, 22 seconds말하는 것만
35:2635 minutes, 26 seconds[음악]
35:3135 minutes, 31 seconds원장님
35:3235 minutes, 32 seconds[음악]
35:4135 minutes, 41 seconds무엇을 하지
36:0736 minutes, 7 seconds[음악]
36:3136 minutes, 31 seconds다시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전쟁 망각의 강을 건너 그것을 잊고자
36:3736 minutes, 37 seconds했던이 목사는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는이 낯선 땅에서
36:4636 minutes, 46 seconds40년 전에 상처를 그의 방식대로 조금씩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37:0337 minutes, 3 seconds[음악]
37:2937 minutes, 29 seconds미국 자유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가서 살아 볼 만 하다고 생각하는 자유의 나라
37:3837 minutes, 38 seconds전쟁이 끝나자 제3급을 선택했던 한국전쟁의 포로 이룬 6명에게 미국은
37:4537 minutes, 45 seconds더욱 자유 그 자체였다 그리하여 브라질너 아르헨티나로 갔던 포로 출신들 중에는
37:5337 minutes, 53 seconds결국이 미국 땅을 목표로 온갖 노력을 다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능익 씨도 브라질에서 의리업을 해
38:0138 minutes, 1 second돈을 웬만큼 모으자 결국 이곳 la로 이사를 왔다 먼저 미국에 와 있던 주영복 씨나
38:1138 minutes, 11 seconds이집트인 김능익 신학 미국에 온 목적은 같다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38:1738 minutes, 17 seconds고향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다 날짜가 어디 있습니까
38:2438 minutes, 24 seconds지금 딱 중간에 와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한국하고 중간에 와 있는데
38:3538 minutes, 35 seconds한국을 떠나서 지금 한국까지 돌아가는 길이가 40년이 걸릴 것 같아
38:4238 minutes, 42 seconds비난이 이렇게 끝이란 모르지만 그래서 살아가는데
38:5638 minutes, 56 seconds고층도 많고 하지만서도 어떡하겠어이 앞으로라도 내 고행에 돌아간다는
39:0539 minutes, 5 seconds그런 희망 또 거기에 대한 우리 기대가 없이
39:1339 minutes, 13 seconds그냥 삶에는 난 더 빨리 늙을 것 같아
39:2139 minutes, 21 seconds언젠가는 돌아간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건만 그것은 처음 떠나올 때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39:3039 minutes, 30 seconds인도에서 2년 브라질에서 24년 다시 미국에서 10여년을 떠돌며 무국적자로 살아온 주영복 씨 그는 이제
39:3939 minutes, 39 seconds헐리우드에 다락방에서 회고록을 쓰며 그간의 삶을 정리하고 있다 일제의 징병으로 집을 떠난 후
39:4739 minutes, 47 seconds북한인민군 중좌로 참전했던 그는 이른바 인민 해방을 앞세운 동적 상단에 염증을 느껴 국군의 귀순했었다
39:5639 minutes, 56 seconds그 후 3년 6개월에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다시금 피비린내 나는 살상을
40:0240 minutes, 2 seconds목격했다 그리고 평양 고향집에서이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실 어머니 생각에 끝까지
40:1040 minutes, 10 seconds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제3의 선택 그는 결국 그 길을 선택했다
40:2640 minutes, 26 seconds돌이켜보면 포로가 되던 그 순간부터 그들 모두가 기다린 것은 오직 고향에 돌아가는
40:3440 minutes, 34 seconds그날이었다 그랬던 것이 2년 3년
40:4240 minutes, 42 seconds수영선애의 무수한 살상과 폭력을 목격하며 그들의 가슴에는
40:4840 minutes, 48 seconds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40:5240 minutes, 52 seconds[음악]
40:5640 minutes, 56 seconds20살의 젊음을 그렇게 끝없는 절망과 공포 속에서 보내야 했던 그들에게는 오직 자유만이 유일한
41:0541 minutes, 5 seconds소망으로 남았다 그리하여 결국 제3국을 선택했던
41:1241 minutes, 12 seconds76인의 그러나 그것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영원한 작별이
41:2041 minutes, 20 seconds아니라고 그들은 그렇게 믿어 썼다
41:2341 minutes, 23 seconds[음악]
41:2441 minutes, 24 seconds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기 위해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고 그들은 생각했었다
41:3241 minutes, 32 seconds[음악]
41:4941 minutes, 49 seconds그날 40년 전 인천항에 그 갈매기를 주영복 씨는 기억한다
41:5641 minutes, 56 seconds전쟁을 피해서 고통스런 이념의 대립을 피해서 그도 우선 떠나는 길을 택했었다
42:0542 minutes, 5 seconds그 역시 언젠간 꼭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은
42:1442 minutes, 14 seconds고향으로 이르는 가장 먼 길이었다 반 평생을 다 바쳐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서도 미쳐
42:2242 minutes, 22 seconds이르지 못할 아득한 길이었다
42:2642 minutes, 26 seconds[음악]
42:4642 minutes, 46 seconds[박수]
42:4642 minutes, 46 seconds[음악]
42:5242 minutes, 52 seconds[박수]
42:5742 minutes, 57 seconds[음악]
43:0943 minutes, 9 seconds[박수]
43:1143 minutes, 11 seconds[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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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인의 포로들 - 제2부 떠나간 자의 비가>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 당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했던 반공포로 76명의 그 후 40년 삶을 추적한 MBC 다큐멘터리의 후속편이다. 1부에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비극적 트라우마와 인도·브라질 중심의 초창기 정착사를 다루었다면, 2부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지로 퍼져나간 포로들의 다채로운 생존 궤적과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유랑의 슬픔, 그리고 고향을 향한 한 맺힌 그리움을 조명한다.
[요약: 남미와 미국으로 이어진 유랑의 발자취]
다큐멘터리는 브라질 보뚜가뚜시에서 홀로 은퇴 생활을 보내는 임씨의 조용한 일상으로 시작한다. 그는 30대에 뒤늦게 학업을 시작하여 주립대 의대 교수가 되었으나, 뇌수술 후 은퇴하여 이혼과 외로움 속에서 자녀들의 방문만을 기다리고 있다. 모국어를 잊었을지언정 40년 전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만큼은 또렷이 간직하고 있다. 한편, 55명의 포로가 브라질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이들을 맞아준 인물은 일제강점기에 건너온 '미다 할아버지' 장승호 씨였다. 포로들은 그의 신세를 지며 기반을 잡았고, 그중 김창완 씨는 그의 사위가 되어 장인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은 아니다. 전자제품 수리공으로 일했던 김관사 씨는 어느 국적도 가지지 못한 채 고독과 술에 의존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국적도, 이북 국적도, 브라질 국적도 없다"며 자기가 설 땅을 고민했던 그의 죽음은 안식처를 찾지 못한 이방인의 슬픔을 잘 보여준다. 강사권 목사는 브라질 이주자 중 10명 이상이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고 전하며, 스스로도 전쟁의 트라우마가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반면, 이준희 목사는 전쟁의 상처와 증오를 신앙으로 극복하며 현지 원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어 카메라는 아르헨티나와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의 삶을 포착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항구도시에서 원양어선 선장이 된 정주원 씨는 출가한 자녀들과 가정을 이루어 고독을 메우려 하지만, 학창 시절 꿈과 전혀 달라진 인생 경로와 정치인들의 이념 놀음에 희생되었던 기억에 씁쓸함을 표한다. 제약회사 약사로 근무하는 임익간 씨는 북한에 남겨진 동생으로부터 부모님의 부음과 편지를 받고 통일 후 고향 묘지를 찾겠다는 소망을 품은 채 홀로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브라질을 거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주영복 씨는 헐리우드의 다락방에서 회고록을 쓰며 지나온 삶을 정리한다. 인민군 중좌 출신으로 귀순했던 그는 전쟁과 수용소의 폭력을 피해 제3국을 선택했으나,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미국에 도착했음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한국을 떠나서 한국까지 돌아가는 길이가 40년이 걸릴 것 같다"는 김능익 씨의 고백처럼, 이들에게 제3국 선택은 영원한 방황의 시작이었다.
[평론: 이념의 경계를 넘어선 인간의 비극과 망향]
<제2부 떠나간 자의 비가>는 제3국을 선택한 포로들의 삶을 통해 국가주의와 이데올로기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끝없는 유랑으로 내몰았는가를 처절하게 증명하는 명작이다. 2만 6천 명의 반공포로 중 단 76명만이 택한 '제3국'이라는 길은, 이념의 대립과 형제간의 살육전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찾기 위한 단 하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남한도 북한도 거부한 대가는 지구 반대편 남미와 북미 대륙을 정처 없이 떠도는 무국적 이방인으로서의 고단함이었다.
이 작품은 포로들의 다채로운 삶의 궤적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공과 실패라는 외형적 성취 너머에 존재하는 통일된 내면의 비극, 즉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의대 교수가 되고, 원양어선 선장이 되고, 제약회사 약사가 되었을지라도 이들은 국적의 부재와 고향을 등진 죄책감, 그리고 수용소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거나 홀로 다락방에서 회고록을 쓰는 이들의 모습은 거대한 역사적 수사 뒤에 숨겨진 개인의 참담한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결국 다큐멘터리가 울려 퍼뜨리는 '떠나간 자의 비가'는 한반도 분단이 낳은 비극의 공간적 영역이 지구 반대편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역설한다. 전쟁의 공포와 이념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잠시 떠났던 그 길은,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도달할 수 없는 '가장 먼 길'이 되어버렸다. 이 작품은 이념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어떻게 소외되었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세월이 흘러도 얼마나 무겁게 삶을 짓눌렀는가를 성찰하게 만드는 뛰어난 다큐멘터리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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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인의 포로들 – 제2부 떠나간 자의 비가> 800단어 요약·평론
MBC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들 – 제2부 떠나간 자의 비가>는 한국전쟁 당시 남한과 북한 어느 쪽으로도 돌아가지 않고 제3국을 선택한 76명의 포로들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지에서 살아온 40년을 추적한다. 제1부가 정신질환, 빈곤, 고립 같은 비극에 초점을 맞췄다면, 제2부는 비교적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가정을 이룬 사람들까지 포함해 그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고향을 떠났다는 상실감, 무국적자의 불안,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 그리고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는 브라질의 한 지방도시에서 의과대학 교수까지 지낸 포로 출신 노인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30대가 되어서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의사가 되었고 대학 교수로도 일했지만, 뇌수술 이후 은퇴해 외롭게 살아간다. 경제적으로는 최소한의 연금을 받고 있으나, 가족과 가까운 친구가 곁에 없다. 그는 포르투갈어와 브라질 문화에 익숙해져 거의 브라질인이 되었지만, 늙고 병들자 가장 원초적인 기억인 어머니와 고향을 떠올린다. 모국어는 희미해져도 전쟁과 이별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1956년 브라질에 도착한 55명의 포로들은 처음에는 낯선 땅에서 노동하며 살아야 했다. 이들을 맞아준 사람은 일찍이 브라질로 이주한 장승호였다. 그는 공항에 떡을 싸 들고 나와 포로들을 맞이하고,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며 정착을 도왔다. 장승호 자신도 18세에 조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브라질에 온 이민자였다. 그는 포로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고, 그중 김창완을 사위로 맞았다. 이 장면은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사람들을 또 다른 이민자가 돌본 사례로서 의미가 크다.
포로들은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일부는 학교로 돌아가 전문직에 진출했으며,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회적 성공이 정체성의 상처를 치유해 주지는 못했다. 김관사는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끊고 브라질에서 전자제품 수리공으로 살았으나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북한 국적도, 대한민국 국적도, 브라질 국적도 없다는 무국적자의 현실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고독을 술로 견디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죽은 뒤에도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번호로 남았다. 다큐멘터리는 남미 대륙조차 그에게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원양어선 선장 정주원의 삶을 보여준다. 18세에 전쟁을 겪은 그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벌어진 좌우익 간의 살상과 정치적 강요에 환멸을 느껴 조국을 떠났다. 40년 뒤 그는 선원들을 지휘하는 선장이 되었고, 자녀와 손주에게 둘러싸인 가장이 되었다. 그는 가족을 가까이 두고 살며 고향과 부모를 잃은 공허함을 메우려 한다. 그러나 아들에게 자신이 왜 아르헨티나에 왔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운명이나 팔자로 이해하지만, 아버지가 겪은 전쟁과 선택의 무게를 온전히 알 수 없다.
또 다른 아르헨티나 정착자 이미간식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약사가 되었다. 그는 40년 만에 북한의 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부모는 아들이 외국에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세상을 떠났고, 동생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편지는 그에게 자신이 내린 선택이 옳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 곁으로 돌아갈까 망설였지만 결국 제3국을 택했다. 이제 그의 소망은 통일이 된 뒤 고향에 가서 부모의 묘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먼저 죽고 딸마저 캐나다로 떠날 예정이어서 그는 다시 혼자가 된다.
브라질 포로들의 30주년 모임은 이들의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으로 청력을 잃은 김시봉이 불안정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는 성악가를 꿈꿨으나 전쟁 중 왼쪽 귀청을 잃었고, 브라질에서 목 수술까지 받아 목소리도 온전하지 못했다. 그의 노래는 이루지 못한 꿈과 뒤틀린 인생을 대변한다. 동료 55명 가운데 10명 이상이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는 증언도 나온다. 전쟁은 1953년에 끝났지만 그들의 가족관계, 성격, 알코올중독, 우울과 고립 속에서 계속 살아 있었다.
이준희 목사의 이야기는 작품에서 드물게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는 전쟁의 기억을 잊기 위해 브라질의 외딴 지역에서 목사가 되었고,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에서 현지인들을 위해 교회를 세웠다. 전쟁에서 증오를 경험한 사람이 사랑과 용서를 설교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그가 기억을 완전히 지운 것이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조금씩 극복했다고 평가한다.
미국에 정착한 포로들은 미국을 자유의 최종 목적지로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으로 옮겨간 뒤에도 고향과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주영복은 인도에서 2년, 브라질에서 24년, 미국에서 10여 년을 무국적자로 떠돌며 살았다. 그는 할리우드의 다락방에서 회고록을 쓰며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일제의 징병, 북한 인민군, 국군 귀순, 포로수용소와 제3국행을 거친 그의 생애는 한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와 냉전이 한 사람의 몸을 여러 군대와 국가 사이로 밀어낸 역사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제3국행 포로들을 영웅이나 배신자로 규정하지 않고, 자유를 원했으나 자유의 대가로 고향과 가족을 잃은 인간으로 그린다는 데 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완성된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폭력과 강요에서 벗어날 가능성이었다. 대부분 20세 안팎의 청년이었고, 포로수용소에서 살인과 보복을 목격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제3국행은 냉정한 자유의 선택이면서 동시에 공포 속에서 이루어진 절박한 탈출이었다.
다만 다큐멘터리는 이들을 계속 “반공포로”라고 부르며, 그들의 경험을 반공 서사의 틀에서 완전히 해방시키지는 못한다. 실제로 이들은 북한 송환을 거부했지만 대한민국에도 귀속되기를 거부했다. 이들을 단순한 반공주의자로 부르는 것은 제3국행의 복잡성을 축소한다. 또한 미국과 한국 정부, 유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가 이들의 무국적 상태와 가족 단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제도적 분석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제3국을 선택한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떠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길은 고향으로 가는 가장 먼 길이 되었다. 태평양을 한 바퀴 돌고도 도착하지 못한 길이었다. 결국 <떠나간 자의 비가>는 자유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 자유를 얻는 대신 귀향의 시간을 잃어버린 이야기다. 이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전쟁 이전의 자기 삶으로는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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