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호
한자 張昇浩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브라질 상파울루주
시대 현대/현대
전체보기상세정보
더보기정의
1928년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 상파울루 지역으로 건너가 쌀장사 등을 하며 한인 이주자들을 도와준 사업가.
개설
장승호(張昇浩)[1907~2000]는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에 입국하여 정착한 10명의 한인 중 한 명이다. 주로 일본계 이민자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하였지만, 광복 후 브라질로 이민 온 한인들이 현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한인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던 김수조와는 구분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반공포로 출신 사위인 김창언의 증언에 따르면, 장승호는 한인 사회에서 베풀기를 좋아했고, 한인들의 이주 이전 반공포로들을 자주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하였다고 한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일하는 것을 좋아했고, 인내심이 강했으며, 힘이 좋았다고 한다.
장승호는 1907년(순종 1) 3월 23일 충청북도 영동군 지역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 때 구세군의 메시지를 듣고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열두살 때 교회에 다니는 것을 비난하는 가족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8년 일본인 이민자의 선교를 위하여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는 일본인 선교사를 따라 브라질로 갔다. 1938년 결혼하고, 일본인 아내의 성을 따라 ‘미타(Mita)’ 성을 사용하였다. 슬하에 아들 두 명, 딸 일곱 명을 낳았다. 평생 쌀장사를 하였기 때문에 ‘쌀 할아버지’, ‘미타 할아버지’로도 불렸다. 세뇨르 미타(Senhor Mita)라고도 하였다.
1956년 2월 6일에 6·25전쟁 반공포로 51명이 2년 동안 중립국 인도에서 생활하다가 브라질로 이주하였다. 당시 브라질 외무성은 지역의 한인들에게 반공포로들을 맞이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장승호는 김수조·이중창 등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공항으로 가서 반공포로를 맞이한 것은 물론,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 성심껏 음식을 제공하였다. 특히 반공포로인 김창언을 셋째 사위로 삼았으며, 1957년 9월 15일 김수조가 일본인 국적으로 브라질에 온 한국인들과 반공포로들을 모아 한백인회를 조직하는 데도 참여하였다. 1961년 한국에서 한백문화사절단 15명이 브라질에 왔을 때나 1960~1970년대 한국인들이 농업과 기술 이민을 왔을 때도 브라질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무상으로 쌀을 주기도 하였다. 장승호는 주로 상파울루시 봉헤치루에서 활동하였는데, 한인들의 집 보증을 자주 서서 경제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2000년 5월 1일 94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망하기 전 7년간 중풍을 앓았다고 한다.
- 「[이야기 한인사] 반공포로 50명은 이렇게 해서 브라질에 왔다」(『재외동포신문』, 2004. 10. 23.)
- 「브라질 이민일기: 브라질 한인 이민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KBS, 2023)
장승호
張昇浩
역사
인물
대한제국기
현대
일제강점기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에 이민한 교민.
이칭이칭미다 할아버지, 쌀 할아버지
인물/근현대 인물성별남성
출생 연도1907년 3월 23일
사망 연도2000년 5월 1일
출생지충청북도 영동군
집필 및 수정집필 1995년
최금좌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에 이민한 교민.
개설
일제강점기에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에 이민을 온 약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28년에 브라질에 도착한 뒤 일본인 아내의 성을 따서 ‘미다’라는 성을 사용하였다. 평생 쌀 장사를 하였기에 ‘쌀 할아버지’, ‘미다 할아버지’라고 불렸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3월 23일에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10살 때에 구세군의 메시지를 듣고서 기독교 신앙인이 되었는데,12살에 교회에 다니는 것을 비난하는 가족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 갔다. 1928년에 일본인 이민자의 선교를 위해서 일본인 선교사를 따라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1938년에 일본인 아내를 맞아 아들 2명, 딸 7명을 낳았고, 2000년 5월 1일에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1956년 2월 6일에한국전쟁 반공포로 51명은 2년 동안 중립국 인도에서 생활하다가 브라질로 이주하였다. 당시 브라질 외무성은 소통을 염려하여 반공포로들을 맞이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장승호는 김수조·이중창 등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공항에 나아가 반공포로를 맞이하는 것은 물론, 집에서 성심껏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특히 반공포로인 김창언을 셋째 사위로 삼기도 하였고, 1957년 9월 15일에 김수조가 일본인 국적으로 브라질에 온 한국인들과 반공포로들을 모아 한백인회를 조직하는데도 참여하였다. 그 뒤 1961년에 문화사절단 15명이 브라질에 왔을 때나 1960년∼1970년대에 한인들이 농업과 기술 이민을 왔을 때도 브라질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해방 후 브라질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현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준 대표적인 브라질 한인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닫기
- 『브라질한인이민50년사(1962∼2011)』(브라질한인이민사편찬위원회 편, 도서출판 교음사, 2011)
- 한인복지회(www.corea.com.b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