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1 —- 1,000 단어 요약 평론
켄 번즈의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 제1부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1754년 5월 ~ 1775년 5월)>에 대한 요약 평론입니다.
감독: 켄 번즈, 사라 보트스타인, 데이비드 슈미트
각본: 제프리 C. 워드
제1부 부제: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In Order to Be Free)
방영 시기: 2025년 11월
요약 평론: 신화의 해체와 다각적 렌즈로 본 혁명의 서막
1. 요약: 단절과 갈등의 20년, 그 필연적 궤적
켄 번즈의 6부작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의 제1부 <자유로워지기 위하여>는 1776년의 독립선언보다 훨씬 앞선 1754년의 오하이오 계곡에서 시작한다. 젊은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버지니아 민병대가 프랑스군을 기습하며 촉발된 7년 전쟁(프렌치 인디언 전쟁)은 영국 유니언 잭 아래에서 식민지인들이 거둔 승리였으나, 동시에 대영제국과 아메리카 식민지 간의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시작점이었다. 제1부는 이 전쟁의 종결부터 1775년 렉싱턴과 콩코드의 첫 총성이 울리기까지의 20년 세월을 116분의 러닝타임 동안 촘촘히 추적한다.
영국 정부는 전쟁으로 쌓인 막대한 국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1764년 설탕법을 시작으로 1765년 인지세법, 그리고 타운젠드법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일방적인 과세 정책은 식민지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본국의 의회에 자신들을 대변할 의원이 없다는 분노는 "대표 없는 과세는 폭정이다"라는 구호로 집약되었다. 다큐멘터리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격화되는 저항의 기류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1770년 보스턴 학살의 비극과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법적 권리와 주권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충돌의 정점이었다.
제1부의 후반부는 파국을 향해 빠르게 치닫는다. 영국이 보스턴 항구를 봉쇄하는 등 강압적인 '참을 수 없는 법(강압법)'으로 응수하자, 식민지는 마침내 제1차 대륙회의를 소집하며 연대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리고 1775년 5월, 무력 충돌을 피하려던 양측의 노력은 무색하게도 매사추세츠의 시골길에서 피를 흘리며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을 올린다.
2. 평론: 영웅주의 신화의 해체와 민족주의적 도그마의 초월
켄 번즈와 그의 오랜 협력자인 각본가 제프리 C. 워드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국인들이 오랫동안 소비해 온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라는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서사를 과감하게 해체한다. 이 작품은 자유를 갈망하는 백인 엘티트들의 숭고한 투쟁이라는 단선적 프레임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다원주의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제1부에서 가장 돋보이는 거장다운 면모는 역사적 사건의 '소유권'을 특정 집단에 고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는 벤저민 프랭크린이 1754년 제안했던 올버니 연합안을 설명하기 직전, 이미 수세기 동안 민주적 연합체로서 번영해 온 원주민 이로쿼이 연맹(하우데노사우니)의 자치 구조를 먼저 조명한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온전히 유럽적 전통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한, 역사학자 콜린 캘러웨이 등의 입을 빌려 패트리어트(애국파)들의 내면에는 인디언 영토를 강탈하려는 토지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영국 왕실이 선언한 사행선(식민지 정착 한계선)에 대한 불만이 혁명의 거대한 동력 중 하나였다는 지적은 영웅주의적 건국사에 가하는 날카로운 일침이다.
더불어 흑인 노예 시인 필리스 휘틀리의 목소리를 삽입함으로써,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외치던 혁명가들의 수사가 정작 자신들이 부리던 노예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지독한 모순을 폭로한다. 번즈는 패트리어트들의 대의를 무조건 칭송하기보다, 그들의 숭고한 이상과 추악한 현실적 이해관계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역사의 입체성을 대면하게 만든다.
3. 미학적 성취와 현대적 시사점
미학적 측면에서 제1부는 이른바 '켄 번즈 효과(Ken Burns Effect)'의 정수를 보여준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아모스 두리틀의 판화, 폴 리비어의 보스턴 학살 판화, 다양한 초상화와 지도를 극적으로 확장하고 움직임을 부여하여 시청자가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요요마, 리안넌 기든스 등이 참여한 음악은 시대적 공기를 무겁고도 아름답게 채운다.
특히 피터 코요테의 절제된 내레이션과 토머스 페인의 <상식>에서 인용된 문장들은 역사의 무게를 더한다. 번즈는 영국 측의 입장과 내부의 충성파(로열리스트)들의 시선 역시 공평하게 다루며, 이 혁명이 단순한 대외 전쟁이 아니라 한 민족 내부의 처절한 내전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결론적으로 <미국 혁명> 제1부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적 균열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21세기의 오늘날, 이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공동체를 묶어내는 가치는 무엇이며, 권력의 오만은 어떻게 파멸을 부르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화를 걷어낸 자리에 남은 인간들의 고뇌와 갈등을 응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켄 번즈가 완성한 새로운 역사 서사의 위대함이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2 —- 1,000 단어 요약 평론
켄 번즈의 6부작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 제2부 <우리 권리의 선언 (1775년 6월 ~ 1776년 7월)>에 대한 요약 평론입니다.
감독: 켄 번즈, 사라 보트스타인, 데이비드 슈미트
각본: 제프리 C. 워드
제2부 부제: 우리 권리의 선언 (The Declaration of Our Rights)
방영 시기: 2025년 11월
요약 평론: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과 보편적 이상주의의 탄생
1. 요약: 화해의 종말에서 독립선언까지, 격동의 1년
제2부는 렉싱턴과 콩코드의 총성이 울린 직후인 1775년 6월의 벙커힐 전투에서 시작하여,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가 채택되기까지의 가장 집약적이고 드라마틱한 1년간의 여정을 다룬다. 제1차 대륙회의가 제국 내에서의 권리 회복을 도모했다면, 제2부는 식민지가 영국 왕실과의 전면적인 결별을 결심하고 대륙군을 창설하여 조직적인 전쟁에 돌입하는 과정을 촘촘하게 추적한다.
조지 워싱턴이 보스턴 포위전을 지휘하기 위해 총사령관으로 부임했을 때, 대륙군은 군대라기보다는 훈련받지 못한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다큐멘터리는 군대를 조직하고 보급을 확보하려는 워싱턴의 눈물겨운 노력과 함께, 여전히 정당한 영국 시민으로서 왕에게 충성하고자 했던 대다수 식민지인의 심리적 딜레마를 균형 있게 조명한다. 심지어 1775년 7월에도 대륙회의는 국왕 조지 3세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올리브 가지 청원'을 보냈으나, 왕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식민지를 반역 집단으로 규정했다.
이 교착 상태를 깨뜨린 것은 두 가지 결정적 사건이었다. 하나는 헨리 녹스가 타이콘데로가 요새에서 대포들을 이끌고 와 보스턴의 도체스터 고지에 배치함으로써 영국군을 철수시킨 군사적 성과였고, 다른 하나는 1776년 1월 발간된 토머스 페인의 팜플렛 <상식>이었다. 페인의 직설적이고 통렬한 문장들은 평범한 농민과 장인들의 마음속에 '독립'이라는 불꽃을 지폈다. 마침내 1776년 7월,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하고 대륙회의가 수정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면서 아메리카 식민지는 완전히 새로운 운명의 길로 접어든다.
2. 평론: 보편적 인권의 숭고함과 지독한 모순의 공존
제2부에서 켄 번즈와 제프리 C. 워드가 보여주는 서사의 탁월함은 독립선언이라는 역사적 대사건을 무비판적인 찬양의 대상으로 고착하지 않는 데 있다. 작품은 제퍼슨이 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문장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방의 선언인 동시에,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모순의 시작이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큐멘터리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던 제퍼슨 자신을 포함해, 필라델피아에 모인 건국의 아버지들 중 상당수가 노예주였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특히 제2부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버지니아의 충성파 총독 던모어 경이다. 그가 1775년 late autumn에 발표한 선언, 즉 패트리어트(애국파) 소유의 노예가 영국군에 입대하면 자유를 주겠다는 제안은 식민지 남부 노예주들에게 거대한 공포를 안겼다. 번즈는 많은 남부 엘리트들이 자유의 가치에 감명받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재산'인 노예 제도를 수호하기 위해 독립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역설적인 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자유를 찾아 영국군으로 탈출한 흑인들의 서사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는 독립선언서가 지닌 보편적 아이디어의 힘을 폄하하지 않는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엘리트들만의 지적 유희를 넘어 길거리의 마차꾼과 선원들에게까지 읽히며 권력의 정당성이 왕이 아닌 '인민'에게 있음을 전파하는 과정은 민중주의적 에너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번즈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통제하려 했던 혁명의 불길이,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하층민과 소외 계층에게까지 번져나가는 역동성을 포착해 낸다.
3. 미학적 완성도와 제2부가 던지는 질문
제2부의 미학적 성취는 텍스트와 시각 자료의 유기적 결합에서 정점에 달한다. 사진이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는 당시의 서한, 일기장, 신문 기사 등 방대한 1차 사료를 입체적으로 활용한다. 배우들의 목소리로 재현되는 건국 주역들의 사적인 고뇌와 평범한 병사들의 두려움은 역사적 활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벙커힐 전투의 참상을 묘사할 때 사용된 정교한 음향 효과와 거친 판화 이미지의 교차 편집은 시청각적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또한 번즈 특유의 균형 감각은 영국 하원의장이나 로열리스트(충성파)들의 기록을 소홀히 다루지 않는 데서 빛을 발한다. 독립은 필연적인 선택이 아니라, 수많은 오판과 타협의 실패, 그리고 극단적인 진영 논리가 맞물려 탄생한 비극적 단절의 결과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미국 혁명> 제2부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형성된 결정적 순간을 다루며, 그 뿌리에 심겨진 위대한 이상과 어두운 모순을 동시에 응시한다. 1776년의 선언은 완성된 결말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미국이 치열하게 갈등하며 풀어야 할 '미완의 약속'임을 제2부는 엄숙하게 증명하고 있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3 —- 1,000 단어 요약 평론
켄 번즈의 6부작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 제3부 <독립의 대가 (1776년 7월 ~ 1777년 12월)>에 대한 요약 평론입니다.
다큐멘터리 정보
감독: 켄 번즈, 사라 보트스타인, 데이비드 슈미트
각본: 제프리 C. 워드
제3부 부제: 독립의 대가 (The Price of Independence)
방영 시기: 2025년 11월
요약 평론: 생존을 위한 잔혹한 시련과 반전의 서막
1. 요약: 붕괴 직전의 대륙군과 새러토가의 반전
제3부는 1776년 7월 독립선언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맞닥뜨린 참혹한 군사적 현실에서 시작한다. 세계 최강의 대영제국 군대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압도적인 병력과 전함을 뉴욕 항에 집결시켰다. 윌리엄 하우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은 롱아일랜드 전투에서 조지 워싱턴의 대륙군을 처참하게 짓밟았고, 워싱턴은 뉴욕과 뉴저지를 거쳐 펜실베이니아로 패퇴하며 군대의 붕괴를 목격해야 했다. 1776년 late autumn, 대륙군은 질병과 탈영, 보급 부족으로 멸절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절망적인 순간, 워싱턴은 역사적인 도박을 감행한다. 1776년 크리스마스 밤, 얼어붙은 델라웨어강을 건너 트렌턴의 헤센 용병대를 기습 공격하여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어지는 프린스턴 전투의 승리는 대륙군의 사기를 회복시키고 혁명의 불꽃을 간신히 살려냈다.
그러나 1777년의 전황은 다시 잔혹하게 흘러갔다. 하우 장군은 대륙회의의 수도인 필라델피아를 점령했고, 북쪽에서는 존 버고인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캐나다로부터 남하하며 식민지를 동서로 분단하려 했다. 제3부의 절정은 1777년 10월의 새러토가 전투이다. 호레이쇼 게이츠와 베네딕트 アーノルド(아널드) 등이 이끄는 민병대와 대륙군은 버고인의 대군을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내는 역사적 대승을 거둔다. 이 승리는 프랑스가 미국의 동맹국으로 참전하도록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며,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는다.
2. 평론: 낭만주의적 전쟁 서사의 거부와 내전의 잔혹성
제3부에서 켄 번즈가 성취한 가장 거대한 학술적, 예술적 성과는 전쟁을 '위대한 승리자들의 연대기'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번즈는 카메라를 최전선의 참호와 굶주린 병사들의 막사로 낮추어, 전쟁이 요구한 잔혹한 물리적, 인간적 비용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트렌턴과 프린스턴의 승리가 영웅적으로 미화되는 동안, 그 이면에서 신발도 없이 맨발로 눈길을 걸으며 피를 흘린 평범한 병사들의 일기와 편지가 피터 코요테의 묵직한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특히 제3부는 이 전쟁이 영국과 아메리카라는 두 국가 간의 대결이 아니라, 이웃과 가족이 서로에게 총을 겨눈 참혹한 '내전(Civil War)'이었음을 강렬하게 부각한다. 번즈는 패트리어트들이 자신들과 뜻을 달리하는 로열리스트(충성파)들에게 가한 사법외적 폭력, 재산 몰수, 그리고 타르와 깃털 형벌 같은 야만적인 행위들을 은폐하지 않는다. 건국의 이념인 '자유'와 '인권'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얼마나 쉽게 오염되고 보복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매우 서늘하다.
또한 다큐멘터리는 대영제국과 동맹을 맺고 참전한 원주민 부족들의 비극을 깊이 있게 다룬다. 새러토가 전역에서 영국군을 도왔던 모호크 족을 비롯한 이로쿼이 연맹의 부족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번즈는 백인들의 전술적 승리 뒤에 가려진 원주민 공동체의 파멸과 분열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미국 혁명이 초래한 또 다른 형태의 비극적 대가를 성찰하게 만든다.
3. 미학적 리얼리즘과 현대적 연대기
미학적 측면에서 제3부는 전투의 스펙터클에 의존하지 않는 켄 번즈 특유의 '미니멀리즘적 리얼리즘'이 빛을 발한다. 대규모 재현 영상이나 CG 대신, 당시의 군사 지도, 거친 판화, 그리고 군인들이 남긴 얼룩진 서한들을 느리게 확대하는 연출은 시청자로 하여금 전쟁의 공포와 피로감을 심리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요요마의 구슬픈 첼로 선율과 리안넌 기든스의 고풍스러운 음악은 전장의 황량함과 죽어간 이들에 대한 애도를 극대화한다.
워싱턴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 역시 탁월하다. 다큐멘터리는 그를 무결점의 군사 천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뉴욕에서 잇따라 치명적인 오판을 내리고 패배에 직면해 고뇌하던 전술가로서의 한계를 명확히 서술한다. 그러나 그 한계 속에서도 군대를 끝까지 유지해 낸 끈기와 정무적 감각을 조명함으로써, 영웅 워싱턴이 아닌 '인간 워싱턴'의 리더십을 입체적으로 복원해 낸다.
결론적으로 <미국 혁명> 제3부는 자유를 향한 여정이 결코 순탄하거나 고결하지만은 않았음을 증명하는 엄숙한 기록이다. 새러토가의 승리와 프랑스의 참전이라는 반전으로 막을 내리지만, 시청자의 뇌리에는 그 승리를 위해 지불해야 했던 인간 존엄성의 상실, 소외된 자들의 희생, 그리고 분열된 공동체의 상처가 더 깊게 남는다. 번즈는 과거의 전쟁을 통해 오늘날의 인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공동체가 치러야 할 '자유의 비용'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4 —- 1,000 단어 요약 평론
켄 번즈의 6부작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 제4부 <세상을 거꾸로 뒤집다 (1777년 12월 ~ 1779년 12월)>에 대한 요약 평론입니다.
감독: 켄 번즈, 사라 보트스타인, 데이비드 슈미트
각본: 제프리 C. 워드
제4부 부제: 세상을 거꾸로 뒤집다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방영 시기: 2025년 11월
요약 평론: 밸리포지의 시련과 글로벌 전쟁으로의 확장
1. 요약: 혹독한 겨울에서 세계 대전으로의 전환
제4부는 새러토가 전투의 승리 직후, 대륙군이 직면한 가장 가혹한 겨울인 1777년 말 밸리포지(Valley Forge)의 막사에서 시작한다. 필라델피아를 영국군에 빼앗긴 워싱턴의 군대는 굶주림, 혹한, 그리고 발진티푸스와 천연두 같은 치명적인 질병과 싸워야 했다. 다큐멘터리는 군수 보급 시스템의 붕괴로 수많은 병사가 사지를 절단하거나 목숨을 잃는 참상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그러나 이 절망의 구덩이에서 혁명군은 프로이센 출신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슈토이벤 남작을 만나 정규군으로서의 전술과 규율을 익히며 강력한 군대로 재탄생한다.
같은 시기, 파리에서는 벤저민 프랭크린의 세련된 외교 전략이 결실을 맺는다. 새러토가의 승리에 고무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아메리카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고 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 혁명은 대영제국 내부의 반란을 넘어, 프랑스와 스페인이 개입하는 '글로벌 전쟁'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전황이 국제전으로 확대되자 영국군은 전략을 수정하여 뉴욕으로 후퇴하기 시작했고, 1778년 6월 몬머스 전투에서 훈련된 대륙군과 팽팽하게 맞선다. 제4부의 후반부는 전선이 서부 개척지와 해상으로 넓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조지 로저스 클라크의 서부 전역과 존 폴 존스의 극적인 해전은 영국의 지배력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고, 전세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영국은 마침내 남부의 로열리스트들을 포섭하기 위한 새로운 '남부 전략'을 가동하며 전쟁은 또 다른 국면으로 치닫는다.
2. 평론: 고통의 미학화 거부와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의 폭로
제4부에서 켄 번즈와 제프리 C. 워드가 보여주는 서사의 깊이는 밸리포지의 시련을 흔한 민족주의적 신화나 영웅적 고난의 서사로 미화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번즈는 밸리포지를 단순한 '인내의 승리'가 아니라, 당시 대륙회의의 무능과 식민지 상인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인재(人災)'였음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군인들이 굶어 죽어가는 동안에도 은밀하게 영국군과 밀무역을 하며 이익을 챙기던 패트리어트 자산가들의 모순을 폭로하는 방식은 혁명의 도덕성에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제4부는 미국 혁명사가 흔히 빠지기 쉬운 자국 중심주의적 시각을 완전히 탈피한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전을 다루면서, 다큐멘터리는 그들이 아메리카인들의 '자유'라는 고결한 가치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대영제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고 자신들의 식민지 이권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계산 끝에 움직였음을 분명히 한다. 이 서사 속에서 미국의 독립 투쟁은 거대한 제국주의 권력자들의 체스판 위에서 벌어지는 외교적 공방의 일부로 입체화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서부 전역에서 벌어진 약탈의 역사다. 번즈는 조지 워싱턴의 명령으로 단행된 설리번 원정(Sullvan Expedition)을 심도 있게 다루는데, 대륙군이 이로쿼이 연맹의 마을 수십 곳을 불태우고 농경지를 초토화하는 과정은 충격적이다. 자유의 군대가 원주민들에게는 파멸을 가져오는 '마을 파괴자'였다는 서사는,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공평하게 비추려는 번즈의 집요한 작가주의적 태도를 증명한다.
3. 구조적 연출과 다큐멘터리가 지닌 현대적 성찰
미학적 관점에서 제4부는 군대의 구조적 변화와 내면의 고뇌를 시각화하는 방식에서 정점을 이룬다. 폰 슈토이벤 남작이 거친 병사들을 체계적인 군대로 훈련시키는 과정을 묘사할 때, 군사 교범의 정밀한 스케치와 병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교차 편집하여 대륙군의 질적 성장을 시청자가 직접 체감하게 만든다. 요요마의 처연한 음악은 밸리포지의 얼어붙은 무덤가에서 시작해 프랭크린이 머물던 파리의 화려한 사교계로 이어지며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번즈는 인물들을 다룰 때도 이분법적 구도를 철저히 배제한다. 아메리카를 도운 외국의 자원봉사자들(라파예트, 슈토이벤)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지닌 개인적 야망과 복잡한 배경을 누락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미국 혁명> 제4부는 고립된 식민지의 반란이 어떻게 세계사의 흐름을 뒤흔드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모했는지를 보여주는 웅장한 연대기다. 번즈는 국가의 탄생 이면에 숨겨진 외교적 암투, 자국민의 이기주의, 그리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위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체는 어디까지 타협하고 무엇을 희생시켜야 하는가"라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도 여전히 관통하는 무거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5 —- 1,000 단어 요약 평론
켄 번즈의 6부작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 제5부 <세상의 전쟁 (1780년 1월 ~ 1781년 10월)>에 대한 요약 평론이다.
<감독:> 켄 번즈, 사라 보트스타인, 데이비드 슈미트
<각본:> 제프리 C. 워드
<제5부 부제:> 세상의 전쟁 (The War of the World)
<방영 시기:> 2025년 11월
<감독:> 켄 번즈, 사라 보트스타인, 데이비드 슈미트
<각본:> 제프리 C. 워드
<제5부 부제:> 세상의 전쟁 (The War of the World)
<방영 시기:> 2025년 11월
요약 평론: 배신의 심리학과 남부의 피비린내 나는 진흙탕 싸움
1. 요약: 배신과 잔혹한 남부 전역, 그리고 요크타운의 종막
제5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의 서사와 함께 전쟁에서 가장 잔혹했던 남부 전역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조명한다. 1780년, 혁명은 정체기와 피로감에 갇혀 있었다. 대륙군의 영웅이었던 베네딕트 아널드는 진급에 대한 불만과 재정적 궁핍, 그리고 의회의 무관심에 환멸을 느끼고 웨스트포인트 요새를 영국군에 넘기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된다. 아널드의 배신은 워싱턴과 식민지 진영에 거대한 심리적 충격을 안겼다.
동시에 영국군은 헨리 클린턴 장군과 찰스 콘월리스 경을 필두로 사바나와 찰스턴을 함락하며 강력한 '남부 전략'을 다그쳤다. 남부의 광활한 토지와 수많은 로열리스트(충성파)를 활용해 반란을 진압하려 한 영국의 전략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호레이쇼 게이츠가 이끄는 대륙군은 캠든 전투에서 처참하게 대패했고, 남부의 통제권은 영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쟁은 킹스마운틴 전투와 카우펜스 전투를 거치며 급격한 반전을 맞이한다. 나다니엘 그린 장군과 대니얼 모건이 이끄는 대륙군과 게릴라 민병대는 콘월리스의 보급선을 끊고 그들을 지치게 만드는 소모전을 전개했다. 지칠 대로 지친 콘월리스의 영국군은 보급과 해상 지원을 받기 위해 버지니아의 요크타운으로 후퇴했다. 이 기회를 포착한 워싱턴과 로샹보 백작이 이끄는 프랑스-아메리카 연합군은 요크타운을 육상에서 포위했고, 드 그라스 백작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체사피크만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격퇴하며 해상로를 차단했다. 마침내 1781년 10월 19일, 콘월리스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전쟁의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 평론: 인간적 취약성의 탐구와 이념적 도그마의 붕괴
제5부에서 켄 번즈와 제프리 C. 워드가 도달한 서사의 정점은 베네딕트 아널드라는 인물을 다루는 입체적인 시선과 남부 전역의 잔혹성을 묘사하는 무결점의 객관성이다. 다큐멘터리는 아널드를 단순한 악인으로 낙인찍지 않는다. 세러토가 등에서 보여준 그의 눈부신 군사적 천재성과 그가 패트리어트 정치인들에게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배신이라는 극단적 선택 이면에 깔린 인간적 취약성과 환멸을 심리학적으로 추적한다. 이는 역사가 영웅과 악당의 이분법이 아닌, 상처받은 인간들의 선택에 의해 흘러간다는 번즈식 역사관의 투영이다.
더욱이 제5부는 남부 전역을 다루면서 패트리어트 민병대와 로열리스트 민병대 간에 벌어진 사적인 보복과 학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남부의 전쟁은 고결한 독립 전쟁이 아니라, 약탈, 방화, 사적 제재가 난무하는 '지옥도'였다. 번즈는 영국의 타를턴 중령이 가한 잔혹 행위뿐만 아니라, 패트리어트들이 로열리스트 포로들에게 가한 피의 보복을 공평하게 응시한다. 이를 통해 자유라는 이념적 구호가 현실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얼마나 쉽게 광기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서늘하게 폭로한다.
또한 흑인 노예들의 비극은 요크타운의 승리 뒤에서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영국군을 따라나섰던 수천 명의 노예가 요크타운 포위전 당시 식량 부족을 이유로 콘월리스 군대에 의해 전선 밖으로 내쫓겨 굶어 죽거나, 승리한 패트리어트 주인들에게 붙잡혀 다시 사슬에 묶이는 과정은 잔인하도록 정직하게 서술된다. 워싱턴의 승리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된 예속의 삶이었다는 사실은 미국 건국사가 지닌 원죄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3. 총체적 연출과 역사의 다층적 복원
미학적으로 제5부는 거대한 포위전의 긴박감과 인간 내면의 피로를 교차하는 편집의 묘미를 보여준다. 요크타운 포위전을 묘사할 때 사용된 대포 소리와 참호 속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는 시청각적 몰입감을 극대화하며, 전황을 설명하는 정밀한 애니메이션 지도는 복잡한 국제적 협력 관계를 한눈에 이해시킨다. 요요마와 리안넌 기든스의 음악은 전장의 거친 포성과 대비를 이루며 죽어간 무명용사들과 노예들의 슬픔을 애도하듯 낮게 흐른다.
번즈는 요크타운의 항복식에서 영국군 군악대가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세상이 거꾸로 뒤집혔네 (The World Turned Upside Down)>라는 곡의 역설을 붙잡는다. 세계 최강의 제국이 식민지 농민들과 프랑스 연합군에게 무릎을 꿇은 이 대사건은, 기존의 세계 질서가 완전히 해체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미국 혁명> 제5부는 전쟁의 군사적 정점을 다루면서도 승리의 도취에 빠지지 않는 위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번즈는 요크타운의 승리가 가져온 해방의 빛 뒤편에, 아널드의 배신이 남긴 이념적 균열, 남부 이웃 간의 잔혹한 상흔, 그리고 자유의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된 흑인 노예들의 눈물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가장 화려한 승리의 순간이야말로 그 정당성과 도덕적 비용을 가장 엄격하게 따져 물어야 할 때임을 역설하고 있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6 —- 1,000 단어 요약 평론
켄 번즈의 6부작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 제6부 <평화와 건국 (1781년 10월 ~ 1789년 4월)>에 대한 요약 평론이다.
<감독:> 켄 번즈, 사라 보트스타인, 데이비드 슈미트
<각본:> 제프리 C. 워드
<제6부 부제:> 평화와 건국 (Peace and Constitution)
<방영 시기:> 2025년 11월
요약 평론: 미완의 혁명, 권력의 이양과 헌정의 탄생
1. 요약: 요크타운 이후의 혼란에서 공화국의 출범까지
제6부는 1781년 요크타운 전투의 승리가 곧바로 평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엄중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영국의 콘월리스 장군은 항복했으나 뉴욕, 찰스턴, 사바나에는 여전히 수만 명의 영국군이 주둔해 있었고, 최종적인 평화 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2년이라는 지루한 외교적 공방이 필요했다. 다큐멘터리는 1783년 파리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군대의 해산과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륙군 내부의 군사 쿠데타 위기(뉴버그 음모)를 긴박하게 다룬다. 워싱턴은 군인들의 정당한 분노를 달래며 사적인 권력욕을 배격하고 의회의 민간 통제를 존중함으로써 공화국의 기틀을 지켜낸다.
평화가 찾아왔으나, 연합규약 체제 하의 초기 미국은 붕괴 직전의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다. 중앙정부의 무능, 과도한 부채, 그리고 화폐 가치 폭락은 급기야 1786년 매사추세츠에서 참전 용사들이 주도한 '셰이즈의 반란'으로 폭발한다. 이 위기감은 식민지 엘리트들을 필라델피아로 모이게 만들었고, 1787년 여름 권력의 분립과 연방제를 골자로 한 새로운 연방헌법이 제정된다. 제6부의 후반부는 이 헌법의 비준을 둘러싼 연방파와 반연방파의 치열한 사상적 논쟁을 추적하며, 1789년 4월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새로운 공화국이 공식 출범하는 장엄한 장면으로 전체 6부작의 막을 내린다.
2. 평론: 국가 탄생의 원죄와 권력 이양의 위대함
제6부에서 켄 번즈와 제프리 C. 워드가 보여주는 서사의 거장다운 면모는 혁명의 '결말'을 유토피아적 완성으로 묘사하지 않고, 철저히 타협과 모순의 산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는 1787년 제헌의회에서 탄생한 연방헌법이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정치적 발명품인 동시에, 노예제를 존속시키기 위해 흑인의 인구를 5분의 3으로 계산한 '5분의 3 타협'이라는 추악한 도덕적 거래의 결과물이었음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번즈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공화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인권이라는 고결한 가치를 어떻게 유예시켰는지 보여주며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 새겨진 원죄를 소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는 이 혁명이 성취한 인류사적 가치를 폄하하지 않는다. 특히 번즈가 주목하는 것은 조지 워싱턴이 요크타운의 승리 이후 대륙군 총사령관직을 자진 사임하고 권력을 의회에 반납하는 장면이다. 당시 전 세계의 군주들이 워싱턴의 퇴임을 믿지 못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권력의 사유화를 거부한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미국은 또 다른 군사 독재나 왕정으로 회귀했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는 혁명의 완성이 총칼이 아닌, 평화적인 권력 이양과 법치주의의 확립에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 갈 곳을 잃고 캐나다와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수십만 명의 로열리스트(충성파)들의 쓸쓸한 퇴장을 비추며, 혁명의 승리가 누군가에게는 고향으로부터의 영원한 추방과 상실이었음을 상기시킨다. 패자들의 역사까지도 공화국의 탄생 서사에 포함시키는 번즈의 다원적 시선은 다큐멘터리의 학술적 깊이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3. 미학적 종막과 현대적 시사점
미학적으로 제6부는 6부작 전체를 관통해 온 시각적, 청각적 모티프들을 유기적으로 회수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헌법 조항의 친필 서명들을 느리게 훑는 카메라 워크와 건국 주역들이 노년에 남긴 회고록의 문장들은 역사적 텍스트에 입체적인 감정을 불어넣는다. 요요마의 아련한 첼로 솔로와 리안넌 기든스의 고풍스러운 현악 연주는 전쟁의 포성이 잦아든 미국의 황량하면서도 희망에 찬 대지를 쓸쓸하고도 웅장하게 표현한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벤저민 프랭크린이 제헌의회 의장석에 그려진 태양 문양을 보며 "이것이 지는 해가 아니라 떠오르는 해임을 알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한 일화를 다루는 연출은 탁월하다. 번즈는 이 '떠오르는 해'가 지닌 밝은 빛과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응시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미국 혁명> 제6부는 혁명의 종착지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실험의 시작점으로서의 건국을 다룬다. 번즈는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대단원을 통해 "헌법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이것을 지켜내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라는 프랭크린의 경고를 21세기의 시청자들에게 던진다. 신화를 걷어내고 인간의 한계와 타협 속에서 탄생한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추적한 이 6부작은, 분열과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제도의 정당성이 얼마나 취약하며 동시에 위대한지를 엄숙하게 증명하는 기념비적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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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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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1 —- 1,000 단어 요약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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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erican Revolution 제1부 <In Order to Be Free> — 1,000단어 요약+평론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은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가 공동 연출한 6부작, 약 12시간의 다큐멘터리다. 제1부 <In Order to Be Free―자유롭기 위하여>는 1754년 5월부터 1775년 5월까지 약 21년을 다룬다. 공식 PBS 제1부 페이지와 영상 소개가 요약하듯, 토지·조세·주권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적 항의에서 폭력적 대결로 발전하고, 렉싱턴과 콩코드의 전투가 13개 식민지에 공동의 전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심이다.
혁명은 1776년에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제1부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미국혁명의 출발점을 <독립선언>이 아니라 1754년으로 돌려놓는 데 있다. 젊은 George Washington은 당시 독립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영국 식민지 버지니아의 야심 많은 민병대 장교였다. 워싱턴이 이끄는 부대와 원주민 동맹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면서 북미의 프렌치-인디언 전쟁, 더 넓게는 7년전쟁의 불씨가 붙는다.
이 출발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미국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인물이 처음 등장할 때 그는 <대영제국의 북미 팽창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다. 번스는 워싱턴을 처음부터 자유의 영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토지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 상승을 갈망하며 군사적 명예를 추구하는 식민지 엘리트 청년이다.
더 중요한 것은 <토지>다. 학교에서 미국혁명은 흔히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조세 문제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조세보다 먼저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의 광대한 원주민 영토를 보여준다. 영국인, 프랑스인, 식민지 개척자, 토지 투기자, 여러 원주민 국가가 이 공간을 놓고 경쟁했다.
따라서 미국혁명의 먼 기원에는 자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가 북미 대륙의 땅을 차지할 것인가>라는 제국주의적 문제가 있었다.
영국의 승리가 영국을 파멸시킨다
1763년 영국은 프랑스를 물리치고 북미의 지배적 제국이 된다. 그러나 승리는 엄청난 전쟁 부채를 남겼다. 영국 정부의 입장에서 논리는 간단했다. 북미 식민지를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으니 식민지인들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번스의 설명은 상당히 공정하다. 영국을 단순한 폭군으로 그리지 않는다. George III와 영국 의회의 정책에는 나름의 국가재정 논리가 있었다.
문제는 식민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했느냐였다.
그들은 영국인이었다. 그리고 영국인이기 때문에 영국인의 자유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지세법, 타운젠드법 등 새로운 세금과 규제가 등장하자 식민지인들은 세금의 액수보다 <누가 우리에게 세금을 부과할 권리를 갖는가>를 문제 삼았다.
여기서 경제적 불만이 헌정적 질문으로 바뀐다.
<의회가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데 우리를 통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더 위험한 질문으로 발전한다.
<통치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혁명은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서로 다른 13개 식민지가 하나의 ‘우리’를 발견하다
당시 13개 식민지는 하나의 미국이 아니었다.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는 사회구조와 경제가 달랐고, 종교와 지역적 이해관계도 달랐다. 식민지 주민 대부분은 자신을 “미국인”이라기보다 버지니아인, 펜실베이니아인, 뉴욕인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국 정부의 정책이 역설적으로 이들을 연결한다.
보스턴에서 발생한 충돌이 다른 식민지의 문제가 되고, 한 식민지에 대한 제재가 모든 식민지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통신위원회와 신문, 팸플릿이 서로 떨어진 식민지들을 하나의 정치적 담론 공간으로 만든다.
이 부분은 사회학적으로 특히 흥미롭다.
<미국이라는 민족이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혁명이 미국이라는 민족을 만들어냈다.>
공통의 적이 먼저 생겼고, 그 후에 공통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전쟁이 13개 식민지에 “common cause”를 제공했다는 공식 설명도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보스턴: 항의가 폭력이 되는 과정
보스턴 학살, 차법, 보스턴 차 사건을 거치면서 갈등은 점차 급진화한다.
흥미로운 점은 번스가 혁명가들을 처음부터 영웅적인 민주주의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중의 위협, 재산 파괴, 충성파에 대한 압박도 보여준다. 미국혁명은 자유로운 시민들이 만장일치로 일으킨 국민혁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이웃과 이웃을 갈라놓는 <내전>이었다.
번스 자신도 전체 작품을 독립전쟁이면서 동시에 정복전쟁, 내전, 세계전쟁으로 규정한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은 매사추세츠에 강경한 제재를 가한다. 식민지인들이 ‘참을 수 없는 법’이라 부른 조치들이다. 영국 정부는 질서를 회복하려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국은 반란을 진압하려다가 반란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제1부의 중요한 정치사회학적 교훈이다.
렉싱턴의 총성
1775년 4월 19일, 영국군은 식민지 민병대의 무기를 압수하기 위해 콩코드로 향한다. 렉싱턴 그린에서 민병대와 영국군이 마주 선다.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PBS가 이 장면을 “The First Shot”으로 따로 제시할 만큼 제1부의 극적 정점이다.
여기서 번스의 연출은 매우 뛰어나다. 혁명은 거대한 역사적 필연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긴장한 군인들, 불완전한 명령, 공포, 오해, 그리고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다.
콩코드 이후 영국군이 보스턴으로 후퇴하는 동안 식민지 민병대가 길과 숲과 집 뒤에서 공격한다. 정치적 논쟁은 이제 전쟁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1775년 4월에도 많은 식민지인은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영국 국왕의 신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의 목표는 독립국가 건설이 아니라 자신들이 영국인으로서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 점이 제1부의 제목 <In Order to Be Free>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런데 누구의 자유인가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현대적인 부분은 “자유”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다.
백인 식민지인들은 자유를 외친다. 그러나 노예들은 존재한다. 원주민들은 식민지인들의 서부 팽창 때문에 땅을 잃고 있다. 여성은 정치적 시민권을 갖지 못한다.
Phillis Wheatley 같은 인물의 등장은 이 모순을 선명하게 한다. 자유를 요구하는 사회 안에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특히 원주민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더욱 뒤집힌다.
영국의 1763년 왕령은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으로 식민지인의 진출을 제한했다. 식민지 개척자에게 이것은 자유의 억압이었다. 그러나 원주민에게는 자신의 영토를 식민지 팽창으로부터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벽이었다.
따라서 같은 정책이 한 집단에게는 <압제>이고 다른 집단에게는 <보호>였다.
이것이 번스 다큐멘터리의 역사서술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다.
평론: 이것은 ‘건국신화 해체’라기보다 ‘건국신화 복잡하게 만들기’다
나는 제1부를 보면서 번스가 미국혁명을 부정하려 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국혁명을 여전히 세계사적 사건으로 본다. 제작진 역시 혁명이 미국의 건국을 넘어 세계 질서를 뒤흔든 사건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옛날식 이야기는 거부한다.
<자유를 사랑한 미국인들이 폭군 영국에 맞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너무 단순하다.
번스가 보여주는 것은 이렇다.
영국은 완전한 폭정국가가 아니었다. 식민지인들은 처음부터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혁명가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많은 주민은 충성파였다. 원주민에게 식민지인의 자유는 토지 침탈을 의미할 수 있었다. 노예제 사회가 자유를 선언했다.
그런데도 번스는 혁명의 이상을 냉소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최근의 급진적 미국사 서술과 차이가 있다. 그는 “자유라는 말은 위선이었다”고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제한되고 모순된 자유의 언어가 일단 세상에 나오자, 그 언어를 배제된 사람들이 다시 붙잡기 시작했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 번스는 미국을 완성된 나라가 아니라 “becoming”, 계속 되어가는 과정으로 보는 자신의 관점을 다른 인터뷰에서도 설명했다.
세진님이 최근 읽으신 미국 사회와 종교·인종·민족주의 관련 책들의 문제의식과 연결하면, 나는 제1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미국혁명이 정의로웠는가>가 아니라고 본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라는 하나의 언어 아래 모이게 되었는가?>
사회학적으로 혁명은 이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토지 욕망, 세금 불만, 지역 갈등, 엘리트의 야심, 군중의 분노가 먼저 존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잡다한 불만을 <자유>라는 말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다.
바로 이것이 혁명의 탄생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제1부가 미국혁명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 <‘우리’라는 집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미국인이 먼저 존재하고 미국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미국혁명을 하면서 미국인이 만들어졌다.>
제1부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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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1 —- 1,000 단어 요약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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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erican Revolution 제1부 <In Order to Be Free> — 1,000단어 요약+평론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은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가 공동 연출한 6부작, 약 12시간의 다큐멘터리다. 제1부 <In Order to Be Free―자유롭기 위하여>는 1754년 5월부터 1775년 5월까지 약 21년을 다룬다. 공식 PBS 제1부 페이지와 영상 소개가 요약하듯, 토지·조세·주권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적 항의에서 폭력적 대결로 발전하고, 렉싱턴과 콩코드의 전투가 13개 식민지에 공동의 전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심이다.
혁명은 1776년에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제1부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미국혁명의 출발점을 <독립선언>이 아니라 1754년으로 돌려놓는 데 있다. 젊은 George Washington은 당시 독립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영국 식민지 버지니아의 야심 많은 민병대 장교였다. 워싱턴이 이끄는 부대와 원주민 동맹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면서 북미의 프렌치-인디언 전쟁, 더 넓게는 7년전쟁의 불씨가 붙는다.
이 출발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미국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인물이 처음 등장할 때 그는 <대영제국의 북미 팽창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다. 번스는 워싱턴을 처음부터 자유의 영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토지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 상승을 갈망하며 군사적 명예를 추구하는 식민지 엘리트 청년이다.
더 중요한 것은 <토지>다. 학교에서 미국혁명은 흔히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조세 문제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조세보다 먼저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의 광대한 원주민 영토를 보여준다. 영국인, 프랑스인, 식민지 개척자, 토지 투기자, 여러 원주민 국가가 이 공간을 놓고 경쟁했다.
따라서 미국혁명의 먼 기원에는 자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가 북미 대륙의 땅을 차지할 것인가>라는 제국주의적 문제가 있었다.
영국의 승리가 영국을 파멸시킨다
1763년 영국은 프랑스를 물리치고 북미의 지배적 제국이 된다. 그러나 승리는 엄청난 전쟁 부채를 남겼다. 영국 정부의 입장에서 논리는 간단했다. 북미 식민지를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으니 식민지인들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번스의 설명은 상당히 공정하다. 영국을 단순한 폭군으로 그리지 않는다. George III와 영국 의회의 정책에는 나름의 국가재정 논리가 있었다.
문제는 식민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했느냐였다.
그들은 영국인이었다. 그리고 영국인이기 때문에 영국인의 자유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지세법, 타운젠드법 등 새로운 세금과 규제가 등장하자 식민지인들은 세금의 액수보다 <누가 우리에게 세금을 부과할 권리를 갖는가>를 문제 삼았다.
여기서 경제적 불만이 헌정적 질문으로 바뀐다.
<의회가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데 우리를 통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더 위험한 질문으로 발전한다.
<통치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혁명은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서로 다른 13개 식민지가 하나의 ‘우리’를 발견하다
당시 13개 식민지는 하나의 미국이 아니었다.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는 사회구조와 경제가 달랐고, 종교와 지역적 이해관계도 달랐다. 식민지 주민 대부분은 자신을 “미국인”이라기보다 버지니아인, 펜실베이니아인, 뉴욕인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국 정부의 정책이 역설적으로 이들을 연결한다.
보스턴에서 발생한 충돌이 다른 식민지의 문제가 되고, 한 식민지에 대한 제재가 모든 식민지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통신위원회와 신문, 팸플릿이 서로 떨어진 식민지들을 하나의 정치적 담론 공간으로 만든다.
이 부분은 사회학적으로 특히 흥미롭다.
<미국이라는 민족이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혁명이 미국이라는 민족을 만들어냈다.>
공통의 적이 먼저 생겼고, 그 후에 공통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전쟁이 13개 식민지에 “common cause”를 제공했다는 공식 설명도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보스턴: 항의가 폭력이 되는 과정
보스턴 학살, 차법, 보스턴 차 사건을 거치면서 갈등은 점차 급진화한다.
흥미로운 점은 번스가 혁명가들을 처음부터 영웅적인 민주주의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중의 위협, 재산 파괴, 충성파에 대한 압박도 보여준다. 미국혁명은 자유로운 시민들이 만장일치로 일으킨 국민혁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이웃과 이웃을 갈라놓는 <내전>이었다.
번스 자신도 전체 작품을 독립전쟁이면서 동시에 정복전쟁, 내전, 세계전쟁으로 규정한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은 매사추세츠에 강경한 제재를 가한다. 식민지인들이 ‘참을 수 없는 법’이라 부른 조치들이다. 영국 정부는 질서를 회복하려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국은 반란을 진압하려다가 반란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제1부의 중요한 정치사회학적 교훈이다.
렉싱턴의 총성
1775년 4월 19일, 영국군은 식민지 민병대의 무기를 압수하기 위해 콩코드로 향한다. 렉싱턴 그린에서 민병대와 영국군이 마주 선다.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PBS가 이 장면을 “The First Shot”으로 따로 제시할 만큼 제1부의 극적 정점이다.
여기서 번스의 연출은 매우 뛰어나다. 혁명은 거대한 역사적 필연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긴장한 군인들, 불완전한 명령, 공포, 오해, 그리고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다.
콩코드 이후 영국군이 보스턴으로 후퇴하는 동안 식민지 민병대가 길과 숲과 집 뒤에서 공격한다. 정치적 논쟁은 이제 전쟁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1775년 4월에도 많은 식민지인은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영국 국왕의 신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의 목표는 독립국가 건설이 아니라 자신들이 영국인으로서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 점이 제1부의 제목 <In Order to Be Free>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런데 누구의 자유인가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현대적인 부분은 “자유”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다.
백인 식민지인들은 자유를 외친다. 그러나 노예들은 존재한다. 원주민들은 식민지인들의 서부 팽창 때문에 땅을 잃고 있다. 여성은 정치적 시민권을 갖지 못한다.
Phillis Wheatley 같은 인물의 등장은 이 모순을 선명하게 한다. 자유를 요구하는 사회 안에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특히 원주민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더욱 뒤집힌다.
영국의 1763년 왕령은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으로 식민지인의 진출을 제한했다. 식민지 개척자에게 이것은 자유의 억압이었다. 그러나 원주민에게는 자신의 영토를 식민지 팽창으로부터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벽이었다.
따라서 같은 정책이 한 집단에게는 <압제>이고 다른 집단에게는 <보호>였다.
이것이 번스 다큐멘터리의 역사서술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다.
평론: 이것은 ‘건국신화 해체’라기보다 ‘건국신화 복잡하게 만들기’다
나는 제1부를 보면서 번스가 미국혁명을 부정하려 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국혁명을 여전히 세계사적 사건으로 본다. 제작진 역시 혁명이 미국의 건국을 넘어 세계 질서를 뒤흔든 사건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옛날식 이야기는 거부한다.
<자유를 사랑한 미국인들이 폭군 영국에 맞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너무 단순하다.
번스가 보여주는 것은 이렇다.
영국은 완전한 폭정국가가 아니었다. 식민지인들은 처음부터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혁명가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많은 주민은 충성파였다. 원주민에게 식민지인의 자유는 토지 침탈을 의미할 수 있었다. 노예제 사회가 자유를 선언했다.
그런데도 번스는 혁명의 이상을 냉소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최근의 급진적 미국사 서술과 차이가 있다. 그는 “자유라는 말은 위선이었다”고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제한되고 모순된 자유의 언어가 일단 세상에 나오자, 그 언어를 배제된 사람들이 다시 붙잡기 시작했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 번스는 미국을 완성된 나라가 아니라 “becoming”, 계속 되어가는 과정으로 보는 자신의 관점을 다른 인터뷰에서도 설명했다.
세진님이 최근 읽으신 미국 사회와 종교·인종·민족주의 관련 책들의 문제의식과 연결하면, 나는 제1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미국혁명이 정의로웠는가>가 아니라고 본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라는 하나의 언어 아래 모이게 되었는가?>
사회학적으로 혁명은 이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토지 욕망, 세금 불만, 지역 갈등, 엘리트의 야심, 군중의 분노가 먼저 존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잡다한 불만을 <자유>라는 말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다.
바로 이것이 혁명의 탄생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제1부가 미국혁명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 <‘우리’라는 집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미국인이 먼저 존재하고 미국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미국혁명을 하면서 미국인이 만들어졌다.>
제1부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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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Burns <The American Revolution> 제4부
<Conquer by a Drawn Game ― 무승부로 정복하다>
1,000단어 요약+평론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의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 제4부는 1777년 1월부터 12월까지를 중심으로 한다. 영국군은 미국의 수도 필라델피아를 점령하고 George Washington의 군대는 연이어 패한다. 그런데 북쪽 사라토가에서는 영국군 전체가 항복한다. 이 승리가 프랑스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여 지역적 식민지 반란을 세계전쟁으로 바꾼다. PBS 제4부 공식 안내가 요약하듯, <필라델피아의 상실과 사라토가의 승리>라는 역설이 제4부의 구조다.
제3부가 <혁명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제4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약한 쪽은 강한 쪽을 어떻게 이기는가?>
번스가 내놓는 대답은 에피소드 제목에 이미 있다.
<반드시 이길 필요가 없다. 지지만 않으면 된다.>
워싱턴의 깨달음: 나는 전투에서 이길 필요가 없다
제4부의 가장 중요한 문장은 역사학자 Joseph Ellis의 설명이다.
<Washington reaches the insight—he doesn't have to win. He only has not to lose.>
제3부 마지막에 예고된 이 말은 제4부 전체의 전략적 핵심이다.
1777년 초 워싱턴은 자신이 영국군과 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점차 이해한다. 영국군은 전문 직업군대다. 훈련, 무기, 해군, 보급 면에서 대륙군보다 우세하다.
워싱턴이 결전을 벌여 군대를 잃으면 혁명은 끝난다.
그러나 영국군이 워싱턴을 한 번 이기고 두 번 이겨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양측의 승리 조건은 비대칭적이다.
<영국은 미국군을 결정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미국은 파괴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Conquer by a Drawn Game”의 의미다.
체스에서 약한 쪽이 무승부를 계속 만들어 상대의 승리를 막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정치전쟁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한 쪽이 비용을 지불한다.
영국 국민은 묻게 된다.
왜 이 전쟁을 계속하는가?
프랑스는 묻게 된다.
미국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가?
워싱턴의 전략은 전투 승리보다 <시간을 정치적 무기로 만드는 전략>이었다.
영국의 필라델피아 작전: 수도를 점령하면 혁명이 끝날 것인가
영국군 총사령관 William Howe는 필라델피아를 목표로 삼는다.
필라델피아는 대륙회의가 열리는 미국의 정치적 중심지다.
유럽의 전쟁 관념에서 수도 점령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정부를 붕괴시키고 정치 지도자를 체포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정부 청사도, 왕궁도, 고정된 행정조직도 없다.
대륙회의는 영국군이 다가오자 도시를 떠난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다시 회의를 연다.
<수도를 점령했는데 정부가 사라지지 않는다.>
영국군은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정치공동체와 싸우고 있었다.
이것은 베트남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생각하게 한다. 군사적으로 도시를 점령하는 것과 정치적으로 상대 공동체를 굴복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브랜디와인: 또 패배하는 워싱턴
1777년 9월 브랜디와인 전투에서 워싱턴은 다시 William Howe에게 패한다.
영국군은 우회 작전을 통해 미군 측면을 공격한다.
전장은 혼란에 빠지고 미군은 후퇴한다.
번스는 전투를 영웅적인 그림으로 만들지 않는다. PBS의 제4부 자료도 브랜디와인, 필라델피아 점령, 저먼타운을 한 흐름으로 배치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이 젊은 프랑스 귀족 Marquis de Lafayette다.
라파예트는 미국혁명을 자신의 시대를 바꿀 사건으로 본다. 그는 부상당하면서도 미군과 함께한다.
유럽의 젊은 엘리트에게 미국혁명은 이미 <미국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혁명은 실제 성취보다 먼저 <국제적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미국은 노예제 사회였고 여성에게 정치적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사람들은 미국에서 자신들이 꿈꾸던 정치적 미래를 본다.
현실의 미국과 <상상된 미국>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먼타운: 패배가 프랑스를 설득하다
워싱턴은 필라델피아를 잃은 뒤 저먼타운의 영국군을 기습한다.
초기에는 성공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와 화약 연기 속에서 부대들이 서로 길을 잃는다. 명령 체계가 무너지고 혼란이 발생한다.
결국 미군은 후퇴한다.
또 패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유럽의 군사 관찰자들은 워싱턴의 군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수도를 잃은 군대가 며칠 뒤 점령군을 공격했다.
<이 군대는 패배했지만 붕괴하지 않았다.>
군사적 패배가 정치적 신뢰를 만든 것이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전투 결과표만이 아니다.
<상대와 제3자가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도 중요하다.
북쪽의 영국 전략: 뉴잉글랜드를 잘라낸다
한편 영국 장군 John Burgoyne은 캐나다에서 남쪽으로 진격한다.
전략은 논리적이었다.
허드슨강 회랑을 장악하여 뉴잉글랜드를 다른 식민지에서 분리한다.
뉴잉글랜드는 혁명의 발상지다.
그곳을 고립시키면 반란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Burgoyne의 군대는 영국군, 독일군, 충성파, 원주민 동맹군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영국군은 북미의 지리와 정치사회를 잘못 이해한다.
지도에서 보면 캐나다에서 Albany까지 내려오는 길은 간단하다.
현실에서는 숲과 늪, 강이 있다.
보급선은 길어진다.
미국 민병대는 나무를 쓰러뜨려 길을 막고 다리를 파괴한다.
그리고 Burgoyne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미국 민병대가 모여든다.
여기서 전쟁의 사회적 성격이 드러난다.
<군대가 민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국군의 진격이 민병대를 만들어낸다.>
적군이 가까이 올수록 전쟁은 추상적 독립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농장과 마을의 문제가 된다.
하우데노사우니: 미국혁명은 원주민의 내전이었다
제4부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는 Haudenosaunee Confederacy의 분열이다.
오랫동안 여러 민족을 하나의 정치적 연합으로 묶어왔던 하우데노사우니 연맹이 미국혁명 때문에 갈라진다.
일부는 영국을 지지한다.
일부는 미국을 지지한다.
일부는 중립을 원한다.
그 결과 친척과 친척이 서로 다른 편에서 싸운다.
다큐멘터리에서 원주민 역사가 Darren Bonaparte가 던지는 질문은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다.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있다. 무엇 때문에? 결국 다른 누군가가 우리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인가?>
PBS도 제4부의 주요 장면으로 하우데노사우니가 서로 다른 편을 선택하는 과정을 별도로 제시한다.
미국인에게 혁명은 건국전쟁이다.
영국인에게는 제국의 내전이다.
그러나 원주민에게는 <자신들의 세계를 해체시키는 전쟁>이었다.
번스의 다큐멘터리가 기존 미국혁명 서술과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이다.
사라토가: 베네딕트 아널드의 가장 위대한 순간
사라토가에서 미국 북부군은 Horatio Gates의 지휘 아래 Burgoyne의 진격을 막는다.
그러나 전투의 가장 강렬한 인물은 Benedict Arnold다.
우리는 아널드를 “미국의 배신자”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의 이전 생애를 거꾸로 읽는다.
그러나 1777년의 아널드는 미국혁명의 가장 용감하고 공격적인 장군 가운데 한 명이었다.
Gates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아널드는 전투에 뛰어든다.
그의 공격은 영국군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시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라토가 전승 기념물 가운데 하나는 아널드의 이름 대신 <부츠>만을 기념한다.
미국의 집단기억은 그가 배신자가 된 뒤 영웅이었던 그의 과거까지 지워버렸다.
번스는 여기서 역사적 인물의 <후일담이 과거를 재편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사람은 처음부터 배신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영웅이 배신자가 될 수도 있다.
사라토가의 승리: 전쟁이 세계전쟁이 되다
1777년 10월 Burgoyne은 약 6,000명의 병력과 함께 항복한다. 군대에 동행했던 수백 명의 여성과 아이들도 있었다. PBS는 이 항복을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사라토가의 진정한 의미는 영국군 6,000명을 제거했다는 데 있지 않다.
프랑스가 움직인다.
Benjamin Franklin은 파리에서 미국을 대표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에 동정적이어서만 움직인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영국의 적이다.
미국혁명은 영국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미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사라토가가 그 질문에 답했다.
1778년 프랑스는 미국과 공식 동맹을 맺는다.
이 순간 전쟁의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영국은 더 이상 13개 식민지의 반란만 진압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해군과 싸워야 한다.
카리브해 식민지를 지켜야 한다.
지중해와 유럽을 생각해야 한다.
곧 스페인과 네덜란드까지 전쟁에 연결된다.
PBS가 작품 전체를 독립전쟁이자 내전이며 세계전쟁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론: 미국은 혼자 독립하지 않았다
제4부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미국 건국신화의 한 가지 중요한 수정이다.
<미국인은 영국을 혼자 물리치지 않았다.>
미국의 독립은 국제정치의 산물이었다.
프랑스가 영국을 싫어하지 않았다면?
사라토가에서 Burgoyne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프랑스가 미국의 생존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면?
미국혁명의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이것은 미국혁명의 가치를 낮추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혁명의 현실을 보여준다.
<약한 혁명세력은 국제질서의 균열을 이용해야 한다.>
미국은 영국보다 강해져서 독립한 것이 아니다.
영국의 적을 자신의 동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독립할 가능성을 얻었다.
여기서 나는 한반도 근현대사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의 독립과 분단, 베트남의 독립, 이스라엘의 건국, 이란 혁명도 모두 내부 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국내 혁명은 국제질서의 틈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그리고 제4부의 제목 <Conquer by a Drawn Game>은 워싱턴 개인의 군사전략을 넘어 약한 국가와 약한 운동의 생존 전략을 설명하는 말처럼 들린다.
강자와 정면으로 싸워 모든 전투에서 이길 필요는 없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으면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국제환경이 변한다.
새로운 동맹이 나타난다.
상대 내부에서 전쟁 피로가 생긴다.
전쟁 비용이 정치문제가 된다.
제3부에서 나는 워싱턴을 <패배를 최종 패배로 만들지 않는 장군>이라고 평했다.
제4부에서는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워싱턴의 가장 위대한 전략적 능력은 승리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역사가 미국을 도울 때까지 혁명을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사라토가에서 역사가 움직였다.
미국혁명은 더 이상 미국인만의 전쟁이 아니게 되었다.
<1777년 사라토가에서 미국이 영국을 이긴 것이 아니다. 영국이 더 이상 미국만을 상대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이 제4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본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5 —- 1,000 단어 요약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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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Burns <The American Revolution> 제5부
<The Soul of All America ― 미국 전체의 영혼>
1,000단어 요약+평론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의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 제5부 <The Soul of All America>는 1777년 12월부터 1780년 5월까지를 다룬다. 공식 PBS 제5부 안내가 제시하는 핵심 사건은 밸리 포지의 겨울, 몬머스 전투, 로드아일랜드 전투, 사바나 점령, 빈센 요새, 스페인의 참전, 플램버러 헤드 해전, 설리번 원정, 사바나 공방전, 찰스턴 함락이다. 전쟁은 이제 북부의 워싱턴과 영국군 사이의 대결을 넘어 바다·원주민 영토·남부·카리브해로 확산된다.
제4부가 <미국은 혼자 독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면, 제5부는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세계는 어떻게 파괴되었는가?>
나는 제5부가 지금까지의 다섯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도덕적으로 가장 불편한 부분이라고 본다.
밸리 포지: 추위보다 국가의 부재가 문제였다
1777년 겨울, George Washington의 대륙군은 밸리 포지에 들어간다.
미국의 건국신화에서 밸리 포지는 흔히 눈보라 속에서 맨발의 병사들이 자유를 위해 고난을 견딘 장소로 기억된다. 그러나 번스는 이 낭만적 이미지를 상당히 해체한다.
문제는 단순히 겨울이 추웠다는 것이 아니다.
식량이 없다. 옷이 없다. 신발이 없다. 병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장티푸스와 인플루엔자 같은 질병이 퍼진다. 탈영이 계속된다. PBS의 제5부 도입부도 독립전쟁이 세계전쟁으로 확대되는 바로 그 순간, 대륙군은 보급 부족과 질병 때문에 붕괴 직전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변 농장과 상인에게 물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가 그것을 군대로 이동시킬 능력이 없었다.>
대륙회의에는 강력한 조세권이 없다. 각 주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한다.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여기서 미국혁명의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식민지인들은 강력한 중앙권력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
<국가를 싫어해서 혁명을 시작했는데, 혁명을 지키려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밸리 포지의 진정한 의미라고 본다.
폰 슈토이벤: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규율을 가르치다
밸리 포지에서 Baron Friedrich Wilhelm von Steuben이 등장한다.
프로이센 군대 경험을 가진 그는 대륙군을 훈련한다. 행군, 총검 사용, 대형 전환, 명령 체계를 표준화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군사훈련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병사들은 자신을 자유로운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장교의 권위에 쉽게 복종하지 않는다. 지역적 자부심도 강하다.
그러나 군대는 민주적 토론으로 움직일 수 없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복종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모든 혁명군이 만나는 역설이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조직일수록 내부에서는 강한 규율을 요구한다.
슈토이벤의 역할은 미국 병사를 유럽 병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병사들이 <같은 명령을 이해하고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군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제2부에서 워싱턴의 임명이 정치적으로 대륙군을 만들었다면, 밸리 포지에서 슈토이벤은 실제 행동의 차원에서 대륙군을 만든다.
몬머스: 무승부가 승리처럼 느껴진 전투
프랑스의 참전으로 영국의 전략은 바뀐다. 영국군은 필라델피아를 떠나 뉴욕으로 이동한다.
워싱턴은 추격한다.
1778년 6월 몬머스 전투가 벌어진다.
전투 자체는 사실상 무승부였다. 영국군은 뉴욕으로 빠져나갔고 미국군은 전장을 유지했다.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군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밸리 포지 이전의 대륙군이라면 영국 정규군과 정면으로 오래 싸우기 어려웠다.
몬머스에서는 버틴다.
<군대가 달라졌다.>
전투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병사들이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영국군과 싸울 수 있다.”
혁명에서 집단적 자신감은 실제 능력을 변화시킨다.
프랑스 동맹: 동맹은 사랑이 아니다
제4부에서 프랑스가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제5부는 동맹의 현실을 보여준다.
로드아일랜드에서 미국군과 프랑스 함대가 공동작전을 시도한다. 그런데 작전은 실패한다. 프랑스 함대는 폭풍으로 손상되고 철수한다. 미국 측에서는 분노가 터져 나온다. 프랑스군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장면이 중요하다.
미국과 프랑스는 같은 가치 때문에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왕정국가다.
미국은 공화국을 선언했다.
프랑스의 목적은 영국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동맹은 우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일시적 결합이다.>
그리고 동맹국끼리도 서로 불신한다.
번스는 국제정치를 상당히 현실주의적으로 보여준다.
미국혁명은 세계전쟁이 된다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이 영국과 전쟁에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스페인이 미국 독립의 동맹국으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페인은 <영국의 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PBS도 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전쟁은 카리브해와 대서양으로 확대된다.
카리브해의 설탕 섬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유럽 제국의 관점에서 북미 13개 식민지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이것은 미국 중심의 역사관을 깨뜨린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세계사의 중심이 될 것을 알고 있다.
1778년 사람들은 몰랐다.
영국 정부에게 자메이카를 지키는 것이 뉴욕보다 중요할 수도 있었다.
미국혁명은 세계제국 사이의 오래된 경쟁 속에 들어간다. PBS가 이 작품 전체를 독립전쟁이면서 내전이며 세계전쟁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 폴 존스: “나는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John Paul Jones가 등장한다.
그의 함선 <Bonhomme Richard>와 영국 군함 <Serapis>의 전투는 제5부의 가장 영화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다.
미국 함선은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영국 측에서 항복 여부를 묻는다.
전설에 따르면 존스는 말한다.
“I have not yet begun to fight.”
결국 미국 측이 승리하지만 <Bonhomme Richard>는 침몰한다.
이 전투의 군사적 중요성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징적 효과는 엄청났다.
영국 해안 가까이에서 영국 군함이 공격당한다.
제국의 중심부가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제3부의 트렌턴과 비슷하다.
작은 군사적 사건이 거대한 심리적 효과를 만든다.
하우데노사우니: 미국 자유의 어두운 이면
나는 제5부의 핵심을 Sullivan Expedition, 즉 설리번 원정이라고 본다.
영국과 동맹한 일부 하우데노사우니 세력이 미국 정착촌을 공격한다. 와이오밍 계곡과 체리 밸리에서 잔혹한 폭력이 발생한다.
워싱턴은 John Sullivan 장군에게 대규모 원정을 명령한다.
목적은 단순한 군사적 격퇴가 아니다.
마을과 식량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다.
미군은 원주민 마을을 불태운다.
옥수수밭과 과수원을 파괴한다.
PBS가 제5부의 핵심 사건으로 설리번 원정을 명시하는 것은 이 전쟁이 ‘Indian Country’로 확대되는 과정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수십 개의 하우데노사우니 마을이 파괴되고 주민들은 난민이 된다. 후대 자료에서는 40여 개 마을과 대규모 식량 저장·경작지가 파괴된 것으로 정리된다.
하우데노사우니는 워싱턴에게 별명을 붙인다.
<Town Destroyer ― 마을 파괴자.>
여기서 미국 건국사의 도덕적 중심이 흔들린다.
영국의 제국적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다른 민족의 마을을 조직적으로 파괴한다.
<피식민자가 동시에 식민자가 된다.>
나는 이 장면이 번스 다큐멘터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남부 전략: 영국도 ‘민심’을 오판한다
북부에서 결정적 승리를 얻지 못한 영국은 남부로 눈을 돌린다.
영국 지도부는 남부에 많은 충성파가 있다고 믿는다.
영국 정규군이 들어가면 충성파들이 일어나 혁명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바나가 함락된다.
프랑스와 미국 연합군의 사바나 탈환 작전도 실패한다.
그리고 1780년 영국군은 찰스턴을 포위한다.
찰스턴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780년 5월 찰스턴이 항복한다.
5,000명이 넘는 미군이 포로가 되고 남부 대륙군은 사실상 파괴된다. 이는 미국 측이 전쟁 중 당한 가장 심각한 패배 가운데 하나였다.
제5부는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미국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영국의 남부 전략에는 치명적인 오판이 숨어 있었다.
<충성파의 수와 충성심을 과대평가했다.>
영국군이 지역을 점령한다고 주민이 자동으로 충성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령은 지역사회의 오래된 갈등을 폭발시킨다.
남부의 전쟁은 점차 애국파 민병대와 충성파 민병대가 서로 죽이는 잔혹한 내전으로 변한다.
평론: 제5부는 미국혁명을 ‘좋은 혁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제1부에서 미국인이 만들어졌다.
제2부에서 미국의 언어가 만들어졌다.
제3부에서 혁명이 패배를 견뎠다.
제4부에서 국제질서가 미국을 도왔다.
그리고 제5부에서 번스는 그동안 만들어진 <미국혁명의 도덕적 영웅서사>를 가장 심하게 흔든다.
밸리 포지의 병사들은 자유를 위해 고통받는다.
동시에 미국군은 원주민의 마을을 불태운다.
흑인 노예들은 영국군으로 도망가 자유를 찾는다.
미국은 프랑스 왕정의 도움을 받는다.
스페인은 미국의 자유에 관심이 없지만 영국과 싸운다.
남부에서는 미국인들이 서로 죽인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면 “미국혁명은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문장은 틀리지 않지만 <불충분하다>.
나는 제5부 제목 <The Soul of All America>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본다.
미국의 영혼은 독립선언서 안에만 있지 않다.
밸리 포지에도 있다.
하우데노사우니의 불타는 마을에도 있다.
도망치는 노예에게도 있다.
프랑스 함대에도 있다.
찰스턴의 패배에도 있다.
<미국의 영혼은 처음부터 순수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유와 정복, 해방과 노예제, 공화주의와 제국적 팽창이 함께 들어 있는 모순된 영혼이었다.
세진님이 이 시리즈를 제1부부터 계속 보신 흐름에서 말하면, 나는 제5부가 Ken Burns의 역사관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본다.
번스는 미국 건국신화를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화를 역사로 바꾸려 한다>.
신화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다.
역사에는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이 있다.
미국인에게 워싱턴은 자유의 아버지다.
하우데노사우니에게 그는 <Town Destroyer>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건국신화는 끝나고 역사가 시작된다.>
나는 제5부가 지금까지 다섯 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에피소드라고 평가한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6—- 1,000 단어 요약 평론



Ken Burns <The American Revolution> 제6부
<The Most Sacred Thing ― 가장 신성한 것>
1,000단어 요약+평론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의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 마지막 제6부 <The Most Sacred Thing>은 1780년 5월 이후를 다룬다. 영국의 남부전략과 잔혹한 내전, Benedict Arnold의 배신, 프랑스 육·해군과의 협력, Yorktown의 승리, 독립의 승인, 대륙군 해산, 그리고 헌법 제정으로 이어진다. PBS 제6부 공식 페이지와 전체 영상 소개는 Cornwallis의 남부 평정 실패, 아널드의 전향,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요크타운 승리, 그리고 독립 이후 “더 완전한 연합”을 만들려는 시도를 이 마지막 편의 중심으로 제시한다.
앞의 다섯 편이 <미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물었다면, 제6부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혁명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권력을 얻은 뒤 그 권력을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 제목 <The Most Sacred Thing>의 진정한 의미라고 본다.
남부전쟁: 독립전쟁은 가장 잔혹한 내전이 된다
1780년 Charleston 함락 이후 영국은 남부를 거의 장악했다고 생각한다.
Charles Cornwallis는 남부에 잠재적인 Loyalist, 즉 충성파가 많다고 믿는다. 영국 정규군이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면 이들이 일어나 왕실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영국군이 지역사회에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갈등이 폭발한다.
이웃이 이웃을 죽인다.
친척이 서로 다른 편에 선다.
애국파 민병대와 충성파 민병대가 서로의 농장을 불태우고 보복한다.
특히 Banastre Tarleton과 그의 기병대는 미국 애국파 기억에서 잔혹성의 상징이 된다. 반대로 애국파 민병대 역시 충성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번스는 남부전쟁을 <좋은 미국인과 나쁜 영국인의 전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혁명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 되기 전에 공동체 내부의 전쟁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연구한 사람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국가적 이념이 지역사회의 오래된 원한, 계급갈등, 개인적 복수와 결합하면 전쟁은 훨씬 잔혹해진다.
미국혁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킹스 마운틴과 카우펜스: 영국의 남부전략이 무너지다
Kings Mountain 전투에서는 주로 미국인끼리 싸운다.
영국 정규군보다 충성파와 애국파 민병대의 대결이다.
애국파가 승리한다.
이어 Daniel Morgan이 Cowpens에서 Banastre Tarleton을 상대한다.
모건은 민병대의 약점을 정확히 이해한다.
민병대에게 정규군처럼 끝까지 진지를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몇 차례 사격한 뒤 후퇴하도록 한다.
영국군은 이것을 붕괴로 착각하고 추격한다.
그러나 후방에는 대륙군 정규병력이 기다리고 있다.
미군은 반격한다.
카우펜스는 미국혁명에서 가장 뛰어난 전술적 승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군이 마침내 <자신들의 군대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럽 정규군을 흉내 내는 대신 민병대와 정규군의 서로 다른 특성을 결합한다.
<약자는 강자의 방식을 완벽하게 모방해서 강자를 이기기 어렵다. 자신의 약점을 전략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린의 전략: 땅을 잃고 군대를 지킨다
남부 미군을 지휘하는 Nathanael Greene은 Washington과 매우 비슷한 전략을 사용한다.
Greene은 전투에서 자주 패한다.
그러나 군대를 잃지 않는다.
Cornwallis는 계속 미국군을 추격한다.
영국군은 전술적으로 승리하지만 점점 지친다.
보급선이 길어진다.
병사가 줄어든다.
지역을 점령해도 영국군이 떠나면 애국파가 다시 나타난다.
Greene은 유명한 표현으로 자신의 전략을 설명한다.
<우리는 싸우고, 얻어맞고, 다시 일어나 싸운다.>
이것은 제4부의 <Conquer by a Drawn Game> 전략의 남부판이다.
Cornwallis는 전투에서 이기면서 전쟁에서는 패하고 있었다.
여기서 Ken Burns의 전쟁관이 다시 나타난다.
<전술적 승리의 합계가 반드시 전략적 승리는 아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군이 거의 모든 대규모 전투에서 우세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하다.
베네딕트 아널드: 영웅은 왜 배신자가 되었는가
제6부의 가장 인간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은 Benedict Arnold다.
제4부에서 그는 Saratoga의 영웅이었다.
용감했다.
여러 차례 부상당했다.
미국혁명에서 가장 공격적인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승진에서 밀린다.
다른 장군들이 자신의 공을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재정 문제도 있다.
그리고 Philadelphia의 Loyalist 가문 출신 Peggy Shippen과 결혼한다.
아널드는 점차 영국 측과 비밀리에 접촉한다.
그는 West Point를 영국에 넘기려 한다.
PBS의 제6부 자료는 워싱턴이 웨스트포인트의 열악한 방어 상태를 확인한 뒤 아널드의 탈출과 배신 계획을 알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계획은 발각된다.
영국 정보장교 John André는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한다.
아널드는 영국군으로 도망간다.
번스가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흥미롭다.
아널드를 단순한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어떻게 정치적 배신으로 발전하는가>를 보여준다.
사람은 돈 때문에만 배신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은 공동체를 벌주고 싶어서> 배신한다.
나는 아널드의 이야기가 혁명에서 명예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18세기 엘리트 남성에게 명예는 심리적 장식이 아니었다.
사회적 존재 자체였다.
<아널드는 미국을 배신하기 전에 자신이 미국에게 배신당했다고 믿었다.>
물론 그것이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명은 된다.
요크타운: 미국의 승리인가, 프랑스의 승리인가
1781년 Cornwallis는 Virginia의 Yorktown에 군대를 배치한다.
Washington은 오랫동안 New York의 영국군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프랑스 장군 Rochambeau와 프랑스 해군의 움직임이 상황을 바꾼다.
프랑스 함대가 Chesapeake Bay의 제해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생긴다.
Washington은 결단한다.
뉴욕 공격을 준비하는 것처럼 영국군을 속이고 미·프 연합군을 남쪽으로 이동시킨다. 프랑스 함대가 해상을 차단하고 미·프 연합군이 육상에서 포위하면서 Cornwallis는 고립된다. PBS의 요크타운 전투 설명은 워싱턴의 기만 이동과 프랑스 해군의 봉쇄가 영국군을 함정에 가둔 핵심이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요크타운은 미국군 단독의 승리가 아니다.>
프랑스 육군이 있었다.
프랑스 해군이 있었다.
프랑스 자금이 있었다.
특히 Chesapeake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를 막지 못했다면 Cornwallis는 해상으로 탈출하거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1781년 10월 Cornwallis의 군대가 항복한다.
Cornwallis 자신은 병을 이유로 항복식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의 정치적 결과는 결정된다.
영국에서 전쟁 지속 의지가 무너진다.
PBS 역시 요크타운을 프랑스 육·해군의 지원을 받은 대륙군의 결정적 승리로 규정한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건국 승리는 <국제동맹의 승리>였다.
그러나 요크타운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인의 집단기억에서는 Cornwallis가 항복하는 순간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국군은 New York, Charleston, Savannah 등 여러 지역에 남아 있다.
해상전도 계속된다.
평화협상에는 시간이 걸린다.
1783년 파리조약에서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거대한 모순이 발생한다.
미국과 영국은 북미의 거대한 영토 경계를 협상한다.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은 협상 테이블에 없다.>
미국은 대서양에서 Mississippi River까지 광대한 영토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미국이 실제로 지배하지 않는 원주민의 땅이었다.
즉 미국 독립의 국제적 승인은 동시에 <서부 팽창의 국제법적 문을 여는 사건>이었다.
영국 제국에서 해방된 국가가 새로운 대륙 제국이 될 가능성이 여기서 시작된다.
번스가 작품 전체에서 원주민 경험을 반복해서 넣은 이유가 마지막에 분명해진다. 작품은 미국혁명을 독립전쟁이면서 내전이고 세계전쟁으로 설명하며, 혁명이 대륙 전체의 질서를 바꾸었다고 강조한다.
흑인의 자유: 누가 혁명에서 해방되었는가
전쟁이 끝나면서 수천 명의 흑인 Loyalist가 영국군과 함께 떠난다.
일부는 Nova Scotia로 간다.
일부는 영국으로 간다.
나중에는 Sierra Leone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미국의 승리는 자유의 승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자유를 약속했던 영국군이 패배한 것이다.
반면 북부 여러 주에서는 점진적인 노예제 폐지가 시작된다.
독립선언의 평등 언어가 노예제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남부에서는 노예제가 유지된다.
<혁명은 노예제를 폐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예제를 이전처럼 아무 설명 없이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본다.
혁명은 현실을 즉시 바꾸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흔들었다.
제2부에서 말했듯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은 미국의 자랑이면서 미국을 공격하는 고발장이 된다.
대륙군의 위기: 혁명군이 쿠데타를 일으킬 것인가
전쟁이 끝나가지만 대륙군 병사와 장교들은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Congress는 돈이 없다.
조세권도 약하다.
군 내부에 분노가 커진다.
1783년 Newburgh에서 일부 장교들 사이에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긴다.
군사력을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강제할 가능성이 나타난 것이다.
이 순간 미국혁명은 마지막 시험을 받는다.
<혁명군이 국가의 주인이 될 것인가?>
Washington은 장교들 앞에서 연설한다.
그리고 편지를 읽기 위해 안경을 꺼낸다.
그는 자신이 조국을 위해 봉사하면서 늙었고 이제 눈까지 나빠졌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장교들이 눈물을 흘린다.
반란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감동적인 일화가 아니다.
<Washington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한 순간 가운데 하나다.>
그는 군대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가장 신성한 것”
대륙군은 해산된다. PBS는 Joseph Plumb Martin 같은 평범한 병사들이 군대를 떠나는 과정과 워싱턴이 미지급 급료 문제를 의회에 계속 호소한 사실을 별도의 장면으로 다룬다.
Washington은 총사령관직을 사임한다.
그는 Annapolis의 Congress 앞에서 군 지휘권을 반납한다.
18세기 세계에서 승리한 장군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영국 왕 George III조차 Washington이 정말 권력을 포기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일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제6부 제목의 의미가 드러난다.
<The Most Sacred Thing>.
가장 신성한 것은 독립선언서가 아니다.
국기도 아니다.
군사적 승리도 아니다.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라는 원칙이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떠날 줄 알아야 한다>.
혁명 이후: 미국은 아직 실패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미국이 안정된 국가는 아니었다.
Articles of Confederation 아래 중앙정부는 너무 약했다.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한다.
주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렵다.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Shays' Rebellion은 새로운 공화국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결국 1787년 Constitutional Convention이 열린다.
헌법이 만들어진다.
PBS의 헌법과 “더 완전한 연합” 설명은 전쟁이 끝난 뒤 대표들이 새로운 정부 체제를 만들기 위해 모이는 과정을 제6부의 마지막 핵심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미국혁명의 또 다른 역설이 완성된다.
<강한 중앙정부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더 강한 중앙정부를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 왕의 정부와 달라야 했다.
권력을 분립한다.
선거를 한다.
헌법으로 정부를 제한한다.
완전하지 않았다.
여성은 배제되었다.
노예제는 유지되었다.
원주민은 정치공동체 밖에 놓였다.
그러나 <권력은 정당화되어야 하고 제한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시작된다.
평론: Ken Burns가 말하는 미국혁명의 진짜 영웅은 ‘미완성’이다
여섯 편을 모두 보고 나면 나는 Ken Burns가 미국혁명을 찬양하는 것인지 비판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 자체가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둘 다 한다.
미국혁명은 자유의 혁명이었다.
동시에 원주민 토지를 향한 팽창전쟁이었다.
평등을 선언했다.
동시에 노예제를 유지했다.
왕정을 거부했다.
그러나 부유한 백인 남성이 정치권력의 중심을 차지했다.
세계의 민주혁명에 언어를 제공했다.
동시에 새로운 대륙국가의 팽창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혁명은 위선이었는가?
번스의 대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여섯 편을 관통하는 그의 역사관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미국혁명의 위대함은 미국인들이 자유와 평등을 완성했다는 데 있지 않다. 자신들이 결코 완전히 지킬 수 없었던 원칙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는 데 있다.>
그 선언은 이후 미국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노예폐지론자들이 그것을 사용한다.
Frederick Douglass가 사용한다.
여성참정권 운동이 사용한다.
Martin Luther King Jr.가 사용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미국 정부와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미국의 건국이념은 국가를 정당화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국가를 고발하는 언어다.>
나는 이것이 Ken Burns의 미국관이라고 본다.
그리고 제6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결국 Washington이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노예 소유자였다.
원주민 마을 파괴를 명령했다.
군사적으로 여러 번 실패했다.
그러나 두 번 권력을 내려놓았다.
전쟁 후 군 지휘권을 반납했고, 나중에는 대통령직에서도 물러났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권력을 얻는 일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이 떠나는 일이다.>
세진님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라는 문제의식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보신다면, 나는 이 마지막 메시지가 미국혁명 자체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혁명가는 많다.
독립운동가도 많다.
민족의 구원자를 자처한 지도자도 많다.
그러나 승리한 뒤 군대를 해산하고 권력을 민간 정치에 돌려주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The Most Sacred Thing>.
가장 신성한 것은 국가가 아니다.
혁명도 아니다.
지도자도 아니다.
<어떤 사람도 공동체보다 영원히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이다.>
나는 여섯 편 가운데 제5부가 역사적으로 가장 불편하고 뛰어난 에피소드였다면, 제6부는 Ken Burns의 정치철학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에피소드라고 평가한다.
===
Ken Burns <The American Revolution> 제4부
<Conquer by a Drawn Game ― 무승부로 정복하다>
1,000단어 요약+평론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의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 제4부는 1777년 1월부터 12월까지를 중심으로 한다. 영국군은 미국의 수도 필라델피아를 점령하고 George Washington의 군대는 연이어 패한다. 그런데 북쪽 사라토가에서는 영국군 전체가 항복한다. 이 승리가 프랑스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여 지역적 식민지 반란을 세계전쟁으로 바꾼다. PBS 제4부 공식 안내가 요약하듯, <필라델피아의 상실과 사라토가의 승리>라는 역설이 제4부의 구조다.
제3부가 <혁명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제4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약한 쪽은 강한 쪽을 어떻게 이기는가?>
번스가 내놓는 대답은 에피소드 제목에 이미 있다.
<반드시 이길 필요가 없다. 지지만 않으면 된다.>
워싱턴의 깨달음: 나는 전투에서 이길 필요가 없다
제4부의 가장 중요한 문장은 역사학자 Joseph Ellis의 설명이다.
<Washington reaches the insight—he doesn't have to win. He only has not to lose.>
제3부 마지막에 예고된 이 말은 제4부 전체의 전략적 핵심이다.
1777년 초 워싱턴은 자신이 영국군과 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점차 이해한다. 영국군은 전문 직업군대다. 훈련, 무기, 해군, 보급 면에서 대륙군보다 우세하다.
워싱턴이 결전을 벌여 군대를 잃으면 혁명은 끝난다.
그러나 영국군이 워싱턴을 한 번 이기고 두 번 이겨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양측의 승리 조건은 비대칭적이다.
<영국은 미국군을 결정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미국은 파괴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Conquer by a Drawn Game”의 의미다.
체스에서 약한 쪽이 무승부를 계속 만들어 상대의 승리를 막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정치전쟁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한 쪽이 비용을 지불한다.
영국 국민은 묻게 된다.
왜 이 전쟁을 계속하는가?
프랑스는 묻게 된다.
미국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가?
워싱턴의 전략은 전투 승리보다 <시간을 정치적 무기로 만드는 전략>이었다.
영국의 필라델피아 작전: 수도를 점령하면 혁명이 끝날 것인가
영국군 총사령관 William Howe는 필라델피아를 목표로 삼는다.
필라델피아는 대륙회의가 열리는 미국의 정치적 중심지다.
유럽의 전쟁 관념에서 수도 점령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정부를 붕괴시키고 정치 지도자를 체포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정부 청사도, 왕궁도, 고정된 행정조직도 없다.
대륙회의는 영국군이 다가오자 도시를 떠난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다시 회의를 연다.
<수도를 점령했는데 정부가 사라지지 않는다.>
영국군은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정치공동체와 싸우고 있었다.
이것은 베트남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생각하게 한다. 군사적으로 도시를 점령하는 것과 정치적으로 상대 공동체를 굴복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브랜디와인: 또 패배하는 워싱턴
1777년 9월 브랜디와인 전투에서 워싱턴은 다시 William Howe에게 패한다.
영국군은 우회 작전을 통해 미군 측면을 공격한다.
전장은 혼란에 빠지고 미군은 후퇴한다.
번스는 전투를 영웅적인 그림으로 만들지 않는다. PBS의 제4부 자료도 브랜디와인, 필라델피아 점령, 저먼타운을 한 흐름으로 배치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이 젊은 프랑스 귀족 Marquis de Lafayette다.
라파예트는 미국혁명을 자신의 시대를 바꿀 사건으로 본다. 그는 부상당하면서도 미군과 함께한다.
유럽의 젊은 엘리트에게 미국혁명은 이미 <미국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혁명은 실제 성취보다 먼저 <국제적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미국은 노예제 사회였고 여성에게 정치적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사람들은 미국에서 자신들이 꿈꾸던 정치적 미래를 본다.
현실의 미국과 <상상된 미국>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먼타운: 패배가 프랑스를 설득하다
워싱턴은 필라델피아를 잃은 뒤 저먼타운의 영국군을 기습한다.
초기에는 성공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와 화약 연기 속에서 부대들이 서로 길을 잃는다. 명령 체계가 무너지고 혼란이 발생한다.
결국 미군은 후퇴한다.
또 패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유럽의 군사 관찰자들은 워싱턴의 군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수도를 잃은 군대가 며칠 뒤 점령군을 공격했다.
<이 군대는 패배했지만 붕괴하지 않았다.>
군사적 패배가 정치적 신뢰를 만든 것이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전투 결과표만이 아니다.
<상대와 제3자가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도 중요하다.
북쪽의 영국 전략: 뉴잉글랜드를 잘라낸다
한편 영국 장군 John Burgoyne은 캐나다에서 남쪽으로 진격한다.
전략은 논리적이었다.
허드슨강 회랑을 장악하여 뉴잉글랜드를 다른 식민지에서 분리한다.
뉴잉글랜드는 혁명의 발상지다.
그곳을 고립시키면 반란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Burgoyne의 군대는 영국군, 독일군, 충성파, 원주민 동맹군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영국군은 북미의 지리와 정치사회를 잘못 이해한다.
지도에서 보면 캐나다에서 Albany까지 내려오는 길은 간단하다.
현실에서는 숲과 늪, 강이 있다.
보급선은 길어진다.
미국 민병대는 나무를 쓰러뜨려 길을 막고 다리를 파괴한다.
그리고 Burgoyne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미국 민병대가 모여든다.
여기서 전쟁의 사회적 성격이 드러난다.
<군대가 민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국군의 진격이 민병대를 만들어낸다.>
적군이 가까이 올수록 전쟁은 추상적 독립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농장과 마을의 문제가 된다.
하우데노사우니: 미국혁명은 원주민의 내전이었다
제4부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는 Haudenosaunee Confederacy의 분열이다.
오랫동안 여러 민족을 하나의 정치적 연합으로 묶어왔던 하우데노사우니 연맹이 미국혁명 때문에 갈라진다.
일부는 영국을 지지한다.
일부는 미국을 지지한다.
일부는 중립을 원한다.
그 결과 친척과 친척이 서로 다른 편에서 싸운다.
다큐멘터리에서 원주민 역사가 Darren Bonaparte가 던지는 질문은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다.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있다. 무엇 때문에? 결국 다른 누군가가 우리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인가?>
PBS도 제4부의 주요 장면으로 하우데노사우니가 서로 다른 편을 선택하는 과정을 별도로 제시한다.
미국인에게 혁명은 건국전쟁이다.
영국인에게는 제국의 내전이다.
그러나 원주민에게는 <자신들의 세계를 해체시키는 전쟁>이었다.
번스의 다큐멘터리가 기존 미국혁명 서술과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이다.
사라토가: 베네딕트 아널드의 가장 위대한 순간
사라토가에서 미국 북부군은 Horatio Gates의 지휘 아래 Burgoyne의 진격을 막는다.
그러나 전투의 가장 강렬한 인물은 Benedict Arnold다.
우리는 아널드를 “미국의 배신자”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의 이전 생애를 거꾸로 읽는다.
그러나 1777년의 아널드는 미국혁명의 가장 용감하고 공격적인 장군 가운데 한 명이었다.
Gates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아널드는 전투에 뛰어든다.
그의 공격은 영국군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시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라토가 전승 기념물 가운데 하나는 아널드의 이름 대신 <부츠>만을 기념한다.
미국의 집단기억은 그가 배신자가 된 뒤 영웅이었던 그의 과거까지 지워버렸다.
번스는 여기서 역사적 인물의 <후일담이 과거를 재편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사람은 처음부터 배신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영웅이 배신자가 될 수도 있다.
사라토가의 승리: 전쟁이 세계전쟁이 되다
1777년 10월 Burgoyne은 약 6,000명의 병력과 함께 항복한다. 군대에 동행했던 수백 명의 여성과 아이들도 있었다. PBS는 이 항복을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사라토가의 진정한 의미는 영국군 6,000명을 제거했다는 데 있지 않다.
프랑스가 움직인다.
Benjamin Franklin은 파리에서 미국을 대표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에 동정적이어서만 움직인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영국의 적이다.
미국혁명은 영국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미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사라토가가 그 질문에 답했다.
1778년 프랑스는 미국과 공식 동맹을 맺는다.
이 순간 전쟁의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영국은 더 이상 13개 식민지의 반란만 진압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해군과 싸워야 한다.
카리브해 식민지를 지켜야 한다.
지중해와 유럽을 생각해야 한다.
곧 스페인과 네덜란드까지 전쟁에 연결된다.
PBS가 작품 전체를 독립전쟁이자 내전이며 세계전쟁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론: 미국은 혼자 독립하지 않았다
제4부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미국 건국신화의 한 가지 중요한 수정이다.
<미국인은 영국을 혼자 물리치지 않았다.>
미국의 독립은 국제정치의 산물이었다.
프랑스가 영국을 싫어하지 않았다면?
사라토가에서 Burgoyne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프랑스가 미국의 생존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면?
미국혁명의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이것은 미국혁명의 가치를 낮추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혁명의 현실을 보여준다.
<약한 혁명세력은 국제질서의 균열을 이용해야 한다.>
미국은 영국보다 강해져서 독립한 것이 아니다.
영국의 적을 자신의 동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독립할 가능성을 얻었다.
여기서 나는 한반도 근현대사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의 독립과 분단, 베트남의 독립, 이스라엘의 건국, 이란 혁명도 모두 내부 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국내 혁명은 국제질서의 틈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그리고 제4부의 제목 <Conquer by a Drawn Game>은 워싱턴 개인의 군사전략을 넘어 약한 국가와 약한 운동의 생존 전략을 설명하는 말처럼 들린다.
강자와 정면으로 싸워 모든 전투에서 이길 필요는 없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으면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국제환경이 변한다.
새로운 동맹이 나타난다.
상대 내부에서 전쟁 피로가 생긴다.
전쟁 비용이 정치문제가 된다.
제3부에서 나는 워싱턴을 <패배를 최종 패배로 만들지 않는 장군>이라고 평했다.
제4부에서는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워싱턴의 가장 위대한 전략적 능력은 승리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역사가 미국을 도울 때까지 혁명을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사라토가에서 역사가 움직였다.
미국혁명은 더 이상 미국인만의 전쟁이 아니게 되었다.
<1777년 사라토가에서 미국이 영국을 이긴 것이 아니다. 영국이 더 이상 미국만을 상대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이 제4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본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5 —- 1,000 단어 요약 평론
4
Ken Burns <The American Revolution> 제5부
<The Soul of All America ― 미국 전체의 영혼>
1,000단어 요약+평론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의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 제5부 <The Soul of All America>는 1777년 12월부터 1780년 5월까지를 다룬다. 공식 PBS 제5부 안내가 제시하는 핵심 사건은 밸리 포지의 겨울, 몬머스 전투, 로드아일랜드 전투, 사바나 점령, 빈센 요새, 스페인의 참전, 플램버러 헤드 해전, 설리번 원정, 사바나 공방전, 찰스턴 함락이다. 전쟁은 이제 북부의 워싱턴과 영국군 사이의 대결을 넘어 바다·원주민 영토·남부·카리브해로 확산된다.
제4부가 <미국은 혼자 독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면, 제5부는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세계는 어떻게 파괴되었는가?>
나는 제5부가 지금까지의 다섯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도덕적으로 가장 불편한 부분이라고 본다.
밸리 포지: 추위보다 국가의 부재가 문제였다
1777년 겨울, George Washington의 대륙군은 밸리 포지에 들어간다.
미국의 건국신화에서 밸리 포지는 흔히 눈보라 속에서 맨발의 병사들이 자유를 위해 고난을 견딘 장소로 기억된다. 그러나 번스는 이 낭만적 이미지를 상당히 해체한다.
문제는 단순히 겨울이 추웠다는 것이 아니다.
식량이 없다. 옷이 없다. 신발이 없다. 병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장티푸스와 인플루엔자 같은 질병이 퍼진다. 탈영이 계속된다. PBS의 제5부 도입부도 독립전쟁이 세계전쟁으로 확대되는 바로 그 순간, 대륙군은 보급 부족과 질병 때문에 붕괴 직전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변 농장과 상인에게 물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가 그것을 군대로 이동시킬 능력이 없었다.>
대륙회의에는 강력한 조세권이 없다. 각 주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한다.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여기서 미국혁명의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식민지인들은 강력한 중앙권력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
<국가를 싫어해서 혁명을 시작했는데, 혁명을 지키려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밸리 포지의 진정한 의미라고 본다.
폰 슈토이벤: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규율을 가르치다
밸리 포지에서 Baron Friedrich Wilhelm von Steuben이 등장한다.
프로이센 군대 경험을 가진 그는 대륙군을 훈련한다. 행군, 총검 사용, 대형 전환, 명령 체계를 표준화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군사훈련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병사들은 자신을 자유로운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장교의 권위에 쉽게 복종하지 않는다. 지역적 자부심도 강하다.
그러나 군대는 민주적 토론으로 움직일 수 없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복종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모든 혁명군이 만나는 역설이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조직일수록 내부에서는 강한 규율을 요구한다.
슈토이벤의 역할은 미국 병사를 유럽 병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병사들이 <같은 명령을 이해하고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군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제2부에서 워싱턴의 임명이 정치적으로 대륙군을 만들었다면, 밸리 포지에서 슈토이벤은 실제 행동의 차원에서 대륙군을 만든다.
몬머스: 무승부가 승리처럼 느껴진 전투
프랑스의 참전으로 영국의 전략은 바뀐다. 영국군은 필라델피아를 떠나 뉴욕으로 이동한다.
워싱턴은 추격한다.
1778년 6월 몬머스 전투가 벌어진다.
전투 자체는 사실상 무승부였다. 영국군은 뉴욕으로 빠져나갔고 미국군은 전장을 유지했다.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군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밸리 포지 이전의 대륙군이라면 영국 정규군과 정면으로 오래 싸우기 어려웠다.
몬머스에서는 버틴다.
<군대가 달라졌다.>
전투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병사들이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영국군과 싸울 수 있다.”
혁명에서 집단적 자신감은 실제 능력을 변화시킨다.
프랑스 동맹: 동맹은 사랑이 아니다
제4부에서 프랑스가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제5부는 동맹의 현실을 보여준다.
로드아일랜드에서 미국군과 프랑스 함대가 공동작전을 시도한다. 그런데 작전은 실패한다. 프랑스 함대는 폭풍으로 손상되고 철수한다. 미국 측에서는 분노가 터져 나온다. 프랑스군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장면이 중요하다.
미국과 프랑스는 같은 가치 때문에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왕정국가다.
미국은 공화국을 선언했다.
프랑스의 목적은 영국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동맹은 우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일시적 결합이다.>
그리고 동맹국끼리도 서로 불신한다.
번스는 국제정치를 상당히 현실주의적으로 보여준다.
미국혁명은 세계전쟁이 된다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이 영국과 전쟁에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스페인이 미국 독립의 동맹국으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페인은 <영국의 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PBS도 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전쟁은 카리브해와 대서양으로 확대된다.
카리브해의 설탕 섬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유럽 제국의 관점에서 북미 13개 식민지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이것은 미국 중심의 역사관을 깨뜨린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세계사의 중심이 될 것을 알고 있다.
1778년 사람들은 몰랐다.
영국 정부에게 자메이카를 지키는 것이 뉴욕보다 중요할 수도 있었다.
미국혁명은 세계제국 사이의 오래된 경쟁 속에 들어간다. PBS가 이 작품 전체를 독립전쟁이면서 내전이며 세계전쟁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 폴 존스: “나는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John Paul Jones가 등장한다.
그의 함선 <Bonhomme Richard>와 영국 군함 <Serapis>의 전투는 제5부의 가장 영화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다.
미국 함선은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영국 측에서 항복 여부를 묻는다.
전설에 따르면 존스는 말한다.
“I have not yet begun to fight.”
결국 미국 측이 승리하지만 <Bonhomme Richard>는 침몰한다.
이 전투의 군사적 중요성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징적 효과는 엄청났다.
영국 해안 가까이에서 영국 군함이 공격당한다.
제국의 중심부가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제3부의 트렌턴과 비슷하다.
작은 군사적 사건이 거대한 심리적 효과를 만든다.
하우데노사우니: 미국 자유의 어두운 이면
나는 제5부의 핵심을 Sullivan Expedition, 즉 설리번 원정이라고 본다.
영국과 동맹한 일부 하우데노사우니 세력이 미국 정착촌을 공격한다. 와이오밍 계곡과 체리 밸리에서 잔혹한 폭력이 발생한다.
워싱턴은 John Sullivan 장군에게 대규모 원정을 명령한다.
목적은 단순한 군사적 격퇴가 아니다.
마을과 식량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다.
미군은 원주민 마을을 불태운다.
옥수수밭과 과수원을 파괴한다.
PBS가 제5부의 핵심 사건으로 설리번 원정을 명시하는 것은 이 전쟁이 ‘Indian Country’로 확대되는 과정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수십 개의 하우데노사우니 마을이 파괴되고 주민들은 난민이 된다. 후대 자료에서는 40여 개 마을과 대규모 식량 저장·경작지가 파괴된 것으로 정리된다.
하우데노사우니는 워싱턴에게 별명을 붙인다.
<Town Destroyer ― 마을 파괴자.>
여기서 미국 건국사의 도덕적 중심이 흔들린다.
영국의 제국적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다른 민족의 마을을 조직적으로 파괴한다.
<피식민자가 동시에 식민자가 된다.>
나는 이 장면이 번스 다큐멘터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남부 전략: 영국도 ‘민심’을 오판한다
북부에서 결정적 승리를 얻지 못한 영국은 남부로 눈을 돌린다.
영국 지도부는 남부에 많은 충성파가 있다고 믿는다.
영국 정규군이 들어가면 충성파들이 일어나 혁명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바나가 함락된다.
프랑스와 미국 연합군의 사바나 탈환 작전도 실패한다.
그리고 1780년 영국군은 찰스턴을 포위한다.
찰스턴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780년 5월 찰스턴이 항복한다.
5,000명이 넘는 미군이 포로가 되고 남부 대륙군은 사실상 파괴된다. 이는 미국 측이 전쟁 중 당한 가장 심각한 패배 가운데 하나였다.
제5부는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미국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영국의 남부 전략에는 치명적인 오판이 숨어 있었다.
<충성파의 수와 충성심을 과대평가했다.>
영국군이 지역을 점령한다고 주민이 자동으로 충성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령은 지역사회의 오래된 갈등을 폭발시킨다.
남부의 전쟁은 점차 애국파 민병대와 충성파 민병대가 서로 죽이는 잔혹한 내전으로 변한다.
평론: 제5부는 미국혁명을 ‘좋은 혁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제1부에서 미국인이 만들어졌다.
제2부에서 미국의 언어가 만들어졌다.
제3부에서 혁명이 패배를 견뎠다.
제4부에서 국제질서가 미국을 도왔다.
그리고 제5부에서 번스는 그동안 만들어진 <미국혁명의 도덕적 영웅서사>를 가장 심하게 흔든다.
밸리 포지의 병사들은 자유를 위해 고통받는다.
동시에 미국군은 원주민의 마을을 불태운다.
흑인 노예들은 영국군으로 도망가 자유를 찾는다.
미국은 프랑스 왕정의 도움을 받는다.
스페인은 미국의 자유에 관심이 없지만 영국과 싸운다.
남부에서는 미국인들이 서로 죽인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면 “미국혁명은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문장은 틀리지 않지만 <불충분하다>.
나는 제5부 제목 <The Soul of All America>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본다.
미국의 영혼은 독립선언서 안에만 있지 않다.
밸리 포지에도 있다.
하우데노사우니의 불타는 마을에도 있다.
도망치는 노예에게도 있다.
프랑스 함대에도 있다.
찰스턴의 패배에도 있다.
<미국의 영혼은 처음부터 순수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유와 정복, 해방과 노예제, 공화주의와 제국적 팽창이 함께 들어 있는 모순된 영혼이었다.
세진님이 이 시리즈를 제1부부터 계속 보신 흐름에서 말하면, 나는 제5부가 Ken Burns의 역사관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본다.
번스는 미국 건국신화를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화를 역사로 바꾸려 한다>.
신화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다.
역사에는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이 있다.
미국인에게 워싱턴은 자유의 아버지다.
하우데노사우니에게 그는 <Town Destroyer>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건국신화는 끝나고 역사가 시작된다.>
나는 제5부가 지금까지 다섯 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에피소드라고 평가한다.
Ken Burn’s American Revolution Ep 6—- 1,000 단어 요약 평론
Ken Burns <The American Revolution> 제6부
<The Most Sacred Thing ― 가장 신성한 것>
1,000단어 요약+평론
Ken Burns, Sarah Botstein, David Schmidt의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혁명) 마지막 제6부 <The Most Sacred Thing>은 1780년 5월 이후를 다룬다. 영국의 남부전략과 잔혹한 내전, Benedict Arnold의 배신, 프랑스 육·해군과의 협력, Yorktown의 승리, 독립의 승인, 대륙군 해산, 그리고 헌법 제정으로 이어진다. PBS 제6부 공식 페이지와 전체 영상 소개는 Cornwallis의 남부 평정 실패, 아널드의 전향,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요크타운 승리, 그리고 독립 이후 “더 완전한 연합”을 만들려는 시도를 이 마지막 편의 중심으로 제시한다.
앞의 다섯 편이 <미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물었다면, 제6부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혁명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권력을 얻은 뒤 그 권력을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 제목 <The Most Sacred Thing>의 진정한 의미라고 본다.
남부전쟁: 독립전쟁은 가장 잔혹한 내전이 된다
1780년 Charleston 함락 이후 영국은 남부를 거의 장악했다고 생각한다.
Charles Cornwallis는 남부에 잠재적인 Loyalist, 즉 충성파가 많다고 믿는다. 영국 정규군이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면 이들이 일어나 왕실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영국군이 지역사회에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갈등이 폭발한다.
이웃이 이웃을 죽인다.
친척이 서로 다른 편에 선다.
애국파 민병대와 충성파 민병대가 서로의 농장을 불태우고 보복한다.
특히 Banastre Tarleton과 그의 기병대는 미국 애국파 기억에서 잔혹성의 상징이 된다. 반대로 애국파 민병대 역시 충성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번스는 남부전쟁을 <좋은 미국인과 나쁜 영국인의 전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혁명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 되기 전에 공동체 내부의 전쟁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연구한 사람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국가적 이념이 지역사회의 오래된 원한, 계급갈등, 개인적 복수와 결합하면 전쟁은 훨씬 잔혹해진다.
미국혁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킹스 마운틴과 카우펜스: 영국의 남부전략이 무너지다
Kings Mountain 전투에서는 주로 미국인끼리 싸운다.
영국 정규군보다 충성파와 애국파 민병대의 대결이다.
애국파가 승리한다.
이어 Daniel Morgan이 Cowpens에서 Banastre Tarleton을 상대한다.
모건은 민병대의 약점을 정확히 이해한다.
민병대에게 정규군처럼 끝까지 진지를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몇 차례 사격한 뒤 후퇴하도록 한다.
영국군은 이것을 붕괴로 착각하고 추격한다.
그러나 후방에는 대륙군 정규병력이 기다리고 있다.
미군은 반격한다.
카우펜스는 미국혁명에서 가장 뛰어난 전술적 승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군이 마침내 <자신들의 군대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럽 정규군을 흉내 내는 대신 민병대와 정규군의 서로 다른 특성을 결합한다.
<약자는 강자의 방식을 완벽하게 모방해서 강자를 이기기 어렵다. 자신의 약점을 전략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린의 전략: 땅을 잃고 군대를 지킨다
남부 미군을 지휘하는 Nathanael Greene은 Washington과 매우 비슷한 전략을 사용한다.
Greene은 전투에서 자주 패한다.
그러나 군대를 잃지 않는다.
Cornwallis는 계속 미국군을 추격한다.
영국군은 전술적으로 승리하지만 점점 지친다.
보급선이 길어진다.
병사가 줄어든다.
지역을 점령해도 영국군이 떠나면 애국파가 다시 나타난다.
Greene은 유명한 표현으로 자신의 전략을 설명한다.
<우리는 싸우고, 얻어맞고, 다시 일어나 싸운다.>
이것은 제4부의 <Conquer by a Drawn Game> 전략의 남부판이다.
Cornwallis는 전투에서 이기면서 전쟁에서는 패하고 있었다.
여기서 Ken Burns의 전쟁관이 다시 나타난다.
<전술적 승리의 합계가 반드시 전략적 승리는 아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군이 거의 모든 대규모 전투에서 우세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하다.
베네딕트 아널드: 영웅은 왜 배신자가 되었는가
제6부의 가장 인간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은 Benedict Arnold다.
제4부에서 그는 Saratoga의 영웅이었다.
용감했다.
여러 차례 부상당했다.
미국혁명에서 가장 공격적인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승진에서 밀린다.
다른 장군들이 자신의 공을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재정 문제도 있다.
그리고 Philadelphia의 Loyalist 가문 출신 Peggy Shippen과 결혼한다.
아널드는 점차 영국 측과 비밀리에 접촉한다.
그는 West Point를 영국에 넘기려 한다.
PBS의 제6부 자료는 워싱턴이 웨스트포인트의 열악한 방어 상태를 확인한 뒤 아널드의 탈출과 배신 계획을 알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계획은 발각된다.
영국 정보장교 John André는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한다.
아널드는 영국군으로 도망간다.
번스가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흥미롭다.
아널드를 단순한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어떻게 정치적 배신으로 발전하는가>를 보여준다.
사람은 돈 때문에만 배신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은 공동체를 벌주고 싶어서> 배신한다.
나는 아널드의 이야기가 혁명에서 명예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18세기 엘리트 남성에게 명예는 심리적 장식이 아니었다.
사회적 존재 자체였다.
<아널드는 미국을 배신하기 전에 자신이 미국에게 배신당했다고 믿었다.>
물론 그것이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명은 된다.
요크타운: 미국의 승리인가, 프랑스의 승리인가
1781년 Cornwallis는 Virginia의 Yorktown에 군대를 배치한다.
Washington은 오랫동안 New York의 영국군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프랑스 장군 Rochambeau와 프랑스 해군의 움직임이 상황을 바꾼다.
프랑스 함대가 Chesapeake Bay의 제해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생긴다.
Washington은 결단한다.
뉴욕 공격을 준비하는 것처럼 영국군을 속이고 미·프 연합군을 남쪽으로 이동시킨다. 프랑스 함대가 해상을 차단하고 미·프 연합군이 육상에서 포위하면서 Cornwallis는 고립된다. PBS의 요크타운 전투 설명은 워싱턴의 기만 이동과 프랑스 해군의 봉쇄가 영국군을 함정에 가둔 핵심이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요크타운은 미국군 단독의 승리가 아니다.>
프랑스 육군이 있었다.
프랑스 해군이 있었다.
프랑스 자금이 있었다.
특히 Chesapeake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를 막지 못했다면 Cornwallis는 해상으로 탈출하거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1781년 10월 Cornwallis의 군대가 항복한다.
Cornwallis 자신은 병을 이유로 항복식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의 정치적 결과는 결정된다.
영국에서 전쟁 지속 의지가 무너진다.
PBS 역시 요크타운을 프랑스 육·해군의 지원을 받은 대륙군의 결정적 승리로 규정한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건국 승리는 <국제동맹의 승리>였다.
그러나 요크타운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인의 집단기억에서는 Cornwallis가 항복하는 순간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국군은 New York, Charleston, Savannah 등 여러 지역에 남아 있다.
해상전도 계속된다.
평화협상에는 시간이 걸린다.
1783년 파리조약에서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거대한 모순이 발생한다.
미국과 영국은 북미의 거대한 영토 경계를 협상한다.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은 협상 테이블에 없다.>
미국은 대서양에서 Mississippi River까지 광대한 영토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미국이 실제로 지배하지 않는 원주민의 땅이었다.
즉 미국 독립의 국제적 승인은 동시에 <서부 팽창의 국제법적 문을 여는 사건>이었다.
영국 제국에서 해방된 국가가 새로운 대륙 제국이 될 가능성이 여기서 시작된다.
번스가 작품 전체에서 원주민 경험을 반복해서 넣은 이유가 마지막에 분명해진다. 작품은 미국혁명을 독립전쟁이면서 내전이고 세계전쟁으로 설명하며, 혁명이 대륙 전체의 질서를 바꾸었다고 강조한다.
흑인의 자유: 누가 혁명에서 해방되었는가
전쟁이 끝나면서 수천 명의 흑인 Loyalist가 영국군과 함께 떠난다.
일부는 Nova Scotia로 간다.
일부는 영국으로 간다.
나중에는 Sierra Leone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미국의 승리는 자유의 승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자유를 약속했던 영국군이 패배한 것이다.
반면 북부 여러 주에서는 점진적인 노예제 폐지가 시작된다.
독립선언의 평등 언어가 노예제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남부에서는 노예제가 유지된다.
<혁명은 노예제를 폐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예제를 이전처럼 아무 설명 없이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본다.
혁명은 현실을 즉시 바꾸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흔들었다.
제2부에서 말했듯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은 미국의 자랑이면서 미국을 공격하는 고발장이 된다.
대륙군의 위기: 혁명군이 쿠데타를 일으킬 것인가
전쟁이 끝나가지만 대륙군 병사와 장교들은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Congress는 돈이 없다.
조세권도 약하다.
군 내부에 분노가 커진다.
1783년 Newburgh에서 일부 장교들 사이에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긴다.
군사력을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강제할 가능성이 나타난 것이다.
이 순간 미국혁명은 마지막 시험을 받는다.
<혁명군이 국가의 주인이 될 것인가?>
Washington은 장교들 앞에서 연설한다.
그리고 편지를 읽기 위해 안경을 꺼낸다.
그는 자신이 조국을 위해 봉사하면서 늙었고 이제 눈까지 나빠졌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장교들이 눈물을 흘린다.
반란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감동적인 일화가 아니다.
<Washington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한 순간 가운데 하나다.>
그는 군대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가장 신성한 것”
대륙군은 해산된다. PBS는 Joseph Plumb Martin 같은 평범한 병사들이 군대를 떠나는 과정과 워싱턴이 미지급 급료 문제를 의회에 계속 호소한 사실을 별도의 장면으로 다룬다.
Washington은 총사령관직을 사임한다.
그는 Annapolis의 Congress 앞에서 군 지휘권을 반납한다.
18세기 세계에서 승리한 장군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영국 왕 George III조차 Washington이 정말 권력을 포기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일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제6부 제목의 의미가 드러난다.
<The Most Sacred Thing>.
가장 신성한 것은 독립선언서가 아니다.
국기도 아니다.
군사적 승리도 아니다.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라는 원칙이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떠날 줄 알아야 한다>.
혁명 이후: 미국은 아직 실패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미국이 안정된 국가는 아니었다.
Articles of Confederation 아래 중앙정부는 너무 약했다.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한다.
주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렵다.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Shays' Rebellion은 새로운 공화국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결국 1787년 Constitutional Convention이 열린다.
헌법이 만들어진다.
PBS의 헌법과 “더 완전한 연합” 설명은 전쟁이 끝난 뒤 대표들이 새로운 정부 체제를 만들기 위해 모이는 과정을 제6부의 마지막 핵심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미국혁명의 또 다른 역설이 완성된다.
<강한 중앙정부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더 강한 중앙정부를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 왕의 정부와 달라야 했다.
권력을 분립한다.
선거를 한다.
헌법으로 정부를 제한한다.
완전하지 않았다.
여성은 배제되었다.
노예제는 유지되었다.
원주민은 정치공동체 밖에 놓였다.
그러나 <권력은 정당화되어야 하고 제한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시작된다.
평론: Ken Burns가 말하는 미국혁명의 진짜 영웅은 ‘미완성’이다
여섯 편을 모두 보고 나면 나는 Ken Burns가 미국혁명을 찬양하는 것인지 비판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 자체가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둘 다 한다.
미국혁명은 자유의 혁명이었다.
동시에 원주민 토지를 향한 팽창전쟁이었다.
평등을 선언했다.
동시에 노예제를 유지했다.
왕정을 거부했다.
그러나 부유한 백인 남성이 정치권력의 중심을 차지했다.
세계의 민주혁명에 언어를 제공했다.
동시에 새로운 대륙국가의 팽창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혁명은 위선이었는가?
번스의 대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여섯 편을 관통하는 그의 역사관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미국혁명의 위대함은 미국인들이 자유와 평등을 완성했다는 데 있지 않다. 자신들이 결코 완전히 지킬 수 없었던 원칙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는 데 있다.>
그 선언은 이후 미국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노예폐지론자들이 그것을 사용한다.
Frederick Douglass가 사용한다.
여성참정권 운동이 사용한다.
Martin Luther King Jr.가 사용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미국 정부와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미국의 건국이념은 국가를 정당화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국가를 고발하는 언어다.>
나는 이것이 Ken Burns의 미국관이라고 본다.
그리고 제6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결국 Washington이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노예 소유자였다.
원주민 마을 파괴를 명령했다.
군사적으로 여러 번 실패했다.
그러나 두 번 권력을 내려놓았다.
전쟁 후 군 지휘권을 반납했고, 나중에는 대통령직에서도 물러났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권력을 얻는 일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이 떠나는 일이다.>
세진님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라는 문제의식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보신다면, 나는 이 마지막 메시지가 미국혁명 자체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혁명가는 많다.
독립운동가도 많다.
민족의 구원자를 자처한 지도자도 많다.
그러나 승리한 뒤 군대를 해산하고 권력을 민간 정치에 돌려주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The Most Sacred Thing>.
가장 신성한 것은 국가가 아니다.
혁명도 아니다.
지도자도 아니다.
<어떤 사람도 공동체보다 영원히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이다.>
나는 여섯 편 가운데 제5부가 역사적으로 가장 불편하고 뛰어난 에피소드였다면, 제6부는 Ken Burns의 정치철학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에피소드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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