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5일 토요일

선우학원의 공자 China of Confucius : a critical interpretation : Sunoo, Harold Hakwon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China of Confucius : a critical interpretation : Sunoo, Harold Hakwon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China of Confucius : a critical interpretation
by Sunoo, Harold Hakwon, 1985 
Topics 
Philosophy, Confucian, China -- Civilization 
Publisher Virginia Beach, VA., U.S.A. : Heritage Research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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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ACE
Chen Chi-yu and I met as graduate students at Berkeley Cam-pu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in 1942. He was in Sociology, and I in Political Science. We as Asian students, were concerned that the university students had little awareness of Asian affairs. We agreed that there was a need for a book which would explain Oriental philosophy to the undergraduate students.
Chen Chi-yu felt strongly that we should write about Confu-cianism, because he felt that Confucianism was being misinter-preted by many Western scholars. I agreed to his proposal. Chen Chi-yu left, however, for China at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in 1945 as he was anxious to reunite with his family. This left the task of completing this volume to me.
My great grandfather first introduced me to Confucianism when I was a child. My early impression of Confucianism as the profound and timeless truth changed as I became a more serious student using scientific methodology and became more critical of his philosophy. I have been working on the manuscript on and off for nearly forty years. I published several books on other more current topics during these years, as Confucianism was not on my priority list.

Each chapter was written on separate occasions, for different purposes. However, I feel there is an interrelated continuity even though there are some duplications of materials. Some quotes are repeated, although I have tried to avoid it as much as possible.
Many colleagues have read the original draft and have given me much constructive suggestions. I am deeply grateful for their time and patience. I offer special appreciation to Professor Dong Soo Kim of Norfolk State University and Dr. Sookja P. Kim of Heritage Research House for their helpfulness and consistent support, concern, and care in this publication. I also wish to acknowledge a special thanks to my colleague, Professor Bartlett C. Jones, who read the entire manuscript with a scholar-ly care. With their useful suggestions, immeasurable breadth and clarity have been added to the original work. Finally, Sonia, my wife, as usual was a source of encouragement and sustained enthusiasm to make the writing a stimulating challe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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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Introduction: The Role of Chinese Intelligentsia.
2. Confucian Philosophy
3. The Traditional Chinese Educational System
4. Functions of Intelligentsia.
5. Social Structures and Life Style.
6.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System.
7. Chinese Bureaucracy.
8. The Chinese Family System.
9. Women in China Society.
Footnotes
Bibliography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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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학원(Harold Hakwon Sunoo) 교수의 저서 <공자의 중국: 비판적 해석>(원제: China of Confucius: A Critical Interpretation, 1985)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원하시는 지침에 따라 본문은 <해라>체로 서술하였습니다.

<공자의 중국: 비판적 해석> 요약 및 평론

1. 서론: 유교적 전통에 대한 탈신화화와 비판적 시각

선우학원 교수의 1985년 저작 <공자의 중국: 비판적 해석>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문명의 기저를 형성해 온 유교 사상과 그 중심인물인 공자(孔子)를 이상화된 성인의 위치에서 끌어내려, 당대의 역사적·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냉철하게 해부한 저작이다. 저자는 서구와 동아시아 학계 일각에서 유교를 동양적 인본주의나 이상적 도덕 정치의 표상으로 낭만화하는 경향을 경계한다. 대신, 공자 사상의 본질이 춘추전국시대라는 체제 붕괴기 속에서 지배 귀족층의 기득권을 옹호하고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영속화하기 위해 기획된 지배 이데올로기였음을 비판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2. 본서의 핵심 내용 요약

저서의 논의는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시대의 물질적·정치적 토대 분석, 유교 핵심 개념들의 계급적 성격 규명, 그리고 유교가 중국 역사와 동아시아 사회구조에 미친 장기적 영향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첫째, 공자 사상의 태생적 한계와 시대적 배경이다. 저자는 공자가 봉건적 종법 질서가 해체되고 하극상이 만연하던 춘추시대 말기, 몰락해 가던 주(周)나라의 신분제와 귀족 질서를 복원하려 한 보수적 지식인이었다고 진단한다. 공자가 이상향으로 제시한 <주공(周公)의 시대>는 민중의 해방이 아니라, 엄격한 계급 질서에 입각한 봉건적 안정을 의미했다. 따라서 공자의 정치적 기획은 역사의 진보가 아닌 과거 회귀적 복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둘째, 유교 도덕 개념의 사회정치적 기능 분석이다.

  • 예(禮): 단순한 예절이나 의례가 아니라, 상하 귀천의 신분적 분별을 명확히 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행동 규범을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로 파악된다.

  • 인(仁): 보편적 인류애나 평등한 사랑이 아니라, 가족 내 혈연적 질서와 지배층 내부의 결속을 도모하며 피지배층의 자발적 순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지배 윤리로 해석된다.

  • 충(忠)과 효(孝): 가정 내 부권에 대한 절대적 복종(효)을 국가 군주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충)으로 확장시킴으로써, 가부장제와 전제군주제를 상호 결합하는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제로 기능했다.

셋째, 피지배 민중과 여성에 대한 억압적 배제이다. 저자는 공자 사상이 철저히 <군자(지배 엘리트)> 중심의 세계관이며, <소인(민중)>과 여성은 교화와 통제의 대상에 불과했음을 텍스트를 통해 밝혀낸다. 노동하는 대중의 권리와 목소리는 유교적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되었으며, 여성은 삼종지도와 가부장적 질서 아래 종속적 존재로 격하되었다.

넷째, 제도화된 유교(국유화된 유교)의 해악이다. 한나라 이후 국교화된 유교는 과거제도와 관료제를 통해 지식인층을 체제 내로 포섭하고, 체제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는 교조적 정통주의로 굳어졌다. 이는 중국 사회의 창의적 발전과 기술 혁신, 사회 변혁의 동력을 마비시키는 역사적 족쇄로 작용했다.

3. 비판적 평론: 의의와 한계

<의의: 봉건적 권위주의의 뿌리를 드러낸 날카로운 계급적·인권적 통찰> 본서는 공자와 유교 전통에 덧씌워진 유토피아적 환상을 걷어내고, 그것이 지닌 권력 지향성과 억압적 계급성을 명확히 폭로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비판적 성취를 보여준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구성체 이론과 비판적 역사학의 관점을 접목하여, 도덕과 윤리의 외피를 쓴 유교가 어떻게 실질적으로는 지배층의 특권을 옹호하고 민중의 저항 의지를 거세했는지를 논리정연하게 증명했다.

또한 1980년대 당시 아시아 발전 모델과 결합하여 유교 자본주의 담론이 부상하던 시기에, 유교가 내포한 가부장적 권위주의, 맹목적 복종, 여성 억압, 비판적 자유의 억압이라는 구조적 병폐를 선제적으로 경고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한계: 텍스트의 다층성과 역사적 역동성에 대한 환원주의적 위험> 그러나 본서는 유교 비판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인해 몇 가지 해석학적 한계를 지닌다.

첫째, 공자 사상의 본원적 비판 정신에 대한 과소평가이다. 원시 유교에서 공자가 설파한 <군주의 도덕적 책임(정명사상, 正名思想)>이나, 맹자로 이어지는 <민본주의(民本主義)> 및 <역성혁명론(易姓革命論)> 등 지배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려 했던 내재적 비판력과 도덕적 긴장감을 단순히 지배 이데올로기로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

둘째, 유교 문화의 내면적 자기수양(수기, 修己) 측면에 대한 협소한 이해이다. 유교가 개인에게 부과한 도덕적 자율성과 인격적 성숙의 수행적 가치를 배제한 채, 오로지 외재적 사회 통제 기제로만 환원하여 파악한 점은 텍스트의 풍부한 철학적 층위를 평면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4. 결론

선우학원의 <공자의 중국: 비판적 해석>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유교적 위계질서를 해체하고, 억압받던 민중과 여성의 시각에서 동아시아 정신사의 그늘을 고발한 용기 있는 비판서이다. 과거의 지배 담론을 탈신화화하여 인간 해방과 민주적 가치의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저자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유산과 가부장적 잔재와 싸우고 있는 현대 동아시아 사회에 유효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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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of Confucius : a critical interpretation by Sunoo, Harold Hakwon, 1985 --- 1,000 단어 요약 평론, 특별히 다른 시각이 있는가?

《China of Confucius: A Critical Interpretation》

《공자의 중국: 비판적 해석》

선우학원(Harold Hakwon Sunoo), 1985 — 1,000단어 요약 평론

특히 <선우학원에게 다른 시각이 있는가?>

먼저 자료상의 한계를 밝혀두는 것이 좋다. 이 책은 1985년 Heritage Research House에서 나온 약 200쪽의 저서인데, 현재 온라인에서는 본문 전체를 안정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1988년 《Pacific Affairs》에 실린 J. D. Schmidt의 3쪽짜리 전문 서평, 후대 연구들이 인용하는 구체적인 페이지와 문장들을 통해 책의 논지와 특징을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Schmidt의 서평은 이 책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선우학원의 공자·유교 해석에는 분명히 다른 시각이 있다>. 그것은 공자를 위대한 동양의 도덕철학자로 소개하는 책도 아니고, 오늘날의 신유학자들처럼 유교에서 인본주의·공동체·도덕적 자기수양의 현대적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선우학원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공자와 유교는 중국인의 정신을 고양시킨 위대한 철학이었는가, 아니면 수천 년 동안 위계적 국가와 관료제, 가족질서, 지식인의 순응을 뒷받침한 사회체제이기도 했는가?>

바로 이 두 번째 질문이 이 책의 독특한 성격을 만든다.


1. 공자를 <철학자>보다 <사회질서의 설계자>로 본다

일반적인 공자 소개에서는 인(仁), 예(禮), 의(義), 효(孝), 군자, 덕치가 중심이 된다. 공자는 폭력적 강제보다는 지도자의 도덕적 모범을 강조했고, 교육과 자기수양을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들려 한 사상가로 설명된다. 오늘날의 표준적인 철학사적 설명도 공자의 핵심을 개인과 정부의 도덕성, 올바른 인간관계, 인과 의, 덕에 의한 통치에서 찾는다.

선우학원은 이와 상당히 다른 곳에 시선을 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상이 실제 역사에서 어떤 사회제도를 만들었는가>

이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의 윤리적 관계는 개인의 도덕수양에 그치지 않고 <위계적 사회관계>를 안정시키는 원리가 되었다고 본다.

즉,

<공자의 좋은 사람 만들기 → 좋은 가족 만들기 → 좋은 정치 만들기>

라는 긍정적 연결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도덕 → 복종 → 위계 → 정치적 안정>

이라는 또 하나의 연결을 본다.

이것이 선우학원의 첫 번째 <다른 시각>이다.


2. 공자 자신과 <국가 유교>를 연결해서 읽는다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오늘날의 유교 연구에서는 흔히

<공자 자신이 말한 것>

<한나라 이후 국가이념이 된 유교>

그리고

<송대 이후의 성리학>

을 비교적 엄격하게 구별한다. 실제로 공자의 사상은 후대에 여러 번 재해석·재구성되었으며, 한대 이후 유교경전이 국가와 관료제에 결합되면서 공자의 원래 가르침보다 훨씬 거대한 정치·사회체제가 만들어졌다. Columbia의 동아시아 교육자료 역시 공자 전통이 후대 국가 정통이념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우학원은 이 차이를 상대적으로 덜 강조한다.

그는 <공자 → 유교 → 중국의 관료제와 교육 → 중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전통>을 하나의 긴 역사적 연속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제목도 단순히

《Confucius》

가 아니라

《China of Confucius》,

즉 <공자가 만들어 놓은 중국>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여기에서 책의 힘과 약점이 동시에 생긴다.

중국 문명을 장기적인 구조로 바라보는 데는 강하지만, 2,500년에 걸쳐 계속 변화한 유교를 지나치게 하나의 체계처럼 취급할 위험도 있다.


3. 과거제도를 특히 중요하게 본다

선우학원의 분석 가운데 후대 연구에서 비교적 자주 인용되는 부분이 <교육과 과거제도>이다.

그는 중국의 과거제도가 출신신분만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에 비하면 상당한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열었다고 본다. 실제 후대의 인권 연구에서도 선우학원의 103~109쪽을 인용하면서 중국 제국의 관료 선발제도가 전통사회에서도 일정한 사회이동이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사용한다.

따라서 선우학원은 유교를 단순히 악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바꿀 수 있다>

는 것은 유교문명의 중요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과거제가 지식인을 국가에 편입시키는 장치였다고 본다.

공부의 목적이 자유로운 진리탐구가 아니라

<경전을 학습하여 시험을 통과하고 관료가 되는 것>

으로 수렴하면서 국가가 지식인의 사고범위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후대 중국 교육 연구는 선우학원의 113쪽을 인용하여, 시험문제가 고전에서 나오고 학교교육 역시 그 고전에 집중되면서 과거제가 지식인에 대한 국가통제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그의 주장을 소개한다.

따라서 과거제는 선우학원에게

<meritocracy, 능력주의>

이면서 동시에

<intellectual control, 지식인 통제>

이다.

이 이중적 평가는 상당히 흥미롭다.


4. 가장 독특하고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 <유교와 비과학성>

선우학원의 비판은 여기에서 상당히 강해진다.

J. D. Schmidt가 《Pacific Affairs》 서평에서 직접 인용한 대목을 보면, 선우학원은 중국 전통문화를 <신비적이고 비경험적인 지식인의 교설>에 기초한 것으로 규정하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 Schmidt는 이런 문장들을 제시하면서 선우학원의 주장에 상당한 의문을 표시한다.

이것은 20세기 초 중국의 5·4 신문화운동과 매우 닮아 있다.

당시 천두슈, 후스, 루쉰 등은 중국의 약화 원인을 전통 유교문화에서도 찾았고 <공자> 대신 <과학과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문화운동은 유교적 가족질서와 여성 억압, 고전교육을 근대화의 장애물로 공격했다.

선우학원은 상당 부분 이 계열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오늘날에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국은 종이, 인쇄, 나침반, 화약을 비롯해 상당한 기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Schmidt 역시 바로 이런 중국의 과학·기술 성취를 지적하면서 선우학원의 지나친 일반화를 비판한다.

따라서

<유교 때문에 중국에는 경험적 사고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다>

라고 단순화하면 역사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오히려 현대 연구에서 더 좋은 질문은

<왜 중국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으면서도 근대 서유럽과 같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연결되지 않았는가>

일 것이다.

선우학원의 문제제기는 의미 있지만 원인설명이 지나치게 문화결정론적이다.


5. 공자를 <권위주의자>로 읽는 것도 독특하다

선우학원은 공자의 정치사상을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상당히 비판적으로 본다.

후대의 인권 연구가 선우학원 23쪽을 인용하면서 <공자는 당시 기준으로도 권위주의적 측면이 있었던 반면 맹자는 정의와 민중에 대한 책임, 부당한 통치자에 대한 저항을 더 적극적으로 인정했다>는 대비를 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기서 선우학원의 중요한 구별이 드러난다.

<유교 = 모두 동일한 권위주의>

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공자보다 맹자에게서 오히려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 가능성을 더 발견한다.

이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시각이다.

공자의 기본적 정치모형에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주권, 선거, 권력분립, 법 앞의 정치적 평등>

이 없다.

통치자가 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강력한 윤리적 요구지만,

<덕 없는 통치자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교체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는 취약하다.

선우학원이 유교의 <덕치>보다 <제도적 권력통제>를 중시했다면, 이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정치학자로 살아온 그의 경험과도 관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저자의 생애와 책을 함께 놓고 볼 때 가능한 해석이지, 책에서 직접 입증되는 주장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6. 그렇다면 선우학원은 <반공자·반유교>인가?

완전히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그는 유교가 중국에서 교육을 확대하고 학문을 존중하게 했으며, 관료선발을 일정 정도 능력 중심으로 만들고,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윤리를 형성시켰다는 역사적 기능을 인정한다. 특히 과거제에 대한 그의 양면적 평가는 단순한 반유교론과 다르다. 후대 교육학 연구에서도 그의 저서는 중국 교육에서 학습과 국가봉사를 연결한 유교적 전통을 설명하는 자료로 계속 인용된다.

그러나 저울의 중심은 분명 비판 쪽에 있다.

그가 특히 문제 삼는 것은

<권위에 대한 복종, 위계질서, 경전 중심 교육, 지식인의 국가종속, 경험적·비판적 사고의 부족>

이다.

그래서 선우학원은 공자를 <개인의 도덕철학>만으로 읽지 않고

<공자의 사상이 수천 년 동안 사회적 권력으로 변환된 결과>

를 묻는다.

이 점이 책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7. 그런데 왜 전문 연구자의 평가는 좋지 않았는가

이 점도 중요하다.

《Pacific Affairs》에서 J. D. Schmidt가 1988년에 쓴 서평은 호의적이지 않다. 리뷰의 표현을 보면 그는 선우학원의 여러 단정적 주장들을 <놀랍다는 듯 의아하게> 읽어야 한다는 정도로 강하게 비판한다. 특히 중국의 지적·과학적 전통에 관한 지나친 일반화와 사실적 문제를 지적한다.

따라서 이 책을 오늘날

<공자 연구의 권위 있는 전문 연구서>

라고 추천하기는 어렵다.

선우학원은 중국 고대사나 고전문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중국사상사 학자라기보다는 정치학자·역사가였다. 그래서 《논어》의 개별 장구를 정밀하게 해석하거나 공자·맹자·순자·주희의 차이를 철학사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유교가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어떤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거시적 질문에 관심을 둔다.

바로 그래서 전문 중국철학자의 책보다 훨씬 대담하지만, 그만큼 거칠다.


8. 그래도 <다른 시각>으로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

나는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다.

<공자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공자를 숭배한 사회가 어떤 제도를 만들었는가>를 묻는 책이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시각 전환이다.

오늘날 공자를 소개하는 책을 읽으면 인(仁), 효, 배움, 자기수양, 조화, 인간관계의 윤리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선우학원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묻는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훌륭한 도덕철학을 가진 동아시아 사회에서 군주제, 남성중심 가족제도, 엄격한 연령·신분질서, 지식인의 권력 의존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는가?>

이 질문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선우학원의 답—

<그것이 상당 부분 유교 때문이었다>

—은 너무 단순하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공자의 원래 사상>

<한대 국가유교>

<송명 성리학>

<제국 관료제>

<가부장적 가족제도>

를 구별하여 각각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종합평가

《China of Confucius》는 <공자를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정밀한 공자철학 연구서>라기보다 <유교문명을 정치사회학적으로 공격적으로 재검토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선우학원의 다른 저작들과 비교하면 한 가지 일관성도 보인다.

그는 언제나

<공식적으로 아름답게 말해지는 이념 뒤에서 실제로 어떤 권력관계가 작동하는가>

를 물었다.

한국에서는 국가안보·경제성장·반공주의를 그런 방식으로 비판했고, 이 책에서는 중국의 <유교적 도덕질서>에 같은 질문을 적용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다른 시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겠다.

<공자를 위대한 도덕교사로만 보지 말고, 공자의 도덕이 국가·교육·가족·관료제라는 제도로 변했을 때 누구에게 권위를 주고 누구에게 복종을 요구했는가를 보자는 책이다.>

이 질문 자체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선우학원은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유교 = 중국의 정체·비과학성·권위주의>라는 설명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책은 <독창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상당한 보정이 필요한 책>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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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학원의 공자 비판은 공산중국과 공산북한의 비판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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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 <선우학원이 중국공산당이나 북한의 반유교론을 직접 받아서 《China of Confucius》를 썼다>고 단정할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 가지 흐름이 겹쳤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1. 중국 공산주의의 반공자·반유교론과 놀랄 만큼 닮은 부분이 있다

선우학원의 책은 1985년에 나왔습니다. 불과 10년 전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대규모 정치운동 가운데 하나인 <비림비공(批林批孔), 린뱌오와 공자를 비판하라> 운동이 1973~76년에 전개되었습니다. 이 운동에서 공자는 단순히 옛 철학자가 아니라 <노예제·봉건질서·여성억압·반동적 지배계급을 옹호한 사상가>로 공격받았습니다. 공자와 유교가 중국의 역사적 진보를 가로막았다는 식의 해석이 국가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선우학원의 비판에도 매우 비슷한 어휘 구조가 있습니다.

<유교 → 위계질서 → 복종 → 봉건적 사회관계 → 지식인의 국가종속 → 과학적·비판적 정신의 부족>

이라는 인과관계입니다.

따라서 <지적 분위기의 영향>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China of Confucius》에 대해 당시 《Pacific Affairs》의 J. D. Schmidt가 상당히 비판적인 서평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우학원이 중국 전통의 비경험적·비과학적 성격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중국의 실제 과학기술 전통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식의 <전통 유교가 근대화를 저해했다>는 설명은 마오주의 중국에서 매우 강했던 역사관과 상당히 친화적입니다.

2. 그러나 이것을 중국공산당에서 시작된 생각이라고 보면 더 큰 역사를 놓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보정이 필요합니다.

<공자가 중국의 근대화를 가로막았다>는 주장은 중국공산당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미 1910~20년대 <신문화운동·5·4운동> 지식인들이 훨씬 먼저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천두슈(陳獨秀), 후스(胡適) 등을 포함한 신문화운동 세력은 중국이 약해진 원인의 하나를 전통적 유교문화에서 찾았고, 민주주의와 과학을 발전시키려면 권위주의적인 가족윤리와 유교질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베이징대의 역사 설명도 신문화운동 지도자들이 중국의 정치적 약화에 전통적 유교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정리합니다.

따라서 계보는 오히려

<5·4 신문화운동의 반유교적 근대주의
→ 중국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 마오시대의 반유교론>

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리고 서구에서도 20세기 중반까지 <전통사회 대 근대사회>라는 근대화론이 강했습니다. 유교의 가족주의, 위계성, 시험제도와 경전교육을 현대적 개인주의·과학·민주주의의 반대편에 놓고 해석하는 연구가 적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선우학원은 꼭 <공산중국의 공자관을 베꼈다>기보다는, <20세기 동아시아의 반전통적 근대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공유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3. 그런데 선우학원의 정치적 이력을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영향 가능성은 더욱 커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상적 유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우학원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진보·좌파 한인 정치운동에 관여했고, 냉전 초기부터 북한 지도부와 접촉하려 했던 기록도 있습니다. 한 연구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를 인용한 데 따르면 1948년 선우학원과 이사민은 김일성·박헌영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후 프라하에서 공부했습니다.

1975년에는 실제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통일연구원의 북한 대미정책 연구에서도 1975년 북한을 방문한 재미 한인 지식인 가운데 선우학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 앞서 본 1989년 《Peace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에서는 마지막 장을 아예 <Juche Idea as the Base of Human Liberation>에 할애하고 주체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선우학원 자신에 대한 출판사 약력도 그가 오랫동안 해외동포와 북한 사이의 대화를 조직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China of Confucius》가 나온 1985년에는 선우학원이 북한 및 사회주의권의 사상적 언어를 전혀 모르는 외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 그의 공자 평가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4. 그러나 <북한의 공자 비판>의 직접 영향은 중국의 경우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여기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전통 유교를 <봉건적·낡은 사상>으로 비판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유교와 불교 등을 비과학적 구시대 사상으로 배척했습니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보면 선우학원의

<유교 = 봉건적 위계질서>

라는 비판과 잘 맞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실제 정치문화는 훨씬 역설적입니다.

많은 북한 연구자들은 주체체제가 오히려 유교적 요소를 상당히 흡수했다고 봅니다. 지도자를 아버지처럼 보는 가족국가, 수령에 대한 충성, 세대적 계승, 위계질서, 효와 충에 가까운 도덕적 의무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대 연구에서도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 + 민족주의 + 전통적 유교적 사고>의 혼합으로 설명합니다.

정영순의 연구는 아예 이를 <북한에서의 유교의 부활>이라고 표현하며 주체사상과 전통 유교 사이의 강한 연결을 분석합니다.

즉 북한은

<이론에서는 봉건유교를 비판하면서
실제 정치문화에서는 유교적 위계와 충성윤리를 재구성>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우학원이 북한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의 유교관 전체를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북한의 공식적인 반봉건·반유교 담론과 공명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5. 오히려 흥미로운 모순이 하나 생깁니다

선우학원은 공자를 비판하면서 특히

<권위주의>

<위계질서>

<복종>

<비판적 사고의 부족>

<지식인의 국가 종속>

을 문제 삼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대로 1980년대 북한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상당 부분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공자에게서는 군주가 <덕>을 가져야 하고, 맹자에게 가면 부덕한 군주를 몰아낼 정당성까지 나타납니다. 반면 북한에서는 수령에 대한 충성과 지도자의 무오류성이 정치체제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최근 북한 이데올로기 연구도 수령을 사회적 유기체의 <두뇌>로 놓고 당과 인민을 그 지시에 종속시키는 위계적 구조를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선우학원의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할 경우,

<공자보다 김일성의 수령체제를 훨씬 더 강하게 비판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 《Peace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에서 확인했듯이 그는 오히려 주체사상을 <인간해방>의 철학으로 높게 평가합니다.

여기에 선우학원 사상의 상당히 큰 <맹점>이 있다고 봅니다.


6. 이것 때문에 《China of Confucius》를 다시 보면 평가가 조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이 책을

<공자의 좋은 말만 보지 않고 유교가 실제 사회에서 권력과 위계질서를 어떻게 뒷받침했는지를 묻는 흥미로운 정치사회학적 비판>

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평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선우학원의 다른 저작까지 함께 읽고 나면 질문 하나를 더 해야 합니다.

<그는 정말 권위주의 자체를 비판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반대한 종류의 권위주의를 유교적이라고 비판한 것인가?>

이 차이는 큽니다.

공자와 남한의 권위주의, 일본 군국주의, 미국 제국주의에는 권력비판의 잣대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북한의 수령체제나 주체사상에는 같은 정도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공자에 관한 역사해석만이 아닙니다.

<비판의 기준이 일관되어 있었는가?>

라는 문제가 됩니다.


7. 그래서 저는 영향관계를 이렇게 평가하겠습니다

영향 가능성정도이유
5·4 신문화운동의 반유교적 근대주의<매우 높음>유교를 권위주의·가부장제·전근대성의 원인으로 보는 기본 틀이 유사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높음>봉건제·계급·사회구조 중심의 유교 평가와 선우학원의 정치적 경력
마오시대 중국의 반공자운동<상당히 가능>1973~76 비림비공 운동과 책의 1985년 출간시기가 가깝고 문제설정이 유사
북한의 공식 반유교 담론<가능하지만 직접 증거 부족>북한과의 오랜 접촉은 확인되지만 책의 특정 논지를 북한 자료에서 가져왔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음
서구 근대화론<상당히 높음>과학·민주주의·개인주의와 전통 유교를 대비하는 분석틀

제 판단

따라서 질문에 짧게 답하면,

<예,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중국 공산주의와 넓은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적 반유교 해석의 영향은 《China of Confucius》의 관점에서 상당히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북한이나 중국공산당의 직접적인 ‘수입’이라고 증명할 자료는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그 비판의 뿌리가 공산주의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1910~20년대 중국의 신문화운동 자체가 이미 <공자·가족주의·효·위계질서 때문에 민주주의와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매우 강한 반유교론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보기에는 <선우학원의 독특한 점>은 반유교론 자체가 아닙니다. 1985년이라는 시점에도 <5·4운동–마르크스주의–마오시대>를 거쳐 형성된 매우 강한 <유교=봉건성과 권위주의>라는 도식을 상당 부분 유지했다는 데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시점에 중국 내부에서는 문화대혁명식 반공자론에서 이미 벗어나 <유교의 재평가>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1985년의 선우학원은 역설적으로 <당시 중국의 새로운 흐름보다 마오시대의 공자 비판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셈입니다. 이것이 《China of Confucius》가 지금 읽으면 독특하면서도 시대적으로 낡아 보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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