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8일 화요일

선우학원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

 

《Peace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

Harold Hakwon Sunoo(선우학원), 1989 — 1,000단어 요약 평론

특히 <한반도 중립화론>을 중심으로

선우학원의 《Peace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는 일반적인 의미의 단일 저술이라기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그가 발표한 논문과 강연을 모은 정치평론집에 가깝다. 첨부된 자료의 목차를 보면 책은 <통일과 아시아 평화>, <경제발전과 통일>, <미국의 대한정책>, <통일운동의 전망>이라는 네 부분, 1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3장 <Neutralized Korea for Peace in Asia>, 제4장 <A Unified, Neutralized Korea>가 중립화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마지막 제13장이 <Juche Idea as the Base of Human Liberation>이라는 점도 이 책의 정치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실제 책의 출판자는 <Research Association for Juche Idea in the U.S.A.>와 <One Korea Movement in U.S.A.>였다.

1.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

선우학원의 출발점은 간단하다.

<한반도의 분단은 한국인 자신이 선택한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강대국 국제정치가 만들어낸 비정상적 상태이며, 이 상태를 유지하는 군사적 대결 자체가 전쟁의 위험을 계속 생산한다.>

그에게 평화와 통일은 별개의 목표가 아니다. 평화를 먼저 확보하고 언젠가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 자체를 해체해야 지속적인 평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책의 서론에서 그는 냉전의 양극체제가 군비경쟁과 군사동맹을 낳으며, 남북한 역시 서로를 침략적이고 믿을 수 없는 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적대감이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 관계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 대목은 지금 읽어도 주목할 만하다. 선우학원은 이미 1970~80년대에 통일문제를 단순히 <어느 체제가 승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안보 딜레마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그의 통일론: 흡수통일도 적화통일도 아니다

선우학원은 군사통일을 명확하게 거부한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도, 북한에 의한 무력통일도 모두 실제로는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본다. 군사충돌이 시작되면 미국·중국·소련 등 주변 강대국이 개입하기 때문에 오히려 분단이 영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북의 기존 정부를 모두 해산하고 곧바로 자유총선거를 실시하는 방법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사회주의 북한과 자본주의 남한 어느 쪽도 자기 체제를 자발적으로 폐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하는 것이 <연방 또는 연합적 접근>이다.

남과 북이 당장 하나의 정치·경제체제가 될 필요는 없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를, 남한은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교류하며, 이동·통신·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공동의 중앙기구를 만들어 점차 하나의 국가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당시 북한이 제시한 연방제 구상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연방적 통일국가의 대외적 성격으로 제시되는 것이 <중립화>이다.


3. 선우학원의 중립화론은 무엇인가

선우학원에게 중립화는 단순히

<미국 편도 중국·소련 편도 들지 않는다>

는 외교적 태도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중립화에는 적어도 다섯 요소가 들어 있다.

  1. 남북의 연방적·평화적 통일
  2. 외국군과 외국 군사기지의 철수
  3. 미국·소련·중국 등 어느 강대국의 군사블록에도 가입하지 않음
  4.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5. 남북 군비의 대폭 감축과 하나의 방어적 군대로의 재편

1980년 발표한 제4장에서 그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직접 모델로 거론하며 통일한국이 동서냉전에서 완전히 벗어난 중립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기대하는 효과는 네 가지이다.

첫째, 한반도가 미·소·중·일 경쟁의 전초기지가 되지 않으므로 동북아의 긴장이 감소한다.

둘째, 막대한 군사비를 복지·교육·문화·경제발전에 사용할 수 있다.

셋째, 식민지와 분단으로 파괴된 한국의 민족적 문화와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넷째, 한국이 제3세계와 비동맹 국가들 사이에서 독립적인 평화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중립화론에는 <평화주의 + 민족주의 + 반제국주의 + 비동맹주의>가 모두 들어 있다.

4. 중립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

나는 이 책에서 중립화론 자체는 상당히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문제를 선우학원은 정확히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러시아·일본 사이에 있고 태평양의 미국 세력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따라서 통일한국이 어느 한 강대국의 군사적 전초기지가 될 경우 다른 강대국은 그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통일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미군이 압록강 가까이까지 배치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이를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반대로 통일한국이 중국 또는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권으로 들어간다면 미국과 일본이 불안해질 것이다.

선우학원의 해법은

<통일한국을 어느 쪽도 이용할 수 없는 국가로 만들자>

는 것이다.

이것이 중립화의 지정학적 논리다.

그가 민주화와 중립화를 결합시킨 점도 중요하다. 남북 모두가 강대국의 후원에 의존하는 권위주의 국가로 남아 있으면서 진정한 자주통일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이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의 중립화론은 단순한 외교정책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기결정권 회복>이라는 정치철학이었다.


5. 그러나 <스위스·오스트리아 모델>에는 큰 문제가 있다

여기서부터 선우학원 이론의 약점이 드러난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성공한 중립국가로 제시하면서 중립화를 군비축소와 거의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스위스의 중립은 <비무장> 중립이 아니라 <무장중립(armed neutrality)>이다. 스위스 정부는 중립의 신뢰성을 위해 스스로 영토를 방어할 능력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명시한다.

오스트리아도 1955년 영세중립을 선언하면서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는 동시에 자신의 독립과 영토를 스스로 방어할 것을 전제로 했다.

따라서

<중립 = 군사력을 최대한 없애는 것>

은 아니다.

오히려

<중립 = 다른 나라의 군사동맹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에 더 가깝다.

바로 이 점에서 선우학원의 구상에는 큰 공백이 있다.

미군이 철수하고 중국과 러시아도 통일한국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통일한국의 안전을 누가 보장하는가?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 영세중립을 조약으로 보장할 것인가?

어느 한 나라가 약속을 깨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군은 어느 정도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가?

핵무기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검증하여 폐기하는가?

이런 <중립의 국제법적·군사적 보장장치>가 책에서는 충분히 발전되어 있지 않다.

그는 “강대국들이 우리를 내버려두라”고 요구하지만, 지정학에서는 선의만으로 중립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중립화론의 가장 큰 이론적 약점이다.


6. 더 심각한 문제: 중립화와 북한의 고려연방제가 지나치게 가까워진다

이 책을 평가할 때 반드시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선우학원 자신의 중립화론과 1980년 김일성이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yo)> 방안은 구조적으로 매우 가깝다.

선우학원은 김일성의 방안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소개한다.

그 방안에서는 남북의 기존 사회체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남북 동수의 대표와 해외동포 대표가 연방기구를 구성하며, 군사분계선을 철폐하고, 병력을 각각 10만~15만 명으로 감축한 뒤 통합군을 구성한다. 외국군과 외국기지를 철수시키고 핵무기를 생산·반입·사용하지 않으며, 군사조약을 폐기하고 비동맹 중립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선우학원이 이 구상의 현실성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기보다는 북한의 공식 설명을 상당 부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그는 고려연방제가 종교·언론·출판·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북한이 남한을 무력으로 공산화할 의도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명백한 질문이 빠져 있다.

<그러한 자유를 북한 내부에서는 실제로 보장하고 있었는가?>

<일당체제와 다당제 민주체제가 동수의 연방정부 안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한쪽에는 정권교체가 가능하고 다른 쪽에는 가능하지 않다면 ‘동등한 대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작은 결함이 아니다. 중립화된 연방국가가 성립하려면 외교적 중립보다 먼저 <내부 정치질서의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7. 책 전체의 정치적 편향

이 약점은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더 분명해진다.

선우학원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미국의 대한정책, 한미일 군사협력, 미국과 일본 자본의 한국경제 영향에는 극도로 비판적이다. 그는 남한의 경제성장 자체도 외국자본과 권위주의가 결합한 종속적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 비판 가운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있다. 특히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노동·인권 비용과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독재정부를 지원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당시 재미 지식인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적용되는 비판의 강도는 현저히 약하다.

그는 1984년 북한이 제안한 북·미·남 3자회담을 평가하면서 북한의 전쟁회피 의도가 <genuine>하다고 판단하고, 북한의 정책 변화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마지막 제13장에서는 주체사상을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는 <인간해방의 철학>으로 적극 평가하고,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이 글은 1988년 <International Seminar on Juche Idea>에서 발표된 것이다.

더구나 이 책 자체가 미국의 <주체사상연구회>에서 출판되었다.

따라서 이 책을 <남북한을 같은 거리에 두고 분석한 중립적 학술서>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선우학원의 <중립한국>은 국제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주장하지만, 그의 분석 자체는 상당히 북한 쪽 주장에 기울어져 있다.

이것은 역설적이다.


8. 그렇다면 선우학원의 중립화론은 버려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오히려 <중립화라는 발상>과 <그것을 선우학원이 1980년대에 구체화한 방식>을 구별해야 한다.

중립화의 핵심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통일한국이 생긴다면 미국·중국·러시아·일본 가운데 어느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 안보질서를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선우학원은 상당히 선구적으로

<통일 + 비핵화 + 비동맹 + 자주국방 + 주변국과 우호관계>

라는 하나의 패키지를 제시했다.

특히 한반도 통일을 단순한 민족주의적 소망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세력균형 문제>로 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 구상을 오늘 다시 만든다면 반드시 세 가지를 추가해야 한다.

첫째, 남북 모두에 적용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둘째,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 참여하는 국제적 중립보장 체제가 있어야 한다.

셋째, 중립한국은 무장해제된 약소국이 아니라 <외부의 침략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는 방어적 군사능력을 가진 비동맹국가>여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스위스의 <무장중립> 개념은 선우학원이 이해했던 것보다 더 중요한 모델이 된다.

종합평가

《Peace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편향된 책이다. 특히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주체사상을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며 북한체제 내부의 독재와 인권문제를 거의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약점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친북 서적>이라고 치워버리면 놓치는 것도 많다.

선우학원이 평생 고민한 근본 문제는 상당히 깊다.

<한국은 왜 언제나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만나는 장소가 되었는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정말 한국의 안보가 무한정 좋아지는가, 아니면 상대방의 군비증강을 촉진하는가?>

<한쪽의 승리로 통일하지 않고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면서 단계적으로 평화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통일한국은 중국도 미국도 두려워하지 않을 국제적 위치를 가질 수 있는가?>

그가 제시한 답이 바로 <중립화>였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부분은 주체사상론이나 1980년대 북한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바로 이 <중립화 문제제기>라고 본다.

다만 선우학원의 중립화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한다.

<한반도의 중립화란 한미동맹을 없애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일본 어느 국가도 한반도를 다른 강대국을 겨냥한 군사기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동북아 집단안보체제를 만드는 문제다.>

그렇게 이해하면 <중립화>는 친미냐 반미냐, 친북이냐 반북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작은 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자기결정권과 안전을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한국사의 질문이다.

그 점에서 선우학원의 1989년 저서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편향되어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오늘 다시 검토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제 하나를 남겼다. 그것이 바로 <통일한국의 중립화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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