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
선우학원 (지은이) 대흥기획1994
저자 및 역자소개
선우학원 (지은이)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1918. 2. 2)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7) 도쿄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와 캘리포니아주 패사디나학원 (1942), 워싱턴주립대학 원, 체코슬로바키아 국립대학원(1945)을 졸업하였으며, 캘리포니아 태평양 신학원(1951), 스탠포드 대학원 정치학부(1952)에서 연구했다.캘리포니아주립대학(버클리) 아시아과 전임강사(1943), 워싱턴주립대학 동양학과 전임 강사(1944~1949), 서울 연세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1960~1961), 서울대한공론사 주필 (1961), 미주리주 센트럴 메소디스트대학 교수(1963~1993), 동대학 사회학부 부장교수(1965~1969), 뉴욕시립대학 아시아학과 객원교수(1973~1975)를 역임했으며, 해외교포학자 조국통일 심포지엄 북미대표, ‘해외교포 기독자와 북의 기독자의 대화’ 북미대표 등 을 지냈다.지난 2015년 5월 13일 향년 97세로 영면하기 직전까지 미주리 센트럴 메소디스트 대학 명예교수, ‘해외교포 학자 조국통일 연구소’ 북미대표로 활동했다. 2003년 민주화운동기 념사업회의 민주유공자로 초청되어 3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 KOREA: A Political History in Modern Times(1970)
- Japanese Militarism(1975)
- Repressive State and Resisting church : The Politics of CIA in SouthKorea(1976) America’s Dilemma in Asia(1979)
- South Korean Economic Development(1989)
- La Corea du Sud : Economic dune dictature et. enjeux democratiques(1988)
- Peace and Unification of Korea(1989)
- 20thCentury KOREA(1995) 등 영문 출판 저작과
- 「주체사상과 기독교」(1994)
-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1994)
- 「한미관계 50년사」(1997)
- 「민족통일의 비전」(1997) 등
선우학원 박사의 회고록이자 미주 한인 이민사 연구서인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 미주이민 90년을 맞으며>(1994)에 대한 요약과 평론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 미주이민 90년을 맞으며> 요약 및 평론
1. 서론: 개인의 생애사로 복원한 미주 이민과 민족운동 90년
1994년 출간된 선우학원(Harold Hakwon Sunoo)의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는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 이민으로 시작된 미주 한인 이민 90주년을 기념하여 저술된 자서전적 역사서이다. 1918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3·1 운동의 여파로 부친을 여의고, 일본 유학을 거쳐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간 저자는 식민지 청년, 재미 한인 1세대 지식인, 그리고 분단 시대의 통일운동가로서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했다.
이 책은 개인의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가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의 실상, 해방 전후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과 갈등, 그리고 1970~80년대 군사독재에 맞선 해외 민주화·통일운동의 숨겨진 역사가 촘촘히 엮여 있다. 민족의 애환을 상징하는 민요 <아리랑>을 표제어로 삼아, 디아스포라 한인들이 타향에서 겪은 고난과 이를 극복하려는 저항 의지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2. 본서의 핵심 내용 요약
저서의 서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식민지기 유학과 도미, 미주 학계 진출과 배제의 극복, 해방 전후의 정치적 격랑, 그리고 유신체제 비판 및 통일운동이라는 네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식민지 조선에서의 성장과 초기 도미 경험이다. 저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38년 미국으로 향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반아시아계 인종차별법과 배척 분위기 속에서 접시닦이 등 온갖 육체노동을 견디며 학업을 이어간 고난의 이민 1세대 삶을 증언한다.
둘째, 학문적 투쟁과 제도적 진입이다. 저자는 UC 버클리와 워싱턴 주립대학교 등에서 수학하며 동양인 학자로서는 매우 드물게 미국 대학 강단에 섰고, 1943년 워싱턴 주립대에 한국학과(Korean Studies)를 설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는 백인 중심의 미국 아시아학계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정립하려 한 선구적 노력이었다.
셋째, 해방 전후 재미 한인사회의 이념적 갈등과 분열의 기록이다. 저자는 초기 동포사회의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한편, 이승만 지지 세력(동지회)과 안창호 계열(국민회) 간의 파벌 싸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주영한을 비롯한 이승만 정권 인사들과의 대화 및 갈등을 가감 없이 기록한다. 독립을 염원하면서도 정파적 이해관계로 분열되었던 초기 이민사회의 비극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넷째,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남북 평화운동이다. 김대중 납치사건, 코리아게이트(박동선 뇌물사건), 전 중정부장 김형욱과의 대화 등 미국 정계를 뒤흔든 사건들의 막전막후를 해외 한인 지식인의 시각에서 생생하게 복원한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의 감시와 협박 속에서도 미 의회와 교계를 상대로 한국의 인권 상황을 폭로하고, 방북을 통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고자 했던 실천적 궤적을 상세히 기술한다.
3. 비판적 평론: 의의와 한계
<의의: 주변부 디아스포라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비판적 현대사>
본서는 미국 이민사를 단순한 <기회의 땅에서 이룬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신화>로 미화하지 않고, 백인 우월주의적 차별 구조와 냉전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에 맞선 투쟁의 역사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텍스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정치인, 외교관, 종교인, 망명자들과의 1차 사료적 증언과 직접 대화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태평양 건너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조작되고 저항에 부딪혔는지를 밝혀주는 귀중한 사료다. 학자적 객관성과 운동가적 열정을 결합하여 미주 동포 사회를 한국 정치의 수동적 관망자가 아닌, 독재 타도와 평화 통일의 능동적 주체로 격상시켰다.
<한계: 주관적 서술과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의 경직성>
그러나 자서전적 구술사에 기반한 저작인 만큼 일정한 주관성과 시대적 편향이 존재한다.
첫째, 회고록 특유의 자기중심적 서술과 기억의 선택성이다. 자신이 관여한 단체나 교류했던 인물들의 역할은 입체적으로 부각된 반면, 노선이 달랐던 보수계 이민 단체나 타 정파의 활동에 대해서는 기득권 추종 내지 맹목적 추종자로 단순화하여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1980~90년대 방북과 북한 체제 접촉 과정에서 나타난 비판적 거리두기의 부족이다. 군사독재 정권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데에는 대단히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댄 반면, 북한 체제의 내재적 문제나 권력 세습,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서술 태도를 보임으로써 학문적 균형 감각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4. 결론
선우학원의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민족의 모순과 분단의 아픔을 자신의 운명으로 짊어졌던 한 지식인의 정직한 고백록이다. 이 책은 미주 한인 이민사가 단순한 거주지의 이동이 아니라, 외세의 패권정치와 분단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되찾고자 분투했던 치열한 여정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선우학원,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 — 미주이민 90년을 맞으며》
1994 — 1,000단어 요약·평론
선우학원의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는 1994년 대흥기획에서 출간된 390쪽 분량의 책이다. 후일 이 책을 연재한 재미동포 매체는 이를 <선우학원 자신의 자서전이자 코리안 이민사>라고 소개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개인 회고록도, 객관적인 미주한인 통사도 아니다. <1918년 평양에서 태어나 1938년 미국으로 간 한 지식인이 자기 삶을 통해 20세기 미주한인 정치사를 회고한 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1. 식민지 조선에서 미국으로
선우학원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평양 숭인상업을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공부한 뒤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파사데나 대학, 워싱턴대학 대학원, UC 버클리 등을 거쳐 1950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훗날 연세대, 《Korea Herald》, 미국 Central Methodist College 등에서 활동했다.
이 배경 때문에 그의 이민경험은 메리 백 리의 《Quiet Odyssey》와 크게 다르다. 메리 백 리는 다섯 살에 미국으로 왔지만, 선우학원은 스무 살까지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했다. 미국은 그에게 새로운 고향인 동시에 <식민지 조선에서 형성된 민족의식을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책의 연재본 가운데 제3부가 아예 <미국 유학 시절>이고, 대학생활 중에는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아침과 오후에 집안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던 경험도 회고된다. 당시 미국에 온 한국인 유학생에게 미국생활은 오늘날의 국제유학과 매우 달랐다. 경제적 어려움과 인종적 소수자의 위치, 작은 한인사회에 대한 의존이 동시에 있었다.
2. 개인의 이민사가 곧 독립운동사가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중심은 개인적 고생보다 <미주한인 정치사회>로 빠르게 옮겨간다.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는 안창호 계열, 이승만 계열, 민족혁명당 계열 등으로 갈려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한국인들은 일본의 식민지 국민이라는 법적 위치와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민족이라는 정치적 위치 사이에 놓였다. 선우학원은 이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책의 연재에는 <일본의 진주만 습격>, <전시 워싱턴 로비활동>, 이승만과 가까웠던 주영한 총영사와의 대담 등이 별도의 장으로 등장한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미주한인 독립운동 연구에서도 1차자료로 활용된다. 실제 국사편찬위원회의 미주한인사 연구와 여러 학술논문이 태평양전쟁기 재미한인의 생활이나 미주 민족혁명당 관계를 서술하면서 이 책의 특정 페이지를 인용하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역사적 가치다.
<선우학원은 역사가 끝난 뒤 그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그 정치적 인간관계 안에 실제로 들어가 있던 사람>이었다.
3. 미주한인사에서 잘 보이지 않는 <좌파·진보계>의 내부 증언
특히 중요한 것은 선우학원이 미주한인사에서 흔히 주변부로 처리되던 진보·좌파 계열 인물들을 자세히 기억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경선, 김강, 변준호 등 재미 한인 진보주의자들과 가까웠으며 해방 이후 이경선과 함께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도 자신의 회고에서 인정했다. 후대 연구에서는 이 편지가 미국 정보기관에 포착된 사실과 함께 선우학원의 증언을 인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 내 독립운동사를 흔히
<안창호–대한인국민회–이승만–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계보로만 보면,
해방 직전까지 상당수 재미 지식인이 사회주의·좌우합작·민족혁명당 등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선우학원의 회고록은 바로 그 <패배한 정치적 계보>를 내부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계보 때문에 그는 1950년대 미국의 비미활동조사위원회(HUAC)의 조사대상이 되었다. 후대 연구에서도 그의 자서전과 미 의회 청문회 자료를 함께 사용하여 이 시기 재미한인 진보그룹을 연구하고 있다.
4. 프라하 — 선우학원의 정치적 세계관이 형성된 결정적 시기
책 후반으로 가면 <워싱턴 대학원 시절>, <프라하 유학>이 이어진다. 프라하는 단순한 학위취득 장소가 아니었다. 1949~50년이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이미 동유럽은 사회주의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 청년이 냉전 초기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특이한 경험이었다.
여기에서 선우학원은 미국 자본주의만 보거나 북한·사회주의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세계를 모두 직접 접한 재미 한인 지식인이 된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공산주의 사회를 전적으로 이상화했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연재된 <송창근 목사와 이경선 목사의 이념충돌>에는 공산사회에도 계급과 착취가 있으며 사랑이 실천되지 않는다는 비판적 논쟁도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것이 어느 대화 참여자의 발언인지까지 포함하여 본문 전체를 대조하지 않고 선우학원 자신의 최종 판단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은 앞서 살펴본 그의 훗날의 친북적 성향을 평가할 때도 의미가 있다. 선우학원이 처음부터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했던 사람이라고 그리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다.
5. <조국을 찾아서> — 미국인이 되었지만 조국을 떠날 수 없었다
책의 중요한 후반부 제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국을 찾아서>이다. 미국에서 학문과 생활의 기반을 확보했음에도 그의 중심 관심은 끊임없이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는 한국에서 연세대와 《Korea Herald》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으로 돌아왔다. 1963년부터는 한인이 거의 없던 미주리의 소도시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연재본에서는 이 선택에 자녀교육 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회고한다.
또 한동안 식료품 사업까지 시작한다. <식료품 사업 개시>라는 장에서는 미국에 당분간 정착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뒤 조부와 상의하여 사업에 뛰어든 과정이 나온다.
이 부분이 나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선우학원을 정치적 통일운동가로만 보면 실제 이민자의 삶이 지워진다. 그 역시
<직장, 돈, 자녀교육, 사업, 미국 정착>
이라는 매우 평범한 이민자의 문제를 가지고 살았다.
다만 그의 경우 그 일상생활 위에 조국의 정치가 계속 겹쳐 있었다.
6. 1960~80년대: 이민자에서 <해외 정치운동가>로
후반부에 갈수록 책의 성격은 더욱 정치적이 된다.
<미국 내 중앙정보부의 활동>,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의 대화>, <세인트루이스 회의–연합조직 시도> 같은 장이 이어진다.
이때 선우학원의 관심은 초기 이민자의 생활사에서 박정희 정권, 한국 민주화, 미국의 대한정책, 남북통일 문제로 이동한다.
바로 이 점에서 부제 <미주이민 90년을 맞으며>를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미주 한인 90년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이민사>라기보다,
<미주 한인의 역사를 자신의 정치적 경험과 연결하여 해석한 회고록>이다.
그래서 미국 한인사회는 선우학원에게 단지 소수민족 공동체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해외기지였고, 해방 후에는 남한정부를 둘러싼 정치투쟁의 공간이며, 군사독재기에는 민주화운동의 해외기지이고, 이후에는 남북통일운동의 제3의 공간이 된다.
이것이 선우학원의 <디아스포라>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7. 제목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의 의미
제목은 이 책 전체를 잘 압축한다.
아리랑은 개인적 이별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고난의 노래가 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아리랑을 집단적인 <무리소리>인 동시에 개인의 아픔을 토해내는 <혼자소리>라고 설명한다.
선우학원의 경우 그 두 의미가 정확히 겹친다.
- 평양을 떠난 개인의 이산,
- 일제 식민지배,
- 해외 한인들의 독립운동,
- 해방,
- 좌우분열,
- 한국전쟁,
- 남북분단,
- 재미동포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모두 하나의 <슬픈 가락>으로 연결된다.
그의 후기 통일운동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정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분단은 추상적인 국제정치 문제가 아니라 <평양을 떠난 자신의 생애가 끝내 해결하지 못한 개인적 상실>이기도 했다.
8.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첫째, <희귀한 목격자의 기록>이다.
1938년부터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선우학원은 해방 전 미주한인 독립운동의 마지막 세대와 직접 접촉했다. 이승만계뿐 아니라 좌파와 중도·진보세력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회고는 후대 연구자들이 확인하기 어려운 인맥과 대화, 정치적 분위기를 보존한다. 실제로 최근까지 미주한인 독립운동·대한인국민회 연구에서 이 책이 참고문헌과 증언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둘째, <이민과 한국정치를 분리하지 않는다>.
보통 이민사는 미국에서 어떻게 먹고살고 성공했는가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선우학원에게 이민은 오히려 <조국 밖에서 조국정치에 참여하는 삶>이다.
셋째, 20세기 한인 디아스포라의 정치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재미한인이 처음부터 일관되게 친미·반공적이었다는 식의 단순한 서사를 깨뜨린다.
9. 그러나 가장 큰 약점도 바로 그 <당사자성>이다
선우학원은 관찰자가 아니라 참가자다.
따라서 정치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입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승만, 미국정부, 박정희 정권에는 매우 비판적인 반면 자신과 가까운 진보적 민족주의자나 훗날 북한의 통일정책에는 훨씬 관대한 평가를 하는 경향은 그의 다른 저작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내가 만났다>, <나는 들었다>, <당시 이런 논쟁이 있었다>
는 증언은 매우 중요하지만,
<누가 옳았다>, <미국의 의도는 이러했다>, <북한의 의도는 이러했다>
라는 판단은 다른 자료와 대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후대 연구자들이 선우학원의 회고록을 《신한민보》, 미국 정보기관 자료, 의회 청문록, 대한인국민회 자료 등과 교차검증하며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합평가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는 <미주이민 90년사>라는 부제 때문에 객관적인 재미한인 통사로 생각하면 약간 실망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정치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가치가 있다.
메리 백 리의 《Quiet Odyssey》가 초기 한인 여성의 <생존과 가족>을 보여준다면, 선우학원의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는 다음 세대 재미 지식인의 <정치와 조국>을 보여준다.
메리 백 리에게 미국에서의 중요한 질문은
<한국인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였다면,
선우학원에게는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인으로서 조국의 역사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선우학원을 단순히 <친북 통일운동가>라는 그의 후기 모습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 선택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이 책은 상당히 잘 설명한다.
<식민지 평양에서 성장하고 →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떠나고 → 독립운동 세대와 접촉하고 → 미주 한인사회의 좌우분열을 경험하고 → 냉전기 미국에서 좌파로 의심받고 →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평생 통일을 자신의 과제로 삼은 사람>이다. 그의 후기 북한관에는 분명 비판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 생각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선우학원의 주장에 동의하기 위해 읽는 책>보다는 <왜 20세기의 어떤 재미 한인 지식인이 선우학원과 같은 정치적 길을 걷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읽는 책>으로서 가장 가치가 크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Peace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Korea》나 《China of Confucius》보다도, 선우학원이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이 책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의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진보주의, 미국에 대한 양가적 태도, 북한에 대한 접근, 중립화 통일론>의 뿌리가 모두 이 자서전적 삶 속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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