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4, 2022

알라딘: 초당 강용흘 (지은이), 2002

알라딘: 초당
초당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0
강용흘 (지은이),장문평 (옮긴이)범우사200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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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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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강용흘 (지은이) 

재미교포, 소설가. 함경남도 홍원 출생.
3.1운동 후 18세 때 중국과 일본을 거쳐 도미(渡美)하여 보스턴 대학에서 의학을, 하버드 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했다. 이어 《대영백과사전》의 편집위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에 전념했다. 1931년에 한일합방과 3.1운동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인 첫 영문소설 〈초당〉을 발표하였다. 그후 로마 대학, 뮌헨 대학, 파리 대학 등에서 연구했으며, 뉴욕 대학 등에서 동양문화와 비교문학을 강의하였다.
작품 <초당>으로 ‘구겐하임 상’과 ‘북 오브 더 센추리 상’을 수상하였고, 장서 5000권을 고려대학교에 기증하였다.
작품으로는 소설 <행복한 숲>, <동양인 서양으로 가시다>, 희곡으로 <왕실에서의 살인>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동양 시집>,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이 있다.
74세로 미국 롱 아일랜드 주 헌팅턴에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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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초당>,<초당>,<초당> … 총 3종 (모두보기)

장문평 (옮긴이) 
1939년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현대문학>지 평론 추천 완료.
평론으로 <한용운의 ‘님’>, <현대시 형태론>,
역서로는 <분노의 포도>, <김의 전쟁>, <금옥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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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1931년 미국에서 발표된 직후 유럽의 10여개 국에서 번역되었다 출간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문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서얼문학으로 취급되어온 작품이다. 작자 강용흘 자신이 함경도에서 성장한 후 멀리 미국으로 떠나게 될 때까지의 성장과정과 주변환경이 자세히 서술된 이른바 자전적 소설이다. 소년 한청파(주인공, 작가 자신)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서양에서 새 학문을 배워와 조국의 개화에 공헌하겠다는 야심 때문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동양의 정신문화를 서양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된다. [초당]은 옛 선비정신을 비롯한 한국인의 얼, 한국의 역사, 한일합방의 경위, 개화기 자식인의 고뇌, 3.1운동의 경위 등 격변기 사회의 단면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미국의 여성작가 펄 벅이 "가장 빛나는 동양의 지혜"라고 평했을 만큼 [초당]은 미국 등 서양의 여러나라에서 유연한 동양의 정신적 산물로서 크게 관심을 끈 작품이기도 하다.

평점 분포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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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해, 이런 책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을 두 분이 어떤 책에서 언급을 했었다. 황병기와 청전 스님. 

책을 소개할 때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일단 구입을 했는데, 책이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뭐랄까, 겉표지부터가 80년대 이전을 떠올린다고나 할까. 저자도 낯설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청전 스님의 책에서 이 책이 다시 언급된 것을 보고(그러나 청전 스님의 글에서 소개된 부분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주로 정독을 하는 편인데...),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도 분명 인연이 있는 듯싶다.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우리 할아버지쯤 되는 분의 자전적 소설쯤 되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중국의 한시와 우리 나라의 옛시조, 영미 문학권의 시, 한용운의 시 등을 적절하게 요소요소에 인용한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표현들을 읽는 맛이 독특했다.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런 하인들 가운데 살구나무 열매를 팔지 않고서는 여러 자식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는 늙은 여자가 하나 있었다. 나의 조모는 그녀를 가엾게 여겨 우리 부엌에서 농산물을 조금씩 나눠줌으로써 그녀의 수고에 대해 후하게 보상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 늙은 여자는 파와 달콤한 참외와 오이를 얻게 되어, 살구를 내다 팔아 생기는 돈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저축하였다. 그 목적이란 여성의 권익과도 다소 관계 있고 에피쿠로스 철학사상과도 다소 관계가 있었다.(124쪽) 

.....한국의 음악은 적어도 키츠처럼, 이백처럼 충동적이고 진실한 감동을 표현한다. 

얼마나 대담한 표현인가. 독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현대의 작가들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칠고도 대담한 부분이라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귀여운 부분도 있었는데, 당나귀 얘기를 하면서 슬쩍 이솝우화를 끌여들여 글에 재미를 주려고 했는데 시대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그 시대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세대는 우리 부모님 세대도 아닌, 우리 조부모 세대인데, 북녘에 계셔서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나로서는 참 먹먹한 부분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세대에 해당되는 분의 책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놀랍다. 그리고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 녹아들어 있어 책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아, 그리고 이런 표현. 

 "삼밭에서 쑥이 곧게 자란다."

"소금이 물에서 생기듯 남자는 여자에게서 생겨나지만, 그가 여자를 가까이할 때에는 소금이 물에 녹아 없어지듯 다시 녹아버린다." 

할아버지에게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런 표현들을 볼 때마다, 한 번도 뵙지 못한 분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건 부재감이자 결핍이었다. 그리고 단절감이었다. 상실감이기도 했다. 이 책이 잊고 지냈던 이런 상념들을 떠올리게 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그리 변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부분이 있었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보는 관점이 너무나 비슷해서 놀랍다.

.....중국인은 손님이 왔을 때나 손님이 돌아간 뒤나 한결같다. 중국인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그 사람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손님에 대해서 매우 변덕스럽다. 매우 재빠르다! 낯선 사람에 대한 다정한 미소, 상냥한 인사, 속 보이는 사교, 이런 것들이 일본인들에게는 있고 중국인들에게는 없다.(253) ....일본인을 아는 데에는 몇 분이면 족하나, 중국인을 아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린다. 한국인은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대체고 그 중간 정도다.(255).....한국인을 정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일본인이라기에는 너무 크거나 탁월하고, 중국인라기에는 너무 세련된 자, 그런 자는 한국 출신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256) 

탁월하지 않은가? 또 하나 있다. 

.....내가 보기에 선교사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착실히 교육을 받은 진지한 유형이었다. 내가 이런 유형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런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유형은 거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은데, 서양에서는 아무런 일자리도 구할 수 없으니까 동양으로 건너와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요리사와 웨이터와 정원사까지 거느리고 살며 이교도를 얕잡아 보는 유형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노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은 서양이 그를 부적격자로 보고 내쫓은 것이었다.(320) 

마치 현재의 영어 원어민 강사 얘기같다. '착실히 교육을 받는 진지한 유형'이라...더러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썩 드물다.

요즘들어 한동안 소설을 멀리했는데 모처럼 재미있게 읽은 이 책. 기억해야 해, 이런 책은. 

**재미교포 작가의 계보라고 할까. 강용흘, 김은국, 이창래. 80년대 중반에 원서로 읽은 김은국의 <순교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리다가 책을 잃어버려 몹시 아쉽다. 몇년 전 뉴질랜드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창래의 책은 또 언제 읽을라나. 눈이 더 나빠지기전에 읽어야 할텐데. <초당>을 검색해보니 영어로 된 초판본을 10만원에 파는 곳이 있다. 책을 소장하는 것에 관심은 별로 없지만 살짝 마음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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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0-02-20 공감(1) 댓글(0)

     
초가지붕으로 대표되는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구매
  아득한 기억의 저편을 더듬어 보니 나에게도 초당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놀라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나는 교사였던 아버지 덕에 사택에 살았었다. 그 집이 초가지붕이었던 것으로 기억되어 있다. 70년대 초반의 풍경일 테니 틀린 기억일 수도 있다. 새마을 운동과 함께 시골집의 지붕부터 고쳤으니 학교 사택의 지붕을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은 노릇이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곳은 마당에 상추와 가지가 자라고 담장엔 호박 넝쿨이 올라갔다. 재래식 화장실로 가는 길에 닭장이 있었는데 얼마나 사납게 홰를 치던지 그 앞을 지나지 못해 어머니가 데려다 주던 생각이 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3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초가지붕을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러니까 강용흘의 <초당>이라는 제목은 가장 적절한 우리들 삶의 풍경을 나타내는 말이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신분 제도의 붕괴와 전통적 삶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일상적 시골의 풍경을 소설에서 만나는 것은 신선하고 새롭다. 그것은 우리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었고 어린 시절 겪었던 마지막 전 근대의 생활과 문화를 간직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그러나 아직은 생생하게 잡힐 것 같은 아련함이 배어 있는 시기가 바로 그 때가 아닌가 싶다.

  강용흘은 1898년에 태어나 1972년에 미국에서 사망했다. 그는 스무 살 무렵 3.1 운동 후에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간다. 광복 후에 귀국해서 4년 정도 체류했지만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생의 3분의 1만을 한국에서 보낸 그가 보여주는 한국은 우리의 과거이지만 낯설고 아름답다. 그것은 단순히 내부자의 시선으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는 차이가 많다. 미국에서 영어로 쓴 소설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는 느낌은 미국과의 거리만큼 낯설기도 하다. 우리말 문장이 주는 점착적인 느낌은 없다. 사색적이고 차분한 서술과 객관적인 듯한 시선은 오히려 우리들 삶을 객관화시켜 주고 있다.

  1931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외적인 면에서 이채롭다.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에서 영어로 발표되어 구겐하임상 등 2개의 상을 받았고 한국에 번역 소개된 작품이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와 상황과 맥락이 유사하다. 세계 속의 한국인의 문학은 이제 어렵지 않게 되었지만 그 주제와 대상이 한국에 대한 혹은 동양적인 것들을 형상화 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면 서울에서도 고궁이나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특별함을 준다.

  가끔 이 책, 저 책에서 제목만 듣던 책을 주변 사람의 권유로 읽게 되면 감회가 새롭다. 친숙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고 아득해졌고 현장감이 넘쳤고 내 것이 아닌 것들도 추억하게 되는 착각을 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 파란만장한 20세기 초반의 한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어냈던 저자의 체험은 우리에게 여전히 충분한 감동을 전달한다.

  마치 단편적인 기억들을 전해 주시던 어른들의 이야기를 쭉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구한말에서 개화기를 거쳐 일제 강점기, 3.1 운동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저자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생각과 태도를 갖고 세상을 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극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읽게 된다. 함경도 시골 마을에서 서울을 거쳐 일본에 유학하고 다시 서울에 돌아왔다가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가던 도중 체포되고 모진 고문을 받다가 풀려나고 또다시 3.1 운동 당시 고문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미국행 배에 오르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 라마를 연상시킨다.

  어린 시절 조모와 숙부들, 사촌들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1부는 백석의 시를 연상시킬 만한 우리 민족의 삶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실감나게 당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문학의 힘은 생동감과 구체적 형상화의 힘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통해 확인되지 않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은 순수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물론 어린 소년의 시각이지만 아련한 추억처럼 물컹거린다.

  우리가 살아왔던 전통의 모습이 무조건 아름답거나 애틋하다고 볼 수는 없다. 강용흘은 유명한 시인과 박사 숙부와 함께 살았던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자손이었다. 따라서 세상을 대하는 눈과 방법이 다르다. 인생의 목표는 일찌감치 박사가 되어 나라의 둘도 없는 일꾼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의 보편적인 희망과 목표였을 것이니 굳이 비난을 받을 수는 없겠으나 지독한 가난과 생존의 위협을 느낀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이었지 신분적 계급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저자의 눈을 통해 개화기 급작스런 생활의 변화와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부당한 고문과 핍박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더 이상 시골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던 저자는 보다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을 굳건한 의지와 결단 그리고 용기로 이루어낸다.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그래서 마치 꾸며낸 듯 파란만장하다.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오르기까지 스무 살 언저리의 청년이 겪기에는 험난하고 고통스런 과정이 펼쳐진다.

  이 소설은 한국문학에 대한 사전적 정의나 연구 대상과 무관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우리의 삶과 지나간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잊혀진 지난날의 추억이나 아련한 두근거림을 위한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할 만한 한 인간의 인생 역정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소설로 읽혔다. 그래서 일본에서 태어나 4살이 되어서야 한국에 돌아온 아버지의 삶을 추억하다가 <여행할 권리>에 등장하는 김연수의 아버지도 떠올렸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허망하고 쓸데없는 곳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 역사의 현장을 살아가고 있다.


08061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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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nizer 2008-06-1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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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어내는 아이의 기억 새창으로 보기
어른이 읽어내는 아이의 기억




기억은 제 모양을 잃었다

약한 살덩이와 함께

가쁜 숨을 내쉬는 기억은

기어이 제 모양을 잃고 말았다




제 모양을 잃은 기억이

지난날을 만든다.

하지만 더듬더듬

손끝에 닿아 나를 당기는 이는

지금의 나




지금의 나는

이미 내가 아닌 나

벌써 나일 수 없는 나

그렇다고 예전의 기억도 아닌 나




나는 어제와 겹쳐 오늘로 가고

내일과 겹쳐 어제로 가고,

오늘과 겹쳐 내일로 간다

그리고 오늘을 따라온 삶과 기억은

제멋대로 이지러진다




기억은 내 삶을,

삶은 내 기억을, 한 쉬도 놓아주지 않는다

나를 따라 기억이 몸부림치면

기억을 따라 나 또한 몸부림친다

하나로 엮어진 나와 기억은

하나로 엮인 듯하지만 영원히 낯설다




“기억은 내가 아니다.”




때때로

미아가 된 기억,

주인을 잃은 기억들이 나를 찾는다

오래된 기억이 나를 찾아와 나를 만든다

묻어둔 기억이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어른인 나를 잡아채어

내 행세를 한다.




기억은 나를 주인으로 삼지만

내가 버린 기억들

쓰레기통에 처박힌 기억들이 나를 지배하고

지배할 수도 지배당할 수도 없는 나는

한 치 버티고 서 있을 곳조차 없다




강용흘의 초당을 읽었다

그곳에는 강용흘이 있었다

하지만 그 책에는 강용흘이 없기도 했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었지만, 지워진 기억이 더 많았다

그 지워진 기억과 지워지지 않는 기억 사이

나는 강용흘의 앙상한 기억의 나무만을 볼 수 있었다.

강용흘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린

그의 삶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수많은 기억들

하나의 기억을 살려내기 위해

억지로 잘라낸 수많은 기억들




자신의 불완전한 기억을 보완하려는지

그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들을 불러온다.

하지만 남에 집에 자리를 내린 시들은 아름답긴 했지만

가슴 깊이 파고들 힘은 없었다

감동받지 못해 뭉글어지는

가슴 한 편이 텅 빈 느낌




인용된 기억은

인용된 시를 낳고

인용된 시는 과장된 감정을 낳고

과장된 감정에 갈피를 잃은 내 마음은

길을 잃었다




그는 조선인이었지만

그는 일본인이기도 했고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그는 미국인이기도 했고

그는 미국인이기도 했지만

그는 조선인이고 싶었고

하지만

그는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되살리기에는 너무도 작은 조선의 기억.




마음의 쉼터를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서 찾을 수 없었던 강용흘은

애써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너무 커버린 미국인 강용흘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조선은

지나치게 초라하거나 기대 이상으로 낭만적일 뿐이다.




어른의 숨결로 그리는 아이의 소설




내가 비극을 느꼈다면

그 또한 나라를 잃은 우리 모두의,

기억을 잃은 우리 모두의 설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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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neuf 2009-05-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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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오래된 기억을 들춰내다 새창으로 보기
 

"아, 한국! 한국! 불행한 한국이여! 어떡하면 좋단 말이냐?" 

우연찮게 눈을 돌렸는데 돈 만원이 떨어져있었다면, "재수! ^^" 하지 않을까. 그러면 기대없이 책 한 권 빼들었는데 마음을 확 빨아들인다면? 값비싼 보석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를까? --' 

쩝,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난 돈 만원이 더 땡긴다". 뭐 나라고 별 수 있을까만은, 만원의 행복은 잠시고 지혜로 얻은 행복은 죽을 때까지 간다는 거, 그래서 책 읽어라 등 이런저런 구차한 얘기들이 너풀대는 거 아이겠슴^^"  

미국 여류작가 펄벅이 이 책을 가리켜 "가장 빛나는 동양의 지혜"라 평했던 책이다. 초당, 강용흘. 미국에서 영어로 쓴 책이라 다시 번역을 해놓았다.  

강용흘, 20세기를 앞둔 1898년 태어나 스물세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가 10년 뒤 <Grass Roof>을 썼다. 번역해서 초당. 저자는 한국식 이름을 모두 풀어서 영어로 써놓았다. 만해 한용운은 'dragon-cloud' 뭐 이런 식이다. 다른 설명들도 비슷한데 가령, 사주를 '운명의 네 기둥'으로, 송전리는 '솔숲마을' 등으로 풀어놓았다.   

가끔 길을 가다보면 00대교라고 써놓고 밑에다 영어로 '00daegyo', 심지어 은하1교라면 unhailgyo로 써놓은 표지판을 보면서 저건 누구를 위한 영어일까 씁쓸해했던 게 바로 이 초당을 읽었던 탓이다. 이거이 책 소개와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외국인을 위해 동양의 시와 정신을 썼던 저자에게서, 표지판을 만드는 공무원들은 좀 읽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친다.

아무튼 100년 전 태어난 한 지식인에게서, 담담한 문체가 이끄는 시선을 따라 오래된 한국을 여행한다. 유학자들의 마을에서 태어난 저자와 가족 이야기를 통해 조선왕조 말엽, 전쟁의 소문이 흉흉한 한반도에 불어닥친 격변의 시대상을 담담한, 그래서 슬프고 아련한 마음을 가슴 한 켠에 조금씩 쌓으면서 책을 읽어가게 된다.  

정의가 힘이 아닌 힘이 정의가 되어버린 힘없는 한국과 공부로 한국 근대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마르고 갈한 영혼의 한 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모든 게 구불구불하다. 하지만 그는 뜻을 세웠고, 뜻을 이룬 사람이 된다.  

한국.  

그러나, 중요한 건데, 책을 읽으면 위 몇 줄로 설명한 것처럼 진지하지만은 않다. 으레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책은 절절하고 두 눈에 불을 켜 놓은 듯 비장감을 가지겠지만, 구겐하임상, 북 오브 더 센추리상, 카민스키상, 와이즈 메모리얼상 등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고 박현준(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씨가 어느 글에서 밝혀놓았다. 수상자료는 찾을 수 있지만 퓰리처상 후보는 검색해도 없어서 출처를 밝힌다.  

문체와 이야기가 깔끔하고 수준 낮으면 얻을 수 없는 수상이력이다.

암튼, 한국, 혹은 최초의 아시아계 작가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강용흘, 그의 생애가 바라봐야 했던 한국은 몰락과 강제 점령, 식민지의 비애와 동족 전쟁, 그리고 독재와 같은 반복되는 슬픈 역사만을 바라보다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에 써놓은 한탄(맨 위에 붉은색 글귀)에 가슴이 찡해진다.  

오늘날 우리는, 3.1 운동에 참여해서 옥고를 치르고, 미국에서 한국 독재를 비판하며, 잘못을 꾸짖었던 강용흘 씨와 같은 사람들이 토해냈던 현실 참여로 성장한 한국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사회 일각이 아니라 만각에서, "아, 한국이여"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한국을 사랑하는가? 이국 땅에서 한국을 그렇게 그리워하던 한 사람을, 그가 그렸던 한국을 읽어보자.  

  

"초당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를 꿈에나 보렸더니 

 문전의 수성어적이 잠든 나를 깨우다"

                                    -유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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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2009-05-1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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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몰랐던 우리책 새창으로 보기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시리즈는 깔끔한 책 디자인과 수준높은 선작으로 믿음이 가는 책들이다. 쭉 훑어보는데 대부분은 익히 읽어나 들어 알고 있던 책들인데 생소한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초당'. 이상한 것은 지은이의 이름이 한국 이름인 것 같은데도 번역자의 이름도 나와있단 것이었다. 중국 작가인가 생각하며 집어들었는데 그 책은 역시 한국 사람의 책이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로 '초당'은 'Grass Roof'라는 제목을 달고 영어로 쓰여진 책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출간 되기 전에도 이미 10여개 국가에서 번역.출판 되었다고 한다. 또 서양인들에게 동양,한국의 진면목을 아름답게 보여주어 여러 상도 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동안 한국문학으로 제대로 취급받지 못했던 듯 싶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한국에서의 어린시절과 일본유학을 거쳐 미국으로 가기까지의 내용을 남고 있는데, 중간중간 한용운의 시나 우리나라의 시조들이 등장한다. 책이 꽤 두꺼운 편인데도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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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1-05-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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