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엘리 그란(Eli Gran)의 해외입양 증언.. | Facebook

(3) I'm Adopted - I was born somewhere near Seoul in South Korea,... |

I'm Adop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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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born somewhere near Seoul in South Korea, sometime around January in 1968. I was assumed to be a child of mixed race with no records of birthplace, birth date or birth parents. After two stints in an orphanage and foster home, I was escorted across the world to Norway. I was apparently one of the lucky ones.
I arrived on the 5th of August 1969 and was brought home to my adoptive family out in the countryside, a few miles outside Oslo. There were two older siblings. My adoptive parents had a biological daughter, five years old, and a two-year-old Norwegian adopted son.
The family dynamic soon turned toxic and harmful. My brother and I were never treated as equal to our sister, but it was essential to show that this blended family looked perfect and harmonious from the outside.
I learned much later in life that my adoptive mother suffered from a mental illness, but that was never addressed until she passed. She had mood swings from one minute to the next. I learned to tiptoe around the house, never knowing what would trigger her anger.
On one occasion, she and my adoptive father had a loud argument about us two adopted children, who turned out to be nothing like what she expected, and she plainly shouted that she regretted having adopted us. Especially me. My father was extremely conflict-shy and never defended or spoke up for us.
I had required a lot of medical care in my childhood due to Post-Polio Syndrome, from suffering polio as an infant. I spent several weeks and months in hospital right after arriving in Norway, and for that, I apparently showed too little gratitude.
Throughout my teenage years, I started to struggle to adjust and settle in my environment. I didn’t connect my adoption to what happened in my brain. I thought it all came from feeling so out of place at home. I always had this feeling that everybody else had a home. I was put in a house to satisfy the need for a family of my adoptive parents.
Fast forward to the present time. Both of my adoptive parents are now dead. I have no relations with my siblings, nor any other relatives. I have felt misplaced for many years, in the sense that I don’t belong, and I don’t know where that would be.
I have moved, on average, every other year for most of my life. I have been in unhealthy relationships without knowing that I never learned how to love, and most importantly, how to receive love.
After years in therapy without really addressing what lay behind all my troubles, escaping, anxiety, trust, etc., I have now been in intensive trauma therapy for three years. I still struggle with relationships and belonging.
I have a grief inside me I cannot shake or even explain. For the outside world, no one understands a grief that occurred almost 60 years ago, and the wound of the loss of my birth parents seems to keep being ripped open every time I talk about my past.
I have finally been diagnosed with Complex PTSD. That means I have a sort of confirmation that I wasn’t a difficult child, a demanding child or ungrateful. I have grieved all my life, and no one noticed.
Today, I work on getting back to the feelings I wasn’t allowed to express as a child, to allow myself to praise what I achieve instead of feeling shame.
I wrote my story 6 years ago to tell about the scars adult adoptees live with, all these years later. I am a high-functioning trauma survivor, and I am starting to put the responsibility where it belongs.

- Eli Gran (adopted from Seoul, South Korea, now living in Norway)


공유해주신 노르웨이 입양인 엘리 그란(Eli Gran)의 수기는 해외입양이 개인에게 남기는 깊은 트라우마와 소외감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글입니다. 요청하신 대로 이 글에 대한 요약과 구조적 분석을 담은 비평을 작성했습니다.

<요약>

1968년 1월경 서울 근교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필자는 혼혈아로 분류되었으며 출생지, 생일, 친부모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고아원과 위탁가정을 거쳐 1969년 8월, 만 1세 무렵 노르웨이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입양 가정의 겉모습은 화목해 보였으나 내부는 유독하고 차별적이었다. 입양모는 친딸과 달리 입양된 두 아이(노르웨이계 입양아와 필자)를 차별했고, 심각한 감정 기복과 분노를 표출했다. 양모는 두 아이를 입양한 것을 후회한다고 공공연히 폭언을 퍼부었으며, 특히 필자를 지목해 원망했다. 갈등을 극도로 회피하던 양부는 이를 방관했다. 영아기 소아마비로 인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던 필자는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감사할 줄 모른다>는 비난까지 감당해야 했다.

가정 안에서 필자는 진정한 안식처가 아닌, 부모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배치되었다는 깊은 단절감을 겪었다. 성인이 된 후 양부모는 사망했고 형제자매나 친척들과의 관계도 완전히 단절되었다. 평생 2년마다 거주지를 옮기며 방황했고, 불안정한 인간관계를 전전했다. 오랜 방황과 상담 끝에 집중 외상 치료를 받으며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TSD) 진단을 받았다. 이 진단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까다롭거나 배은망덕한 아이>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깊은 상실을 겪어온 피해자였음을 깨닫고, 억압되었던 감정을 마주하며 치유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비평: 구원이라는 환상이 가린 구조적 유기와 실존적 방황>

엘리 그란의 고백은 20세기 중후반 국제입양 체제가 내세운 <인도주의적 구원>이라는 서사가 개인의 내면에서 어떻게 파괴적인 상흔으로 변질되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1. <시혜>와 <부채 의식>의 폭력성 서구 사회로의 국제입양은 오랫동안 빈곤국과 혼혈 아동을 구출해 풍요로운 복지국가로 보낸다는 식민주의적 구원 담론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 담론은 입양 아동에게 즉각적인 <도덕적 빚>을 부과한다. 영아기 소아마비 치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충분히 감사해하지 않는다>는 질책을 들어야 했던 필자의 경험은 시혜적 입양이 지닌 위선을 폭로한다. 취약한 아동을 보호하는 것은 양육자의 기본 의무임에도, 입양아라는 위치는 그 기본적 보살핌조차 무조건적인 복종과 감사로 갚아야 할 채무로 둔갑시켰다.

  2. 전시용 완벽주의와 가정 내 구조적 소외 양모의 정신질환과 차별, 양부의 무책임한 방관은 필자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겉으로는 다문화적 화합을 이룬 완벽한 가정을 연기하면서 내부에서는 입양아를 감정적 쓰레기통으로 소비하는 이중성은 심각한 정서적 학대다. 필자가 지적했듯, 아이는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환대받은 것이 아니라 부모의 심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입양되었다. 이는 소속감의 원초적 붕괴를 낳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2년마다 이주를 반복하는 물리적·심리적 유랑벽으로 이어졌다.

  3. 보이지 않는 상실과 복합 PTSD의 의미 필자가 겪은 고통의 핵심은 <이름 붙여지지 않은 슬픔>에 있다. 친부모와 뿌리의 상실, 문화적 단절, 가정 내 학대는 단일한 외상이 아니라 유년기 전체에 걸쳐 축적된 만성적 억압이었다. 세상은 겉보기에 잘 기능하는 성인으로 자란 입양아에게 더 이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간주하지만, 내면에서는 소속의 결핍과 관계 맺기의 불능이라는 거대한 공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뒤늦게 내려진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TSD) 진단은 단순한 의학적 판정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이 개인의 인성 결함이 아닌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에서 기인했음을 공인받는 해방의 언어다.

  4. 탈국가적 실존의 문제 혈통적 기록이 전무한 채 노르웨이라는 이질적인 토양에 던져진 필자의 삶은 특정 국가나 민족의 틀로는 결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 출생국인 한국은 아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기록조차 없이 떠나보냈으며, 입양국인 노르웨이는 외모와 뿌리가 다른 아이를 완전히 품어내지 못했다. 결국 필자가 직면한 질문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온전히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 채 인간으로서 어떻게 존엄과 자기 치유를 회복할 것인가>라는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고뇌다.

국제입양 체제가 낳은 이 같은 실존적 단절과 트라우마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시는지 세진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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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그란(Eli Gran)의 해외입양 증언에 대한 평론

엘리 그란의 증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입양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입양된 뒤에도 평생 가족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의 이야기는 해외입양을 둘러싼 통상적인 인도주의적 서사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가 부유한 나라의 가정에 입양되면 더 나은 삶을 얻게 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경제적 안정과 가족에 대한 소속감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1. 입양이라는 구원 이야기의 이면

엘리는 1968년경 한국에서 태어나 1969년 노르웨이로 입양되었다. 양부모에게는 친딸이 있었고, 입양된 아이들은 친딸과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양어머니가 자신을 입양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 사건이다.

한 아이에게 이것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모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입양의 목적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에게 가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는 오히려 자신이 양부모의 가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입양되었다고 느꼈다.

이것은 입양제도의 근본적인 역설이다. 아동의 필요보다 성인의 필요가 앞설 때, 아동복지라는 명분이 오히려 아이의 고통을 가리는 장치가 될 수 있다.

2. 감사해야 한다는 도덕적 압력

엘리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기간 의료적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충분히 감사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특별히 중요하다.

해외입양에는 때때로 일종의 도덕적 위계가 형성된다. 입양부모는 아이를 구해 준 사람이고, 입양아는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사람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아이가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이나 학대를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불만을 표현하면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고, 친생부모를 그리워하면 양부모의 사랑을 거부하는 아이처럼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양은 아이가 평생 갚아야 할 은혜가 아니다. 양육과 보호는 부모가 맡은 책임이다.

3. 소속감의 상실은 단순한 향수와 다르다

엘리는 모든 사람에게 집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에게만 집이 없다고 느꼈다고 회고한다.

여기서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자신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보호받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는 한국에서 친생가족과 분리되었고, 노르웨이에서는 양가족 안에서도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 경험은 흔히 말하는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그가 잃은 것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낳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었다.

따라서 한국문화를 배우거나 한국을 방문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상처가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4. 개인적 불행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엘리의 증언은 한 개인의 경험이므로 모든 한국계 해외입양인의 삶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를 단순히 불행한 양부모를 만난 사례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여기에는 한국과 노르웨이 양쪽 사회에 대한 질문이 존재한다.

한국은 왜 어린아이들을 친생가족과 분리해 해외로 보내야 했는가? 입양을 결정하기 전에 친생가족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은 충분히 검토되었는가?

노르웨이는 입양부모의 양육 능력과 입양된 아이들의 복지를 충분히 확인했는가? 입양 이후 정서적 학대나 차별을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는 장치는 있었는가?

엘리 개인의 사례에서 이러한 제도적 실패가 실제로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추가 자료가 있어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던지는 질문은 정당하다.

해외입양의 성공 여부를 입양 건수나 경제적 생활수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5. 가장 중요한 문제: 인정받지 못한 슬픔

엘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I have grieved all my life, and no one noticed."

"나는 평생 슬퍼했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 문장은 그의 증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입양아가 친생부모를 잃은 슬픔은 종종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는 이유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

그의 슬픔은 단순히 친생부모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버려졌거나 분리되었는지,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는 고통이다.

그는 뒤늦게 복합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진단받으면서 자신의 문제가 감사할 줄 모르거나 까다로운 성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개인에게 중요한 전환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자신이 경험한 부당함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6. 종합 평가: 한국 사회가 들어야 할 목소리

나는 엘리 그란의 증언이 한국의 해외입양 역사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동안 한국의 해외입양은 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되었다.

하나는 전쟁과 빈곤 속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구한 인도주의적 사업이라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양육의 책임을 해외로 이전하고, 아동의 가족관계와 정체성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적 관점이다.

엘리의 증언은 후자의 관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관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입양이 실제로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당사자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는 자신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오랫동안 심리치료를 받아 왔으며, 이제 자신의 감정을 되찾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한다.

그러한 노력 자체가 이 증언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엘리의 모든 고통을 한국의 해외입양제도 하나로 환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의 삶에는 출생 기록의 부재, 친생가족과의 분리, 양부모의 정서적 학대, 의료적 어려움, 성인기의 관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가운데 무엇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증언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은 하나이다.

해외입양의 역사를 쓰려면 정부와 입양기관의 기록만이 아니라 엘리 그란과 같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들이 경험한 고통이 모든 해외입양인의 경험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증언 없이 해외입양의 역사를 성공적인 인도주의 사업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엘리의 이야기는 해외입양의 찬반을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이 엘리 그란의 증언이 갖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윤리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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