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7, 2021

브라질ㆍ아르헨티나 코리안문학을 만나다 - 재외동포신문

브라질ㆍ아르헨티나 코리안문학을 만나다 - 재외동포신문


브라질ㆍ아르헨티나 코리안문학을 만나다

편집국
승인 2013.08.07 14:39

<신간>『브라질 코리안문학 선집』과 『아르헨티나 코리안문학 선집』 동시출간

최근 코리언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학문적 담론이 활발하다. 디아스포라 주체는 냉전시대의 희생자였던 구 소련권(CIS)의 ‘고려인’을 비롯해서 중국의 ‘조선족’, 일본의 재일코리언,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중남미 지역의 코리언들까지 망라한다. 이들 담론에서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의 공식적인 이민정책에 의해 조국을 떠나야 했던 코리언들의 간고했던 이주역사와 문화적 현상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된다. 특히 디아스포라 특유의 경계선상에서 구축되는 중층적 아이덴티티의 실체를 기록문화를 통해 확인하고 글로벌시대의 혼종성(Hibridity)과 결부된 글로컬리즘(Glocalism)을 천착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 책은 그동안 한국의 독자들이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재일코리언 문학, 중국의 조선족 문학, 러시아의 고려인 문학, 미국과 캐나다의 한인 문학과는 다르게 남미대륙 특유의 혼종지점을 서사화한 작품의 소개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특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코리언 문학 선집에 수록된 문학 작품의 행간에 묻어나는 이민자의 숨결이 라틴조로 읽혀지고, 그 문학적 향연이 광포한 이과수 폭포와 아마존의 눈물로 승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필자는 이번 『브라질(Brazil) 코리언 문학 선집』과 『아르헨티나(Agentina) 코리언 문학 선집』에 가능하면 더 많은 작품을 담고자 노력했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또 지면의 제약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창작된 작품 전체를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한국문단과 국문학계, 일반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되고, 글로벌시대의 ‘혼종․혼종문화’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최근 남미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한국사회의 변화(다민족․다문화 사회로 이동)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남미 지역의 ‘코리안 문학 선집’ 발간은 2013년이 브라질 한국인이민 50주년을 맞이하는 해, 브라질에서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한국·브라질의 교류확대가 예상되는 점, 해외에 거주하는 코리언들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도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 한국문학사에서 전혀 거론하지 못했던 남미의 코리안 문학에 대한 첫 소개라는 점, 글로벌시대의 ‘탈’세계관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남미의 코리언 문학을 처음 소개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에 발간되는 『브라질(Brazil) 코리언 문학 선집』(시 74편, 소설 22편, 수필 62편, 평론 19편, 동화 1편, 꽁트 12편)과 『아르헨티나(Agentina) 코리언 문학 선집』(시 128편, 소설 30편, 수필 14편)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혼종성과 글로컬리즘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서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혼종문화 속에서 코리언 이민사회의 자긍심과 민족정신, 귀향의식과 향수를 관조적인 문체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종하의 「남미로 오는 기상에서(渡南美機上韻)」이라는 한시에서는 조국․고향을 떠나는 이민자의 심경을 곡진하게 그리고 있다.

銀翼高飛碧落間 비행기에 몸을 실어 하늘을 나니
雲遮下界逈人寰 구름이 가로 막혀 지구마저 이별인가.
百年恨結先塋瓏 두고 온 조상 산소 한이 맺히고
萬里心馳旧友顔 눈물짓던 임의 얼굴 역력히 떠오른다.
國外斯行非本意 국외로 가는 길이 내 뜻 아닌데
天涯何處是鄕閑 하늘가 어느 곳이 내 고향인가.
只析早得歸還日 빌고 바라노니 기적이 일어
復作江南翰墨班 서울의 시친구와 다시 함께 하기를. (『열대문화』 제5호, 1988)

<둘째> 이민사회 특유의 혼종문화를 통해 초국가적인 열린 세계관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브라질의 권오식은 「마이스 오우 메노스(MAIS OU MENOS)」에서 동질성을 내포한 알카리성 음식인 김치와 라란자를 비유하는 형태로, 그리고 『葡韓辭典』(1975)의 서문에서는 “브라질은 포르투갈인에 의해 발견되고 개척되었으므로 그 언어는 근본적으로 葡語(포어)이지만 널리 분포된 원주민 언어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언어, 근세 유럽 각국 이민들의 언어 등의 영향을 받아 혼성어, 파생어, 전래어, 신어 등이 많이 혼합된 언어”라는 형태로 열린 세계관을 주문한다. 코리언 이민사회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황운헌은 자신의 평론 「편력과 회귀」에서 그러한 열린 세계관의 중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탈중심화라는 것은 이른바 서울의 중심에서 벗어나, 한국 바깥인 주연의 영역으로 이행(移行)해 버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어떤 제도화된 중심적인 주제에서 풀려나, 주연이 갖는 반문화적인 야성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를 재활성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가령 우리의 문화를 중심과 주연, 표층의 현실과 심층의 그것, 일상성과 축제성(祝祭性) 일의적인 것과 다원적인 것, 이상과 광기, 이와 같이 빛과 그림자라는 양의성(兩義性)으로 구성되었다고 본다면, 이민 온 작가나 시인들은 이미 표층의 의식의 정합성(整合性)을 지닌 중심을 떠나서, 주연의 영역이 갖는 심층의 의식에의 유랑(流浪)이라는 편력의 길에 들어선 셈이 된다. 바로 탈중심화다.
우리는 「인간은 단일한 현상속에 살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자들」, 「다의적인 것을 배제하고 일의적인 사상(事象)을 쫓는 자들」, 「하나의 존재양식 속에 인간의 모든 것이 숨어 있다고 믿는 자들」과 대치하면서 표층의 일원적 현실에서 심층의 다원적 현실 속으로, 일상성에서 축제성으로, 보이는 것에서 안보이는 것으로, 이성이 지배하는 연속(連續)의 세계에서 광기의 혼돈이 심연을 이루고 있는 비연속의 세계로, 하나의 존재양식에서 수많은 존재양식 속으로, 그러니까 중심의 영역에서 주연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월경(越境)해야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성적인 질서를 교란하는 것들, 신화적인 광대의 세계, 모든 모순을 내포하고 예측불가능의 혼돈을 행위하는 비이성(非理性)의 상징 등등, 중심의 동질적인 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화(異化)된 갖가지 활성적인 요소를 만나게 된다.(황운헌, 「편력과 회귀」에서)

<셋째> 남미에 형성된 코리안 이민사회와 일본계 이민사회의 문화교류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브라질의 코리언 이민사회와 일본인 이민사회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1962년 문화사절단(15명)으로 브라질에 정착해서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고광순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한국말 말고 일본말 밖에 없어 일본인들이 모여살고 있는 밀집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촌이 일본인 밀집지역 리베르다지와 붙어 있다.”라고 하면서, 한국인이 처음 마련한 ‘아리랑 농장’도 일본인이 경영하던 농장이었다고 술회했다.

반공포로의 신분으로 남미로 이주한 김창언은 “리오데자네이로 공항에 우리들 50명을 마중나온 세 사람의 동포가 있었다. 불안과 기대와 놀라움에 싸여 있던 우리들을 얼싸안아 준 세 사람의 동포. 그것도 브라질땅에서 말이다. 아오끼로 불리던 김수조 씨와 미다 할아버지 장승호 씨, 택시 운전사 이중창 씨였다. 귀화한 일본인으로 이민선을 탔던 분들, 우리말을 잊어서 우리와는 비록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어야 했지만 지금도 그 감격과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우리를 한국 이민과 연결시켜 주신 분들”(『브라질 한인이민 50년사』)이라고 했다. 같은 동양인들 간의 교류소통이 빈번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1965년 일본계 브라질인의 일본어잡지 『농업과 협동(農業と協同)』에 게재된 박선관의 글 「자매 만들기 운동(姉妹つくり運動)」와 「일본인 르네 다구치 시인과 한국인 황운헌 시인의 교류전」은 동양인 이민사회의 상호교류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예일 것이다.(남미에서의 일본인들의 이민은 1963년에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은 1963년에 시작되었다. 일본인 이민사회가 한국인 이민사회보다 60년 빨리 형성)

<넷째> 이민사회에서 겪게 되는 현지인/현지사회와의 문화적 충돌, 이문화와의 소통을 통한 공생과 융화정신의 피력이다. 아르헨티나의 맹하린 소설은 현지인/현지사회와 이민자/이민사회 간의 갈등문제를 심도있게 천착한다. 예컨대 어렵게 마련한 집을 현지인들에게 무단점령 당했을 때에는 이민생활을 등지고 싶을 만큼 참담한 심경이다. 뒤틀리는 경계/혼종지점에서의 문화적 충돌현상은 극한적인 양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마치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부엌 개수대의 물 흐름이 정반대인 것과 같았다. 이문화와의 갈등이 격화되면 될수록 귀향의식 역시 고조되긴 하지만, 결국 이민자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더니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으니 아르헨티나의 법을 따르는 수밖에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보인다.”(「환우기」) 그리고 이민자는 일상으로 돌아와 재차 다짐하듯 “융화, 공생공존, 제2의 가족”(「제2의 가족」)을 내세우며 내적인 평정을 찾으려 한다.

<다섯째> 이민사회에 팽배했던 역·재이민의 문제와 자녀교육 문제가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같은 미주권 이민이지만 아르헨티나를 택한 이민자들은 미국과 캐나다로 들어간 이민자들과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북미행을 택한 “한인들의 의식은 ‘되돌아감’보다는 ‘현지에 뿌리내리고 살기’”에 무게 중심이 놓인다. 아무튼 이민자들은 강력한 개척(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경계/혼종지점에 내재된 지역적 특수성(남미든 북미든), 즉 “축제적인 다이나미즘”, “풍요의 바다”로 표상되는 무한한 잠재력을 끊임없이 쫓고자 했다. 그리고 이민 초창기에는 남미에서의 경제적인 성공 이후 북미를 재이민의 대상으로 삼거나 자녀들의 정착지로 삼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쨌든 코리언 이민사회에서 경제적인 부의 실현과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은 재이민/역이민의 경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여섯째> 이민사회의 간고한 삶과 애환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주지하다시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비롯해서 파라과이, 칠레 등 남미대륙의 코리안 이민사회는 거의 대부분이 의류사업에서 출발했고, 현재도 의류사업이 중심이다. 이들의 소설에서는 이민자들이 의류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수금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지생활의 애환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벤데 생활(의류외판원)의 애환을 그려낸 최승재의 작품 「얼씨구 씨구」(1)(2)(3)는 ‘재미’를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안경자의 소설은 이민사회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벤데 생활의 애환을 잔잔한 필치로 그려낸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만난 지 4년여의 결혼생활 아내와 나는 무지무지하게 일을 했다. 애기 낳기, 한국 나가기, 가구 사기 등 어떠한 종류의 계획도 그것이 돈과 관계되는 일이면 무조건 나중으로 미루고 오로지 돈을 모으기 위해 우리는 일만 했다. 나는 옷을 만들어 내는 일 전부를 맡았고 아내는 옷을 팔아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또 다른 돈을 사는 일을 맡았는데 어느 부부가 우리들처럼 일사불란 할 수 있었겠는가. 루우는 그렇게 끄루제이로를 주고 달러를 사는 일이 필생의 사업인 듯 실로 열심히 그 일을 해댔다. 때로는 그 달러를 팔아 다시 끄루제이로를 사야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루우는 얼마나 비통에 빠지곤 했었는지…. 나는 그 돈, 그 미불(美弗)들이, 그 달러들이 어디에 어떻게 숨겨져 있는지를 안다. 아파트에도 강도가 들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부부는 온갖 머리를 짜내어 가장 안전한 곳에다 정성껏 갈무리해 놓았으니까. 그럴 때면 얼마나 의기투합되는 한쌍의 부부가 되곤 했었는지…. (안경자 『쌍파울로의 겨울』에서)

그리고 이민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현지사회와의 문화적 충돌, 종교적인 갈등, 자녀교육을 둘러싼 갈등, 열악한 생활환경, 세대간의 갈등, 비행청소년 문제 등) 특히 이민자들의 가정, 직장, 학교, 커뮤니티를 무대로 실생활에서 겪게 되는 희노애락을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일곱째> 어두운 한국근현대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남미의 이민사회이다. 특히 굴절된 한국 근현대사였던 6.25와 반공포로 이야기, 군부정권과 이민사회의 관계, 최근의 IMF와 이민사회 등의 문제를 천착한다. 조국으로부터 튕겨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각별한 근현대사의 기억과 아픔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남미의 대자연에 대한 찬양(아마존, 맞추피추, 남국의 여유, 안데스산맥의 힘 등), 종교적 휴머니즘 등을 실생활을 무대로 그려낸다.

이 책을 엮은 김환기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중남미지역의 한국계·일본계 이민문학을 함께 조사하고 있는 호세이대학 가와무라 미나토 교수님과 공동프로젝트를 가동했기에 가능했다"며 "이 책은 2010년부터 금년까지 4년간 남미 대자연의 위대함과 직접 호흡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엮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이번 ‘문학선집’의 작품의 대부분은 종합문예지에서 선별하였으며, 작품 선별 과정에서 브라질의 안경자 선생님(『열대문화』 주재)과 아르헨티나의 이세윤 선생님(<재아문인협회> 회장)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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