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의 동기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한 해설과 비평입니다.
<명분과 실제 전략의 괴리>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사우디아라비아 내 미군 주둔,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 이라크 제재 등 이슬람 세계가 겪는 집단적 고통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러나 내부적인 핵심 목표는 훨씬 전략적이고 냉혹했다. 알카에다는 중동 내 친미 세속 독재 정권인 <가까운 적(Near Enemy)>을 직접 무너뜨릴 역량이 부족하자, 이들을 떠받치는 패권국인 미국이라는 <먼 적(Far Enemy)>을 타격해 판 전체를 뒤흔들고자 했다. 즉, 팔레스타인 이슈나 종교적 거룩함은 대중적 분노를 결집하고 테러의 정당성을 날조하기 위한 선동 도구의 성격이 짙었다.
<비대칭 덫과 미국의 과민 반응> 빈 라덴의 가장 본질적인 계산은 미국의 거대한 군사적 반격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패퇴를 직접 경험했던 그는, 미국을 중동이라는 수렁으로 끌어들여 군사적·경제적 소모전을 강제하면 제국이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 보았다. 비극적이게도 미국은 이 덫에 걸려들었다. 9·11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넘어 무리하게 이라크 전쟁을 강행했다. 이는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 수많은 인명 손실, 미국의 도덕적 정당성 훼손으로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경제적 고갈 전략은 일정 부분 의도대로 실현되었다.
<지정학적 역설과 의도치 않은 결과> 그러나 알카에다의 전략은 또 다른 차원에서 치명적인 역설을 낳았다. 첫째, 범이슬람주의 칼리프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이상과 달리,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수니파-시아파 간의 극심한 종파 갈등이 폭발했다. 둘째, 수니파 극단주의의 최대 숙적인 시아파 맹주 이란이 중동의 실질적인 패권 세력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셋째, 알카에다 내부에서 파생된 알자르카위 세력은 이후 이슬람국가(IS)로 진화하며 알카에다조차 통제할 수 없는 맹목적이고 무차별적인 학살 기구로 변질되었다.
결국 9·11 테러는 미국의 제국적 개입주의가 지닌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인 동시에, 종교적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이 결코 지배 질서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끝없는 혼돈과 파괴만을 양산한다는 점을 증명한 역사적 참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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