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 2025

남기영 목사가 서재에서 전하는 말씀 99 크리스쳔 아이덴티티



남기영 목사가 서재에서 전하는 말씀 99 크리스쳔 아이덴티티

서재에서 전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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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views  Jan 12, 2025


99. 크리스천 아이덴티티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성장을 기록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은혜를 증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는지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교회들은 현재로 280여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어,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추세로 간다면 오래지 않아 미국을 제치고, 앞장을 서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라고 하는 것은, 문화와 생각과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사역을 맡은 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교 현장에서, 인간으로는 한계에 부닥칠 때에도, 예상치 않았던 방법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아멘’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 먼저 도착해서, 동역자인 디모데와 실라가 합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가지를 둘러보니, 여기 저기 세워져 있는 신당이, 수도 없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당에는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는 곳도 있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알지 못하는 신이란, 여러 가지 신이 있을 터인데 그 중에서 혹 자기들이 몰라서 거명하지 못한 신이 있다면, 몰라서 그런 것이니 노여워 말고, 너그러이 봐 달라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아레오바고 라고하는 광장을 찾아 갑니다. 아레오바고 광장은, 지식인들이 모여서 토론하며, 지식을 교환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계획적으로 이를 주관하는 강연장도 아니고, 그저 질문과 설명과 질문과 대답이 계속되면서, 그런 과정을 통하여 배우고, 가르치고, 토론하는, 자연 발생적인 지식의 광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에 굶주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발전해 온 것이, 바로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였던 희랍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서양의 철학은 프라토의 생각에 달아 놓은,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희랍의 토론 광장은, 서양철학의 요람 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갈구하는 지식이란, 세상 만물에 대한 지식이었고, 당시의 짧은 지식으로 만물의 운행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니, 결국 그 들은 많은 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아테네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한 생명의 원천이며, 생사 화복의 주관 자 이시기 때문에, 한 곳에 모실 수도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분이라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만 바울이 이야기를 하고 그만두었다면 유태교와 기독교가 별로 다를 것이 없었겠지 만,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방법을 주셨 노라고 역설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서 보여준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이는 믿고, 어떤 이는 비웃었 노라고, 누가는 적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종교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던 시절이었습니다. 현대인들은 교회에 대하여 점점 흥미를 잃고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양의 물질문명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 대하여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지만, 종교에 관하여는 아직도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파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별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새는 교회를 시작하면 교파를 내 세우지 않고, 그냥 Community Church 니 Christian Church 니 하는 애매한 이름을 쓰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religion을 찾아 들어가면 200만 개의 websites 가 있는 것으로 검색됩니다. 이것은 그래도 사람들이 계속하여 종교를 찾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저 종교적 인 동물이기 때문이 라기보다는, 불안전한 세상에서 무엇인가 해답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처럼 기성교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가는 마당에, 선교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앞에 놓고, 교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경쟁이 심한 사회라 고는 하지만, 교회도 종교도 경쟁이 심하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를 생각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큰 숙제입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이런 어려움은 우리만의 고민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테네 사람들을 대하는 사도 바울은, 논리적이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신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여러분이 찾고 있는 그 몰라서 빠트린 신을, 여기에 자기가 소개하겠다는 말로 시작하여, 그 신인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직접 상관하셨으며, 그는 만물을 창조하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당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으며, 그 대신 여러 분의 마음속에, 좌정하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울이 설명한 기독교의 소개였습니다.

나는 때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의 세상이, 2000년 전 아테네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종교가 있고, 그 많은 교파가 있어, 네 교회 내 교회로 나누어져, 서로 배척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몰아세웁니다. 그러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의 목마름은 더해만 갑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들은, 우리의 하나님을 어떻게 그런 사람들에게 소개하겠습니까?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것은 생수입니다. 우리들은 그 생수를 목마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콜라’나 ‘사이다’로 이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나는 은퇴한 목사이지만, 때로는 내가 정말로 기독교인인가 하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해 보고는 합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계속 점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를 통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이,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확실히 고백하고 믿으면, 성령이 그의 삶 속에 들어와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극적인 경험은 없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같이하는 사람은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같이 한다고 하는 것은,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산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으면,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나 논리에 따라 수긍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이 우리와 같이 하시면, 자연스럽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 속에서 우리에게 지시하는 대로 살겠다는 것이, 바로 세례 받을 때 한 약속이고, 물을 머리에 부어서 받은 세례는 그저 그 약속의 가시적인 증표일 뿐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익히고, 그의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믿는 이들이 할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만사가 형통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뜻 하는 대로, 네가 기도하는 대로 돈 많이 벌고, 무병장수하고, 성공이라는 것을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 남을 부리며 살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도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비록 믿는 이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에, 늘 같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서양 교회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배웠고, 그들의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한국교회의 내일을 불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날더러, 왜 한인교회를 목회하지 않고, 서양교회를 목회하느냐고 걱정을 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이 그저, 
하나님이 맡겨 주셨으니 섬긴다는 생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치고 있는 서양교회를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서양교회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약해 저가는 서양교회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앞날을 미리 보고, 그 이야기를 한국교회에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그 속에 담겨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믿는 이들의 크리스천 아이덴티티가 분명할 때, 교회는 성장하고, 생존을 앞에 놓고 고민하는 교회에는, 그 아이덴티티가 희미 하더 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늘 같이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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