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 주립대학교(SJSU)에서 발생한 강의 중단 사건 및 학내 갈등을 둘러싼 길 교수(Sang Hea Kil)와 블루틴저 교수(Jeffrey Blutinger)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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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산호세 주립대학교(SJSU)에서 발생한 강의 중단 사건 및 학내 갈등을 둘러싼 길 교수(Sang Hea Kil)와 블루틴저 교수(Jeffrey Blutinger)의 입장을 요약 분석하고 평가한다
1. 양 교수의 입장 요약 및 분석
① 길 교수(Sang Hea Kil)의 입장
행동 및 역할: 길 교수는 산호세 주립대 정체성 연구(Justice Studies) 교수이자 '팔레스타인을 위한 정의를 원하는 학생들(SJP)'의 학과 지도교수였다
. 2024년 2월 블루틴저 교수의 강연 반대 시위를 비롯해 5월의 텐트 농성 등을 주도하거나 학생들을 독려한 혐의를 받았다 . 주요 주장:
표현 및 학문의 자유 수호: 자신의 활동은 정당한 친팔레스타인 권리 옹호이며, 대학 당국이 표현의 자유 및 학문의 자유, 종신교수권(Tenure)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혐의 부인: 규칙 위반 및 물리적 방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 예컨대 시위 중 "유대인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나온 적이 없으며, 학생들이 정책을 위반하도록 유도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징계의 부당성: 대학의 정직 및 해임 처분이 친팔레스타인 성향 학자들에 대한 표적 검열이자 과도한 징계라며 중재(Arbitration)와 소송을 통해 복직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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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2025년 교수청문위원회와 2026년 중재 조사를 거쳐 해임은 과도하다는 판결을 받아 최종 복직 선고를 받아냈다 (1개월 무급 정직으로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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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블루틴저 교수(Jeffrey Blutinger)의 입장
행동 및 역할: 캘리포니아 주립대 롱비치(CSULB)의 유학 연구 소장이자 역사학 교수이다
. 2024년 2월 산호세 주립대에 초빙되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평화적 해결책(양국 방안)'에 대해 강연하려다 시위대에 가로막혔다 . 주요 주장:
반유대주의와 폭력성 고발: 시위대가 평화적 해결을 논하려는 학술적 대화조차 "지오니스트"라는 이유로 봉쇄한 것은 단순한 반(反)지오니즘이 아니라 명백한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고 지적했다
. 교권 및 안전 침해: 시위대로 인해 강의실이 포위되고 경찰에 의해 긴급 대피해야 했던 상황을 "학문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유대인 교원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 대학 당국의 온건한 대처 비판: 대학 행정처가 시위 규칙을 엄격히 집행하지 않고 초기 대응에 미온적이었기에 교내 유대인 학자들이 공포와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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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강연 중단 이후 교내외에서 "제노사이드 부인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 플래카드가 붙는 등 2차 피해를 겪었으며, 미국 내 안전에 회의를 느껴 은퇴 후 이스라엘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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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합 평가
두 교수의 갈등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침공 이후 미국 대학 캠퍼스가 직면한 '표현의 자유'와 '학내 구성원의 안전 보호' 사이의 격렬한 가치 충돌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길 교수의 행보에 대한 평가: 대학 소속 위원회와 외부 중재인 모두 길 교수의 행위가 대학의 '시간, 장소, 방식(Time, place, and manner)' 정책을 위반하고 학자로서의 전문적 책임 기준을 어겼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했다
. 다만 대학 총장의 '해임' 조치가 종신교수권과 학내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과도한 징계(Overreach)였다는 사법적 판단을 받아 복직된 것이다 . 지적 정의를 외치는 활동가로서의 권리는 보호받았으나, 동료 학자의 교권을 직접적으로 마비시키는 시위를 선동했다는 책임에서는 자유롭기 어렵다 . 블루틴저 교수의 행보에 대한 평가: 블루틴저 교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극단적 주장을 펼친 것이 아니라 학술적 역사를 바탕으로 양국 방안을 설명하려 한 온건한 입장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 정치의 진영 논리에 갇힌 급진 학생 및 교수들에 의해 강연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것은 미국 대학 공론장의 파산을 보여주는 상징적 피해자로 볼 수 있다 . 그가 느끼는 실존적 불안과 이주 결심은 현재 미국 학계 내부의 반유대주의 기후가 얼마나 심각한지 고발하는 지표가 된다 .
결론적으로, 이 사태는 캠퍼스 내의 정치적 급진주의가 학문의 보편적 가치인 '토론과 경청의 자유'를 잠식하는 현상을 반영한다
아래에서는 <길 교수>를 San José State University의 정의학 교수 <Sang Hea Kil 교수>, <블루틴저 교수>를 Cal State Long Beach의 유대학 교수 <Jeffrey Blutinger 교수>로 놓고 비교한다. 두 사람은 같은 사건을 정반대 방향에서 경험한 인물이다. 길 교수는 <친팔레스타인 표현과 교수의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었다>고 본다. 블루틴저 교수는 <유대인 교수와 이스라엘 관련 강의가 위협과 소음으로 봉쇄되었다>고 본다.
1. 사건의 핵심 구도
문제의 중심에는 2024년 2월 San José State University에서 열린 블루틴저 교수의 초청 강연이 있다. 강연 제목은 <Constructing a Just Solution: Where Israelis and Palestinians Go from Here>였고,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와 두 국가 해법을 설명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연장 밖에서 친팔레스타인 학생들의 항의가 벌어졌고, 복도에서 촬영을 둘러싼 충돌이 일어나면서 강연은 중단되었다. 이후 길 교수는 SJP, 즉 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의 교수 자문 역할과 여러 캠퍼스 시위 참여 때문에 조사와 징계를 받았고, 결국 해고되었다가 중재 판정으로 복직 명령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한 강연의 방해” 문제가 아니다. 미국 대학에서 가자 전쟁 이후 <반유대주의>, <반시오니즘>, <친팔레스타인 발언 억압>, <학문적 자유>, <시위의 한계>가 한꺼번에 충돌한 사례다.
2. 길 교수의 입장
길 교수의 기본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자신은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했고, 그것은 교수로서의 정치적 표현이자 학문적 자유의 일부라는 것이다. 대학이 자신을 해고한 것은 과도한 징계이며, 친팔레스타인 발언과 활동을 억압하는 정치적 처벌이라는 입장이다.
Guardian 기사에 따르면, 길 교수는 자신이 시위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고, 학생 야영 농성에도 일부 참여했지만 그것은 경찰 진압 이후 학생들이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의 조치를 “새로운 매카시즘”으로 표현하며,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헌법적 권리와 학문적 자유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Los Angeles Times 보도에 따르면, 중재인은 길 교수의 해고가 “과도하고 불균형적”이라고 판단했고, 해고 대신 1개월 무급 정직 정도가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는 길 교수 쪽 주장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다. 즉, 대학 정책 위반이 일부 있었다고 해도 종신교수 해고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Democracy Now 보도도 이 결정을 “캠퍼스 학문 자유와 친팔레스타인 발언의 승리”로 소개했다.
길 교수 입장의 강점은 분명하다. 미국 대학에서 친팔레스타인 교수와 학생들이 실제로 강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가자 전쟁 이후 “반이스라엘”과 “반유대주의”가 너무 쉽게 동일시되면, 이스라엘 국가폭력이나 점령정책에 대한 비판도 금지될 위험이 있다. 길 교수는 바로 이 위험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러나 길 교수 입장의 약점도 있다. 블루틴저의 강연이 실제로 “이스라엘 선전”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가 말하려던 내용은 두 국가 해법, 1948년 난민 문제, 1967년 점령 문제, 예루살렘, 타바 협상 등 갈등의 복합성을 다루는 것이었다. 이런 강연을 “시오니스트 강연이므로 막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그것은 학문적 자유의 원칙과 충돌한다. 길 교수가 직접 폭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학생들이 강연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상황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3. 블루틴저 교수의 입장
블루틴저 교수의 기본 입장은 이렇다. 자신은 극우적 친이스라엘 선전가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의 역사와 평화 가능성을 가르치는 유대학 교수다. 그런데 시위대는 자신을 “폭력적 시오니스트”, “제노사이드 부정론자”로 낙인찍고 강연을 막았다. 이것은 학문적 자유 침해이며, 동시에 유대인 교수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이다.
Moment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원래 홀로코스트 문학 수업과 연결하여,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 국가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갈등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말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1948년 문제와 1967년 문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타바 협상에서는 많은 쟁점이 상당히 좁혀졌으나 난민과 그 후손의 귀환 문제가 가장 어려운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말하는 순간에도, 학생들이 자신을 “이스라엘 존재를 옹호하는 시오니스트”로만 본다고 비판한다. 그의 말로는, 시위대는 평화조약이나 두 국가 해법에 관심이 없고, “세계 최대 유대인 공동체의 폭력적 제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블루틴저는 반시오니즘과 반유대주의를 무조건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그는 유대인 안에도 반시오니스트가 있고, 시온주의 내부에도 다양한 흐름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에게만 민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거나, 이스라엘만 존재할 권리가 없는 국가로 취급하는 태도는 반유대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의 학문적 배경도 이 입장을 설명한다. Google Scholar 자료를 보면 그는 홀로코스트 교육, 유대사, 시온주의, 반유대주의 음모론 등을 연구해 온 학자다.
블루틴저 입장의 강점은 “강연 봉쇄는 안 된다”는 원칙에 있다. 대학은 불편한 발언을 막는 곳이 아니라 듣고 반박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는 과거 자신도 노엄 촘스키나 반이민 단체 연사의 강연에 반대했지만, 강연장 안으로 들어가 방해하지 않고 밖에서 전단을 나눠 주었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시위의 권리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수업과 강연을 물리적으로 중단시키는 권리는 아니다.
그러나 블루틴저 입장도 한계가 있다. 그는 유대인 교수로서의 공포와 피해 경험을 강하게 말하지만, 팔레스타인계·아랍계·무슬림 학생과 교수들이 느끼는 공포와 침묵 강요를 충분히 함께 다루지는 않는다. JNS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캠퍼스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며, 유대인 교수들이 고립되고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이 경험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친팔레스타인 교수들의 징계와 해고, 감시, 낙인 역시 현실이다. 길 교수 사건이 바로 그 반대편의 증거다.
4. 두 입장의 충돌점
두 교수는 모두 <학문적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자유를 말한다.
길 교수에게 자유란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고 이스라엘 국가폭력을 비판할 자유>다. 그는 대학이 시위와 정치적 표현을 행정 규정으로 억압한다고 본다.
블루틴저 교수에게 자유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복합적으로 가르치고, 유대인 교수로서 위협 없이 말할 자유>다. 그는 학생 시위가 강연을 봉쇄하고 유대인 교수들을 낙인찍는다고 본다.
두 입장은 모두 부분적으로 옳다. 미국 대학은 실제로 친팔레스타인 발언을 억압해 왔고, 동시에 일부 친팔레스타인 운동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관련 강연을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어느 한쪽만 피해자이고 다른 한쪽만 가해자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는 데 있다.
5. 평가
내 평가는 이렇다.
첫째, 길 교수의 해고는 과도했다. 중재인이 복직을 명령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종신교수의 정치적 활동과 시위 참여를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다. 설령 대학의 시간·장소·방식 규정을 일부 위반했더라도, 그것이 교수 자격 자체를 박탈할 사유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점에서는 길 교수 쪽 주장이 강하다.
둘째, 그러나 블루틴저 강연을 중단시킨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가 극우 선동가도 아니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부정하는 사람도 아니며, 오히려 두 국가 해법과 난민 문제를 설명하려던 학자였다면, 강연을 듣고 비판해야 했다. 강연장 밖의 항의는 가능하지만, 수업을 들을 학생들의 권리까지 빼앗는 것은 대학 정치의 자기파괴다.
셋째, 블루틴저의 “반시오니즘=반유대주의로 흐를 위험”이라는 경고는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없어져야 한다”는 구호가 유대인 공동체의 존재 불안과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경고가 이스라엘 국가정책 비판을 봉쇄하는 도구가 되면 안 된다. 가자 전쟁, 점령, 정착촌, 봉쇄, 민간인 희생에 대한 비판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정치적·윤리적 비판일 수 있다.
넷째, 길 교수 쪽 운동도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팔레스타인 연대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유대인의 역사적 공포와 이스라엘 민간인의 안전 문제를 조롱하거나 지워서는 안 된다. “시오니스트는 캠퍼스에 오지 말라”는 식의 배제 언어는 오히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도덕적으로 약화시킨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에서 더 큰 문제는 대학이 두 자유를 동시에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친팔레스타인 발언의 자유도 지켜야 하고, 유대인·이스라엘 관련 강연의 자유도 지켜야 한다. 길 교수의 해고는 잘못이었지만, 블루틴저 교수의 강연 봉쇄도 잘못이었다. 한쪽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쪽의 자유를 침해하면, 대학은 지식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 전쟁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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