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17, 2021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과 일본어의 위치 Nishi Masahiko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과 일본어의 장소


니시 마사히코  
立命館大学大学院 先端総合学術研究科, 教授, 専門 比較文学学大学院 先端総合学術研究科




1, 상파울루시 본 레치로 지구

 단 3개월이었지만 남반구는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는 5월부터 7월까지 상파울루 대학의 일본 문학과에 객원 강사로 초청되어 「우라시마 타로와 일본」이라는 테마로 수업을 담당하겠습니다. 타노가, 2002년. 다만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시기에 겹쳤다. 그리고 무려 브라질과 독일과의 결승전은, 여행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호텔에서 관전하는 (폭매하는 브라질인 관광객에게 섞여) 되었다.

 그런 남미 체류기에 놀라움과 함께 받아 들인 지견知見의 수는, 손가락이 몇이 있어도 셀 수 없을 정도이지만,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삼위가 된 것도 있어, 상파울루 시내의 한국인의 프레즌스를 실감했다는 것은 그 하나였다.

일찌기 「일본인가」라고 불리며, 고속도로 위에 걸린 육교가 지금도 「오사카 다리」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리베르다지 일대도, 지금은 「동양인가」라고 호칭도 바뀌어, 중국 요리 야야키 고기 하우스 등이 있었고, 대만인이 경영하는 과자 빵집이 있거나, 중국인이 철판 위에서 야키소바를 굽고, 포장마차 기분을 맛볼 수 있고, 활기찬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지인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이승만 시대의 1959년에 외교협정이 맺어졌고, 박정희 쿠데타 후 1963년에는 무역협정 외에도 이민협정도 맺는다. 이어 이후 속속 모이기 시작한 한국계 이민의 대부분은 상파울루 시내에서도 리베르다지가 아니라 루스역 북쪽의 본 레치로 지구에 살았다고 했다.

그곳은 20세기에 들어서서 급증한 동유럽계 유대인이 상파울루에도 흘러들어 소위 '스웨트 숍'을 가동시켜 브라질 국내의 복식산업의 거점을 형성한 지구로 지금도 웨딩 드레스 전문점 등이 처마를 이어주는 화려한 가로를 형성하고 있다.

20세기 브라질 모더니즘의 거장으로, 1928년의 「식인 선언」 Manifesto Antropófago로도 유명한 오즈발드 ㈜안드라지의 기념관도 거기에 있어, 바로 상파울루의 모더니즘을 지지한 것이, 본・레치로 지구였다. 요컨대, 거기는 뉴욕에서 말하면, 로어 이스트 사이드나 그리니치 빌리지, 혹은 할렘 지구에 상당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런 동유럽계 유태인이 현지에서 성공을 거두고 세대 교체를 진행하면 그들은 페르디세스구의 고급 주택지로 옮겨 거기에 새로 온 한국인이 유대인이 경영하는 “스웨트 숍 '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본 레치로에는 코셔 요리를 먹게 하는 유태인 레스토랑도 있으면 코리안 레스토랑도 줄지어 있는 현상이 있다.

그리고 그 2002년 이후 여러 번 상파울루를 방문하고 있지만, 그 때마다 본 레치로에는 기보기로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십년 정도는 한국계의 브라질인이 경영하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볼리비아인의 노동자라고 하는 것으로, 뉴욕의 유태인 거리가 어느새 히스패닉의 집주지가 되었다. 했던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둘, '세뇨르 카이샤'

 그 2002년의 상파울루 체재기, 나는 여행비 체재비에 관해서는 국제 교류 기금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숙소도 지하철(녹선)의 브리가데이로역 도보 3분의 주간 맨션을 주선해 받고 있었지만, 나는 브라질의 폴란드인이나 유태인에 관해서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①)로부터, 그 방면을 가로막고 있는 동안, 상파울루에는 「페르스펙티바」라고 하는 유태계 출판사가 있고, 그 출점이 바로 브리가 데이로 거리의 비탈 도중에 있었던 것이었다.

 즉시 나가 보면, 서늘한 것의 책이 즐비하게 늘어서, 브라질 제일의 유대계 출판사의 이름에 어울리는 서점이라고 곧 납득했다. 거기서 발견한 「이디쉬 단편」O conto idiche(1966)는, 19세기 이디쉬 문학의 거장으로부터, 노벨상 작가의 아이작·바쉐비스·싱어, 그리고 브라질을 대표하는 이디쉬 작가, 로자·파라토니크까지, 주된 이디시 작가는 망라하면서도, 브라질색은 내도록 궁리된 매력적인 한 책이었다. 나중에 내가 『세계 이디쉬 단편선』(★② 이와나미 문고, 2018)을 짠 때 염두에 둔 몇권 중 한 권은 이것이었다.

 게다가, 이 앤솔로지에는, 파라토닉과도 친했던 폴란드 출신의 이디시 작가, 메일·쿠칭스키가 긴 서문을 보내고 있어, 실은 이 쿠칭스키에 관해서는, 그 딸이 브라질의 치안 경찰에 구속되어, 「실종자」desaparecida 되는 운명을 따랐던 적이 있고, 그 딸을 가족 들고 도우려고 분주한 님이, 작가의 아들인 베르나르도 쿠신스키에 의해 「르포르타주」에 그려져 큰 화제가 되어, 이것은 「K. 사라진 딸을 쫓아』(★③)로서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암네스티 인터내셔널 등을 통한 인권운동이 쌓아 올린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몇 번의 상파울루 체재 중에 눈에 띄었던 적이 있는 역의 코다카 이네코씨로부터 동서를 보내 주셨을 때에는 , 그 우연히 놀라기도 한 것이었다(★④).

 그러나 그날 그 이상에 놀란 적이 있다. 페르스펙티바의 출판물 속에 이산(李箱)의 『까마귀의 눈(★⑤)』 Olho de corvo(1999)이라는 1권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브라질이 자랑하는 현대시인, 아롤드 ヂ 캄포스가 서문을 쓰고(★⑥), 일제 점령기의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그 리박스의 대표작이 모여 1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했다. 일본에서도 그 후 이진리역(★⑦)으로 소개되는 이상자의 '우관도'가 '까마귀의 눈'으로 번역됐다는 셈이다.

 그리고 이 만남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본 레치로 지구에서 동유럽 유대계 이민과 한국계 이민의 깊은 연결을 나름대로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현지의 일본계인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이것에 대체로 무관심하고, 이미 브라질인의 신뢰를 이기고 있었다(「갈란치드」garantido라고 하는 형용사가 널리 사용되었다) 일본계인이, 신참 자의 한국인을 위해서 '보증인' garante가 되어 본 적이 있다고 하는, 약간 위로부터 시선의 한국인 상을 느낄 수 있었던 정도였다.



세, 남미 재패니즈와 코리안

 그 후, 나는 브라질 체재기에 눈에 띄는 일이 있던 작가 마츠이 타로 씨의 주요 작품을 일본의 출판사로부터 간행할 수 있도록, 호소카와 슈헤이 씨와 함께, 국내를 분주하기도 하고, 「우츠로 배」와 「 먼 목소리의 두 권(★⑧)을 세상에 낼 수 있었다. 그것도 마츠이 타로씨의 생전에(씨는 2017년에 타계되었다. 향년 99세).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중의 「외지 순례/「월경적」일본어 문학론」(★⑨)에서 한 사람으로 단락짓을 수 있었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남북미 이주지의 문학」과 「일제 식민지의 문학」을 함께 시야에 넣는 것으로, 「<외지>의 일본어 문학선」전 3권(★⑩)에서 편자의 구로카와 창씨가 나타난 「<외지>의 일본어 문학」이라는 틀의 확장 를 시도하고 있던 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의 한국인에 대해서도 기회가 있다면 꼭 알아두고 싶은 몰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향의 쇼와 문학――「만주」와 근대 일본」(★⑪) 이후, 포스트 콜로니얼 비평을 근거로 한 일본어 문학 연구를 견인해 오고, 1980년대에 한국의 동아대학교 에서 일본문학을 강요당한 무렵부터 길러지고 있던 한국과의 연결을 유효하게 활용되어, 재일조선인의 문학 등도 적극적으로 논해 왔던 카와무라 미나토씨가, 2011년도 부터 13년도까지 진행된 “남미 일본계 이민 및 한국계 이민에 의한 문학의 종합적 연구”(과연비 보조금·기반 연구⒞)의 성과의 일단으로서 일본에서는 “증산낭 작품집·과와니” 숲의 이야기」(★⑫), 「하포네스 이민촌 이야기」(★⑬) 등이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이 프로젝트에서 연구 협력자를 맡은 금환기【루비:김환기】(한국 동국대학교 )씨가 편자가 되어 『브라질·코리안 문학 선집』브라질(Brazil)코리안 문학 선집(★⑭)과 『아르헨티나·코리안 문학 선집』브라질(Argentine)코리안 문학 선집(★⑮)이 전 4권이라는 볼륨 에서 간행되었다. 시나 소설부터 수필·평론까지 망라한 손이 잘 드러난 것으로, 그러한 것이 한국 정부의 조성을 얻어 간행되는 한국과 마츠이 타로씨와 같은 걸출한 문재를 가진 이민 작가의 작품 선집을 출판시장에 올려 간행할 수 밖에, 이민문학의 소개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일본과의 차이는 좀처럼 묻힐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학술진흥회가 이런 국경을 넘은 공동연구를 조성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글자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실은 『브라질·코리안 문학 선집』의 「시・소설」의 권에는, 김환기씨의 해설문이 게재되고 있어, 대충 읽어 주었지만, 그때까지 한국인의 브라질 이주가 시작된 것은 , 1963년 이후라고 들었던 나에게 눈을 의심하는 사실이, 거기에는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1953년에 한국 전쟁이 끝난 무렵, 석방되어 반공포로 55명(중국인 5명 포함)의 브라질행」(★⑯)과.

그리고 바로 이렇게 눈을 뜨은 직후 미국의 한국계 작가 폴 윤의 '스노우 헌터스(★⑰)' Snow Hunters(2013)를 우연히 손에 잡았다.

폴 윤이라면 지금은 초기 단편집 '한때는 기슭' Once the Shore(2009)가 후지이 광역(★⑱)으로 읽을 수 있지만, 당시는 갑자기 '스노우 헌터스'에 손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잘린 말의 마력에 매료될 수 있도록 단번에 읽은 것이 2014년의 2월이었다고 생각한다. 카니발의 시기에 브라질을 방문한, 두바이 경유의 에미렛 항공의 기내였다.

본론에서는 이 '스노우 헌터스'의 매력의 한쪽 끝에도 다가가고 싶지만, 우선은 폴 윤이 등장하기 이전의 코리안 아메리칸 작가들을 요점을 감추면서 되돌아 가려고 생각한다.


넷째,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의 기세

 현재의 한류 소설 붐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해도, 2000년대에 들어가고 나서, 일본에서는, 아시아계 미국 문학의 일익을 담당하는 코리안·아메리칸의 문학에의 관심이 조금씩이지만 높아져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고바야시 토미코 감수의 「빙의하는 과거――아시아계 미국 문학에 있어서의 트라우마·기억·재생(★⑲)」(2014)은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계 작가의 경우에는, 제2차 대전기 의 수용 체험이나, 원폭 피해 체험, 한국계라면, 일본군 위안부 체험으로부터 조선 전쟁 체험 전반, 나아가 로스 폭동에서의 피해 체험 등의 「트라우마적인 기억」에 대해서 문학이 어떠한 「재생」을 준비해 갔는지를 논한 읽을 수 있는 논문이 늘어서 있고, 많은 것을 거기에서 공부해 주었다. 

 일본에서의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UC 버클리에서 교편을 취하고 있던 엘레인 김의 '아시아계 미국 문학(★⑳)' Asian American Literature, An Itroductio to the Writings and Their Social Context 2)의 번역간행(2002)이 하나의 기준이 되지만, 같은 2002년에는 1963년 서울 출생으로 3세 때 가족으로 미국으로 이주되어 1995년에 '네이티브 스피커'로 데뷔된 찬네 리(李昌來)의 '제스처 라이프(★㉑)' A Gesture Life(1999)가 일본에 소개되어, 19 51년 부산 출생으로 박정희 쿠데타에 있던 뒤 나라를 떠나 가족으로 하와이 등을 전전한 뒤 1964년 베이 에리어로 옮겨 살고 UC 버클리에서는 영화 이론을 배우는 등 라고 영상 작가로서도 기대되고 있던 테레사・하경차가 31세에서의 급사 직전에 남긴 「딕테(★㉒)」Dictee(1982)의 번역 간행(2003)이 이것에 이어졌다.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이 김학순【루비:김하쿠슨】의 자칭 이후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는 국제적인 논점을 제공하게 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테레사 하경차는 특히 없는 채 사망했지만, 그 여러 작품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대부분은 테레사 하경차의 제시한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의 밀접한 관련성에 주목했다.

또 '제스처 라이프'는 일본군 병사로서 종군한 사키로, 조선인군 위안부와 마음을 다니면서 그녀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과거를 짊어지면서, 미 미국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논집 『빙의하는 과거』 속에서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빨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취한 노라 오자 켈러의 「위안부★㉓」Comfort Woman(1998) 역시 크게 다루어지고 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의 갈등은, 미국에 거주하는 코리안계 시민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깊은 커밋도 촉구해, 그 일부는, 일본에도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특히 「딕테」에 관해서는, 그 페미니즘에 워터마크 볼 수 있는 포스트 콜로니얼인 관점에 주목하면서, 한 문장을 적은 적이 있다(★㉔) 때문에, 그 중에서 테레사가, 「만주국」 사이마 섬에서 학교 교사를 하고 있던 시대의 어머니(허현승)가 한글로 남겨놓은 당시의 '일지' 주위에서 흠뻑 빠져 있던 일본어와 중국어를 상기시키는 데에 테레사 자신이 , 한국=조선어를 '모국어'로 하면서도, 프랑스어를 익힌 영어 표현자였던 사실과의 공명에 주목한 것만, 여기에서는 소개해 둔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2000년대에 일본에서 소개되기에 이른 코리안 아메리칸의 표현자에게 있어서, 일본어는 「조국의 이웃나라의 언어」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인데, 그들 그녀들이 부모 세대 와의 관계를 파고 가려고 하면, 「외국어」라고는 단언할 수 없는 「일본어」의 위치(=「지위」라고 해야 하는가)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노라 오자 켈러의 '위안부'를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몸이 얼어붙은 것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조선인에게는 말의 재능이 있는 식민지로 되어 지배를 받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일본인은 말한다. 자신의 무능이 유쾌하고 견딜 수 없어. 두려워하거나 배워야 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덕분에 구원받았어요. 무엇을 말해도 깨닫지 못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연중은 그런 것, 쓰레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겠지만. (p. 16)

그런데 주인공의 어머니가 과거 군 위안소에서 알게 된 동료인 인도크는 "좋아, 너들, 내 조국도 신체도 침략하지 말라"며 "조선어와 일본어로" 마음껏 와서, 결국 그녀는 '꼬치찔린 돼지'처럼 '입에서 질까지 꼬치를 찔러라'(pp. 20-21)하고 과시처럼 죽여 갔다.

주인공의 어머니에게는, 그런 인도크의 망령(그 조선어 사용과 일본어 사용)이, 전후도 도미 후에도, 붙어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몇번이나 죽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후까지 살아남아 백인과 결혼하여 하와이에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1966년생의 작자는 독일인의 아버지, 한국 사람의 어머니와 함께, 세 살 때부터 하와이로 옮겨 살았다). 애초에 일조 바이링갈이었던 그녀가 해방 후에는 한국어와 영어의 2개 언어를 먹으면서 살아남는다. 영어권에서 공교육을 받은 딸은 그런 어머니를 어머니로 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딸 베커에게도 바늘의 뭉치를 걷는 경험이었다.

 작가가 어디까지 『딕테』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아닌지 별로, 『위안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의 하나는, 어머니와 딸의 언어편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로 생활을 하는 「미국인」의 배후에서 좌절하고 있는 「이언어」의 그림자.

 윌리엄 살로이안이든, 존 오카다이든, 신시아 오직이든, 에드위지 단티카이든, 미국의 이민자 작가는 영어를 사용하면서도 이러한 다국어 환경을 그리는 수단으로 영어 활용법에 연마한다. 단일 언어 사용으로 아무런 자유도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몫으로부터의 「무능이 유쾌하고 견딜 수 없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런 편한 사람들을 향해, 복잡한 언어 편역을 살아 한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그들 자신의 삶을 말하려고 한다. 스키김(1970년 한국 출생으로 83년에 미국으로 이주)의 '통역★㉕' The Interpreter(2003) 등도 바로 그런 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식민지주의와 입양

 그러므로, 이하, 찬네 리의 『제스처 라이프』를, 거기서 일본어에 맞은 역할에 주목하면서, 읽어 보기로 한다.

찬네 리 자신은 정신과 의사의 아버지에게 데리고 3 세에 도미했다고하지만 소설에는 '7 세'(신시오샤, 32 페이지) 때 고아원에서 미국으로 받았다. 되어 온 「부산시 태생의 소녀」(86페이지)가 등장한다. 이것이 아무래도 1960년대의 일인 것 같기 때문에, 이 「전재 고아」의 「소녀」는, 성별이 차이는 하지만, 작가의 첸네 리의 「분신」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도 말할 것 같다.

 다만, 작가는, 가족 구루미로 도미한 것에 대해, 소녀 쪽은, 혼자서, 게다가 미국에서는 「신뢰받는 일본인」이라고 알려진 독신의 중년 남자에게 받아 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같은 한국인의 도미에서도 너무 처지는 대조적인 것이다.

 게다가, 이 「입양」의 사례는, 「입양」이 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상당한 「이례」인 것 같고, 무엇보다 「독신의 남성이 입양을 인정받는 것 매우 드물다"(85 페이지)이었고, "여자에게는 어머니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86 페이지)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사회 통념에 반하여, 양부는 "여자 가 좋다고 말했다 "(동전)이다. 그야말로 ‘양자연조’의 제도를 ‘유아학대’를 위해 이용했는지 의심할 수 있는 불온한 선택을 양부는 언제나 내려 사회도 다시 그것을 용인해 버린 것이다. 실은, 소설은 이 「양부」를 화자에게 둔 1인칭 소설로서 쓰여져 있다.

 이 피가 연결되지 않은 아버지와 딸은 '써니' Sunny(그것이 양녀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스니'일지도 모른다)가 아직 어렸을 때는 잘 되어 있었던 것 같고, '써니'는 양부의 희망 에 응해, 피아노의 연습에도 여념이 없는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점차 양부를 피하게 된 그녀는 마침내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반대는 한 번도 없었다"(하나이치 페이지)라는 버려진 대사를 토해 그리고 집에서 나가 버린다.

 그 후, 그녀는 큰 배를 하고 돌아와서, 양부에게 낙태를 위한 서포트를 요구하거나,라고 생각하면, 싱글 마더가 되어, 다시 양부의 도움을 요구에 와서, 마지막에는 주인공도 '할아버지' 기분으로 '손자'에 접하게 되기도 하지만, 우선 하나는 '입양'의 이야기로서 뛰어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30세대 남성이 쓴 소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노련함이 있다.

 다만 이 소설을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으로 읽으려고 한다면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1960년대에 미국에 와서, “이 나라에 머무르는 결심을 하고 [중략]했을 때에는 내 국적의 문제는 어딘가에 가버려요”(8쪽)했다고 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주위 의 미국인으로부터도 「어째서 일본에 돌아가서 여생을 보내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23페이지) 등이라고 말하면서, 노경을 맞이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그 자신도 또 원래는 「일본인의 양자」로서 키워진 과거를 가지는 「코리안」이었다.

 한때 그를 '양자'로 끌어낸 것은 '기어를 제조하는 공장을 운영하는 아이가 없는 부유한 부부'(84페이지)였지만, 받게 될 때까지 그가 귀속한 것은 동물의 껍질을 핥아 지방을 정제하는 집단'에서 '일본인처럼 말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언뜻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대부분은 코리안이었다'(동전)라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는 버마 전선의 병영에서 조선인 위안부 여성과 '어린 시절 사용했던 말'(26페이지)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하는 장면마저 있다. 요컨대, 미국에 있어서는, 일본인·일계인의 부모와 자식으로서 보통 받아들이고 있는 두 사람이, 실은 「피」상에서는 함께 「코리안」으로, 게다가 「재패니즈」로서의 외관을 가려 버리려고 하지 않는 채 언제밖에 무엇 부족한 '미국인'으로 살게 된다.

 「일계」도 「한국계」도 「중국계」도 없는 「아시아계」라고 하는 호칭이, 과거의 역사적 갈등을 극복해, 집합적으로 「미국 사회」에 녹으려고 하고 있던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에 걸쳐 공기를 깊게 흡수해 자란 찬네 리만의 '아시아계 미국인 만'이 이 소설 속에서는 야심적으로 시험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그 후,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에 호응하도록 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의 사이에 「균열」이 생겨, 오늘에 이르고 있는 미국에서, 또 예를 들면 한국에서, 이 소설이 어떻게 읽혀지고 있는지, 거기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지만, 어쨌든 「일계」인지 「한국계」인지는, 본인만큼은 주위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러한 미국 사회의 특징을 역으로 취한 작품으로 파악하는 것 외에 없는 것 같다.

 다만, 다음과 같은 일절은, 일본인으로서 읽으면 실로 재미있는 것이지만, 한국인도 똑같이 재미있는 것일까, 거기는 의문이다.

한 번 베이 지역에서 왔다는 일본인 신사를 [중략] 만났다. 〔중략〕 계속 옛날 하와이나 캘리포니아에 이주한 일본인이 있었지만, 그의 조부모도 그렇고, 본인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고 기뻤다. 그런데 생각도 못하는 잔잔함이 태어났다. 인종도 나이도 직업도 닮았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대화는 이상하게 몸이 굳어져 버렸다. 굳이 소개되었을 때부터, 어째서 좋을지 모르는 순간이 있어, 예를 들어 악수해야 하는지 인사를 하면 좋을까라고 뒤흔들었다. (26페이지)

아무래도 ‘일계 미국 문학’에 나올 것 같은 장면이지만 이를 ‘한국계 미국인’이 쓴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하와이 태생의 일본계 3세 작가, 개렛 홍고우(1951년생)에 바쳐지고 있기 때문에, 「일계 미국 문학」에의 「스푸핑」을 공개적으로 시도한 「한국계 미국 문학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여섯, 외상과 물신

'제스처 라이프'는 한국계 미국인 젊은 작가가 코리안의 '여자의 지원자' female volunteer(182페이지)를 정면으로 잡은 것으로 화제를 불렀던 경위가 있는데 이번에 , 이 측에 관하여 파는 것은 하지 않는다. '젊을 무렵 남녀관계로 상처받은 남자'가 만년에 들어가면서 어디까지 과거를 끌어들이는지 알아내려는 소설로 이 작품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전편으로 접한 '양녀'를 취한다는 인생의 선택도 과거의 상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역자 후기」에도 쓰여져 있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고 마침내 생각한 것은 저자의 젊음이었다. 30대 전반의 젊음으로, 왜 이런 책을 쓴 것이다 ''(393페이지)――이것은 바로 동감이다.

 나는 모리 요시 밖의 "마이 히메"(1890)에 대해 책을 한 권 쓴 적이 있지만, 그 소설을 히토 외가 쓴 것은 아직 20 대 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베를린 에서의 뒷맛이 나쁜 여성 경험은, 그 생생한 「마음의 상처」, 그리고 씻어도 씻어낼 수 없는 「죄책감」(「나는 면할 수 없는 죄인이 되어」)를 벗어나는 모습으로 닫힌다 결말은 설득력을 가진다.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 '실화'였는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은 없다. 다만, 『세계 문학 속의 『마이히메』(2009)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 남은 인생을 다시 살아, 이 독서를 역동적인 독서에 연결해 주었으면 했습니다.(★㉖)」

 鷗外의 딸이었던 코호리 안이가 『마이히메』의 엘리스라고 확정하지 않을 때까지도, 「독일 유학 시대의 연인이 아닌가 생각되는 [중략] 여자의 사진과 편지를 전부 일괄으로 죽는다 전 자신의 눈앞에서 어머니에게 소각시켰다”라고 하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㉗)를 쓴 적이 있어, “마이히메”가 “실화”이든 없든, 아이까지 마련한 연인을 견살해 그렇게 까지 심각한 삶의 선택을 한 청년의 「원한」이야말로 주제인 「마이히메」를 읽는 경우에는, 그 남자가 그 「사후」의 시간을 사는 가운데, 어떤 식으로 「과거 을 끌어올까”로 상상력을 넓히는 것은 독서하는 인간에게 부과된 영원한 과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은 '제스처 라이프'의 주인공은 오오타 토요타로와 같이 20세 전후의 젊음으로 '비연'(=조선인 위안부와의 뭉치 사이의 교정과 그 있을 수 없는 끝)의 기억을 끌어당겨 전후의 일본 그렇다면 아무래도 안락함으로 나이를 거듭할 수 없고, 미국으로 옮겨 살고 나서도, 「양녀」를 키웠을 때로, 성적 관계를 가지는 여성이 나타나도, 결코 결혼을 입으로 하는 것은 없는 채 언젠가 '노경'에 들어가려고 한다.

 이 「고향을 떠난 퇴역군인」(九三頁)의 흐트러진 모습이, 나에게는, 전혀 타인사가 아니고, 그런 소설을 「삼십대 전반」의 남성이 썼다고 하는 것은, 실로 경탄한다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모리요우 외가 「마이히메」를 「세이곤의 항구」로 끝내지 않고, 주인공의 만년까지 붓을 진행하고 있으면,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허리에 즈돈과 울리는 독후감이 압도적 이다.

 주인공(벤자민 하타라고 불린다)은, 중년을 지나고 교제하기 시작한 여성에게, 그 「양녀」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 비평받는다――「당신은, 그녀를, 전에 상처 입었는가 배신한 사람처럼, 바라는 것은 뭐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도 되도록, 거의 죄의 의식으로 접하고 있다.」(칠일 페이지)

 이 까다로운 비평은 한층 더 "그것은 상대가 누구이든 절대로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에게는 말야"라고 계속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속죄"를 위해 "양녀"를 끌기로 했다 그렇다고 말할 뿐의 주인공을, 교제중인 여성(메리·번즈)은, 어딘가에서 갖고 남아 있다. 「당신은 정말로 모르는 사람, [중략]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요.」 (38 일).

 그러나, 언제나 유학처에서 '비애'를 경험하고자 하고, 또 파견된 전지에서 '여자의 지원자'와의 사이에 비애를 경험하고 싶다고, '늙은 남자'는 누구라도, 소사는 「벤자민 하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오타 토요타로의 경우에는 베를린의 '크로스텔 거리', 벤자민 하타의 경우에는 '버마 전선', 차이가 있어도 '트라우마'와 '오브 세션'과 깊게 연결되어 있는 곳이 누구에게 이다. 거기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 '과거의 잔잔함'은 결코 몸에서 사라지지 않고, 진심으로도 멀어지는 일이 없다.

 그리고 과거 버마 전선에서 뭉치 사이의 '사랑'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살아 버린 벤자민은, 늙어도, 그 그녀와의 과거를 상징하는 '검은 폭넓은 천'(245페이지)을 후생대사 계속 가고있다. 게다가 그 '천'을 전재 고아로 한국에서 받은 '양녀'가 '옷장의 옻칠한 상자 속'에서 찾아낸다는 자연스러운 에피소드가 말해지고 있다. 전지에서 견살하게 한 '쿠테' Kkutaeh라는 이름의 조선인 여성의 '유품'과 같은 '검은 천'을 '써니'라는 '부산에서 받은 소녀'가 확실히 모른다. 이다.

 내가 '제스처 라이프'를 읽으면서, 코호리 안노가 쓴 鷗外晩年의 에피소드를 상기한 것은, 이 「검은 천」이라고 하는 「심볼」을 접한 순간이었다.

 한때 일본군 장교였던 벤자민 하타가 전지에 있고, 무심코 「그녀의 나라의 말」(255쪽)에서 친하게 만난 조선인 여성의 추억이 전후의 일본에 있어도 , 이주 후의 미국에 있어도, 그에게는 붙잡은 것이다. '검은 천'은 그 '심볼'이었던 셈이다. 그것이 어떤 상징이었는지, 자세한 곳은 종명이 되어 버리므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 누구나 노령을 맞이하면 수많은 '비밀'(수많은 '유물')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칭을 올린 전 위안부 하르모니와의 만남을 받아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찬네 리였지만, 이 「일본인을 자칭하는 노인」을 조형한 것으로, 처음으로 이런 종류를 보지 않는다 ‘위안부 소설’을 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재패니즈'라든지 '코리안'이라든가를 빼놓은, 말하자면 '남자 밖에 쓸 수 없는 문학'의 하나인 것이다.

 타무라 야스지로나 후루야마 고려웅이 좀 더 오래 살아서 이것을 읽는 것이 있었다면 뭔가 해 준 것 같은 감각을 맛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일곱, 일본어라는 복류수 - 폴 윤의 『스노우 헌터즈』

 그런데, 코리안 아메리칸의 작가가, 코리안을 등장시키는 소설을 영어로 쓰려고 할 때, 「일본어」에 어떠한 역할을 다루지 않는 것에는, 초지를 관철할 수 없다는 공통 양해가 코리안・아메리칸 작가들 가운데 있었다고 해, 그 또 다른 예로서 지금까지 다루어 온, 소위 준1세의 작가(출생지는 한국)와는 달리, 이미 '2세'에 속하는 폴 윤 (1980년, NYC 태생)의 『스노우 헌터즈』를 마지막으로 봐 두자.

 라고 하는 것도 1980년, 미국 태생의 폴 윤이, 반도로부터 브라질에 이주한 코리안을 주인공으로 해 그린 것 자체가 이색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이 끝났을 무렵」, 브라질에 건너온 「반공 포로」의 한사람을 주인공으로 해, 일제 시대(주인공은 1929년의 태생)부터 브라질(아마 산토스라고 생각되는 미나토마치) 이주 후까지, 어떠한 형태로 일본어와의 접촉을 끊는다 일이 없었다(포로 수용소에서는 영어와의 접촉이 농후했지만) 혼자서 설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찬네 리가 30세대에서 미국 거주 코리아계의 전 일본군 병사를 거론한 것처럼, 폴 윤도 또 작가로부터 하면 아버지(경우에 따라서는 할아버지)의 세대에 해당한다. 조선인의 과거를 '재창조'하려는 시도로서 문학창조에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소 난폭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만일 일본어를 습득했다고 해도, 그것은 외국어로 배우지 않는 한, 몸에 붙을 리가 없는 세대의 코리안」이 「그 운용 능력 어쨌든, 「국어로서의 일본어」를 익히지 않고 살기 어려웠던 세대의 코리안」을 가까이에 느끼기 위한 문학이라고도 부르고 싶어지는 「이민 문학」의 한 형식을 갖췄다 작품인 것이다.

 극히 시적 서정에 넘치는 작품이므로 플롯만을 쫓는 것은 어색한 생각이지만, 부득이하다.

조선전쟁에 '북의 병사'로 징수된 공폭으로 대가 괴멸한 뒤 연합군 측 포로수용소에 신체를 구속받는다. 일제 시대에는 빈곤에 시달리고 거의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던 주인공(=요한)은 오히려 수용소 속에서 “미국인의 젊은 간호사”――p. 4)가 말하는 영어 쪽이 계속 친숙한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옷을 갈아 입는 셔츠와 몇 개의 바지를 입은 배낭과 [브라질에 도착한 후] 거주지와 고용원의 편지를 일통"(동전) 들고 단신 브라질에 건너는 것이다. 도중 선원 속에는 한국인이 섞여 있었다(그들은 군속으로서 '일본해군'에 소속되어 몇몇 해전을 경험하고 있었다. , 막상 배를 내려 부두에 발을 댔다고 했더니 더 이상 한국어를 할 상대는 없었다. 배 속에서 간단한 포르투갈어를 가르치고 있던 정도였다(p. 8).

 그리고 그가 향한 것은, 미나토마치에 사는 「키요시」라는 이름의 일본인으로, 재단사였다.

 브라질로 향하기 전에, 그는 "귀국" repatriation의 의지가 있는지 한 번만 확인되었다 (p. 11)하지만, "북"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브라질 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는 우선 일본인을 돌보도록 지시받은 것이었다.

 편지에 쓰여진 번지를 찾는 동안 걸어가자 「일본어로 창문에 붙여 종이가 된 가게」(p. 9)가 있어 그것이 목적지였다. 1954년의 일이다.

 가게를 들여다 보면, 남국답게 셔츠 한 장을 입은 만큼의 동양인이 「「열고 있어」라고 일본어로 말해 왔다」인데, 대답을 하려고 해도, 일본어는 「먼 기억 속을 떠다니는 언어 '밖에 없었다 (p. 14).

 결과적으로 요한은 키요시에서 조금씩 재단에 관여하거나 포르투갈어의 기본 용어를 가르치는데, 대화는 필요 최소한으로, 그래도 "일종의 친밀감"(p. 31)이 태어났다. 했다.

 브라질의 항구 마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나날 중에도, 러시아(소연방)의 연해주에 가까운 눈이 많은 조선 북부에서 보낸 소년 시절의 추억, 포로 수용소에서의 추억 등이 요한의 뇌리 떠나지 않는다.

 때때로 브라질에 오자마자 알게 된 선원이 말을 걸어 한국어를 할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요한은 그 한국인 선원들로부터 "도쿄와 오사카 공장에서 옷 원단을 운반하고있다"라는 것, 선원 중 한 명은 "아들이 두 명, 딸이 혼자 있고 아내는 일본인으로 호텔의 세탁계를 하고 있다”라는 것 등을 알게 된다(p. 69). 일본을 거점해 살고 있는 코리안이 일본의 패전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 등, 요한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첫 귀였을지도 모른다.

 

8, 기향자들

 그러나 그런 요한이었지만, 포르투갈어로 말하는 것에도 익숙해져 브라질 여성과 관계를 가지거나 할 기회도 둘러싸게 되지만, 놀라운 일이지만, 키요시가 급사해 요한 하지만 가게 뒤를 이은 후 일본어는 그때보다 질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한은, 마을의 교회에 가끔 출입하고 있었지만, 키요시의 사후에 교회의 용무원을 하고 있는 「물고기【루비:페이셰】」의 이름으로 알려진 남자로부터, 키요시가 비치고 있는 낡은 사진을 보인다. 낡은 농원 앞에서 「일본인의 남녀나 아이」가 서 있는 집합 사진으로, 그 농원은, 「주인이 죽은 뒤, 빈 집이 되어 있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의 시기에 는 수용소의 일부로도 사용되고 있었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p. 109).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조선이나 대만의 주민도 사냥하면서) 제2차 대전을 싸운 일본인이, 브라질에서는 「적국민」으로서 수용되고 있었다고 하는 것 등, 이것 또 요한에게 있어서는 첫귀였을 것이다 .

 그리고 한층 더 「물고기【루비:페이셰】」는, 키요시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을 굳건히 하고 있어, 그것을 요한에게 내밀어 말하는 것이었다――「그는 제2차 대전에도 종군 하고 [중략] 군의이었어. "(p. 109)

 제2차 대전기에 해안지대의 추축국민(및 추축국계시민)의 강제수용이 브라질에서 행해진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한 그들이 항구마을 근처에 고립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하게 근거할지 어떨지, 조금 이상하다(북미의 독자는,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전전에 이주한 일본인 이민이 당시 브라질 사회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따로 하여 제2차 대전 기간 중에 격리되어야 했던 일본인이 '탈주자'라 불리는 경우 있을 수 있는지, 거기도 모른다. 그야말로 일본인 이민사회의 안팎에서 '병역 거부자'가 섞여 있다는 소문은 있었을 것이며, 그와는 별도로 '전병사=재향군인'이 브라질에서 첩보활동을 가고 있다는 소문이 브라질인 사이에는 퍼져 있을 가능성도 있다.

 키요시가 죽은 뒤에 브라질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는 전제가 있어야 이러한 키요시의 전력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요한과 키요시는 그야말로 '탈주자=기향자'로서의 경력을 유대하며, 키요시의 사후에 더욱 깊게 연결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스노우 헌터스'는 키요시가 죽은 후반부에 들어가고 나서 점점 '영어로 쓰여진 브라질 코리안 문학'이라는 틀에 맞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초기 단계의 '탈북자'였던 요한 (포로 수용소에서는 '북쪽 사람' northerner라고 불렸다)이 그런 그라면 '탈주자'라고 소문 되고 있던 기요시 속에 벌써부터의 분신을 봐 버리는 것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그 파급효과로서 요한은 문득 키요시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거기에서 고구마 하는 식에 “그가 태어나 [징병될 때까지] 20년간 살았던 향리의 가을”(p. 162)이 생각나거나 “아버지가 소작인을 하고 있던 집 대가가 나가사키에서 조선을 하고 있던 일본인이었다”(p. 134)라는 기억이 되살아나거나, 그는 언제밖에 “일본” 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국인의 선원으로부터, 일본에서 일본 여성과 가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친구가 죽었다고 들었더니, 「그 부인은 지금도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것일까」(p. 164)라고, 그게 너무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한때 키요시가 사용했던 방에 가끔 다리를 넣고 싶은 기분이 된 요한은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책을 '파라파라 넘겨보거나 하기도 했다'의 것이었다.



모험이었다. 그들은 일본어였지만, 그는 더 이상 단어를 잊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부는 읽을 수 없었다. (p. 163)



 이런 요한은, 급사한 선원의 친구의 아내에게 「한 번만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p. 164)라고 하기 때문에, 그는, 일본어의 읽고 쓰기가 어느 정도는 생겼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시대의 공교육이 생각할 만큼은 풀리지 못한 것을, 브라질의 일본인 이민이나, 한국계의 선원은 자력으로 빼앗겼다는 것이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요한에도 연인이 나타나, 계속 손을 붙이지 않은 채로 하고 있던 키요시의 방도 예쁘게 정리되어 버리지만, 브라질에 왔을 무렵, 아직 아이였던 딸(=비아)이, 요한의 앞에 나타났다 단지이다. 형과 둘이서 부랑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그녀들을 키요시는 귀여워하고 있었다.

 요한과 비아를 연결한 것은 키요시였다.

 그리고 비아와 친해져 가는 가운데 요한은 키요시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브라질에 온 해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밤, 키요시에게 몸을 흔들어 눈이 낳았다. 잠들면서 외침을 들고 있었던 것 같지만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했다. 눈을 뜨더라도 시야가 흐릿해 눈은 빛을 잃고 있었다. 시가는 젖었다. 키요시는 양손으로 껴안고 그를 들어 올렸다. 욕조에 물을 뿌리고 가게에서 발을 얹는 받침대를 운반해 요한의 몸에 온수를 걸어 등을 문질러 주었다. 그는 목욕 속에서 양 무릎을 잡고 키요시에게서 계속되는 채로 가려고 했다. (p. 180)

포르투갈어와 일본어로만 연결되어 있던 키요시와 요한이, 포르투갈어로 어쩔 수 없는 교회의 용무원의 「물고기【루비:페이셰】」나 비아를 통해, 한층 더 연결을 깊게 해, 키요시라고 하는 일본인의 기억 하지만, 브라질의 항구 마을 속에서, 호소보소토이지만, 느슨한 따뜻함과 함께 뿌리를 내려간다.


9, 어권과 문학

 포스트 콜로니얼 비평이 없었던 것 중에서도 가장 큰 공적은 「영문학」이나 「일본 문학」(「국문학」이라고 하는 명칭의 낡음함을 제외하고)이라고 하는 개념 그 자체의 유통 기한이 만료된 것을 밝혀 한 일에 있다.

 원래 영어로 쓰여져도 미국에서 태어난 문학은 「미문학」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관례가 제2차 대전 후에는 정착하고 있었지만, 그것이야말로 구영령(인도나 필리핀 등 의 아시아 국가, 남아이나 나이지리아 등의 아프리카 국가, 캐나다나 중미·카리브 지역의 국가)로부터 차례차례로 등장하는 거인들을 포섭할 수 있는 범주로서는 「영어권【루비: 앵글로폰】문학」이라는 명칭을 이용한다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앵글로 아이리쉬의 문학도 '영문학'이라는 범주에는 맞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어권만큼의 광역성을 갖지 않을 때까지도 카리브해와 남미 북부, 남태평양과 인도양의 섬 학부에 영토를 갖고 구식민지에서도 프랑스어가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랑스어 문학에는 「프랑스어권【루비:프랑코폰】문학」, 브라질에 더해, 1974년의 카네이션 혁명 후에 독립을 완수한 아프리카의 앙골라나 모산비크 등을 포함한 「포르투갈어권【루비:루조포니아 "문학"이라는 명칭에도 타당성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사 자체가 재작성될 가능성이 열려 왔다는 역사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어권」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구식민지 지역에 「종주국의 언어」가 정착한 퍼짐의 것이며, 그 퍼짐은, 「영국의 판도」의 크기 음, 거의 대응합니다. 즉, 「어권」이라는 말은, 「제국」의 명칭과의 친화성이 높게 된다.

 다만, 「외지 순례」를 쓰면서 생각한 것은, 「일본어권」은, 반드시 제국 일본의 판도에 걸리는 것은 아니고, 남북미의 일본인 이주지 또한 「일본어권」의 「 비행지 '라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는 세대교체와 함께 일본어의 사용범위가 국한되게 되고, 오히려 이민 제2세대가 문학창작에 도전한다고 해도 영어나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본어권의 일익을 하고 있던 일본인 거주지의 「공통어」(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어 마지리의 그것을 「콜로니아어」의 이름으로 부른다)의 울림이나 향기가 스며들어 있다. 그야말로 카렌 테이 야마시타의 '브라질마루' Basil-Maru(1992)에는 포르투갈어권인 브라질의 한 구석에서 일본인 커뮤니티를 형성해 일본어권 특유의 언어 생활과 문화 활동에도 열심인 한사람의 모습이, 영어를 이용해, 즐거움에 그려져 있다(★㉙).

 즉 '어권'이라는 단어는 원래 '그 언어가 말하고 있다'(-phone)를 의미하는 것으로, '영어권【루비: 앵글로폰】문학’이나 ‘프랑스어권【루비: 프랑코폰 ] 문학은 대부분이 "전 제국의 언어"로 쓰여진다고는 해도, 반대로 출신지의 "모국어"를 묻는 노동 이민으로서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백성은 , 그 「모어(적인 것)」를 「국어」로서 인정하고 있는 국가가 있든 없든, 해당하는 「어권」의 구성원인 것이다. '어권'이라는 용어는 서기 형태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언어권」language sphere라고 하는 의미로.

 그렇게 생각하면, 남북아메리카의 코리안 작가들이 영어나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로 쓰고, 구 소연방의 「고려인【루비:코료사람】」이 러시아어로 쓰고, 무엇보다 재일 코리안의 작가가 일본어로 쓰는 풍부한 작품군은 한국=조선어로 쓰여 있지 않다고 해서 “한국=조선=고려어권【루비:콜레아노폰】문학”의 이름으로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쓰여지는 언어와 작중의 발화와 사고를 뒷받침하는 언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현대문학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상에서 폴윤까지 한반도에 출소를 가진 작가들의 작품군은 무슨 말로 쓰려고 '한국=조선=고려어권[루비:콜레아노폰]문학'의 범주에 맞는데, 오히려, 그들은 모두, 어쨌든의 형태로 「일본어권【루비:재패노폰】」의 확산을 배경으로 한 것뿐이다.

 「어권」의 팽창이나 수축이, 단순히 「제국」의 팽창과 수축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 보다 대규모의 인구 이동을 배경으로 하는 세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단 하나의 언어」로 쓰여진 문학작품은 특정한 '어권'이 아니라 수많은 '어권'의 모습으로 삶을 되찾고 있는 한사람의 모습을 그린다는 사명을 지기 시작하고 있다.

 단편집 『한때는 해안』에 들어간 단편은 제주도에서 현재 그 명칭문제로 분쟁이 있는 일본해=동해 주변을 무대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고, 등장인물도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등장하지만, 이것을 바꿔 말하면, 바로 「조선어권과 일본어권이 중합하는 지역」의 이야기가 영어(광복후의 한국에 주둔해, 한국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미국의 언어 )로 쓰여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스노우 헌터즈』는 폴 윤에게는 한층 더 포르투갈어권을까지 시야에 넣은 신경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㉚).



10, 결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화살 앞, 2002년의 브라질 체재기에 소개된 영상 작가의 오카무라 아츠시씨가, 1990년대에 찍기 위한 영상의 하나를 사용해, 2017년 에 완성된 『브라질의 하라보지』 Haraboji no Brasil(2017; 개정판 2019)이라는 작품을 일본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말하자면, 2002년에 오카무라씨를 소개된 것은 상파울루 대학에서의 집중 강의의 타이틀이 「우라시마 타로와 일본」이었다는 것을 들었던 지인이, 오카무라씨의 「향수는 꿈 속에서」(1998) 속에, 전후는, 한 번은 귀국했지만, 향리의 가고시마에서, 자신은 「우라시마 타로」라고 느끼고, 뼈를 메우는 것은 브라질 밖에 없다고 마음에 정해 은둔자와 같은 생활을 보내지고 있던 「니시사이치(★㉛)」라고 ​​하는 쪽이, 거기에는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오카무라 씨가 일본에 왔을 때도 몇 번이나 눈에 띄고 『브라질의 하라보지』를 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의 우요【루비:요시미】에 이끌려 온 것이다.

 실은, 이 영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반도 출신의 남성이 브라질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그야말로 『스노우 헌터즈』에 그려진 요한 이전에도, 반도 출신자는 일본 선적 외, 다양한 화물선의 선원으로서 브라질에도 발을 넣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의 경위를 거쳐 브라질에 뿌리내리게 된 쪽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세뇨르 미타'의 이름으로 일본계인 사이에 알려져 브라질과 한국 사이에 국교가 연결되게 된 이후 장승호(장승호)의 이름으로 한국 측에서도 선구 이민'으로 인정된 것 같다.

1907년생으로, 먹기에 곤란해 오사카에 나와 보았지만, 가난함에서 피할 수 없었고, 반도 시대부터 「구세군」에 신뢰를 보였던 그는, 오사카의 메소지스트파 교회 일본인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도백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26년의 도백 후, 1938년에 미타가에 사위양자에 들어가(거주지는 상파울루 근교의 쥬키리·밀린), 일단은 조선어를 잊어 버릴 것 같았다고도 말한다 . 그야말로 1950년대 후반에 힘들었던 '반공포로'의 코리안과는 일본어로 말했다는 정도다. 그러나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이 늘어난 1960년대 이후에는 그러한 신이민과의 교제도 늘어나 그는 바로 '한국어권', '일본어권', '포르투갈어권'의 하자까지 매일을 보내 , 손자들에게는 맛있는 사과를 먹게 하고 싶다고 영상의 끝쪽에서는 말해지고 있다.

 브라질 남부 산타 카탈리나주의 산 조아킨에서 사과 농가를 열고 대성공을 거둔 일본계 소문이 '세뇨르 미타'의 귀에도 닿았을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먹는데도 고생을 하고, 자신은 먹지 않아도 아이에게는 음식을 대어 준 고향의 어머니를 입으로 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세뇨르 미타」만의 꿈이 그것이었던 것이다 .

 이 영상은, 1996년에 촬영되어, 그 4년 후에 「세뇨르 미타」는 타계되었다고 한다.

 과연, 이 남성의 평생을 누군가가 소설에 쓴다면, 누가 무슨 말로 쓰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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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과연비 보조금·기반연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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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①  니시나리히코 「브라질 일본인 문학과 「카보쿠로」문제」 「문학사를 읽는다 ➇ 「이 시대」의 끝」이케다 히로시 책임 편집(임팩트 출판회, 2007), 69-89페이지.

②  니시나리히코(편역) 『세계 이디시 단편선』(이와나미 문고, 2018)

③  베르나르도 쿠신스키 『K. 사라진 딸을 쫓아」코다카 토네코 번역(하나덴샤, 2015)

④  니시나리히코 「동유럽계 유대인에 대한 단장/「일기 2015보다」 「레니쿠사 ⑥ 특집:러시아・중동유럽」도쿄대학 문학부 현대문예론연구실, 2016, 56-61페이지.

⑤  Yi Sáng, Olho de corvo, organização, notas e tradução por Yung Jung Im, revisão poética por Haroldo de Campos, Editora Perspectiva, 1999. 나이에 브라질에 건너 상파울루 대학에서 아롤드 디 캄포스의 아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문학의 번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포르투갈어 번역의 『우瞰図【루비:우칸즈】』는 2001년에 한국에서 번역문학상 대상이 되었다는 것. 임씨는 현재 상파울루대학 동양어학부에서 교편을 취하고 있다. 덧붙여서 동학부에서는 아랍어, 아르메니아어, 중국어, 코리아어, 히브리어, 일본어, 러시아어가 각각의 학과를 가지고 있다.

⑥  이하는, 전 게시의 소매에 게재된 소개문의 전역이다.



이 상자(1910-37)는 현대 코리안 문학 가운데 가장 라디칼한 실험자이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 그는 고기를 넘어뜨린 '미니멀리즘'을 선취하는 문체를 구사하면서, 그는 동양판의 다다 구성주의자(쿠르트·슈비타스류의)에 그치지 않고, 특히 이야기(라고 한다) 보다 산문 텍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를 보면, 몇 가지 면에서, 문장을 접는 언어 유희의 점에서 가트루드·스타인, 언어를 무대로까지 붙잡는 점에서는 베켓에 가깝다. 북미의 번역자, W.K.루우가 1995년에 말한 바에 의하면, 그 「반항 정신」에 있어서, 그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은 아직 다른 코리안 작가에 의해서는 쓰여지지 않았다 라는 것.

산문 텍스트에 한 경우, 희망이 없는 대기를 그린 베켓이나, 일상을 부조리로 옮긴 카프카의 이름을 들면 서양의 독자에게는 핀과 올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이에 머무르지 않는 매우 수수께끼 특이성이 있다. 극단적인 냉혹함. 게다가 그것이 유아성을 띠고 있다. 선악을 초월한 간소한 동양적 조용함. 그것이 연마된 표피를 하고, 하늘의 푸른색과 비슷한 마치 면도의 강철 같다. 그리고 이야기 텍스트에도 시에도 죽음의 충동이 관통되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충동적인 자살 욕망이다. 시인의 실생활에서는 그것이 27세의 젊음에서의 앙절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통(숨쉬는 것 같은)이나 사랑(해결되지 않는다)이나 유머(블랙으로 시니컬, 자기 아이로니적이고 가시가 있다)를 낳는 수수께끼인 핵심을 이루는 것은, 여자--천사화되고/거나 악마 화된 여자――이다. 그리고 그는 이들을 얽히고, 풀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착착시킨다. 언어의 달인, 그리고 문자 언어의 달인이었던 이 상자는 음성면에서는 그 언어에 갖추어지는 놀이의 가능성, 그리고 서기언어의 시각성의 면에서는 한자와 한글의 혼합으로부터 생겨, 다의성을 보기 흉하다 까지 파고들었다.

괴테적인 세계적 보편성을 목표로 '시그노스(서명) 서서'의 기획이 이 극히 이색의 시인=산문가를 브라질의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어려워진 것은, 일단 포르투갈어와 한국어에 능숙한 편 역자인 윤준임씨의 시적 감성, 그리고 언어간을 왕복하는 번역실천을 무시한 그 번역업의 가끔이다. 李箱――일명, 세뇨르 카이샤 'Caixa'는, 그 범명으로 하고, 어쨌든 모노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지만, 그 배후로부터는, 혼자의 반=작자가 까마귀의 눈빛과 함께 이쪽을 엿보이고 있다 . 맹목적인 진공에서 방출되는 것 같은 눈빛. 그리고 이 반=작자는 어지러워지고 한 사람을 어지럽히는 에크리츄르와 실존의 미니멀리즘을 낳는다. 언어로 구성된 복잡한 괴기한 거울 중 하나가 하나의 생명을 희생해서 지나갔다. (니시나리 히코역)



⑦  『李箱作品集成』 崔真碩訳 (작품사, 2006)

⑧  마츠이 타로 “우츠로 배”니시나리히코·호소카와 슈헤이편(마츠노샤, 2010), “먼 목소리”니시나리히코·호소카와 슈헤이편(마츠나사, 2012)

⑨  니시 나리히코 『외지 순례/“월경적” 일본어 문학론(미스즈 서방, 2018)

⑩  구로카와 창(편) 『〈외지〉의 일본어 문학』전 3권(신주쿠 서방, 1996)

⑪  카와무라 미나토 「이향의 쇼와 문학――「만슈」와 근대 일본」(이와나미 신서, 1990)

⑫  마스야마 로 “구와라니의 숲의 이야기·마스야마 로 작품집” 카와무라 미나토편(임팩트 출판회, 2013)

⑬  카와무라 미나토 「하포네스 이민촌 이야기」(임팩트 출판회, 2019)

⑭  김환기(엮은이), 브라질(Brazil)코리안 문학선집, 도서출판 포고사, 2013. "("이문화"[논문편] 14호, 호세이대학 국제문화학부 국제문화정보학회, 2013, 7-13페이지)의 한국어판이 게재되어 있다(pp. 495-501 )

⑮  김환기(엮은이), 브라질(Argentine)코리안 문학선집, 도서출판 포고사, 2013.

16  김환기(엮은이), 브라질(Brazil)코리안 문학선집[시/소설], p. 477.

17  Paul Yoon, Snow Hunters, Simon & Schuster, 2013. 다음 인용문은 본문에 동서의 페이지 수를 기입한다.

18  폴 윤 “한때는 기시” 후지이 광역(시라미즈샤, 2014)

19  『빙의하는 과거――아시아계 미국문학에 있어서의 트라우마·기억·재생』 고바야시 후쿠코 감수(금성당, 2014). 동논집의 '서문' 속에서 고바야시는 이런 식으로 썼다. 편에 의한 「트라우마에의 탐구」에 의하면, 트라우마란, 현실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에 대해서, 사건 그 자체로부터 오는 상흔뿐만 아니라, 그 기억을 말로서 좀처럼 타인에게 전하기 어렵다 일로부터 오는 「이중의 상처」를 가져오게 되고, 또한, 그 상흔이 타타마 민족 전체에 내려가는 것 같은 경우에는, 당사자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로부터 세대로 민족간에서 집단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부분이 출신지에서의 피난처 전쟁이나 분쟁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고국을 떠나, 고난의 도근 후에, 간신히 침착한 이주처의 미국에서도 많거나 적은 차별이나 편견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압박적인 사건에 괴로워하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가진 아시아계 미국인의 작가들이 최근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작품을 통해 과거에 자민족이 휘말린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 을 계속 쓰고 있는 것도 당연히 수긍한다」(***페이지).

20  엘레인·김 “아시아계 미국 문학”(우에키 테루요·야마모토 히데유키·신유키 츠키역, 세계 사상사, 2002)

21  찬네리 『마지막 장소에서』(다카하시 지카코역, 신쵸샤) 이하의 인용은 타카하시 지카코역을 이용해, 그때마다 페이지수를 기입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아래의 영어 버전을 참조하여 원어를 보충했다 (Chang-rae Lee, A Gesture Life, Granta Books, 2001.)

22  테레사 학경차 『딕테/한국계 미국인 여성 아티스트에 의한 자전적 에크리츄르』 이케우치 야스코 번역(청도사, 2003)

23  Nora Okja Keller, Comfort Woman, Penguin Books, 16 페이지.

24  니시나리히코 「여자들의 하도모드」, 전 게시물 『외지 순례』 233~242페이지.

25  스키 김 『통역』(국중 준이역, 슈에이샤, 2007)

26  니시나리히코 『세계 문학 속 『마이히메』』(미스즈 서방, 2009), 136페이지.

27  오호리 안즈 「만년의 아버지」(이와나미 문고, 1981), 173페이지.

28  일본으로부터의 브라질 이민자에게 「징병 기피자」가 섞여 있던 것은, 이시카와 타츠조가 「창창」(「제일부」1935)에서 크게 다룬 적도 있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한층 더 오기 타치유의 「노로에스테 철도」(1985)가 거론한 오키나와 출신인 가사도마루 이민의 사례도 합쳐서 「노이민과 황태자」라는 논고를 쓴 적이 있다 (『가슴사와기의 독외』인문서원, 2013). 또 앞서 '외지 순례'에 담은 '외지의 일본어 문학/브라질의 일본어 문학 거점을 시야에 넣어'에서도 일본인 이민 배경의 다양성을 거론했다.

29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일본계 3세, 카렌 테이 야마시타는 브라질(및 일본계 사회)에서의 경험을 담은 '열대우림의 그분에게' Through the Arc of the Rain Forest(1990) 카자마 켄지역, 신시오샤, 2014)에 취재한 '브라질마루' Brazil-Maru(1992)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30  폴 윤의 '산들' Mountains(2017)에 수록된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는 러시아 연해주가 무대가 되어 있어 '러시아어권' '중국어권' 등이 새롭게 존재감 를 나타내고 있어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확산을 조차 뛰어넘어 간다.

31  오카무라 아츠시 「잊을 수 없는 일본인 이민」(항구의 사람, 2013)에는 “니시사시【루비:사이치】”를 오카무라씨에게 소개한 미조베 토미오씨를 다룬 장에, “ 서쪽"에 대한 언급이 있다.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변신자의 일본인」이 「독자적인 「우라시마 타로」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계속 만들고 있다」(75페이지)라는 소문이, 오카무라씨를 「 서쪽으로 향했다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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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リアン・アメリカン文学と日本語の場所

西成彦  Nishi Masahiko


一、サンパウロ市ボン・レチーロ地区

 たった三ヶ月ではあったが、南半球は秋から冬にかけてにあたる五月から七月まで、サンパウロ大学の日本文学科に客員講師として招かれ、「浦島太郎と日本」というテーマで授業を担当させていただいたのが、二〇〇二年。ちょうど日韓ワールドカップが開催されていた時期に重なった。そして、なんとブラジルとドイツとの決勝戦は、旅先のブエノスアイレスのホテルで観戦する(爆買いするブラジル人観光客に混じって)ことになった。

 そんな南米滞在期に驚きとともに受け止めた知見の数は、何本手があっても数えきれないくらいだが、日韓ワールドカップで韓国が三位になったこともあり、サンパウロ市内の韓国人のプレゼンスを実感したというのは、そのひとつだった。

かつて「日本人街」と呼ばれ、ハイウェイの上にかかった陸橋がいまでも「大阪橋」の名で呼ばれているリベルダージ一帯も、いまでは「東洋人街」と呼称も改められ、中華料理や焼き肉ハウスなどがあったし、台湾人が経営する菓子パン屋があったり、中国人が鉄板の上で焼きそばを焼いて、屋台気分を味わえたり、にぎやかさはいまだ健在である。

 しかし、知人から聞いたところによると、李承晩時代の一九五九年に外交協定が結ばれ、朴正煕クーデタ後の一九六三年には、貿易協定に加えて、移民協定もまた結ばれて以降、続々と集まり始めた韓国系移民の多くは、サンパウロ市内でもリベルダージではなく、ルース駅北側のボン・レチーロ地区に住みついたとのことだった。

そこは二〇世紀に入ってから急増した東欧系ユダヤ人がサンパウロにも流れこみ、いわゆる「スウェット・ショップ」を稼働させて、ブラジル国内の服飾産業の拠点を形成した地区で、いまでもウェディングドレス専門店などが軒を連ねる華やかな街路を形成している。

二〇世紀ブラジル・モダニズムの巨匠で、一九二八年の「食人宣言」Manifesto Antropófagoでも有名なオズヴァルド・ヂ・アンドラーヂの記念館もそこにあり、まさにサンパウロのモダニズムを支えたのが、ボン・レチーロ地区だった。要するに、そこはニューヨークで言えば、ロワー・イーストサイドやグリニッジ・ヴィレッジ、あるいはハーレム地区に相当する場所だった。

しかし、そんな東欧系ユダヤ人が現地で成功をおさめ、世代交代を進めると、彼らはペルディーセス区の高級住宅地に移り住み、そこに新しくやって来た韓国人が、ユダヤ人の経営する「スウェット・ショップ」で働くようになったとのことだ。その結果として、ボン・レチーロには、コシャー料理を食べさせるユダヤ・レストランもあれば、コリアン・レストランも並ぶという現状がある。

そして、その二〇〇二年以降、何度かサンパウロを訪れているが、そのたびにボン・レチーロには足を運ぶようにしている。そして、ここ十年ほどは韓国系のブラジル人が経営する店ではたらいているのは、ボリビア人の労働者だったりするとのことで、ニューヨークのユダヤ人街がいつの間にかヒスパニックの集住地区になっていったのと同じだなと思った。


二、「セニョール・カイーシャ」

 その二〇〇二年のサンパウロ滞在期、私は渡航費滞在費に関しては国際交流基金の支援を受けていたので、宿舎も地下鉄(緑線)のブリガデイロ駅徒歩三分のウィークリー・マンションを手配していただいていたのだが、私はブラジルのポーランド人やユダヤ人に関しても興味を持っていた(★①)から、その方面をさぐっているうちに、サンパウロには「ペルスペクティヴァ」というユダヤ系の出版社があって、その出店がまさにブリガデイロ街の坂の途中にあったのだった。

 さっそく出かけてみたら、垂涎ものの本がずらりと並び、ブラジル一のユダヤ系出版社の名にふさわしい本屋だとすぐに納得した。そこでみつけた『イディッシュ短篇』O conto idiche(一九六六)は、一九世紀イディッシュ文学の巨匠から、ノーベル賞作家のアイザック・バシェヴィス・シンガー、そしてブラジルを代表するイディッシュ作家、ロザ・パラトニクまで、おもだったイディッシュ作家は網羅しつつも、ブラジル色は出すように工夫された魅力的な一冊だった。後に私が『世界イディッシュ短篇選』(★②岩波文庫、二〇一八)を編むときに念頭に置いた何冊かのうちの一冊は、これだった。

 しかも、同アンソロジーには、パラトニクとも親しかったポーランド出身のイディッシュ作家、メイル・クチンスキが長い序文を寄せており、じつはこのクチンスキに関しては、その娘がブラジルの治安警察に拘束され、「失踪者」desaparecidaとなる運命をたどったことがあり、その娘を家族挙げて助けようと奔走したさまが、作家の息子であるベルナルド・クシンスキーによって「ルポルタージュ」に描かれて大きな話題となり、これは『K.消えた娘を追って』(★③)として日本語にも訳されている。たとえば、アムネスティ・インターナショナルなどを通じた人権運動が築き上げた国際的なネットワークの産物とも言えるが、何度かのサンパウロ滞在中にお目にかかったことのある訳者の小高利根子さんから同書を送っていただいたときには、その偶然に驚きもしたのだった(★④)。

 しかし、その日、それ以上に驚いたことがある。ペルスペクティヴァの出版物のなかにイサン(李箱)の『カラスの眼(★⑤)』Olho de corvo(一九九九)なる一冊が含まれていたのである。これには、ブラジルが誇る現代詩人、アロルド・ヂ・カンポスが序文を書き(★⑥)、日帝占領期のモダニスト詩人として、あの李箱の代表作が集められて一冊になっていたのだった。日本でもその後、李真碩訳(★⑦)として紹介される李箱の「烏観図」が「カラスの眼」と訳されていたというわけだ。

 そして、この出会いから間もなくして、ボン・レチーロ地区における東欧ユダヤ系移民と韓国系移民の深いつながりを私なりに実感することになったのだった。

 私は現地の日系人にもその話をしたが、彼らはこのことにおおむね無関心で、すでにブラジル人の信頼を勝ち得ていた(「ガランチード」garantidoという形容詞が広く用いられた)日系人が、新参者の韓国人のために「保証人」garanteになってやったことがあるというような、やや上から目線の韓国人像を感じることができた程度だった。


三、南米のジャパニーズとコリアン

 その後、私はブラジル滞在期にお目にかかることのあった作家・松井太郎さんの主要作品を日本の出版社から刊行できるよう、細川周平さんとともに、国内を奔走したりもして、『うつろ舟』と『遠い声』の二冊(★⑧)を世に出すことができた。それも松井太郎さんの生前に(氏は二〇一七年に他界された。享年九九歳)。

 しかし、他方で後の『外地巡礼/「越境的」日本語文学論』(★⑨)でひと区切りつけることのできたプロジェクトの一環で、「南北アメリカ移住地の文学」と「日帝植民地の文学」をともに視野に入れることで、『〈外地〉の日本語文学選』全三巻(★⑩)で編者の黒川創さんが示された「〈外地〉の日本語文学」という枠組みの拡張を試みていた私は、ブラジルやアルゼンチンをはじめとする中南米諸国の韓国人についても、機会があれば、ぜひ知っておきたいとひそかに考えていたのだった。

そんななか、『異郷の昭和文学――「満州」と近代日本』(★⑪)以降、ポストコロニアル批評をふまえた日本語文学研究を牽引してこられ、一九八〇年代に韓国の東亜大学校で日本文学を講じられていたころから培われていた韓国とのつながりを有効に活用されて、在日朝鮮人の文学なども積極的に論じてこられた川村湊さんが、二〇一一年度から一三年度まで進めてこられた「南米日系移民および韓国系移民による文学の総合的研究」(科研費補助金・基盤研究⒞)の成果の一端として、日本では『増山朗作品集・グワラニーの森の物語』(★⑫)、『ハポネス移民村物語』(★⑬)などがあるが、これとは別に、同プロジェクトで研究協力者をつとめられた金煥基【るび:キムファンギ】(韓国東国大学校)さんが編者となって『ブラジル・コリアン文学選集』브라질(Brazil)코리안 문학선집(★⑭)と『アルゼンチン・コリアン文学選集』브라질(Argentine)코리안 문학선집(★⑮)が全四巻というボリュームで刊行された。詩や小説から随筆・評論まで網羅した手の行き届いたもので、そのようなものが韓国政府の助成を得て刊行される韓国と、松井太郎さんのような傑出した文才を持つ移民作家の作品選集を出版市場に乗せて刊行するしか、移民文学の紹介機会が得られない日本とのあいだの差は、なかなか埋められない感じがした。日本学術振興会が、こうした国境を越えた共同研究を助成してくれたというだけでも御の字とするしかないのだろうか。

じつは『ブラジル・コリアン文学選集』の「詩・小説」の巻には、金煥基さんの解説文が掲載されていて、ざっと読ませてもらったが、それまで韓国人のブラジル移住が始まったのは、一九六三年以降だと聞かされていた私にとって目を疑うような事実が、そこには書かれていたのである――「一九五三年に韓国戦争が終わったころ、釈放された反共捕虜五五名(中国人五名を含む)のブラジル行き」(★⑯)と。

そして、まさにこうして目を開かれた直後に、米国の韓国系作家、ポール・ユーンの『スノウ・ハンターズ(★⑰)』Snow Hunters(二〇一三)をたまたま手に取った。

ポール・ユーンと言えば、いまでは初期短篇集『かつては岸』Once the Shore(二〇〇九)が藤井光訳(★⑱)で読めるが、当時は、いきなり『スノウ・ハンターズ』に手を延ばすしかなかった。

きわめて切り詰めた言葉の魔力に魅せられるようにして一気に読み通したのが、二〇一四年の二月だったと思う。カーニバルの時期にブラジルを訪問した、ドバイ経由のエミレツ航空の機内であった。

本論では、この『スノウ・ハンターズ』の魅力の一端にも迫りたいと思うのだが、まずはポール・ユーンが登場する以前のコリアン・アメリカン作家たちを、要点をおさえながらふり返っておこうと思う。


四、コリアン・アメリカン文学の勢い

 現在の韓流小説ブームに比べることはできないとしても、二〇〇〇年代に入ってから、日本では、アジア系アメリカ文学の一翼を担うコリアン・アメリカンの文学への関心が少しずつではあるが高まってきたと言える。小林富久子監修の『憑依する過去――アジア系アメリカ文学におけるトラウマ・記憶・再生(★⑲)』(二〇一四)は代表的なもので、日系作家の場合には、第二次大戦期の収容体験や、原爆被災体験、韓国系であれば、日本軍慰安婦体験から朝鮮戦争体験全般、さらにはロス暴動での被害体験などの「トラウマ的な記憶」に対して文学がどのような「再生」を準備していったのかを論じた読み応えのある論文が並んでいて、多くのことをそこから勉強させていただいた。

 日本におけるアジア系アメリカ文学に対する関心は、UCバークレーで教鞭をとられていたエレイン・キムの『アジア系アメリカ文学(★⑳)』Asian American Literature, An Itroductio to the Writings and Their Social Context(一九八二)の翻訳刊行(二〇〇二)が、ひとつの目安となるが、同じ二〇〇二年には、一九六三年のソウル生まれで、三歳のときに家族で米国に移住された、一九九五年に『ネイティヴ・スピーカー』でデビューされたチャンネ・リー(李昌來)の『ジェスチャー・ライフ(★㉑)』A Gesture Life(一九九九)が日本に紹介され、一九五一年のプサン生まれで、朴正熙クーデタにあったあと、国を離れ、家族でハワイなどを転々とした後に、一九六四年にベイエリアに移り住み、UCバークレーでは、映画理論を学ぶなどして、映像作家としても期待されていたテレサ・ハッキョン・チャが三一歳での急死直前に残した『ディクテ(★㉒)』Dictee(一九八二)の翻訳刊行(二〇〇三)がこれにつづいた。

コリアン・アメリカン文学が、金學順【るび:キムハクスン】の名乗り以降、フェミニストのあいだでは国際的な論点を提供することになった「日本軍慰安婦問題」に関して、テレサ・ハッキョン・チャはとくに何も語らないまま亡くなったが、その諸作品を受け止める読者の多くは、テレサ・ハッキョン・チャの提示した問題と「日本軍慰安婦問題」との密接な関連性に注目した。

また『ジェスチャー・ライフ』は、日本軍兵士として従軍したさきで、朝鮮人軍慰安婦と心を通わせながら、彼女の命を守ってやれなかった過去を背負いながら、渡米した男を主人公にしていたほか、論集『憑依する過去』のなかでは、コリアン・アメリカンとして、いちはやく、「日本軍慰安婦問題」をとりあげたノラ・オッジャ・ケラーの『慰安婦★㉓』Comfort Woman(一九九八)もまた大きく取り上げられており、「日本軍慰安婦問題」をめぐる日韓の葛藤は、米国在住のコリアン系市民だけでなく、作家たちの深いコミットをも促し、その一部は、日本にも紹介されつつあったのだ。

ただ、とくに『ディクテ』に関しては、そのフェミニズムに透かし見ることのできるポストコロニアルな観点に注目しつつ、一文を記したことがある(★㉔)ので、そのなかでテレサが、「満洲國」の間島で学校教師をしていた時代の母親(ホ・ヒョンスン)がハングルで書き残した当時の「日誌」の周囲でざわめいていたであろう日本語や中国語を想起する上で、テレサ自身が、韓国=朝鮮語を「母語」としながらも、フランス語を身につけた英語表現者であった事実との共鳴に注目したことだけ、ここでは紹介しておく。

というのは、二〇〇〇年代に日本で紹介されるに至ったコリアン・アメリカンの表現者にとって、日本語は「祖国の隣国の言語」以上でも以下でもないはずなのだが、彼ら彼女らが親世代との関わりを掘り下げていこうとすれば、「外国語」とは言い切れない「日本語」の位置(=「地位」というべきか)を無視することなどできないのだ。

ノラ・オッジャ・ケラーの『慰安婦』を読みながら、ひとりの日本人として、体が凍りついたのは、たとえば次の箇所だ。


朝鮮人には言葉の才能がある、植民地にされて支配を受けるために生れてきたようなものだと日本人は言う。自分の無能が愉快でたまらないんだね。恐れることも、学ぶべきものも何もないってわけ。でもわたしたちはおかげで救われたんだよ。何を話しても悟られないからね。とはいっても、連中はそんなこと、屁とも思ってなかったんだろうけど。(p. 16)


ところが、主人公の母が、かつて軍慰安所で知り合った仲間のインドクは、「いいかい、お前たち、私の祖国も身体も侵略するな」と「朝鮮語と日本語で」思い切りわめきたて、結局、彼女は「串刺しにされた豚」のように「口から膣まで串を突っ込まれ」(pp. 20-21)て、みせしめのように殺されていったのだ。

主人公の母には、そんなインドクの亡霊(その朝鮮語使用と日本語使用)が、戦後も渡米後も、とりついて離れない。

しかし、この母は、何度も死ぬ思いをしながらも戦後まで生き延び、白人と結婚して、ハワイで子どもを育てることになる(一九六六年生まれの作者は、ドイツ人の父、韓国人の母とともに、三歳の時からハワイに移り住んだ)。そもそも日朝バイリンガルだった彼女が、解放後は、韓国語と英語の二言語をあやつりながら生き延びる。英語圏で公教育を受けた娘は、そんな母を母としていたわり、思いやりながら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それは、娘のベッカーにとっても針の筵を歩むような経験だった。

 作者がどこまで『ディクテ』を意識していたかどうかは別として、 『慰安婦』が物語っていることのひとつは、母と娘の言語遍歴だったと言えそうな気がする。何気なく英語で生活をする「アメリカ人」の背後でざわめいている「異言語」の影。

 ウィリアム・サロイアンであれ、ジョン・オカダであれ、シンシア・オジックであれ、エドウィジ・ダンチカであれ、米国の移民系作家は、英語を用いながらも、こうした多言語的な環境を描く手段としての英語の活用法に磨きをかける。単一言語使用で何不自由なく生きている人々は、そのみずからの「無能が愉快でたまらない」としか考えられない、そんなお気楽な人々に向けて、複雑な言語遍歴を生き(かされ)てきた人々は、試行錯誤をくりかえしながら、彼ら彼女ら自身の生を語ろうとする。スキ・キム(一九七〇年韓国生まれで、八三年に米国へ移住)の『通訳★㉕』The Interpreter(二〇〇三)なども、まさにそのような小説だったと言えるだろう。


五、植民地主義と養子縁組

 ということで、以下、チャンネ・リーの『ジェスチャー・ライフ』を、そこで日本語にあてがわれた役割に注目しながら、読んでみることにする。

チャンネ・リー自身は、精神科医の父に連れられて、三歳で渡米したとのことだが、小説には、「七歳」(新潮社、三二頁)のとき、孤児院から米国にもらわれていった「プサン市生まれの女の子」(八六頁)が登場する。これがどうやら一九六〇年代のことであるようなので、この「戦災孤児」の「少女」は、性別が違いはするが、作家のチェンネ・リーの「分身」のような扱いを受けているとも言えそうだ。

 ただ、作家は、家族ぐるみで渡米したのに対して、少女の方は、ひとりぼっちで、しかも米国では「信頼される日本人」として知られる独身の中年男にもらわれてゆく形をとっている。同じ韓国人の渡米でも、あまりにも境遇は対照的なのだ。

 しかも、この「養子縁組」の事例は、「養子縁組」なるものが社会的に広く認められている米国においても、かなりの「異例」であったらしく、何より「独身の男性が養子を認められるのはきわめてまれ」(八五頁)だったし、「女の子には母親の存在が何より大切だ」(八六頁)と言われることが多いのに、そうした社会通念に反して、養父は「女の子がいいと言い張った」(同前)のだ。それこそ「養子縁組」の制度を「幼児虐待」のために利用したかと疑われかねない不穏な選択を、養父はみずから下し、社会もまたそれを容認してしまったわけだ。じつは、小説はこの「養父」を話者に据える一人称小説として書かれている。

 この血のつながらない父と娘は、「サニー」Sunny(それが養女に与えられた名前だ。「スニ」かもしれない)がまだ幼かった頃はうまくいっていたようで、「サニー」は養父の希望に応え、ピアノの稽古にも余念のない時期もあった。ところが、高校生になるころから次第に養父を避けるようになった彼女は、とうとう「あなたにはあたしが必要だった。でもその逆は、一度もなかった」(一一一頁)という捨て台詞を吐いて、家から出て行ってしまう。

 その後、彼女は大きなお腹をして戻ってきて、養父に中絶のためのサポートを求めたり、かと思えば、シングルマザーになって、ふたたび養父の手助けを求めにやってきたりで、最後には主人公も「おじいちゃん」気取りで「孫」に接するようになったりもするのだが、まずひとつには、「養子縁組」の物語として抜群に面白い作品だった。三〇歳代の男性が書いた小説だとは思えない老練さがある。

 ただ、この小説を「コリアン・アメリカンの文学」として読もうとするなら、ここで終わらせるわけにはいかない。

 一九六〇年代に合衆国にやってきて、「この国に留まる決心をし〔中略〕たときには私の国籍の問題はどこかにいってしま」(八頁)ったという小説の主人公は、まわりのアメリカ人からも「どうして日本に帰って余生を過ごそうと思わないのか」(二三頁)などと言われつつ、老境を迎えようとしている。ところが、じつは彼自身もまた、そもそもは「日本人の養子」として育てられた過去を持つ「コリアン」だった。

 かつて彼を「養子」として引き取ったのは、「ギアを製造する工場を営む子供のいない裕福な夫婦」(八四頁)だったが、もらわれてゆくまで彼が帰属していたのは「動物の皮をなめして脂肪を精製する集団」で、「日本人のように話し、暮らしていたから一見わからなかったかもしれないが、私たちのほとんどはコリアンだった」(同前)というのである。

 小説を読み進めると、彼はビルマ戦線の兵営で、朝鮮人慰安婦の女性と「子どものころ使っていた言葉」(二六四頁)を使って話をする場面さえある。要するに、米国にあっては、日本人・日系人の親子としてふつうに受けとめられている二人が、じつは「血」の上ではともに「コリアン」で、なおかつ「ジャパニーズ」としての見かけをかなぐり捨てようとはしないまま、いつしか何不足ない「米国人」として生きるようになっていく。

 「日系」も「韓国系」も「中国系」もない「アジア系」といった呼称が、過去の歴史的葛藤を乗り越え、集合的に「米国社会」に溶けこもうとしていた一九八〇年代から九〇年代初頭にかけての空気を深く吸収して育ったチャンネ・リーならではの「アジア系アメリカ人ぶり」が、この小説のなかでは野心的に試されていると言ってもいいのかもしれない。

 その後、東アジア地域での歴史認識をめぐる葛藤に呼応するようにして、「アジア系アメリカ人」のあいだに「亀裂」が生じ、今日に至っている米国で、またたとえば韓国で、この小説がどう読まれているのか、そこはきわめて興味深いところだが、いずれにしても「日系」であるか「韓国系」であるかどうかは、本人ほどには周囲が関心を抱かない、そういった米国社会の特徴を逆手に取った作品と捉える以外にないような気もする。

 ただ、次のような一節は、日本人として読めばじつに面白いのだが、韓国人も同じように面白がるものだろうか、そこは疑問だ。


一度、ベイエリアから来たという日本人の紳士に〔中略〕会った。〔中 略〕ずっと昔ハワイやカリフォルニアに移住した日本人がいたが、彼の祖父母もそうで、本人はアメリカで生まれていた。私たちは互いの存在を知って嬉しかったはずだ。それなのに思いもかけないぎごちなさが生まれた。人種も年齢も職業も似通っているのだから話すことがたくさんありそうなものだが、会話は変に滞りがちでぎくしゃくした。たがいが紹介されたときから、どうしていいかわからない瞬間があって、たとえば握手すべきなのかお辞儀をしたらいいのかとまどった。(二六頁)


いかにも「日系アメリカ文学」に出てきそうな場面だが、これを「韓国系アメリカ人」が書いたのだ。

ひょっとしたら、この小説は、ハワイ生まれの日系三世作家、ギャレット・ホンゴウ(一九五一年生まれ)に捧げられているから、「日系アメリカ文学」への「なりすまし」を公然と試みた「韓国系アメリカ文学」として読むべきなのかもしれない。


六、トラウマと物神

『ジェスチャー・ライフ』は、韓国系アメリカ人の若手作家が、コリアンの「女の志願者」female volunteer(一八二頁)を正面からとりあげたことで話題を呼んだ経緯があるのだが、今回、この側面について掘り下げることはしない。「若い頃、男女関係で傷ついた男」が、晩年に入ってなお、どこまで過去をひきずるものかを探ろうとした小説として、この作品を読みたいと思うからだ。前便で触れた「養女」を取るという人生の選択も過去の傷と深く結びついている。

 「訳者あとがき」にも書かれていることだが、「この本を読み終えて真っ先に思ったのは著者の若さだった。三十代前半の若さで、どうしてこういう本を書いたのだろう」(三九三頁)――これは、まさに同感である。

 私は森鷗外の『舞姫』(一八九〇)について本を一冊書いたことがあるが、あの小説を鷗外が書いたのは、まだ二〇代だったから、であればこそベルリンでの後味の悪い女性経験は、その生々しい「心の傷」、そして洗っても洗い流せそうにない「罪責感」(「我は免すべからぬ罪人なり」)をむきだしにする格好で閉じられる結末は説得力を持つ。その物語がどこまで「実話」であったかどうかに、確たる答えはない。ただ、『世界文学のなかの『舞姫』』(二〇〇九)のなかで、私は次のように書いた――「〔読者の〕皆さんには、一度は太田豊太郎になっていただき、その残った人生を生き直して、この読書を躍動的な読書につなげてもらえたらと思いました。(★㉖)」

 鷗外の娘であった小堀杏奴が、『舞姫』のエリスだと確定はしないまでも、「独逸留学時代の恋人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中略〕女の写真と手紙を全部一纏にして死ぬ前自分の眼前で母に焼却させた」という「母から聞いた話」(★㉗)を書いたことがあり、『舞姫』が「実話」であろうとなかろうと、子どもまで設けた恋人を見殺しにしてまで、重大な人生の選択をなした青年の「恨」こそが主題である『舞姫』を読む場合には、その男がその「事後」の時間を生きるなかで、どんなふうに「過去をひきずるか」へと想像力を広げることは、読書する人間に課された永遠の課題だと思ったのである。

 じつは『ジェスチャー・ライフ』の主人公は、太田豊太郎と同じく二〇歳前後の若さで「悲恋」(=朝鮮人慰安婦との束の間の交情と、そのあっけない終わり)の記憶をひきずり、戦後の日本では、どうしても安穏として年齢を重ねることはできず、米国に移り住んでからも、「養女」を育てたきりで、性的関係を持つ女性があらわれても、決して結婚を口にすることはないまま、いつしか「老境」に入ろうとしている。

 この「故郷を離れた退役軍人」(九三頁)のうらぶれた姿が、私には、まったく他人事ではないし、そんな小説を「三十代前半」の男性が書いたというのは、じつに驚嘆すべきことだと思う。それこそ森鷗外が『舞姫』を「セイゴンの港」で終わらせず、主人公の晩年にまで筆を進めていたら、こうなったかもしれないというような、腰にズドーンと響く読後感が圧倒的なのだ。

 主人公(ベンジャミン・ハタと呼ばれている)は、中年を過ぎてから交際しはじめた女性に、その「養女」に対する対し方について批評される――「あなたは、彼女を、前に傷つけたか裏切ったかした人のように、望むことはなんでもしなくちゃならないとでもいうように、ほとんど罪の意識で接している。」(七一頁)

 この手厳しい批評は、さらに「それは相手が誰であろうと絶対にいいことではないわ。とくに子どもにはね」とつづくのだが、それこそ「贖罪」のために「養女」をひきとることにしたとでも言わんばかりの主人公を、交際中の女性(メアリー・バーンズ)は、どこかで持て余している。「あなたは本当にはかり知れないひとね、〔中略〕あなたのような人には会ったことがないわ」 (三八一頁)と。

 しかし、べつに留学先で「悲恋」を経験していようといまいと、また派遣された戦地で「女の志願者」とのあいだに悲恋を経験していようといまいと、「老いた男」は誰だって、所詮は「ベンジャミン・ハタ」のようなものだという気がするのである。

 少なくとも、私はそう思う。

 太田豊太郎の場合には、ベルリンの「クロステル街」、ベンジャミン・ハタの場合には「ビルマ戦線」、と違いはあっても、「トラウマ」や「オブセッション」と深く結びついている場所が誰にでもある。そこからどれだけ遠く離れてはいても、その「過去の名残」は決して体から消えず、心からも遠ざかることがない。

 そして、かつてビルマ戦線で束の間の「恋」のまがい物を決定的に生きてしまったベンジャミンは、老いても、その彼女との過去を象徴する「黒い幅広い布」(二四五頁)を後生大事にしまいつづけている。しかも、その「布」を、戦災孤児として韓国からもらわれてきた「養女」が「クローゼットの漆塗りの箱のなか」から見つけ出すという、さりげないエピソードが語られている。戦地で見殺しにした「クテ」Kkutaehという名の朝鮮人女性の「遺品」のような「黒い布」を、「サニー」という「プサンからもらわれてきた少女」が、わけもわからず手にするのだ。

 私が『ジェスチャー・ライフ』を読みながら、小堀杏奴の書いた鷗外晩年のエピソードを思い起こしたのは、この「黒い布」という「シンボル」に触れた瞬間だった。

 かつて日本軍将校であったベンジャミン・ハタが、戦地にあって、思わず「彼女の国の言葉」(二五五頁)で親しく通じ合った朝鮮人女性の思い出が、戦後の日本にあっても、移住後の米国にあっても、彼にはつきまとったのだ。「黒い布」は、その「シンボル」だったわけだ。それがどういうシンボルだったか、詳しいところは種明かしになってしまうので、ここでは触れない。

 人間誰しも、老齢を迎えると、数多くの「秘密」(数々の「遺物」)を抱えこんで生きるものである。韓国で名乗りを上げた元慰安婦ハルモニとの出会いを受けて小説を構想し始めたチャンネ・リーではあったが、この「日本人を名乗る老人」を造形したことで、はじめてこの類を見ない「慰安婦小説」を書き上げることができたのだ。

 これは「ジャパニーズ」だとか「コリアン」だとかを抜きにした、言わば「男にしか書けない文学」のひとつなのである。

 田村泰次郎や古山高麗雄が、もう少し長生きして、これを読むことがあったとしたら、何だか、してやられたような感覚を味わ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


七、日本語という伏流水

 ところで、コリアン・アメリカンの作家が、コリアンを登場させる小説を英語で書こうとするときに、「日本語」になんらかの役割をあてがわないことには、初志を貫徹できないという共通了解がコリアン・アメリカンの作家たちのなかにあったとして、そのもうひとつの例として、これまで取り上げてきた、いわゆる準一世の作家(出生地は韓国)とは違って、すでに「二世」に属するポール・ユーン(一九八〇年、NYC生まれ)の『スノウ・ハンターズ』を最後にみておこう。

 というのも一九八〇年、米国生まれのポール・ユーンが、半島からブラジルに移住したコリアンを主人公にして描いたこと自体が異色なだけでなく、「韓国戦争が終わったころ」、ブラジルに渡った「反共捕虜」のひとりを主人公とし、日帝時代(主人公は一九二九年の生まれ)からブラジル(おそらくサントスと思われる港町)移住後まで、何らかの形で日本語との接触を断つことのなかった(捕虜収容所では英語との接触が濃厚だったが)ひとりとして設定されているという意味でも、注目に値するからだ。なにより、チャンネ・リーが三〇歳代で、米国在住のコリア系の元日本軍兵士を取り上げたように、ポール・ユーンもまた、作家からすれば、父親(場合によっては祖父)の世代にあたる朝鮮人の過去を「再創造」する試みとしての文学創造に挑戦している。

 そして、これは多少乱暴な言い方になるかもしれないが、「かりに日本語を習得していたとしても、それは外国語として学ばないかぎり、身につくはずがない世代のコリアン」が「その運用能力がどうであれ、「国語としての日本語」を身につけずに生きることは困難であった世代のコリアン」を身近に感じ取るための文学とでも呼びたくなる「移民文学」の一形式を備えた作品なのである。

 きわめて詩的叙情にあふれる作品なのでプロットだけを追うのは味気ない気がするが、やむをえない。

朝鮮戦争に「北の兵士」として徴収された空爆で隊が壊滅した後に、連合軍側の捕虜収容所に身柄を拘束される。日帝時代には貧困に苦しめられ、ほとんど学校にも通わなかった主人公(=ヨーハン)は、むしろ収容所のなかで「アメリカ人の若いナース」――p. 4)の話す英語の方がずっと身近な言語であったかもしれない。

 そんな彼が「着替えのシャツと数本のズボンをつめこんだリュックと、〔ブラジルに着いてからの〕居住先と雇用願の手紙を一通」(同前)携えて、単身ブラジルに渡るのだ。道中、船員のなかには韓国人が混じっていた(彼らは軍属として「日本海軍」に所属し、いくつもの海戦を経験していた――p. 7)ので、意志疎通に不自由はしなかったが、いざ船を降りて、桟橋に足をふみだしたとたん、もはや韓国語を話す相手はいなかった。船のなかで簡単なポルトガル語を教わっていた程度だった(p. 8)。

 そして彼が向かったのは、港町に住む「キヨシ」という名前の日本人で、仕立屋だった。

 ブラジルに向かう前、彼は「帰国」repatriationの意思があるかどうかを一度だけ確認された(p. 11)が、「北」に身寄りのない彼は「ブラジル行き」を選んだのだった。そして、ブラジルではまず日本人の世話になるようにと指示されたのだった。

 手紙に書かれた番地をさがしながら歩いていくと、「日本語で窓に貼り紙のされた店」(p. 9)があって、それが目的地だった。一九五四年のことだ。

 店を覗きこむと、南国らしくシャツ一枚をまとっただけの東洋人が「「開いてるよ」と日本語で話しかけてきた」のだが、返事をしようとしても、日本語は「遠い記憶のなかを漂っているような言語」でしかなかった(p. 14)。

 結果的に、ヨーハンは、キヨシから少しずつ仕立てに関わることや、ポルトガル語の基本用語を教わるのだが、会話は必要最小限で、それでも「ある種の親密感」(p. 31)が生まれていったのだった。

 ブラジルの港町での生活に慣れていく日々のなかにも、ロシア(ソ連邦)の沿海州に近い雪の多い朝鮮北部で過ごした少年時代の思い出、捕虜収容所での思い出などが、ヨーハンの脳裏から離れない。

 時おり、ブラジルに来るさいに知り合った船員が、声をかけてくれて、韓国語を話す機会がなくなったわけではなかった。そして、ヨーハンは、その韓国人の船員から「東京や大阪の工場から洋服生地を運んできている」ということや、船員の一人は「息子が二人、娘が一人いて、妻は日本人でホテルの洗濯係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などを知ることになる(p. 69)。日本を拠点して生きているコリアンが日本の敗戦後もなお存在することなど、ヨーハンにとってはこれが初耳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

 

八、棄郷者たち

 しかし、そんなヨーハンではあったが、ポルトガル語で話すことにも慣れ、ブラジル女性と関係を持ったりする機会もめぐってくるようになるのだが、驚くべきことであるが、キヨシが急死してヨーハンが店のあとを継いだ後、日本語はそれまで以上に質感を持つようになってくるのだ。

 ヨーハンは、町の教会に時々出入りしていたのだが、キヨシの死後に教会の用務員をしている「魚【るび:ペイシェ】」の名前で知られる男から、キヨシが写っている古い写真を見せられる。古い農園の前で「日本人の男女や子ども」が立っている集合写真で、その農園は、「持ち主が死んだあと、空き家になっていた」のが、「第二次世界大戦の時期には収容所の一部」としても用いられていたことがあるというのだ(p. 109)。

 アジア太平洋地域で(朝鮮や台湾の住民をも狩り立てながら)第二次大戦を戦った日本人が、ブラジルでは「敵国民」として収容されていたということなど、これまたヨーハンにとっては初耳だったろう。

 そして、さらに「魚【るび:ペイシェ】」は、キヨシの写った一枚の写真をたいせつにしていて、それをヨーハンに差し出して言うのだった――「彼は第二次大戦にも従軍して〔中略〕軍医だったんだよ。〔中略〕彼が来たころ、私はまだ子供でね。町のみんなは日本人のことを「脱走者」defectorsだって呼んでたな。」(p. 109)

 第二次大戦期に、海岸地帯の枢軸国民(および枢軸国系市民)の強制収容がブラジルで行われたのは確かだが、そうした彼らが港町の近くに隔離されていたという話がどこまで真実に基づくかどうか、すこしあやしい(北米の読者は、それを少しもふしぎには思わないだろう)。

 また戦前に移住した日本人移民が、当時、ブラジル社会に十分適応できていたかどうかは別にして、第二次大戦期間中に隔離さ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日本人が「脱走者」と呼ばれる場合がありえたのかどうか、そこも分からない。それこそ、日本人移民社会の内外で、なかには「兵役拒否者」が混じているという噂はあっただろう(★㉘)し、それとは別に「元兵士=在郷軍人」がブラジルで諜報活動を行っているというような噂がブラジル人のあいだには広まっていた可能性もある。

 キヨシが亡くなった後にブラジル人から聞いた話だという前提があってこそ、こうしたキヨシの前歴の不確かさが、かえってリアリティを生み出している。ヨーハンとキヨシとは、それこそ「脱走者=棄郷者」としての経歴を絆として、キヨシの死後にいっそう深く結びつくようになるのだ。

 いずれにせよ、『スノウ・ハンターズ』は、キヨシが亡くなった後半部分に入ってから、ますます「英語で書かれたブラジル・コリアン文学」という枠に収まらなくなっていく。

 そして、そのことは初期段階の「脱北者」であったヨーハン(捕虜収容所では「北の人」northernerと呼ばれていた)が、そんな彼であったればこそ、「脱走者」と噂されていたキヨシのなかにみずからの分身を見てしまうこととも深く結びついている。

 その波及効果として、ヨーハンは、ふとキヨシの声を思い出すようなときがあった。すると、そこから芋づる式に「彼が生まれ、〔徴兵されるまで〕二十年間暮らした郷里の秋」(p. 162)のことが思い出されたり、「父親が小作人をしていた家の大家が長崎で造船をしていた日本人だった」(p. 134)という記憶が蘇えったり、彼はいつしか「日本」なるものから自由でいられないことを思い知らされるのである。

 また韓国人の船員から、日本で日本女性と家庭を持っているという友人が亡くなったと聞けば聞いたで、「その奥さんは今でもホテルで働いているのだろうか」(p. 164)と、そのことがとても気になる。

 そして、かつてキヨシが使っていた部屋に時々足をふみ入れたい気持ちになったヨーハンは、机の上に積みあげられていた本を「パラパラめくってみたりすることもあった」のだった。


冒険ものだった。それらは日本語だったが、彼はもう単語を忘れ始めていたから、全部は読めなかった。(p. 163)


 こんなヨーハンは、急死した船員の友人の妻に「一度だけ手紙を書いたことがあった」(p. 164)というから、彼は、日本語の読み書きがある程度はできたということなのだろう。それは日帝時代の公教育が思うほどはなしとげられなかったことを、ブラジルの日本人移民や、韓国系の船員は自力でなしとげたということでもあったのかもしれない。

 そんなヨーハンにも恋人があらわれ、ずっと手を付けないままにしていたキヨシの部屋もきれいに片づけられてしまうが、ブラジルに来たころ、まだ子どもだった娘(=ビア)が、ヨーハンの前にあらわれたのだ。兄と二人で浮浪児のような暮らしをしていた彼女らをキヨシは、かわいがってやっていた。

 ヨーハンとビアを結びつけたのはキヨシだった。

 そしてビアと親しくなっていくなかで、ヨーハンはキヨシとともに過ごした時間を思い出す。


  ブラジルに来た年のことだと思うが、ある晩、キヨシに体を揺さぶられて目が醒めた。眠りながら叫びをあげていたらしいが自分では気づかなかった。目をあけても視野がぼやけて、目は輝きを失っていた。寝巻は濡れていた。キヨシは両手で抱きかかえ、彼を持ち上げた。湯船に水を張り、店から足を載せる台を運んできて、ヨーハンの体にお湯をかけ、背中をこすってくれた。彼は湯船のなかで両ひざを抱え、キヨシからずっとされるがままでいようとした。(p. 180)


ポルトガル語と日本語でだけつながっていたキヨシとヨーハンが、ポルトガル語でしかつながれない教会の用務員の「魚【るび:ペイシェ】」やビアを介して、いっそうつながりを深め、キヨシという日本人の記憶が、ブラジルの港町のなかで、ほそぼそとだが、しかしゆるぎない温かみとともに根を下ろしていく。


九、語圏と文学

 ポストコロニアル批評がなしとげたことのなかでも最も大きな功績は「英文学」や「日本文学」(「国文学」という名称の古めかしさは別として)といった概念そのものの賞味期限が切れたことを明らかにしたことにある。

 そもそも英語で書かれてはいても米国で生まれた文学は「米文学」の名で呼ぶという慣例が第二次大戦後には定着しつつあったのだが、それこそ旧英領(インドやフィリピン他のアジア諸国、南アやナイジェリアなどのアフリカ諸国、カナダや中米・カリブ地域の諸国)から次々に登場する巨人たちを包摂できる範疇としては「英語圏【るび:アングロフォン】文学」という名称を用いるしかなかった。それこそアングロ・アイリッシュの文学も「英文学」という範疇には収まりきらないのだった。

 そして、英語圏ほどの広域性を有さないまでも、カリブ海や南米北部、南太平洋やインド洋の島嶼部に領土を持ち、旧植民地でもフランス語が一定の影響力を行使しているフランス語文学には「フランス語圏【るび:フランコフォン】文学」、ブラジルに加えて、一九七四年のカーネーション革命後に独立を果たしたアフリカのアンゴラやモサンビークなどを含めた「ポルトガル語圏【るび:ルゾフォニア】文学」といった名称にも妥当性ばかりか、そうすることで文学史そのものが書き直される可能性が開かれてきたという歴史もある。

 しかし、ここで用いられている「語圏」という言葉は、基本的に旧植民地地域に「宗主国の言語」が定着した広がりのことであり、その広がりは、「英国の版図」の大きさに、ほぼ対応する。つまり、「語圏」という言葉は、「帝国」の名称との親和性が高いことになる。

 ただ、『外地巡礼』を書きながら思ったのは、「日本語圏」は、かならずしも帝国日本の版図にかぎられるわけではなく、南北アメリカの日本人移住地もまた「日本語圏」の「飛び地」だということだ。

 それらの地域では、世代交代とともに日本語の使用範囲が局限されることになるし、かりに移民第二世代が文学創作に挑むとしても英語やポルトガル語やスペイン語にすがるしかなくなっていく。しかし、そこには日本語圏の一翼をになっていた日本人居住地の「共通語」(ブラジルでは、ポルトガル語まじりのそれを「コロニア語」の名で呼ぶ)の響きや香りが染みついている。それこそカレン・テイ・ヤマシタの『ブラジル丸』Bazil-Maru(一九九二)には、ポルトガル語圏であるブラジルの片隅で日本人コミュニティーを形成して、日本語圏ならではの言語生活や文化活動にも熱心なひとびとの姿が、英語を用いて、たくみに描かれている(★㉙)。

 つまり「語圏」という言葉は、そもそも「その言語が話されている」(-phone)を意味するのであって、「英語圏【るび:アングロフォン】文学」や「フランス語圏【るび:フランコフォン】文学」は、大半が「元帝国の言語」で書かれるのだとはいえ、逆に、出身地の「母語(的なもの)」をたずさえた労働移民として世界に散らばったディアスポラの民は、その「母語(的なもの)」を「国語」として認定している国家があろうとなかろうと、該当する「語圏」の構成員なのである。「語圏」というタームは、書記形態を念頭に置くことなく使用できるのだ。たとえば「言語圏」language sphereというような意味で。

 そう考えれば、南北アメリカのコリアン作家たちが英語やスペイン語やポルトガル語で書き、旧ソ連邦の「高麗人【るび:コリョサラム】」がロシア語で書き、なにより在日コリアンの作家が日本語で書く豊かな作品群は、韓国=朝鮮語で書かれていないからといって「韓国=朝鮮=高麗語圏【るび:コレアノフォン】文学」の名でくくれないわけではない。

 書かれる言語と、作中の発話や思考を支えている言語が一致しないのが、現代文学の特徴のひとつなのである。

 そして、ここで李箱からポール・ユーンまで、朝鮮半島に出所を持つ作家たちの作品群は、何語で書かれようと「韓国=朝鮮=高麗語圏【るび:コレアノフォン】文学」の範疇に収まるし、それどころか、それらはすべて、なにがしかの形で「日本語圏【るび:ジャパノフォン】」の広がりを背景にしたものばかりなのである。

 「語圏」の膨張や収縮が、単に「帝国」の膨張と収縮だけでもはや説明がつかない、より大規模な人口移動を背景とする世の中が続いているいま、「たったひとつの言語」で書かれた文学作品は、特定の「語圏」ではなく、数々の「語圏」のあわいで生を紡いでいるひとびとの姿を描くという使命を負い始めている。

 短篇集『かつては岸』に収められた短篇は、済州島から、現在、その名称問題で紛争がある日本海=東海周辺を舞台にした作品が大半で、登場人物も韓国人や日本人が登場するが、これを言い換えれば、まさに「朝鮮語圏と日本語圏が重合する地域」の物語が、英語(光復後の韓国に駐留し、韓国戦争で中核的な役割を果たした米国の言語)で書かれたものだと言える。

 そして、『スノウ・ハンターズ』は、ポール・ユーンにとっては、さらにポルトガル語圏をまで視野に入れた新境地だったと言えるのだろう(★㉚)。


一〇、おわりに

 こんなことを考えている矢先、二〇〇二年のブラジル滞在期に紹介された映像作家の岡村淳さんが、一九九〇年代に撮りためた映像のひとつを使って、二〇一七年に完成された『ブラジルのハラボジ』Haraboji no Brasil(二〇一七;改訂版二〇一九)という作品を日本で観る機会があった。そういえば、二〇〇二年に岡村さんを紹介されたのは、サンパウロ大学での集中講義のタイトルが「浦島太郎と日本」であったことを聞き知った知人が、岡村さんの『郷愁は夢のなかで』(一九九八)のなかに、戦後は、一度は帰国したものの、郷里の鹿児島で、自分は「浦島太郎」だと感じ、骨を埋めるのはブラジルしかないと心に決めて隠遁者のような生活を送られていた「西佐一(★㉛)」という方が、そこには登場するからというのが理由だった。

 以来、岡村さんが日本に来られたさいにも何度かお目にかかり、『ブラジルのハラボジ』を観ることができたのも、そのときの友誼【るび:よしみ】に導かれてのことだ。

 じつは、この映画、タイトルからも分かるように、朝鮮半島出身の男性がブラジルで老後を過ごしているという、そのありのままの姿を描いたドキュメンタリーだ。

 それこそ『スノウ・ハンターズ』に描かれたヨーハン以前にも、半島出身者は日本船籍ほか、さまざまな貨物船の船員としてブラジルにも足をふみ入れていたといわれてはいたのだが、それとはべつの経緯を経て、ブラジルに根づくことになった方がいたということなのだった。

 その主人公は、「セニョール三田」の名前で日系人のあいだでは知られ、ブラジルと韓国のあいだに国交が結ばれるようになって以降、チャンスンホ(張昇浩)の名で、韓国の側からも「先駆移民」に認定されたようだ。

一九〇七年生まれで、食うに困って大阪に出てはみたものの、貧しさ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ず、半島時代から「救世軍」に信頼を寄せていた彼は、大阪のメソジスト派教会の日本人から誘いを受けて、渡伯を決めたとのことだ。そして、一九二六年の渡伯後、一九三八年に三田家に婿養子に入り(居住地はサンパウロ近郊のジュキェーリ・ミリン)、一旦は朝鮮語を忘れてしまいそうになったともいう。それこそ、一九五〇年代後半にすれちがった「反共捕虜」のコリアンとは日本語で話したというくらいだ。しかし、韓国からの移民の増えた一九六〇年代以降は、そうした新移民との付き合いも増え、彼はまさに「韓国語圏」「日本語圏」「ポルトガル語圏」のはざまで日々を送り、孫たちにはおいしいリンゴを食べさせてやりたいと映像の終わりの方では語られている。

 ブラジル南部のサンタ・カタリナ州のサン・ジョアキンでリンゴ農家を開いて大成功を収めた日系人の噂が、「セニョール三田」の耳にも届いたのだろう。

 生まれたときから食べるのにも苦労をし、自分は食べないでも子どもには食べ物をあてがってくれた故郷の母親のことを口にしては涙ぐむ「セニョール三田」ならではの夢がそれだったのだ。

 同映像は、一九九六年に撮影され、その四年後に「セニョール三田」は他界されたとのことだ。

 はたして、この男性の生涯をだれかが小説に書くとしたら、だれが何語で書くことになるのだろうか。


◆本研究は、科研費補助金・基盤研究⒞「比較植民地文学研究の新展開―「語圏」概念の有効性の検証」(二〇一五―一七年度)の研究成果の一部である。


西成彦「ブラジル日本人文学と「カボクロ」問題」『文学史を読みかえる➇「この時代」の終わり』池田浩士責任編集(インパクト出版会、二〇〇七)、六九―八九頁。

西成彦(編訳)『世界イディッシュ短篇選』(岩波文庫、二〇一八)

ベルナルド・クシンスキー『K.消えた娘を追って』小高利根子訳(花伝社、二〇一五)

西成彦「東欧系ユダヤ人についての断章/「日記2015より」『れにくさ⑥特集:ロシア・中東欧』東京大学文学部現代文芸論研究室、二〇一六、五六―六一頁。

Yi Sáng, Olho de corvo, organização, notas e tradução por Yung Jung Im, revisão poética por Haroldo de Campos, Editora Perspectiva, 1999. 同書の翻訳や注釈などに関わられたユンジュン・イム(パク)さんは、十歳でブラジルに渡り、サンパウロ大学でアロルド・ジ・カンポスの息子に出会ったのがきっかけとなって、韓国文学の翻訳を始めたのだという。ポルトガル語訳の『烏瞰図【るび:うかんず】』は、二〇〇一年に韓国で翻訳文学賞の対象になったとのこと。イムさんは、現在、サンパウロ大学東洋語学部で教鞭をとっておられる。ちなみに同学部ではアラビア語、アルメニア語、中国語、コリア語、ヘブライ語、日本語、ロシア語がそれぞれの学科を持っている。

以下は、前掲書の袖に掲載された紹介文の全訳である。


李箱(一九一〇―三七)は、現代コリアン文学のなかで最もラジカルな実験者である。詩も書き小説も書く彼は、肉をそぎ落とした「ミニマリズム」を先取りする文体を駆使しながら、彼は東洋版のダダ構成主義者(クルト・シュヴィッタース流の)にとどまらず、とくに物語(というよりも散文テキストと呼ぶ方がふさわしい)を見ると、いくつかの面で、文章をたたみかける言語遊戯の点でガートルード・スタイン、言語を無にまでおいつめる点ではベケットに近い。北米での翻訳者、W・K・ルウが一九九五年に語ったところによれば、その「反抗精神」において、その作品を凌駕する作品はいまだ他のコリアン作家によっては書かれていないとのこと。

散文テキストにかぎった場合、希望のない待機を描いたベケットや、日常を不条理へと移したカフカの名前を挙げれば西洋の読者にはピンとくるだろう。しかし、李箱はこれにとどまらない、きわめて謎めいた特異性がある。極端な冷酷さ。しかもそれが幼児性を帯びている。善悪を超越した簡素な東洋的静謐さ。それが磨き上げられた表皮をなし、空の青みにも似た、あたかも剃刀の鋼のようだ。そして物語テキストにも詩にも死の衝動が貫かれている。より正確にいえば、衝動的な自殺願望だ。詩人の実人生ではそれが27歳の若さでの夭折という形をとることになった。そして苦痛(息づまるような)や愛(解決されない)やユーモア(ブラックでシニカル、自己アイロニー的で棘のある)を生み出す謎めいた中核をなすのは、女――天使化され、かつ/もしくは悪魔化された女――である。そして彼はこれらを絡みあわせ、解きほぐし、そしてふたたび丁寧に錯綜させる。言語の達人、そして文字言語の達人であった李箱は、音声面ではその言語に備わる遊びの可能性、そして書記言語の視覚性の面では漢字とハングルの混合から生じ、多義性をみごとなまでに掘りおこした。

ゲーテ的な世界的普遍性をめざし『シグノス(記号)叢書』の企画がこのきわめて異色の詩人=散文家をブラジルの読者に紹介するはこびとなったのは、ひとえにポルトガル語と韓国語に堪能な編訳者のユンジュン・イムさんの詩的感性、そして言語間を往復する翻訳実践をなしとげたその訳業のたまものである。李箱――別名、セニョール・カイーシャ’Caixa’は、その渾名からして、なにやらモノ的な雰囲気を感じさせるが、その背後からは、ひとりの反=作者がカラスのまなざしとともにこちらを窺っている。盲目の真空から放たれるかのようなまなざし。そしてこの反=作者は、ずたずたになり、かつひとをずたずたにもするエクリチュールと実存のミニマリズムを産み出す。言語からなる複雑怪奇な鏡のひとつひとつが、ひとつの命を犠牲にして通り過ぎていった。(西成彦訳)


『李箱作品集成』崔真碩訳(作品社、二〇〇六)

松井太郎『うつろ舟』西成彦・細川周平編(松籟社、二〇一〇)、『遠い声』西成彦・細川周平編(松籟社、二〇一二)

西成彦『外地巡礼/「越境的」日本語文学論』(みすず書房、二〇一八)

黒川創(編)『〈外地〉の日本語文学』全三巻(新宿書房、一九九六)

川村湊『異郷の昭和文学――「満州」と近代日本』(岩波新書、一九九〇)

増山朗『グワラニーの森の物語・増山朗作品集』川村湊編(インパクト出版会、二〇一三)

川村湊『ハポネス移民村物語』(インパクト出版会、二〇一九)

김환기(엮은이), 브라질(Brazil)코리안 문학선집, 도서출판 포고사, 2013. なお同書の【수필/평론/동화/콩트】の巻には、川村湊の「もうひとつの“ラテンアメリカ文学”」(『異文化』[論文編]十四号、法政大学国際文化学部国際文化情報学会、二〇一三、七―一三頁)の韓国語版が掲載されている(pp. 495-501)

김환기(엮은이), 브라질(Argentine)코리안 문학선집, 도서출판 포고사, 2013.

16 김환기(엮은이), 브라질(Brazil)코리안 문학선집【시/소설】, p. 477.

17 Paul Yoon, Snow Hunters, Simon & Schuster, 2013. 以下の引用は、本文中に同書からのページ数を記入する。

18 ポール・ユーン『かつては岸』藤井光訳(白水社、二〇一四)

19 『憑依する過去――アジア系アメリカ文学におけるトラウマ・記憶・再生』小林富久子監修(金星堂、二〇一四)。同論集の「序文」のなかで、小林は、こんなふうに書いている――「元来は精神医学の用語にすぎなかったこのトラウマという概念を文学の読みに適用するのに大きく貢献したキャシー・カルース編による『トラウマへの探究』によると、トラウマとは、現実に起きた悲劇的な出来事の犠牲者に対して、出来事そのものからくる傷痕だけでなく、その記憶を言葉としてなかなか他人に伝えがたいことからくる「二重の傷」をもたらすことになり、さらに、その傷痕がたあたま民族全体に降りかかるようなものである場合には、当事者個人に留まらず、世代から世代へと民族間で集団的に引き継がれるものになるという。そう考えれば、多くが出身地での血なまぐさい戦争や紛争から逃れるべく故国を離れ、苦難の道筋の後、ようやく落ち着いた移住先の米国でも多かれ少なかれ差別や偏見からくる様々な圧迫的な出来事に悩まされるといった社会的・歴史的背景をもつアジア系アメリカ人の作家たちが、最近の若手に至るまで、自らの作品を通して延々と過去に自民族が巻き込まれたトラウマ的な出来事を題材とする作品を書き続けているのも当然と頷ける」(***頁)。

20 エレイン・キム『アジア系アメリカ文学』(植木照代・山本秀幸・申幸月訳、世界思想社、二〇〇二)

21 チャンネ・リー『最後の場所で』(高橋茅香子訳、新潮社)以下の引用はた高橋茅香子訳を用い、そのつどページ数を記入する。ただし、部分的に以下の英語版を参照して、原語を補った(Chang-rae Lee, A Gesture Life, Granta Books, 2001.)

22 テレサ・ハッキョン・チャ『ディクテ/韓国系アメリカ人女性アーティストによる自伝的エクリチュール』池内靖子訳(青土社、二〇〇三)

23 Nora Okja Keller, Comfort Woman, Penguin Books, p. 16. 以下の引用は、本文中に同書からのページ数を記入する。

24 西成彦「女たちのへどもど」、前掲『外地巡礼』二三三〜二四二頁。

25 スキ・キム『通訳』(國重純二訳、集英社、二〇〇七)

26 西成彦『世界文学のなかの『舞姫』』(みすず書房、二〇〇九)、一三六頁。

27 小堀杏奴『晩年の父』(岩波文庫、一九八一)、一七三頁。

28 日本からのブラジル移民に「徴兵忌避者」が混じっていたことは、石川達三が『蒼氓』(「第一部」一九三五)で大きく取り上げたこともあって広く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が、これにさらに大城立裕の『ノロエステ鉄道』(一九八五)が取り上げた沖縄出身の笠戸丸移民の事例などもふまえて「老移民と皇太子」という論考を書いたことがある(『胸さわぎの鷗外』人文書院、二〇一三)。また前掲『外地巡礼』に収めた「外地の日本語文学/ブラジルの日本語文学拠点を視野に入れて」でも日本人移民のバックグラウンドの多様性を取り上げた。

29 カリフォルニア州オークランド生まれの日系三世、カレン・テイ・ヤマシタは、ブラジル(および日系社会)での経験をふまえた『熱帯雨林の彼方へ』Through the Arc of the Rain Forest(一九九〇:邦訳は風間賢二訳、新潮社、二〇一四)に取材した『ブラジル丸』Brazil-Maru(一九九二)などで頭角をあらわした。

30 ポール・ユーンの『山々』Mountains(二〇一七)に収録された「ウラジオストク駅」ではロシアの沿海州が舞台になっていて「ロシア語圏」「中国語圏」などが新たに存在感を示しつつあり、コリアン・ディアスポラの広がりをさえ飛び越えていく。

31 岡村淳『忘れられない日本人移民』(港の人、二〇一三)には「西佐市【るび:さいち】」を岡村氏に紹介した溝部富雄氏を扱った章に、「西」への言及がある。「貧しげな暮らしをしている変わり者の日本人」が「独自の「浦島太郎」の話を誰に聞かせるわけでもなく作り続けている」(七五頁)という噂が、岡村氏を「西」のもとへと向かわせたという話の流れのなか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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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Nishi san,
I will write in English because it is easier to do so than writing in Japanese.
First of all, I would like to thank you sending me this essay. It touched my heart greatly since the subject that you deal with coincides with my life. You may already know that I lived in Brazil, Canada, and Japan though not beyond that. I (or my family) lived in Brazil from 1964 to 1969, for about four and half years before moving to Canada. After this point is like other Asian Americans and Canadians. The connection with the Japanese language comes from the older age group of the Koreans. In the case of my parents, they were old enough to attend universities in Japan in the prewar time. My father was born in 1917 and my mother in 1922. the Koreans of this age group spoke fluent Japanese. Some of them immigrated to North America and Brazil. Among the Koreans who migrated to Brazil in the 1960s, my parents were among the older group. My father attended the engineering school of the Tokyo Imperial University in the prewar period. My other attended Japan Women's University. This mens their Japanese were more educated.


An interesting fact that you have not touched upon is that the people like my parents used the Japanese language in order to survive in Brazil.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there were many Japanese in Sao Paulo and we lived in the local Japanese society. My father became an engineer for the Japanese agricultural cooperative, which were the largest one in Brazil at the time, simply because he was a Tokyo Imperial University graduate, eventhough his Portuguese was not fluent. I also got a job as a minor (ie, age under 18) apprentice at an Japanese publishing company for photographic work. My mother found this job for me because she spoke Japanese. I worked in this company for about two and hald years full time from age 16. I went to nightschool while working in this company. The while collar workers and management staff in the company were Japanese and spoke Japanese, while the blue collar workers were of the second or third generation Japanese and Brazilian whites and mixed people, and this group spoke Portuguese. I was among the blue collar group, and spoke Portugese though not fluently in the beginning, but slowly improving. I did not speak Japanese, but I was attuned to the Japanese spoken among the white collar people.

Beyond this connection through work, we lived in the world of Japanese town. Near Liberdade, ther were three Japanese cinemas. We were frequent visitors to the Japanese cinemas. My parents understood japanese and we teenage childrens had to read Portugese subtitles which were somewhat difficult. Nonetheless, we all enjoyed the Japanese culture by living in the Japanese town. I suppose other Koreans who did not understood Japanese language may not have had the same kind of appreciation we had of the local Japanese culture.

Once we moved to Canada, we had much less contact with the Japanee language and culture though my parents subscribed to the Japanese Magazines such as Zasshi Sekai and bought Japanese books. So we were always exposed to Japanee books as we grew up whether in Korea, or in Brazil, or in Canada. Obviousy, my parents were more fluent in Japanese than in English even after living in Canada more than ten years. Japanee language to them was near native. However children did not learn Japanese, so my parents spoke in Japanese between them when there were thing that they did not want children to know.

Now, I would like to bring up a diffent issue for you to consider. I already suggested that I was exponsed to the japanese culture and people through cinema and work, not though the Japanese language. Focusing on language and writing misses non-language dimension of social life. Focusing on the literary material previleges the people who write. This method unintentionally ignore the life of the people who do not write much. For example, the engineers like my father do not write much, and when they are gone, there is not much record on their lives. This does not mean their lives were less full. But there is very little writing on their lives. We know very little about the people who do not leave much writing.

I, myslef was a physic major in the undergraduate level in Canada. I went on with physic for Masters and PhD level. For a personal and perhaps political reason, I gave up the PhD program after two years. Suddenly I wanted to study sociology and East Asia. To make a long story short, this big change was due to my mother visiting North Korea because it was found that her father who went to North Korea in 1948 from South and never returned, was found to be alive in North Korea. The events that resulted from her visit became quite political in our lives in Canada. Our family was faced with mura hachibu withing the Korea community in Toronto. Suspecting us being communist sympathisers, many people cut relationship with us. This was the 1970s when south Korea was under anti communist dictatorship. (The root of this issue was the division of Korea into two parts, but many Koreans see Japan's occupation of Korea as a root cause.)

At any rate, I wanted to leave Toronto and study sociology and East Asia in a big American 
University. It turned out that i chose Japan as an area focus of my PhD research. This lead me to learning japanee language. Eventually, this lead me to a teaching job in Australia. teaching Japanese sociology. My father passed away in the mid 1980s. In the 2010s, as I face retirement, I began to think more and more, on the one hand, about my parents lives during the colonial periods and, on the other hand, about my maternal grandfather who chose to go to North Korea. It happens that my maternl grandfather was one of the key "mining kings" during the colonial period. But he was burried in North Korea's Patriot's Cemitery. About the grandfather there are a lot of writings for the colonial period though not much abot his life in North Korea. About my engineer father, there is hardly any material. When I read the Korean American novels in English that touch upon the colonial figures, I have an urrge to write something about my parents and gradparents. As I said, there is little information about my father, so it may have to be a fiction a composite figure. And I am not a novelist either. But if I write in English, it would belong to that category of Korean English writing with a Japan connection.


Regards,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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