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에서 느낀 혼란... '여기 일본이야?'
[하와이에서 한 달 살기] 일본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하와이 풍경18.08.18 14:31
최종 업데이트 18.08.18 14:31【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달 동안 하와이에 살면서 경험했던 내용을 재미있게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아름다웠던 일몰의 바닷가부터 각종 수상 액티비티까지. 20대에 하와이에 살면서 경험한 잊지 못할 추억,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한국과의 미묘한 차이점에 대해 기사를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일본을 경유해서 하와이에 도착한 우리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분명 야자수가 보이긴 하는데...
"여기 아직 일본 아니야?"
한 때는 하와이 인구의 1/4까지 차지했던 일본인은 현재는 17%가량으로 줄어들었지만, 이것 역시도 굉장히 높은 수치다. 일본인 비율이 17%일 뿐이지, 아시안의 비율은 2017년 기준 38%에 달한다고 한다. 하와이에 와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가 미국인가, 아시아인가'라며 혼란에 빠진다.
애증의 역사를 가진 하와이와 일본
지난 15일 광복절, 다큐프라임 <역사의 빛 청년>은 제1부 '프롤로그: 하와이애국단을 찾아서' 편을 통해서 하와이로 이민 가서 독립운동을 도왔던 많은 한인들의 발자취가 소개됐다. 이처럼 한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시아인의 하와이 발자취를 밟기 위해서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태평양에 위치하며 항로의 중간점 역할을 했던 하와이 왕국은 경제가 빠르게 번영할 수 있었다. 당시는 미국의 주가 아닌 하와의 왕국이었고, 왕이 토지를 국가의 소유가 아닌 개인의 소유로 바꾸는 선택을 하며 하와이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하와이로 들어오는 많은 서구의 부호들은 헐값에 하와이의 땅을 사들였고 그때부터 사탕수수, 파인애플 플렌테이션 사업이 시작됐다.
농장으로 일을 하러 이주해 온 아시아 노동자들은 그때부터 하와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과 하와이의 역사는 단순한 노동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에 있던 미군 기지를 일본이 공격하면서 미군이 참전하게 된다.
화가 난 미국은 참전에 그치지 않고, 하와이에 거주하던 많은 일본인을 강제수용소에 집단 수용했다. 이로 인해, 많은 일본인이 미군에 들어가서 전쟁을 참여하게 됐고, 그때 결성된 442부대가 전쟁에서 엄청난 공로를 세우면서 미국 내에 존재하던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은 조금 사그라들고 다시 아시아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해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전쟁이라는 안 좋은 사건까지 거치며 긴 역사를 함께해 온 하와이와 일본은 계속해서 안 좋은 시선을 가지며 대립하며 살기보다는 서로의 아픈 역사를 수용하고 끌어안으며 함께 살아왔다.
하와이 속 일본인
공존하며 살아왔다는 걸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하와이의 길거리다. 하와이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일본 여행에서 길거리를 걸을 때 느껴지는 정갈하고 깔끔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 속에는 이자카야, 라멘집 등 일본풍의 가게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하와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음식점이라고 다 일본은 아니었다. 일본 음식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나는 라멘집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정작 주인 부부는 중국인인 상황을 마주했다. 하와이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중국인. 정말 다양한 아시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1년에 한 번 열리는 일본인들의 페스티벌 '모일리일리 페스티벌'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페스티벌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미 2세, 3세까지 있는 일본인들은 하와이에 제법 깊은 일본의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었다. 대가족이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하와이풍과 일본풍이 적절히 섞인 그림, 옷, 춤 등이 페스티벌장 안에 펼쳐졌다.
특히, 페스티벌장 한가운데 일본 전통 옷을 입은 남녀노소가 일본 전통 춤을 추는 진귀한 풍경이 보였다. 옷, 도자기, 라멘 등 무엇을 하든지 가업을 이으며 '장인 정신' 하나는 끝내주는 걸로 전세계가 인정하는 일본의 모습은 하와이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이게 바로 일본이 하와이에서 다른 아시아 나라보다 훨씬 많은 영향력을 가지며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하와이에서 굉장히 힘든 농사를 하며 받은 돈을 고국으로 보낸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지어진 대학이 '인천 하와이 대학교'를 줄여서 부르는 인하대다. 인하대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큰 대학으로 주변에 존재하고 있지만, 대중은 그 속에 존재하는 역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가오는 20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해서 만들어진 '다큐 프라임'의 아니었다면 하와이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은 언제까지 대중이 모르는 역사의 뒷페이지에 있었을까.
아픈 역사가 많은 한국에는 여전히 발견되지 못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많은 역사 왜곡을 하고, 반성 없는 일본의 태도에는 화가 난다. 하지만 전통을 보존하고 선대의 문화와 공존하며 살아온 일본 교민들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하와이에서도 이어나가고 있다.
일본을 경유해서 하와이에 도착한 우리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분명 야자수가 보이긴 하는데...
"여기 아직 일본 아니야?"
출입국 심사를 하는 직원도 일본인, 수업 하는 선생님 두 분도 일본인, 주변을 둘러보면 여행객도 온통 일본인이었다. 심지어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보이는 편의점도 일본 브랜드인 '세븐일레븐'이다.
한 때는 하와이 인구의 1/4까지 차지했던 일본인은 현재는 17%가량으로 줄어들었지만, 이것 역시도 굉장히 높은 수치다. 일본인 비율이 17%일 뿐이지, 아시안의 비율은 2017년 기준 38%에 달한다고 한다. 하와이에 와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가 미국인가, 아시아인가'라며 혼란에 빠진다.
▲ 하와이에 있던 한인 식당,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 |
ⓒ 신준호 |
애증의 역사를 가진 하와이와 일본
지난 15일 광복절, 다큐프라임 <역사의 빛 청년>은 제1부 '프롤로그: 하와이애국단을 찾아서' 편을 통해서 하와이로 이민 가서 독립운동을 도왔던 많은 한인들의 발자취가 소개됐다. 이처럼 한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시아인의 하와이 발자취를 밟기 위해서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태평양에 위치하며 항로의 중간점 역할을 했던 하와이 왕국은 경제가 빠르게 번영할 수 있었다. 당시는 미국의 주가 아닌 하와의 왕국이었고, 왕이 토지를 국가의 소유가 아닌 개인의 소유로 바꾸는 선택을 하며 하와이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하와이로 들어오는 많은 서구의 부호들은 헐값에 하와이의 땅을 사들였고 그때부터 사탕수수, 파인애플 플렌테이션 사업이 시작됐다.
농장으로 일을 하러 이주해 온 아시아 노동자들은 그때부터 하와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과 하와이의 역사는 단순한 노동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에 있던 미군 기지를 일본이 공격하면서 미군이 참전하게 된다.
화가 난 미국은 참전에 그치지 않고, 하와이에 거주하던 많은 일본인을 강제수용소에 집단 수용했다. 이로 인해, 많은 일본인이 미군에 들어가서 전쟁을 참여하게 됐고, 그때 결성된 442부대가 전쟁에서 엄청난 공로를 세우면서 미국 내에 존재하던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은 조금 사그라들고 다시 아시아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해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전쟁이라는 안 좋은 사건까지 거치며 긴 역사를 함께해 온 하와이와 일본은 계속해서 안 좋은 시선을 가지며 대립하며 살기보다는 서로의 아픈 역사를 수용하고 끌어안으며 함께 살아왔다.
하와이 속 일본인
공존하며 살아왔다는 걸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하와이의 길거리다. 하와이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일본 여행에서 길거리를 걸을 때 느껴지는 정갈하고 깔끔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 속에는 이자카야, 라멘집 등 일본풍의 가게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하와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 일본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하와이 길거리 풍경 | |
ⓒ 신준호 |
하지만 일본 음식점이라고 다 일본은 아니었다. 일본 음식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나는 라멘집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정작 주인 부부는 중국인인 상황을 마주했다. 하와이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중국인. 정말 다양한 아시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1년에 한 번 열리는 일본인들의 페스티벌 '모일리일리 페스티벌'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페스티벌에 다녀올 수 있었다.
▲ 하와이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모일리일리 페스티벌 | |
ⓒ 신준호 |
이미 2세, 3세까지 있는 일본인들은 하와이에 제법 깊은 일본의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었다. 대가족이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하와이풍과 일본풍이 적절히 섞인 그림, 옷, 춤 등이 페스티벌장 안에 펼쳐졌다.
특히, 페스티벌장 한가운데 일본 전통 옷을 입은 남녀노소가 일본 전통 춤을 추는 진귀한 풍경이 보였다. 옷, 도자기, 라멘 등 무엇을 하든지 가업을 이으며 '장인 정신' 하나는 끝내주는 걸로 전세계가 인정하는 일본의 모습은 하와이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이게 바로 일본이 하와이에서 다른 아시아 나라보다 훨씬 많은 영향력을 가지며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하와이에서 굉장히 힘든 농사를 하며 받은 돈을 고국으로 보낸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지어진 대학이 '인천 하와이 대학교'를 줄여서 부르는 인하대다. 인하대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큰 대학으로 주변에 존재하고 있지만, 대중은 그 속에 존재하는 역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가오는 20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해서 만들어진 '다큐 프라임'의 아니었다면 하와이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은 언제까지 대중이 모르는 역사의 뒷페이지에 있었을까.
아픈 역사가 많은 한국에는 여전히 발견되지 못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많은 역사 왜곡을 하고, 반성 없는 일본의 태도에는 화가 난다. 하지만 전통을 보존하고 선대의 문화와 공존하며 살아온 일본 교민들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하와이에서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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