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은이),고영범 (옮긴이)알마2023-08-25
원제 : Pulphead: Es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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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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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564쪽
책소개
미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린 《끈이론―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가 출간되었을 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월리스의 작품에 서문을 쓰는 중책을 맡아 현란한 언어의 향연을 펼친 설리번의 내공을.
우리에게는 완전히 낯설지만,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주에서 성장하고 미국 남부문학의 중심지인 스와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시작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 <뉴요커>, <파리 리뷰>, <GQ>, <하퍼스 매거진> 같은 유수의 잡지에 재기 넘치면서도 깊이 있는 글을 발표해 이름을 얻었고,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매체들에 기고한 글들 가운데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펄프헤드》가 2011년 <뉴욕 타임스>, <타임>, <보스턴 글로브>, 아마존이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목차
1. 이 반석 위에서
2. 연기 속에 잠긴 두 발
3. 미스터 라이틀: 에세이
4. 대피소에서(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5. 정말 리얼한 것의 차원으로
6. 마이클
7. 액슬 로즈의 마지막 컴백
8. 아메리칸 그로테스크
9. 라-휘-네-스-키: 괴짜 자연주의자의 경력
10. 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
11.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
12. 마지막 웨일러
13. 양들의 폭력
14. 페이턴스 플레이스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P. 16~17<이 반석 위에서>
나의 요구 사항은 딱 한 가지였다. 캠핑은 하지 않겠다는 것. 접었다 폈다 하는 거라도 상관없으니, 내부에 매트리스가 갖춰진 차를 준비해달라고 요구했다. “좋아요.” 그레그가 말했다. “자, 제가 전화를 좀 돌려봤는데, 필라델피아에서 반경 160킬로미터 안에는 남은 밴이 없어요. 그래서 RV를 하나 구했어요. 9미터짜리예요.” 접기
P. 33~34나는 지난 오 년간 이 나라에서 열린 수많은 대형 공개행사에 참여해 스포츠 기사든 뭐든 써왔는데, 그 모든 행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한 가지 공통점은 미국의 특히 수놈들이 늘 품고 다니는 이상한 적대감이다. 말도 안 되는 일반화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거대한 경기장의 넓은 통로나 홀 같은 데서 늦은 오후 한나절을 보내다보면, 단순한 남성성 이상의 훨씬 어두운 어떤 것을 느끼게 된다. (…) 그런 느낌이 여기에는 없었다. 그냥, 없었다. 일부러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 거기엔 십만 명이 모여 있었는데. 접기
P. 77~78<연기 속에 잠긴 두 발>
아버지가 내게 이 사고에 대해 알려준 건 오후였는데, 아버지는 전화로 형이 “다쳤다”고만 간단하게 말했다. 나는 형이 살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버지는 끔찍한 침묵을 지키다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형은 앰뷸런스에 실려오는 동안 다섯 차례나 심장박동이 멈추었고, 캡틴 존스가 <레스큐 911>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부르는 리듬”이라고 묘사한 “심장무수축”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 최악의 뉴스는 형의 뇌에 관한 것이었다. 형은 뇌가 1퍼센트만 기능하고 있는 식물인간 상태였다. 접기
P. 86~87아주 조용히 형이 울기 시작했고, 형의 어깨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들먹거렸다. (…) “형, 왜 우는 거야?” 내가 물었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본 걸 생각하고 있었어.”
(…)
자기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자기한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모르던 형이 자기가 ... 더보기
P. 97<미스터 라이틀: 에세이>
내가 그를 알게 된 1990년대 중반에는 소위 남부 르네상스 문학이 이미 학계에서 빛바랜 지역 연구 주제 정도로 상당 부분 사그라든 상태였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라이틀은 이 쇠락하고 위축된 조건 아래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진 것, 다시 되살려내야 할 것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럭저럭 남아 있었다.... 더보기
P. 131<대피소에서(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카트리나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풍해일을 만들어냈다. 공식 기록은 여전히 취합 중이지만, 파도 높이가 9미터를 넘어섰다. 미시시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건 이 거대한 해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듣고 어디론가 몸을 피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물살에 휩쓸려가다가 나무의 우듬지를 붙들려고 버둥거리는 상황에 처했다. 접기
P. 133~134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그쪽 집은 어땠어요? 그쪽 집도 덮쳤어요? “오, 사라졌어요. 다 사라졌어요.” 벽들은 “터져버렸다”. 미래는 강제로 뜯겨나갔고 거대한 공백으로 대체되었다. 사람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어디로 갈지, 대피소에서는 얼마나 더 머물 수 있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그 질문들이 아니라 다른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접기
P. 155~156<정말 리얼한 것의 차원으로>
이제 리얼리티쇼를 볼 때—예를 들어 <리얼 월드>를 챙겨가면서 본다면—우리가 보는 건 대충 짜놓은 시나리오 속으로 거칠게 내던져진 뒤 카메라 앞에 대책 없이 노출된 사람들이 아니라, 리얼리티쇼에 출연하는 연기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사람들이다. 이것이 요즘 방영되는 모든 리얼리티쇼의 플롯이다. 그들이 지어낸 주제가 뭐가 됐든 말이다. 접기
P. 158사람들은 이런 쇼들을 싫어하지만, 이 혐오에서는 자기부정의 냄새가 난다. 이 쇼들에는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미국인들에게 오랜 세월 전해내려온 그 모든 괴기스러운 것들이. 휘트먼과 포 사이에서 태어난 시험관 아기. 확신을 가지고 쏘아보는 공격적인 시선들. 철저한 자기정당화를 분수처럼 쏟아내고 저주의 기도를 웅얼거리는 말 많은 입들. 자기 돈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을 처벌해달라고 신을 부르는, 모르는 것 없이 늘 남을 가르치려 드는 말 많은 입들.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다 쓰게 된 이상한 문장들을 사용해가면서. “목표”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면서. 접기
P. 189~190<마이클>
그는 그지없이 아름답게 그 상황을 묘사한다. “마이클은 어둠 속에서 녹음해요.” 그가 말한다. “그리고 춤을 춥니다. 이렇게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 안은 캄캄해요. 아주 작은 핀 조명만 마이클 위로 떨어지고 있죠.” 스웨디언은 손을 쳐들어 머리 바로 위에서 아주 좁은 조명이 내리비추는 모습을 재현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이크가 있어요. 마이클이 자기 분량을 노래해요. 그러고는 사라지는 거예요.”
핀 조명 바깥의 어둠 속에서 그는 춤을 추고, 몸을 움직인다. 퀸시와 스웨디언이 아는 건 그게 전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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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펄프헤드》는 짜증날 정도로 좋다.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이래로 가장 훌륭한 에세이집이다.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엄청난 기지와 에너지로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어, 내가 이 책을 내려놓는 순간 때마침 내 책상에서 굴러떨어진 덕트테이프조차도 흥미진진한 비밀을 가득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탁월하고 생동감 있는 이야기들이다.
- 웰스 타워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미국의 문장에 폭탄을 떨어뜨렸고, 거기에서 튄 파편들이 섬세하게 빛을 발하는 동시에 충격을 주는 목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일단 분명히 해두자. 여기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탄탄한 논리와 유머 감각을 장착한 채 때론 날카롭게 몰아치고 때론 깊은 깨달음을 드러내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 마이클 파터니티 (《드라이빙 미스터 알베르트》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나무의 거친 겉껍질을 벗겨내고, 자신의 손에 기름이 묻어나올 때까지 그 속살을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설리번만의 독특한 세계관, 따뜻한 시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펄프헤드》는 에드워드 호글랜드, 게이 털리즈,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들과 나란히 놓여 마땅한 작품이다.
- 마크 리처드 (《기도하는 집 넘버 투》 저자)
강박적일 정도로 정직하고 대단히 지적인 설 리번의 《펄프헤드》는 헌터 S. 톰슨과 톰 울프 같은 뉴 저널리즘계 거장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 타임 (미국 시사주간지)
《펄프헤드》는 설리번이 그의 세대 최고의 에세이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북포럼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3년 8월 25일자 '새책'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23년 9월 15일자 문학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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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매거진> 전속 필진이자 <파리 리뷰>의 남부 담당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GQ> <하퍼스 매거진> <옥스퍼드 아메리칸> 등 다양한 잡지에 글을 기고했는데, 《펄프헤드》가 <타임> <뉴욕 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그리고 아마존 등의 ‘2011년 최고의 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뉴요커>의 제임스 우드는 그를 레이먼드 카버에 비교하는 동시에 “에머슨과 소로의 분위기”도 가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다른 지면에서는 그를 두고 새로운 톰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헌터 S. 톰슨, 혹은 이 세 사람을 합친 작가로 일컫기도 했다. 저서로 《혈통마Blood Horses》 《펄프헤드Pulphead》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에서 아내와 딸들과 거주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펄프헤드>
고영범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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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출신의 실향민 부모님 밑에서 1962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서는 신학을, 미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공부했다. 대학원을 마친 뒤 십수 년 동안은 이런저런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광고, 단편영화를 만드는 한편, 영화와 광고 등의 편집자로 일했고, 그후로는 번역과 글쓰기를 주로 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 2》(이승민과 공역)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불안》 《별빛이 떠난 거리》 《나는 다시는 세상을보지 못할 것이다》 《스웨트》 《예술하는 습관》 《우리 모두》 등이 있고, 쓴 책으로는 《레이먼드 카버》,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와 희곡 <태수는 왜?> <이인실> <방문> <에어콘 없는 방>, 단편소설 <필로우 북_리덕수 약전> 등이 있다. 현재 미국에 살면서 집안의 실향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접기
최근작 : <서교동에서 죽다>,<[큰글씨책] 서교동에서 죽다>,<서교동에서 죽다> … 총 3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알마
출판사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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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타르콥스키, 기도하는 영혼>,<빵야>,<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등 총 225종
대표분야 : 심리학/정신분석학 11위 (브랜드 지수 108,184점), 과학 11위 (브랜드 지수 290,30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광활한 언어의 우주에 쏘아올린
폭죽 같은 열네 편의 이야기
<뉴욕 타임스>, <타임>, 아마존 선정 2011년 최고의 책!
지금까지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기억해야 할 이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미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린 《끈이론―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가 출간되었을 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월리스의 작품에 서문을 쓰는 중책을 맡아 현란한 언어의 향연을 펼친 설리번의 내공을.
우리에게는 완전히 낯설지만,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주에서 성장하고 미국 남부문학의 중심지인 스와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시작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대학을 마친 뒤 아일랜드에서 잠시 “방황기”를 보낸 설리번은 <옥스포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하면서 미시시피주에서 한 달을 살았다. ‘올 미스’라는 호텔의 갈색 카펫이 깔린 방에서 지냈는데, 바로 근처에서는 창녀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설리번은 <옥스퍼드 아메리칸>의 편집자인 마크 스미르노프에게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스미르노프는 설리번에게 첫 기명 기사로 그 이야기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누가 문을 열어주고는 내가 들어갈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서면서, ‘망치지 말고 잘해봐’라고 말하는,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설리번이 말했다. “그리고 그 기사 덕에 아주 근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하퍼스>, <파리 리뷰>,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에 기명 기사를 싣게 되는 근사한 일들이 이어진 것이다. 그후 십여 년에 걸쳐 설리번은 보도기사 작성법과 경계 외부에 있는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 자신만의 목소리(사적이지만 시니컬하지는 않고, 깊은 생각을 담되 자신이 지적인 걸 과시하려 들지는 않는)를 다듬었다._아마존 인터뷰 중에서
그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 <뉴요커>, <파리 리뷰>, <GQ>, <하퍼스 매거진> 같은 유수의 잡지에 재기 넘치면서도 깊이 있는 글을 발표해 이름을 얻었고,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매체들에 기고한 글들 가운데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펄프헤드》가 2011년 <뉴욕 타임스>, <타임>, <보스턴 글로브>, 아마존이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서로 다른 이야기, 그 다름으로 새롭게 직조해낸 미국 문화
《펄프헤드》에는 설리번의 배경과 그가 사랑하고 전문성을 키워온 ‘문화’―글쓰기, 음악, 팝문화, 그 외의 것―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열네 편의 이야기 가운데 <이 반석 위에서>(1장), <마이클>(6장), <액슬 로즈의 마지막 컴백(7장),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11장), <마지막 웨일러>(12장) 등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가 다수이지만, <정말 리얼한 것의 차원으로>(5장), <페이턴스 플레이스>(14장)처럼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는 에세이와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 라피네스크나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이야기에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짧게는 20여 페이지, 길게는 70여 페이지에 이르는 각각의 이야기는 미국과 미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면서 그의 단단한 글쓰기와 전문성은 빛을 발하고, 우리는 천천히 글을 음미해가며 새로운 시각, 새로운 지평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표피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만큼 설리번은 무엇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깊이 파고든다.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펄프헤드》를 통해 다양한 우리 문화—친숙한, 잘 모르는, 완전히 잊혀진—를 찾아나서는 매혹적인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설리번은 미국적 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들여다보겠다는 애당초 선명하기 어려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그 흔적이 사라진 블루스 뮤지션과 19세기의 식물학자를 찾아 남동부를 가로지르고, 액슬 로즈와 마이클 잭슨이 나고 성장한 인디애나주의 곳곳을 찾아나선다. 설리번이 역사 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순간들의 근원적인 낯섦과 씨름하는 동안,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서사, 이 나라에 대해 여태 우리가 들어본 적이 없는, 최소한 이런 방식으로 들어본 적은 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_아마존 리뷰 중에서
===
그러나 설리번의 글을 빛나게 만드는 것,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은 그의 글쓰기 능력과 전문성이 아니다. 그의 재기 넘치는 글에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온기이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따뜻함과 긍정성은 그의 글이 따뜻하되 과열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담되 현학적으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온기는 그의 책에 묘한 향수鄕愁와 회고의 기운을 더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의 이런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 바로 564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책의 처음을 여는 <이 반석 위에서>이다. 자,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자. 진부한 표현 그 자체인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처럼 쉴 틈 없이’ 색깔과 방향을 달리하는 설리번의 이야기 세계로 뛰어들 준비를.
그가 썩 탐탁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취재를 맡아 결코 몰고 싶지 않았던 9미터짜리 RV를 몰고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좌충우돌 길을 떠나는 장면만으로는 뻔한 글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게 사도 요한과 예언자 예레미아를 한데 품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떠난 크리스천록 페스티벌이라니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설리번도 예상했듯 이 취재 여행은 아주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평범하게 끝나야 했다.
잘난 체하는 건 좋지 않지만, 애초의 내 계획은 완벽했다. 나는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았다. (…)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어떤 게 더 어렵니—홈스쿨, 아니면 일반 학교?”), 취재 패스를 흔들어 보이며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가수는 사랑으로 충만한 영혼으로 노래를 부를 때 모든 음악은 ‘그분’을 영광되게 한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 것이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그가 하는 이야기에서 열 단어에 하나 정도씩만 받아적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내가 몰고 온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그들의 분위기를 느끼면 될 것이었다. 그러고는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_11~12쪽
하지만 그의 계획은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고생 끝에 도착한 페스티벌 행사장 야영지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의 따뜻한 교감, 행사장에 울려퍼지는 록음악과 그 음악으로 인해 갑작스레 소환된, 복음주의에 빠져 있던 청소년 시절 등이 마치 우박처럼 설리번의 마음을 두드리고, 결국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야 만다.
나는 내 트레일러로 돌아왔고, 형편없이 무너져버렸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몇 가지 이유로 멈췄다. 나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나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 같았고, 외로웠다. 이 여행을 장난처럼 생각하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이였던가._65쪽
그리고 생소한 작가의 농담처럼 시작된 이야기를 따라 달려온 우리 역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미주리주의 한 계곡에서 펼쳐진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 속에서 설리번이 느꼈던 그 압도적인 감정을, 정화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된다.
갑자기 더 어두워지더니 아주 캄캄해졌다. 무대 양쪽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핀으로 뚫은 구멍으로 새어나오는 것 같은 작은 불빛들이 나타나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부터 불을 밝히고, 점점 가운데로 번져 들어오는 것이다. 촛불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지는데, 그 효과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마지막에 가면 절반의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이 들고 있는 초에 불을 붙이면서 마치 누군가가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딱 그랬다.
구름이 걷히면서 밝은 별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의 나무들에는 온통 반딧불이 천지였고, 내 앞과 저 멀리 아래에는 타오르는 촛불들의 작은 불꽃 수만 개가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는 점멸하는 불빛들로 가득한 어둠의 영토 안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_70~71쪽
레이먼드 카버, 톰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헌터 S. 톰슨, 혹은 톰 웨이츠
<뉴요커>에서는 설리번을 레이먼드 카버에 비교하면서 그가 “에머슨과 소로우의 분위기”도 띤다고 평가했다. 다른 매체에서는 새로운 톰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헌터 S. 톰슨, 혹은 이 세 사람을 합친 작가로 일컫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달리든, 설리번 고유의 글쓰기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리번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줄곧, 스포츠기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설리번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쓰는 글들은 정말 이상했어요. 그 글들은 아마 창작에 가까운 논픽션으로 분류하는 게 정확할 거예요.”
나는 그가 작가가 되는 데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가장 영리하고 훌륭한 방법을 취했어요. 전혀 개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도 늘 격려하는 태도를 유지한 거죠.” 그가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다른 일들에는 별로 맞지 않고, 결국에는 글을 쓰게 되리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중략)
내가 물었다. “당신은 이런 이상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건가요, 아니면 그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가요?” 그가 말했다. “그로테스크는 사람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좁지만 내밀한 각도를 제공해줘요.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이 있어요.”
“자신의 기본적인 인간성마저도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쓰는 게 즐거울 때가 있어요. 이런 어려움을 헤쳐가는 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아주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거든요.”_아마존 인터뷰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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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발견. 정확히 15페이지에서 빵 터지고는 그 이후 계속 낄낄 웃다가 어느 순간 뭉클해져서 눈물까지 찍 흘리는 이야기들. ‘미스터 라이틀’에 관한 에세이는 읽다가 막판에 울어버렸다.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진심 감탄.
잠자냥 2023-09-30 공감 (32)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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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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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주제 유려한 글솜씨
이 책은 미국의 한 잡지의 편집자이기도 한 1974년생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에세이 열네 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글들은 주로 유명 잡지들에 실렸고 사실에 기반으로 한 기사 형식의 글들이다.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한 현장감이 생생하면서도 보통의 기사 형식의 글들과는 다르게 상황을 문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저자의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이 문장마다 흘러넘치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방식의 글들은 일찍이 미국에서 1960~70년대에 유행했고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과의 차이를 두기위해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실 위에다 소설적인 기법을 덧칠해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맛깔나게 가미해서 통찰을 이끌어 내는 좀 더 문학에 가까운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될까?
뭐라고 부르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일단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거 같은 정보들이 이 글들 속에 있었고 글감을 다루는 저자의 글 솜씨가 유려해서 읽을 맛이 난다는 점이 아주 좋았다.
거의 백인들만 참석하는 사상 최대의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서 만난 독특한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저자의 형이 락 밴드 연습을 하다가 마이크에 감전을 당해서 죽다 살아난 이야기, 남부 문학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 진 노년의 작가 미스터 라이틀과 20살의 저자가 한때 동거 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 마이클 잭슨과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에 대한 이야기, 켄터키 주에 있는 미국 원주민들의 역사를 가득 품고 있는 수많은 동굴들의 이야기, 초기 블루스 음악을 했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밥 말리의 원년 밴드 멤버인 버니 웨일리를 만나면서 풀어놓는 자메이카의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집을 거액을 받고 몇 년 동안이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빌려 준 경험 등등...
거의 모든 주제가 흥미진진했다. 어디 가서 이런 특별한 주제의 글들을 한꺼번에 다 읽어 볼 수 있겠는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책 한권으로 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잡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 글들은 유머러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다는 점이 좋았다. 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자의 따뜻한 인격은 이 글들을 쓸 당시 30대 였을 저자의 나이를 생각해 봤을 때 꽤나 예상외의 것이었다. 30대의 젊은 기자의 날카로운 냉소의 시선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해와 연민의 시선이 곳곳에 내려앉아 있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 대한 글은 무신론자의 시선으로 페스티벌을 비판적으로 훑으면서 간간히 유머를 가미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자는 그곳에서 자신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3년 동안 복음주의 교회에 푹 빠져서 활동 했다가 빠져 나왔던 경험을 털어 놓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투박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와중에 신을 사랑한다는 그들을 이해한다.
액슬 로즈의 어린시절 고향 친구를 인터뷰 할 때 저자는 또 다른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빈부격차가 사람의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 하던 어린 시절엔 다함께 어울려 놀았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는 친구와 아닌 친구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 이후 대학을 가지 않았던 친구들과는 평생을 만날 일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저자의 기억은 고향을 떠나 락 스타가 된 액슬 로즈와 고향에 남아있는 그의 친구의 관계 속에서 소환된다. 어릴 땐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커서 달라진 처지 때문에 영영 볼 일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그 씁쓸함에 대해...
저자의 글에서는 주제로 떠오르는 사람들, 인터뷰 한 주변인들 누구도 함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누구 하나 깎아 내리면서 유머를 던지는 유의 글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리얼리티 출연자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빈정대며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글을 썼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리얼리티 출연자들이 방송 출연을 하지 않을 때 여기저기 파티에 불려 다니며 약간 우스꽝스러운 인플루언서로 사는 삶의 방식도 존중한다. 그렇게 사는 것도 뭐 나쁘진 않겠지 하는 시선.
아 딱 한명 “양들의 폭력”에 나온 동물학자가 좀 이상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건 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물 묘사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읽으면 알게 된다. 아무튼 이 “양들의 폭력”도 거의 소설 읽듯이 참 재밌게 읽었다.
독특한 주제 아래에서 종교, 대중문화, 역사, 정치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까지 이루어내는 에세이였다. 최근에 몇몇 에세이를 읽었는데 대부분 사적인 경험에 치중한 것들이 많아서 식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취재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문학적인 성취까지 이룬 에세이를 읽다보니 너무나 새로웠고 지적인 호기심도 채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재밌게 잘 읽었고 다른 뉴저널리즘 장르의 에세이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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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11-01 공감(11)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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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언어의 우주에서 유영하다!
형은 내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여기에 물질의 차원으로, 말라서 갈라지는 시냅스 덩어리 차원으로 축소된 의식이 있었다. 형은 단어들의 사용법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사물과 제대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 사물들과, 에너지장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형은 새로운 이름들을 발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형의 자리는 나무랄 데 없는, 심지어 시적인 자리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곳이었다. 형은 죽음을 만져봤지만, 혹은 죽음이 형을 건드렸지만, 형에게 삶이란 심지어 그런 것도 가능한, 여전히 흥미로운 어떤 것인 듯이 보였다. p.85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는다. 사실 그의 계획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대충 이야기를 나누다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의 뻔한 이야기를 적당히 받아적다가 올 예정이었다. 밤이 되면 자신이 몰고 간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있다가 분위기를 좀 느끼고 나서,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 취재는 그의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급기야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와 울기 시작한다. 이 여행을 장난처럼 생각하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이였던가부터 시작해 형편없이 무너져버리게 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하다면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 '이 반석 위에서'를 읽어 보자.
이번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대피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글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에서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풍해일을 만들어 냈는데, 파도 높이가 무려 9미터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거대한 해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어닥쳤기 때문에 미시시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는 인근 초등학교에 마련된 적십자 대피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낮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2미터가 넘는 물이 집 안에서 넘실대고 있었다는 사람부터, 바람이 휘몰아쳐 나무에 부딪히고, 주변에는 뱀들이 헤엄치고 있었다는 이도 있었으며, 대부분 자신이 곧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말은 바로 '사라졌다'는 거였다. 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산책로들이 사라져버렸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미래는 강제로 뜯겨나갔고 거대한 공백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생생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 세상의 진짜 마지막의 시작'을 그려낸다.
이런 식의 과열된 선언은 모두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무시해버리기 전에, 우리는 그 노래들에 표현된 느낌이나 표현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단순하고 기술적인 설명이 하나도 없는지 질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젊은 소비자들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를 장악해버린 로큰롤에 블루스의 서사를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 분리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다른 요소 또한 존재한다. 더 깊고, 더 농익은 근원이다. 이 음악에 대해 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주목했다. 로버트 파머는 이걸 '깊은 블루스'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는 중압감 속의 중압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p.420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글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에 수록된 다소 장황한 서문으로 처음 만났었다.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끈이론>에서 테니스 경기를 둘러싼 모든 철학적, 정치사회적, 심지어 수학적 맥락들을 깊이 쑤시고 건드리며 테니스의 시간을 경이로운 산문의 언어로 옮겨냈다. 그리고 그 독특한 에세이만큼이나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서문 또한 유려한 언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그는 다수의 매체에 글을 발표해왔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그 중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에세이라는 카테고리의 책 중에 이렇게 두툼한 분량의 작품이 있었나 싶은데, <펄프헤드>는 무려 564페이지에 달한다.
이 벽돌 에세이집에는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비롯해서,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와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체험기 등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글은 현란하지만 어렵지 않고, 날카롭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며 놀라운 세계를 보여준다.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방식의 글은 저널리즘 역사 속에서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뉴 저널리즘'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런 형식의 글을 우리 저널리즘 역사나 문학사에서는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이번에 출간된 <펄프헤드>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훌륭한 저널리즘이 갖춰야 할 덕목을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인디언 동굴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의 깊이 있는 이면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라 불리는 뛰어난 저술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탁월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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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23-09-1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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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헤드
_그렇기는 하지만, 마이클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무런 가식 없이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이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들어보면 이때의 마이클은,... 마티 베셔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과 함께 살기> 같은 이야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마이클이다. <제트>와 <에보니>를 읽고 나면 여러 인종의 아주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마이클 잭슨과 좋은 친구로 남아 있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매력적이고 살아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_p182
_로비스트 사촌은 D.C의 분위기가 거칠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제시한 공공의료 방안이 동력을 얻고 있었다. 로비스트 사촌의 상사가 그날 아침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우리 망한 거 같은데”였다.
.... 나는 내 사촌의 시도가 실패하길 바라면서, 그에게 행운을 빌어줬다._p284
<뉴욕 타임즈 매거진> 전속 필진이자 <파리 리뷰>의 남부 담당 편집자고 활동 중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열네 편 에세이집, <펄프헤드>를 정말 긴 호흡으로 읽었다. 책의 부제는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이 부제처럼 미국의 문화와 역사 등을 다루고 있었는데, 사실 읽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감전되어 거의 죽다살아난 저자의 형인 록 뮤지션, 태풍 카트리나와 사람들, 리얼리티쇼와 출연자들, 마이클 잭슨,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 미국 의료보험 개혁에 반대하는 분위기, 기인 라피네스크, 미국 남동부 원주민들의 동굴 유적, 자메이카로 가서 만난 버니 웨일러, 그리고 지구를 망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동물들의 반격과 촬영지로 빌려준 자신의 집 이야기 까지, 다양한 소재들이였다.
모두 미국 유수의 잡지들에 수록되었던 에세이라고 한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설 같아서 읽기 시작할 때 여러번 도서장르를 확인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이런 방식’의 글을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소설기법들이 적용되어 있어서 일반 저널 보다 몰입하기 좋았는데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불편해지고 이해가 안되는 지점들로 잠깐 멈추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또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도 하고 같이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독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뜻밖에 마이클 잭슨과 오바마케어가 등장한 챕터가 인상적이였다. 마이클 잭슨의 곡들을 분석해놓은 부분에서는 알아가는 맛이, 여러 논란 중에 있었던 그에 대한 냉철한 저자의 의견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오바마케어 파트에서는 이성적인 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정책반대자들이 씁쓸한 부분이였다. 저자에게 전적으로 공감했었다.
전체적으로 읽기에 난이도가 있는 책이여서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중에, 그리고 독서 후에도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였고, 사회전반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픈 도서였다.
_우리에게 참인 건 자연에서도 참이다. 우리에게 의식이 있는 게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의 결과라면 자연에도 의식이 있다. 자연이 우리 안에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스스로를 관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_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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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화 2023-10-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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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펄프헤드,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 서평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부제: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분야: 에세이, 영미 에세이
모든 것이 빠르고 가볍게 소비되는 시대에 벽돌책을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에세이 분야에서 벽돌책은 정말 희귀한 존재인데 아마도 대부분의 에세이가 한 가지 주제만을(예: 여행, 인간관계, 취미 등) 다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펄프헤드]는 상당히 특이한, 한국 에세이와는 조금 다른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그 차이가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만은 아니다.
[펄프헤드]는 잡지에 수록되었던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에세이 열네 편을 엮은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세이의 주제들은 제각각인데 그렇다고 해서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에 주제가 있다면 바로 미국, 그 자체일 것이다. 열네 편의 이야기 중 상당수가 미국인에게 특히 강렬한 시대적 아이콘과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소재적으로도 그렇지만 앞서 첨부한 <옮긴이의 말>에서 설명한 '뉴 저널리즘 (잡지 저널리즘)'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뉴 저널리즘 방식의 글쓰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잭 하트의 [퓰리처 글쓰기 수업]을 읽어보라. 예전에 서평을 작성했던 책 중 [아메리칸 파이어]가 [펄프헤드]와 마찬가지로 뉴 저널리즘 방식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메리칸 파이어]의 경우는 에세이가 아닌 논픽션이며 어코맥 카운티의 방화 사건이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이 책 역시 분량이 꽤 되는 책이다.)
다시 [펄프헤드]로 돌아가서, 이 '뉴 저널리즘' 방식이 국내의 에세이 작법과 다른 점을 꼽자면 플롯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에-왜냐하면 나는 일반 독자일뿐 편집자나 작가도 아니고 심지어 국문학과 등과는 1도 연관이 없는 그냥 자연과학대 출신이므로-국내 에세이는 일본 에세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두 그룹 모두 느슨하고 소소한 소재들을 주로 다룬다는 점 그리고 소설보다는 일기에 가깝다는 점이 그렇다. 이슬아, 마스다 미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이런 스타일의 에세이가 [펄프헤드] 같은 에세이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같은 재료라도 요리법이 양식이냐 중식이냐 한식이냐에 따라 전부 다른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니 폭과 깊이를 갖춘, 따라서 필연적으로 길이도 꽤 되는 묵직한 에세이들은 주로 이 외국 에세이 분야에 몰려 있다. 나는 이런 글들이 한국 문학, 한국 저널리즘의 한 부분을 차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런지,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옮긴이의 말
물론 나는 리조또도, 볶음밥도 김밥도 전부 잘 먹는다. 그렇지만 메뉴는 다양할수록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 요리법 때문에 재료가 제한되는 건 좀 별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에게 있어, 미국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는 <심슨 시리즈>와 [월든]이다. [펄프헤드]에서도 이러한 미국적인 특성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읽는 내내 미국 특유의 극적인 상황에서도-...막장이다. 나라면 울었을 듯.-반짝이는 낙관적인 사색과 유머의 향기가 난다.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사건을 다루는데도 무겁기보다는 가볍게 이야기가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것, 그게 이 책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읽다가 인상적이거나 웃긴 부분이 나오면 공유해야지, 하는 생각에 신나서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뒀는데 막상 서평을 작성하다 보니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이 책의 재미를 모두 담아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잇.. 헛짓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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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pin 2023-09-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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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 America 이 아니다!...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60 : 펄프헤드 Pulphead, 존 제러마이어 설리반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위 그림은 초 현실주의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의 대표작으로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마그리트는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인식 체계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는데, 그 의도를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실제로 그림은 물리적으로 캔버스위에 물감 덩어리의 분포에 따른 어떤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물리적 실체를 보지 않고 그림이 표방하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그것이다. 이는 보들리아르 Baudrillard 가 "시뮬라시옹"에서 실체에 대한 이미지의 전복(그리고 잠식) 으로 매우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쯤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문득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우리에게 미국 America 은 무엇인가?..."
아마 다양한 이미지가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며, 오만가지 대답이 교차할 듯 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마천루, 넓디 넓어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광활한 대자연, 화려한 라스베가스나 마이애미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기회의 땅 등등... 기존에 우리가 가진 미국의 이미지는 크고 광활한 대륙, 전 세계의 중심인 패권의 나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대중 문화의 끝판왕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을 우리와 최근의 현대사(해방이후 6.25전쟁, 베트남전) 를 함께한 "혈맹" 으로 간주하고, 늘 부러운 대상으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문득 나는 우리의 이 모습이 마치 큰 코끼리의 몸 여기저기를 부분적으로 만지며 느낀데로, 그 거대한 전체의 집합인 코끼리를 속단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든다. 누군가 미국인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설명해주지 않겠어?"라고 부탁하면, 전혀 예상치못한 대답이 나올거라는 기대마져 하면서 말이다. 소위 "디커플링" 시대에 들어서 이제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봐야할 상황이 자꾸 발생하니, 적어도 그들의 민낯은 고사하고 도데체 무어라 우리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소개하는지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에 특히 더 그러하다. 그리하여 다음의 질문을 또다시 던져본다.
"과연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John Jeremiah Sullivan 은 미국 중부 테네시 출신의 기자 겸 저널리스트이다. <GQ>, <하퍼스 매거진> 등을 비롯 유수의 잡지사에 기고를 하고, 현재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전속 필진으로 활동중인 작가이다. 본 작, 펄프헤드로 2011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후로 언급할 "뉴 저널리즘 New Journalism"으로 특징되는 에세이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 뉴 저널리즘은 영미권의 잡지들에서 관찰되는 특징으로서 기사와 에세이의 절충적인 양식으로 자리잡은 장르이다. 일반적인 신문 기사들이 그렇듯이 시계와 같이 딱딱하고 정확한 사실 전달, 기자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건조한 문제가 아니라, 마치 문학의 그것처럼 세부 표사의 극적인 디테일, 필자의 의도나 느낌을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개입까지 한다. 따라서 논픽션의 기틀은 유지하되 소설적인 기법을 다양하게 차용하여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마치 사건을 "목도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다.
본 작은 이러한 뉴 저널리즘의 현재적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잘 접하지 못한 그 특유의 문체를 경험해보기 좋은 작품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가진 미국의 이미지와 다른, 미국인 저자가 느끼는 진짜 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접해보기에 상당히 강점이 있다 하겠다.(그리고 책 말미에 출판사의 후기에서도 이 목적을 언급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일종의 모음집 성격을 가지고 있고, 각 글들의 주제나 동기는 정말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으로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 한 가지는 일관되게 느껴진다. 그것은 현재 미국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써, 동시대에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과 그 뿌리, 그리고 나아가는 여정을 그들의 시각으로 그려내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3. 인상적인 부분...
처음 이 책을 접하면 - 약간이나마 이 책에 대해 전달받은 사전 정보와 달리 -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분명 에세이 집이라고는 하는데 소위 벽돌 두께의 큼지막한 분량이란! 더군다마 펼쳐든 목차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미국 문화에 꽤 익숙하다고 평소 자부하던 나부터도 도데체 종잡을 수 없으니... 그러나 호기심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던진 내 질문을 스스로 찾아보리라는 의무감마져 동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그 제목들을 선정한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다른 면을 접해본 기쁨이 나름 존재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인 그 외형과 달리 선정한 주제들은 꽤나 현시적이다. "트럼피즘"의 지지 기반이 된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반동을 연상케하는 대형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다룬 첫 장 "이 반석 위에서"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상흔이 남은 태풍 "카트리나"의 기억들, 그 속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난 영화같은 일화들을 그 이후의 장에서 다룸으로써, 현재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분명히 큰 트라우마를 안겼음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 엿보이는 "아메리칸 그로테스크"에서는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는 면을 보여준다. 전前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 차별과 매카시즘적인 공격들은 결국 "메디케어 Medicare"로 대표되는 복지정책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로 귀결되며, 이 준동의 밑바닥에는 "폭스 뉴스"로 대변되는 극우 레서시 미디어와 티파티 Tea-party 로 잘 알려진 보수 공화당을 지지하는 로비스트들을 등장시킨다. (심지어 이 자들이 자기 친척들이다.) 짐작컨데 민주당 지지자인 저자가 느끼는 이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서 훗날 "미 의회 점거 폭동(2021)"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건 나만의 우려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진 과도한 황홀감도 어두움도 없다. 다만 현장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생생함이 묻어있다. 이러한 현장감이 내가 당신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들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직도 대륙(유럽)에 대해서 느끼는 문화적, 역사적 열등감의 발로라고 느끼기에는 이미 오래전에 미국은 패권주의에 익숙해진 시점 아닌가. 오히려 그것보단 자신들의 고립된 대륙에서 아직도 그 기원에 대해 불분명한 고대의 문명들의 탐사와 재발견("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이라든지 "남부"로 대표되는 자연주의(때론 낭만주의)적 문학 운동의 마지막 장의 결말("미스터 라이틀:에세이),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부분이었지만 과소평가된 "블루스"의 알려지지 않은 흔적들과 그를 둘러싼 문화적 의의 평가와 보전에 대한 글("알려지지 않은 시인들") 등을 통해 자신들의 서사를 외부 시선과 상관없이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렇게 갈망한 자기들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로 보인다. 결국 "전통"이란 것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형성되어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역량과 세대의 자세에서 생겨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느덧 우리가 기억할법한 헐리우드 고전영화의 많은 작품들이 이제는 당당시 "고전 Classic"의 반열에 올라 끊임없이 오마쥬를 바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밴드 출신의 저자 자신의 경험은 숨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록 문화를 포함한 MTV 시대의 성장, 그리고 미디어 산업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은 확실히 감정이 있다. 그 누가 우스스탁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의 안티 테제로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상상이나 했겠는가("이 반석 위에서"). 게다가 "액슬로즈의 마지막 컴백"에서 엿보이는 노골적인 락에 대한 경배와 - 나는 이것이 편협하다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 "마이클"에서 나타나는 모타운 사운드를 넘어선 한 위대한 뮤지션의 최대 논쟁 지점 - 아동 성추행 혐의 - 는 지금도 명백히 유효한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모습이다. 우리가 오늘도 펍 Pub 에서 들려오는 각종 록 음악들,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하는 우리의 아이돌 그룹들의 뿌리에는 마이클 잭슨의 업적이 자연스레 녹아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레게 음악의 시발점인 밥 말리 & 더 웨일러스 Bob Marley & the Wallers 의 바로 그 에윌러를 취재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빌보드로 대변되는 미국 대중 음악의 한 가운데에서 온 몸으로 그 문화적 세례를 받은 저자의 예리한 느낌이 살아서 숨쉬는 느낌이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에세이 집이고 그들의 현재 시각과 공감대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정도로 미국 문화에 대해 선지식이나 당대의 이해도가 없는 독자들에겐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비춰질 여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마치 지금 화면에 나오는 미국 현지의 스탠딩 코메디 쇼를 볼때,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하는 부분에서 자막을 보아도 유머의 맥락을 몰라 어리둥절한 느낌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책은 주석이나 해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엄밀성을 요구하는 학술서나 전문 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도 아니다. 따라서 주석이나 해설글이 장황해지면, 자칫 가벼운듯한 느낌의 저자의 글들과 어우러지지 않을거라는 지점이 존재한다. - 그리고 나의 우려를 반영한듯 최대한 주석을 자제한 편집이 보인다. - 그러므로 이 책을 보다 더 다양한 독자들과 조우하게 하려면, 기존의 방식보다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미디어에서 그 역활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또한 내가 보기에 미국의 현대사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라고 믿는다. 1,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패권 다툼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6.25 전쟁과 베트남전으로 우리 역사와도 조우하는 지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나 그들 이전의 원주민들에 의한 역사들은 여러 이유로 인해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저 단편적으로 헐리우드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백인 중심"의 시각에서 다룬 일부만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원 즈음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은 독자들이 따라가기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구글 검색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의 소스가 존재하고, 접근성도 꽤 용이한 편이므로 보다 더 깊은 논의를 접해보고 싶은 독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읽어나가면 어떨까하고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구현하고 있는 "뉴 저널리즘" 문체의 한계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앞서 밝혔듯이, 이 글들은 뉴스 기사와 소설사이의 어딘가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낯선 글들이며 신선할수도 있지만, 거부감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미 부연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그들의 시장에서 자리잡은 이 쟝르가, 전혀 규모가 다르고 독자의 성향이 다르며, 언어가 다른 우리의 그것에서 얼마나 인상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인듯 하다. -그리고 출판사도 이를 비판하는 문제 인식을 거론한다.- 그러나 나는 대중들에게 이 문제를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뿐, 어떤 목적성이 들어갈 문제는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다만 꾸준히 이러한 글들을 소개한다면, 꽤나 가독성이 보장되는 이 쟝르의 글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결실을 맺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미국을 바라보도록 하자. "신대륙, 신국가"라는 의지의 표상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고, "구대륙"의 모순들을 피해 모여든 이민자들의 다양성이 혼재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넘어서 현재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기회의 땅"의 모습, 물질 문명의 극치를 선보이며, 그 이미지적 헤게모니를 장학한 거대 국가... 이 정도로 그동안 정리된 이미지를 뒤로 하고, 오로지 이 책에서의 느낌으로 재정의 해보는 것이다.
문자를 남기지 않아 지금도 그 신비함의 비밀을 간직한 원시적 대륙, 가장 현대적인 도시 문명과 가장 전원적인 자연 환경이 공존하는 드넓은 나라, 이제 비로소 자신들의 문화적 근간들 - 흑인음악, 남부문학, 헐리우드 영화 - 을 구축해낸 역동성의 나라, 그러나 아직도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간 견제가 팽배한 국가.. 이 정도가 아닐까?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오늘도 외신을 장식하는 그들의 뉴스를 좀더 이해해보면 어떨까...
그렇게도 자유 지향적이면서도 극도로 보수적인 그들의 내면, 패권주의를 보이지만 자신들의 대륙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의 뿌리,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한 문화적 배경을 대중문화와 영상매체를 통해 완전히 자기들 것으로 재편한 그들의 모습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이 모순적인 부분들을 보다 더 잘 드러낸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낮은 단계의 시도일지라도 서서히 우리의 인식을 바꿔주는 좋은 계기를 꾸준히 제공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펄프헤드 #존제러마이아설리반 #고영범 #알마 #알마출판사 #에세이 #미국문화 #신간
#마이클잭슨 #건즈앤로지스 #리얼리티쇼 #미국남부문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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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 2023-09-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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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산책(202309)
어느덧 선선(?)은 아니고 아직은 덥지만 곧 선선해질 것을 기대하면서 산책. (응?) 알음알음 한 권씩 산 것도 있고 왕창(?) 산 것도 있고. 어제 올리려고 했으나..... 일요일에 노트북 열기 넘나 귀찮은... 그런데 그걸 극복하고 노트북을 열어서 찍어 올린 다부장의 책상 사진 너무나 안 잊히네.......... 아고타 크리스토프, <잘못 걸려온 전화><아무튼>의 개정판일 거라고 의심은 했지만 <아무튼>일 줄이야. <아무튼>은 지금 내 책꽂이 어디 뒤 칸에 숨어 있는 것 같아서 ... + 더보기
잠자냥 2023-09-11 공감 (44)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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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이...
"펄프헤드"를 읽고 있다. 이제 막 첫번째 에세이 "이 반석 위에서" 를 읽었는데 읽다가 좀 말이 안되는 주석을 발견했다.바로 이 부분이 책 "펄프헤드"는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고 2011년에 나왔다. 그런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말한다고 이렇게 주석을 달아놓으면 이거 말이 안되는거 아닌가?이 책 첫번째의 "이 반석 위에서"라고 제목을 번역한 글은 2004년 "Upon This Rock" 이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실린 글이고 따라서 2004년의 미국 대통령... + 더보기
망고 2023-10-18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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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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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564쪽
책소개
미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린 《끈이론―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가 출간되었을 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월리스의 작품에 서문을 쓰는 중책을 맡아 현란한 언어의 향연을 펼친 설리번의 내공을.
우리에게는 완전히 낯설지만,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주에서 성장하고 미국 남부문학의 중심지인 스와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시작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 <뉴요커>, <파리 리뷰>, <GQ>, <하퍼스 매거진> 같은 유수의 잡지에 재기 넘치면서도 깊이 있는 글을 발표해 이름을 얻었고,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매체들에 기고한 글들 가운데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펄프헤드》가 2011년 <뉴욕 타임스>, <타임>, <보스턴 글로브>, 아마존이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목차
1. 이 반석 위에서
2. 연기 속에 잠긴 두 발
3. 미스터 라이틀: 에세이
4. 대피소에서(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5. 정말 리얼한 것의 차원으로
6. 마이클
7. 액슬 로즈의 마지막 컴백
8. 아메리칸 그로테스크
9. 라-휘-네-스-키: 괴짜 자연주의자의 경력
10. 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
11.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
12. 마지막 웨일러
13. 양들의 폭력
14. 페이턴스 플레이스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P. 16~17<이 반석 위에서>
나의 요구 사항은 딱 한 가지였다. 캠핑은 하지 않겠다는 것. 접었다 폈다 하는 거라도 상관없으니, 내부에 매트리스가 갖춰진 차를 준비해달라고 요구했다. “좋아요.” 그레그가 말했다. “자, 제가 전화를 좀 돌려봤는데, 필라델피아에서 반경 160킬로미터 안에는 남은 밴이 없어요. 그래서 RV를 하나 구했어요. 9미터짜리예요.” 접기
P. 33~34나는 지난 오 년간 이 나라에서 열린 수많은 대형 공개행사에 참여해 스포츠 기사든 뭐든 써왔는데, 그 모든 행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한 가지 공통점은 미국의 특히 수놈들이 늘 품고 다니는 이상한 적대감이다. 말도 안 되는 일반화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거대한 경기장의 넓은 통로나 홀 같은 데서 늦은 오후 한나절을 보내다보면, 단순한 남성성 이상의 훨씬 어두운 어떤 것을 느끼게 된다. (…) 그런 느낌이 여기에는 없었다. 그냥, 없었다. 일부러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 거기엔 십만 명이 모여 있었는데. 접기
P. 77~78<연기 속에 잠긴 두 발>
아버지가 내게 이 사고에 대해 알려준 건 오후였는데, 아버지는 전화로 형이 “다쳤다”고만 간단하게 말했다. 나는 형이 살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버지는 끔찍한 침묵을 지키다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형은 앰뷸런스에 실려오는 동안 다섯 차례나 심장박동이 멈추었고, 캡틴 존스가 <레스큐 911>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부르는 리듬”이라고 묘사한 “심장무수축”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 최악의 뉴스는 형의 뇌에 관한 것이었다. 형은 뇌가 1퍼센트만 기능하고 있는 식물인간 상태였다. 접기
P. 86~87아주 조용히 형이 울기 시작했고, 형의 어깨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들먹거렸다. (…) “형, 왜 우는 거야?” 내가 물었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본 걸 생각하고 있었어.”
(…)
자기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자기한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모르던 형이 자기가 ... 더보기
P. 97<미스터 라이틀: 에세이>
내가 그를 알게 된 1990년대 중반에는 소위 남부 르네상스 문학이 이미 학계에서 빛바랜 지역 연구 주제 정도로 상당 부분 사그라든 상태였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라이틀은 이 쇠락하고 위축된 조건 아래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진 것, 다시 되살려내야 할 것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럭저럭 남아 있었다.... 더보기
P. 131<대피소에서(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카트리나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풍해일을 만들어냈다. 공식 기록은 여전히 취합 중이지만, 파도 높이가 9미터를 넘어섰다. 미시시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건 이 거대한 해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듣고 어디론가 몸을 피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물살에 휩쓸려가다가 나무의 우듬지를 붙들려고 버둥거리는 상황에 처했다. 접기
P. 133~134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그쪽 집은 어땠어요? 그쪽 집도 덮쳤어요? “오, 사라졌어요. 다 사라졌어요.” 벽들은 “터져버렸다”. 미래는 강제로 뜯겨나갔고 거대한 공백으로 대체되었다. 사람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어디로 갈지, 대피소에서는 얼마나 더 머물 수 있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그 질문들이 아니라 다른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접기
P. 155~156<정말 리얼한 것의 차원으로>
이제 리얼리티쇼를 볼 때—예를 들어 <리얼 월드>를 챙겨가면서 본다면—우리가 보는 건 대충 짜놓은 시나리오 속으로 거칠게 내던져진 뒤 카메라 앞에 대책 없이 노출된 사람들이 아니라, 리얼리티쇼에 출연하는 연기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사람들이다. 이것이 요즘 방영되는 모든 리얼리티쇼의 플롯이다. 그들이 지어낸 주제가 뭐가 됐든 말이다. 접기
P. 158사람들은 이런 쇼들을 싫어하지만, 이 혐오에서는 자기부정의 냄새가 난다. 이 쇼들에는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미국인들에게 오랜 세월 전해내려온 그 모든 괴기스러운 것들이. 휘트먼과 포 사이에서 태어난 시험관 아기. 확신을 가지고 쏘아보는 공격적인 시선들. 철저한 자기정당화를 분수처럼 쏟아내고 저주의 기도를 웅얼거리는 말 많은 입들. 자기 돈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을 처벌해달라고 신을 부르는, 모르는 것 없이 늘 남을 가르치려 드는 말 많은 입들.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다 쓰게 된 이상한 문장들을 사용해가면서. “목표”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면서. 접기
P. 189~190<마이클>
그는 그지없이 아름답게 그 상황을 묘사한다. “마이클은 어둠 속에서 녹음해요.” 그가 말한다. “그리고 춤을 춥니다. 이렇게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 안은 캄캄해요. 아주 작은 핀 조명만 마이클 위로 떨어지고 있죠.” 스웨디언은 손을 쳐들어 머리 바로 위에서 아주 좁은 조명이 내리비추는 모습을 재현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이크가 있어요. 마이클이 자기 분량을 노래해요. 그러고는 사라지는 거예요.”
핀 조명 바깥의 어둠 속에서 그는 춤을 추고, 몸을 움직인다. 퀸시와 스웨디언이 아는 건 그게 전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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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펄프헤드》는 짜증날 정도로 좋다.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이래로 가장 훌륭한 에세이집이다.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엄청난 기지와 에너지로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어, 내가 이 책을 내려놓는 순간 때마침 내 책상에서 굴러떨어진 덕트테이프조차도 흥미진진한 비밀을 가득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탁월하고 생동감 있는 이야기들이다.
- 웰스 타워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미국의 문장에 폭탄을 떨어뜨렸고, 거기에서 튄 파편들이 섬세하게 빛을 발하는 동시에 충격을 주는 목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일단 분명히 해두자. 여기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탄탄한 논리와 유머 감각을 장착한 채 때론 날카롭게 몰아치고 때론 깊은 깨달음을 드러내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 마이클 파터니티 (《드라이빙 미스터 알베르트》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나무의 거친 겉껍질을 벗겨내고, 자신의 손에 기름이 묻어나올 때까지 그 속살을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설리번만의 독특한 세계관, 따뜻한 시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펄프헤드》는 에드워드 호글랜드, 게이 털리즈,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들과 나란히 놓여 마땅한 작품이다.
- 마크 리처드 (《기도하는 집 넘버 투》 저자)
강박적일 정도로 정직하고 대단히 지적인 설 리번의 《펄프헤드》는 헌터 S. 톰슨과 톰 울프 같은 뉴 저널리즘계 거장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 타임 (미국 시사주간지)
《펄프헤드》는 설리번이 그의 세대 최고의 에세이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북포럼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3년 8월 25일자 '새책'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23년 9월 15일자 문학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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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매거진> 전속 필진이자 <파리 리뷰>의 남부 담당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GQ> <하퍼스 매거진> <옥스퍼드 아메리칸> 등 다양한 잡지에 글을 기고했는데, 《펄프헤드》가 <타임> <뉴욕 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그리고 아마존 등의 ‘2011년 최고의 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뉴요커>의 제임스 우드는 그를 레이먼드 카버에 비교하는 동시에 “에머슨과 소로의 분위기”도 가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다른 지면에서는 그를 두고 새로운 톰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헌터 S. 톰슨, 혹은 이 세 사람을 합친 작가로 일컫기도 했다. 저서로 《혈통마Blood Horses》 《펄프헤드Pulphead》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에서 아내와 딸들과 거주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펄프헤드>
고영범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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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출신의 실향민 부모님 밑에서 1962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서는 신학을, 미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공부했다. 대학원을 마친 뒤 십수 년 동안은 이런저런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광고, 단편영화를 만드는 한편, 영화와 광고 등의 편집자로 일했고, 그후로는 번역과 글쓰기를 주로 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 2》(이승민과 공역)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불안》 《별빛이 떠난 거리》 《나는 다시는 세상을보지 못할 것이다》 《스웨트》 《예술하는 습관》 《우리 모두》 등이 있고, 쓴 책으로는 《레이먼드 카버》,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와 희곡 <태수는 왜?> <이인실> <방문> <에어콘 없는 방>, 단편소설 <필로우 북_리덕수 약전> 등이 있다. 현재 미국에 살면서 집안의 실향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접기
최근작 : <서교동에서 죽다>,<[큰글씨책] 서교동에서 죽다>,<서교동에서 죽다> … 총 3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알마
출판사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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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타르콥스키, 기도하는 영혼>,<빵야>,<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등 총 225종
대표분야 : 심리학/정신분석학 11위 (브랜드 지수 108,184점), 과학 11위 (브랜드 지수 290,30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광활한 언어의 우주에 쏘아올린
폭죽 같은 열네 편의 이야기
<뉴욕 타임스>, <타임>, 아마존 선정 2011년 최고의 책!
지금까지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기억해야 할 이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미국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린 《끈이론―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가 출간되었을 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월리스의 작품에 서문을 쓰는 중책을 맡아 현란한 언어의 향연을 펼친 설리번의 내공을.
우리에게는 완전히 낯설지만,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주에서 성장하고 미국 남부문학의 중심지인 스와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시작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대학을 마친 뒤 아일랜드에서 잠시 “방황기”를 보낸 설리번은 <옥스포드 아메리칸>지에서 인턴을 하면서 미시시피주에서 한 달을 살았다. ‘올 미스’라는 호텔의 갈색 카펫이 깔린 방에서 지냈는데, 바로 근처에서는 창녀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설리번은 <옥스퍼드 아메리칸>의 편집자인 마크 스미르노프에게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스미르노프는 설리번에게 첫 기명 기사로 그 이야기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누가 문을 열어주고는 내가 들어갈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서면서, ‘망치지 말고 잘해봐’라고 말하는,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설리번이 말했다. “그리고 그 기사 덕에 아주 근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하퍼스>, <파리 리뷰>,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에 기명 기사를 싣게 되는 근사한 일들이 이어진 것이다. 그후 십여 년에 걸쳐 설리번은 보도기사 작성법과 경계 외부에 있는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 자신만의 목소리(사적이지만 시니컬하지는 않고, 깊은 생각을 담되 자신이 지적인 걸 과시하려 들지는 않는)를 다듬었다._아마존 인터뷰 중에서
그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 <뉴요커>, <파리 리뷰>, <GQ>, <하퍼스 매거진> 같은 유수의 잡지에 재기 넘치면서도 깊이 있는 글을 발표해 이름을 얻었고,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매체들에 기고한 글들 가운데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펄프헤드》가 2011년 <뉴욕 타임스>, <타임>, <보스턴 글로브>, 아마존이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서로 다른 이야기, 그 다름으로 새롭게 직조해낸 미국 문화
《펄프헤드》에는 설리번의 배경과 그가 사랑하고 전문성을 키워온 ‘문화’―글쓰기, 음악, 팝문화, 그 외의 것―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열네 편의 이야기 가운데 <이 반석 위에서>(1장), <마이클>(6장), <액슬 로즈의 마지막 컴백(7장),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11장), <마지막 웨일러>(12장) 등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가 다수이지만, <정말 리얼한 것의 차원으로>(5장), <페이턴스 플레이스>(14장)처럼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는 에세이와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 라피네스크나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이야기에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짧게는 20여 페이지, 길게는 70여 페이지에 이르는 각각의 이야기는 미국과 미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면서 그의 단단한 글쓰기와 전문성은 빛을 발하고, 우리는 천천히 글을 음미해가며 새로운 시각, 새로운 지평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표피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만큼 설리번은 무엇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깊이 파고든다.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펄프헤드》를 통해 다양한 우리 문화—친숙한, 잘 모르는, 완전히 잊혀진—를 찾아나서는 매혹적인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설리번은 미국적 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들여다보겠다는 애당초 선명하기 어려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그 흔적이 사라진 블루스 뮤지션과 19세기의 식물학자를 찾아 남동부를 가로지르고, 액슬 로즈와 마이클 잭슨이 나고 성장한 인디애나주의 곳곳을 찾아나선다. 설리번이 역사 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순간들의 근원적인 낯섦과 씨름하는 동안,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서사, 이 나라에 대해 여태 우리가 들어본 적이 없는, 최소한 이런 방식으로 들어본 적은 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_아마존 리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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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리번의 글을 빛나게 만드는 것,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은 그의 글쓰기 능력과 전문성이 아니다. 그의 재기 넘치는 글에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온기이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따뜻함과 긍정성은 그의 글이 따뜻하되 과열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담되 현학적으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온기는 그의 책에 묘한 향수鄕愁와 회고의 기운을 더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의 이런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 바로 564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책의 처음을 여는 <이 반석 위에서>이다. 자,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자. 진부한 표현 그 자체인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처럼 쉴 틈 없이’ 색깔과 방향을 달리하는 설리번의 이야기 세계로 뛰어들 준비를.
그가 썩 탐탁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취재를 맡아 결코 몰고 싶지 않았던 9미터짜리 RV를 몰고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좌충우돌 길을 떠나는 장면만으로는 뻔한 글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게 사도 요한과 예언자 예레미아를 한데 품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떠난 크리스천록 페스티벌이라니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설리번도 예상했듯 이 취재 여행은 아주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평범하게 끝나야 했다.
잘난 체하는 건 좋지 않지만, 애초의 내 계획은 완벽했다. 나는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았다. (…)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어떤 게 더 어렵니—홈스쿨, 아니면 일반 학교?”), 취재 패스를 흔들어 보이며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가수는 사랑으로 충만한 영혼으로 노래를 부를 때 모든 음악은 ‘그분’을 영광되게 한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 것이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그가 하는 이야기에서 열 단어에 하나 정도씩만 받아적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내가 몰고 온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그들의 분위기를 느끼면 될 것이었다. 그러고는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_11~12쪽
하지만 그의 계획은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고생 끝에 도착한 페스티벌 행사장 야영지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의 따뜻한 교감, 행사장에 울려퍼지는 록음악과 그 음악으로 인해 갑작스레 소환된, 복음주의에 빠져 있던 청소년 시절 등이 마치 우박처럼 설리번의 마음을 두드리고, 결국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야 만다.
나는 내 트레일러로 돌아왔고, 형편없이 무너져버렸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몇 가지 이유로 멈췄다. 나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나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 같았고, 외로웠다. 이 여행을 장난처럼 생각하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이였던가._65쪽
그리고 생소한 작가의 농담처럼 시작된 이야기를 따라 달려온 우리 역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미주리주의 한 계곡에서 펼쳐진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 속에서 설리번이 느꼈던 그 압도적인 감정을, 정화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된다.
갑자기 더 어두워지더니 아주 캄캄해졌다. 무대 양쪽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핀으로 뚫은 구멍으로 새어나오는 것 같은 작은 불빛들이 나타나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부터 불을 밝히고, 점점 가운데로 번져 들어오는 것이다. 촛불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지는데, 그 효과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마지막에 가면 절반의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이 들고 있는 초에 불을 붙이면서 마치 누군가가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딱 그랬다.
구름이 걷히면서 밝은 별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의 나무들에는 온통 반딧불이 천지였고, 내 앞과 저 멀리 아래에는 타오르는 촛불들의 작은 불꽃 수만 개가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는 점멸하는 불빛들로 가득한 어둠의 영토 안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_70~71쪽
레이먼드 카버, 톰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헌터 S. 톰슨, 혹은 톰 웨이츠
<뉴요커>에서는 설리번을 레이먼드 카버에 비교하면서 그가 “에머슨과 소로우의 분위기”도 띤다고 평가했다. 다른 매체에서는 새로운 톰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헌터 S. 톰슨, 혹은 이 세 사람을 합친 작가로 일컫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달리든, 설리번 고유의 글쓰기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리번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줄곧, 스포츠기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설리번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쓰는 글들은 정말 이상했어요. 그 글들은 아마 창작에 가까운 논픽션으로 분류하는 게 정확할 거예요.”
나는 그가 작가가 되는 데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가장 영리하고 훌륭한 방법을 취했어요. 전혀 개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도 늘 격려하는 태도를 유지한 거죠.” 그가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다른 일들에는 별로 맞지 않고, 결국에는 글을 쓰게 되리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중략)
내가 물었다. “당신은 이런 이상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건가요, 아니면 그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가요?” 그가 말했다. “그로테스크는 사람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좁지만 내밀한 각도를 제공해줘요.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이 있어요.”
“자신의 기본적인 인간성마저도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쓰는 게 즐거울 때가 있어요. 이런 어려움을 헤쳐가는 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아주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거든요.”_아마존 인터뷰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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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발견. 정확히 15페이지에서 빵 터지고는 그 이후 계속 낄낄 웃다가 어느 순간 뭉클해져서 눈물까지 찍 흘리는 이야기들. ‘미스터 라이틀’에 관한 에세이는 읽다가 막판에 울어버렸다.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진심 감탄.
잠자냥 2023-09-30 공감 (32)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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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주제 유려한 글솜씨
이 책은 미국의 한 잡지의 편집자이기도 한 1974년생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에세이 열네 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글들은 주로 유명 잡지들에 실렸고 사실에 기반으로 한 기사 형식의 글들이다.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한 현장감이 생생하면서도 보통의 기사 형식의 글들과는 다르게 상황을 문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저자의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이 문장마다 흘러넘치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방식의 글들은 일찍이 미국에서 1960~70년대에 유행했고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과의 차이를 두기위해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실 위에다 소설적인 기법을 덧칠해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맛깔나게 가미해서 통찰을 이끌어 내는 좀 더 문학에 가까운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될까?
뭐라고 부르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일단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거 같은 정보들이 이 글들 속에 있었고 글감을 다루는 저자의 글 솜씨가 유려해서 읽을 맛이 난다는 점이 아주 좋았다.
거의 백인들만 참석하는 사상 최대의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서 만난 독특한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저자의 형이 락 밴드 연습을 하다가 마이크에 감전을 당해서 죽다 살아난 이야기, 남부 문학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 진 노년의 작가 미스터 라이틀과 20살의 저자가 한때 동거 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 마이클 잭슨과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에 대한 이야기, 켄터키 주에 있는 미국 원주민들의 역사를 가득 품고 있는 수많은 동굴들의 이야기, 초기 블루스 음악을 했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밥 말리의 원년 밴드 멤버인 버니 웨일리를 만나면서 풀어놓는 자메이카의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집을 거액을 받고 몇 년 동안이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빌려 준 경험 등등...
거의 모든 주제가 흥미진진했다. 어디 가서 이런 특별한 주제의 글들을 한꺼번에 다 읽어 볼 수 있겠는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책 한권으로 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잡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 글들은 유머러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다는 점이 좋았다. 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자의 따뜻한 인격은 이 글들을 쓸 당시 30대 였을 저자의 나이를 생각해 봤을 때 꽤나 예상외의 것이었다. 30대의 젊은 기자의 날카로운 냉소의 시선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해와 연민의 시선이 곳곳에 내려앉아 있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락 페스티벌에 대한 글은 무신론자의 시선으로 페스티벌을 비판적으로 훑으면서 간간히 유머를 가미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자는 그곳에서 자신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3년 동안 복음주의 교회에 푹 빠져서 활동 했다가 빠져 나왔던 경험을 털어 놓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투박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남부 청년들과 우정을 나누는 와중에 신을 사랑한다는 그들을 이해한다.
액슬 로즈의 어린시절 고향 친구를 인터뷰 할 때 저자는 또 다른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빈부격차가 사람의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 하던 어린 시절엔 다함께 어울려 놀았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는 친구와 아닌 친구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 이후 대학을 가지 않았던 친구들과는 평생을 만날 일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저자의 기억은 고향을 떠나 락 스타가 된 액슬 로즈와 고향에 남아있는 그의 친구의 관계 속에서 소환된다. 어릴 땐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커서 달라진 처지 때문에 영영 볼 일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그 씁쓸함에 대해...
저자의 글에서는 주제로 떠오르는 사람들, 인터뷰 한 주변인들 누구도 함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누구 하나 깎아 내리면서 유머를 던지는 유의 글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리얼리티 출연자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빈정대며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글을 썼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리얼리티 출연자들이 방송 출연을 하지 않을 때 여기저기 파티에 불려 다니며 약간 우스꽝스러운 인플루언서로 사는 삶의 방식도 존중한다. 그렇게 사는 것도 뭐 나쁘진 않겠지 하는 시선.
아 딱 한명 “양들의 폭력”에 나온 동물학자가 좀 이상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건 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물 묘사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읽으면 알게 된다. 아무튼 이 “양들의 폭력”도 거의 소설 읽듯이 참 재밌게 읽었다.
독특한 주제 아래에서 종교, 대중문화, 역사, 정치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까지 이루어내는 에세이였다. 최근에 몇몇 에세이를 읽었는데 대부분 사적인 경험에 치중한 것들이 많아서 식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취재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문학적인 성취까지 이룬 에세이를 읽다보니 너무나 새로웠고 지적인 호기심도 채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재밌게 잘 읽었고 다른 뉴저널리즘 장르의 에세이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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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11-01 공감(11)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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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언어의 우주에서 유영하다!
형은 내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여기에 물질의 차원으로, 말라서 갈라지는 시냅스 덩어리 차원으로 축소된 의식이 있었다. 형은 단어들의 사용법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사물과 제대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 사물들과, 에너지장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형은 새로운 이름들을 발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형의 자리는 나무랄 데 없는, 심지어 시적인 자리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곳이었다. 형은 죽음을 만져봤지만, 혹은 죽음이 형을 건드렸지만, 형에게 삶이란 심지어 그런 것도 가능한, 여전히 흥미로운 어떤 것인 듯이 보였다. p.85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는다. 사실 그의 계획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대충 이야기를 나누다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의 뻔한 이야기를 적당히 받아적다가 올 예정이었다. 밤이 되면 자신이 몰고 간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있다가 분위기를 좀 느끼고 나서,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 취재는 그의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급기야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와 울기 시작한다. 이 여행을 장난처럼 생각하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이였던가부터 시작해 형편없이 무너져버리게 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하다면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 '이 반석 위에서'를 읽어 보자.
이번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대피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글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에서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풍해일을 만들어 냈는데, 파도 높이가 무려 9미터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거대한 해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어닥쳤기 때문에 미시시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는 인근 초등학교에 마련된 적십자 대피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낮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2미터가 넘는 물이 집 안에서 넘실대고 있었다는 사람부터, 바람이 휘몰아쳐 나무에 부딪히고, 주변에는 뱀들이 헤엄치고 있었다는 이도 있었으며, 대부분 자신이 곧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말은 바로 '사라졌다'는 거였다. 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산책로들이 사라져버렸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미래는 강제로 뜯겨나갔고 거대한 공백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생생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 세상의 진짜 마지막의 시작'을 그려낸다.
이런 식의 과열된 선언은 모두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무시해버리기 전에, 우리는 그 노래들에 표현된 느낌이나 표현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단순하고 기술적인 설명이 하나도 없는지 질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젊은 소비자들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를 장악해버린 로큰롤에 블루스의 서사를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 분리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다른 요소 또한 존재한다. 더 깊고, 더 농익은 근원이다. 이 음악에 대해 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주목했다. 로버트 파머는 이걸 '깊은 블루스'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는 중압감 속의 중압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p.420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글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에 수록된 다소 장황한 서문으로 처음 만났었다.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끈이론>에서 테니스 경기를 둘러싼 모든 철학적, 정치사회적, 심지어 수학적 맥락들을 깊이 쑤시고 건드리며 테니스의 시간을 경이로운 산문의 언어로 옮겨냈다. 그리고 그 독특한 에세이만큼이나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서문 또한 유려한 언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그는 다수의 매체에 글을 발표해왔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그 중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에세이라는 카테고리의 책 중에 이렇게 두툼한 분량의 작품이 있었나 싶은데, <펄프헤드>는 무려 564페이지에 달한다.
이 벽돌 에세이집에는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비롯해서,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와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체험기 등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글은 현란하지만 어렵지 않고, 날카롭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며 놀라운 세계를 보여준다.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방식의 글은 저널리즘 역사 속에서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뉴 저널리즘'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런 형식의 글을 우리 저널리즘 역사나 문학사에서는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이번에 출간된 <펄프헤드>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훌륭한 저널리즘이 갖춰야 할 덕목을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인디언 동굴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의 깊이 있는 이면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라 불리는 뛰어난 저술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탁월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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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23-09-1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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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헤드
_그렇기는 하지만, 마이클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무런 가식 없이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이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들어보면 이때의 마이클은,... 마티 베셔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과 함께 살기> 같은 이야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마이클이다. <제트>와 <에보니>를 읽고 나면 여러 인종의 아주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마이클 잭슨과 좋은 친구로 남아 있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매력적이고 살아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_p182
_로비스트 사촌은 D.C의 분위기가 거칠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제시한 공공의료 방안이 동력을 얻고 있었다. 로비스트 사촌의 상사가 그날 아침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우리 망한 거 같은데”였다.
.... 나는 내 사촌의 시도가 실패하길 바라면서, 그에게 행운을 빌어줬다._p284
<뉴욕 타임즈 매거진> 전속 필진이자 <파리 리뷰>의 남부 담당 편집자고 활동 중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열네 편 에세이집, <펄프헤드>를 정말 긴 호흡으로 읽었다. 책의 부제는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이 부제처럼 미국의 문화와 역사 등을 다루고 있었는데, 사실 읽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감전되어 거의 죽다살아난 저자의 형인 록 뮤지션, 태풍 카트리나와 사람들, 리얼리티쇼와 출연자들, 마이클 잭슨,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 미국 의료보험 개혁에 반대하는 분위기, 기인 라피네스크, 미국 남동부 원주민들의 동굴 유적, 자메이카로 가서 만난 버니 웨일러, 그리고 지구를 망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동물들의 반격과 촬영지로 빌려준 자신의 집 이야기 까지, 다양한 소재들이였다.
모두 미국 유수의 잡지들에 수록되었던 에세이라고 한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설 같아서 읽기 시작할 때 여러번 도서장르를 확인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이런 방식’의 글을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소설기법들이 적용되어 있어서 일반 저널 보다 몰입하기 좋았는데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불편해지고 이해가 안되는 지점들로 잠깐 멈추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또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도 하고 같이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독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뜻밖에 마이클 잭슨과 오바마케어가 등장한 챕터가 인상적이였다. 마이클 잭슨의 곡들을 분석해놓은 부분에서는 알아가는 맛이, 여러 논란 중에 있었던 그에 대한 냉철한 저자의 의견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오바마케어 파트에서는 이성적인 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정책반대자들이 씁쓸한 부분이였다. 저자에게 전적으로 공감했었다.
전체적으로 읽기에 난이도가 있는 책이여서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중에, 그리고 독서 후에도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였고, 사회전반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픈 도서였다.
_우리에게 참인 건 자연에서도 참이다. 우리에게 의식이 있는 게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의 결과라면 자연에도 의식이 있다. 자연이 우리 안에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스스로를 관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_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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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화 2023-10-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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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펄프헤드,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 서평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부제: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분야: 에세이, 영미 에세이
모든 것이 빠르고 가볍게 소비되는 시대에 벽돌책을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에세이 분야에서 벽돌책은 정말 희귀한 존재인데 아마도 대부분의 에세이가 한 가지 주제만을(예: 여행, 인간관계, 취미 등) 다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펄프헤드]는 상당히 특이한, 한국 에세이와는 조금 다른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그 차이가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만은 아니다.
[펄프헤드]는 잡지에 수록되었던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에세이 열네 편을 엮은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세이의 주제들은 제각각인데 그렇다고 해서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에 주제가 있다면 바로 미국, 그 자체일 것이다. 열네 편의 이야기 중 상당수가 미국인에게 특히 강렬한 시대적 아이콘과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소재적으로도 그렇지만 앞서 첨부한 <옮긴이의 말>에서 설명한 '뉴 저널리즘 (잡지 저널리즘)'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뉴 저널리즘 방식의 글쓰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잭 하트의 [퓰리처 글쓰기 수업]을 읽어보라. 예전에 서평을 작성했던 책 중 [아메리칸 파이어]가 [펄프헤드]와 마찬가지로 뉴 저널리즘 방식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메리칸 파이어]의 경우는 에세이가 아닌 논픽션이며 어코맥 카운티의 방화 사건이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이 책 역시 분량이 꽤 되는 책이다.)
다시 [펄프헤드]로 돌아가서, 이 '뉴 저널리즘' 방식이 국내의 에세이 작법과 다른 점을 꼽자면 플롯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에-왜냐하면 나는 일반 독자일뿐 편집자나 작가도 아니고 심지어 국문학과 등과는 1도 연관이 없는 그냥 자연과학대 출신이므로-국내 에세이는 일본 에세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두 그룹 모두 느슨하고 소소한 소재들을 주로 다룬다는 점 그리고 소설보다는 일기에 가깝다는 점이 그렇다. 이슬아, 마스다 미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이런 스타일의 에세이가 [펄프헤드] 같은 에세이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같은 재료라도 요리법이 양식이냐 중식이냐 한식이냐에 따라 전부 다른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니 폭과 깊이를 갖춘, 따라서 필연적으로 길이도 꽤 되는 묵직한 에세이들은 주로 이 외국 에세이 분야에 몰려 있다. 나는 이런 글들이 한국 문학, 한국 저널리즘의 한 부분을 차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런지,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옮긴이의 말
물론 나는 리조또도, 볶음밥도 김밥도 전부 잘 먹는다. 그렇지만 메뉴는 다양할수록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 요리법 때문에 재료가 제한되는 건 좀 별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에게 있어, 미국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는 <심슨 시리즈>와 [월든]이다. [펄프헤드]에서도 이러한 미국적인 특성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읽는 내내 미국 특유의 극적인 상황에서도-...막장이다. 나라면 울었을 듯.-반짝이는 낙관적인 사색과 유머의 향기가 난다.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사건을 다루는데도 무겁기보다는 가볍게 이야기가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것, 그게 이 책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읽다가 인상적이거나 웃긴 부분이 나오면 공유해야지, 하는 생각에 신나서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뒀는데 막상 서평을 작성하다 보니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이 책의 재미를 모두 담아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잇.. 헛짓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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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pin 2023-09-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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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 America 이 아니다!...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60 : 펄프헤드 Pulphead, 존 제러마이어 설리반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위 그림은 초 현실주의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의 대표작으로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마그리트는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인식 체계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는데, 그 의도를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실제로 그림은 물리적으로 캔버스위에 물감 덩어리의 분포에 따른 어떤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물리적 실체를 보지 않고 그림이 표방하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그것이다. 이는 보들리아르 Baudrillard 가 "시뮬라시옹"에서 실체에 대한 이미지의 전복(그리고 잠식) 으로 매우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쯤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문득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우리에게 미국 America 은 무엇인가?..."
아마 다양한 이미지가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며, 오만가지 대답이 교차할 듯 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마천루, 넓디 넓어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광활한 대자연, 화려한 라스베가스나 마이애미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기회의 땅 등등... 기존에 우리가 가진 미국의 이미지는 크고 광활한 대륙, 전 세계의 중심인 패권의 나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대중 문화의 끝판왕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을 우리와 최근의 현대사(해방이후 6.25전쟁, 베트남전) 를 함께한 "혈맹" 으로 간주하고, 늘 부러운 대상으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문득 나는 우리의 이 모습이 마치 큰 코끼리의 몸 여기저기를 부분적으로 만지며 느낀데로, 그 거대한 전체의 집합인 코끼리를 속단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든다. 누군가 미국인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설명해주지 않겠어?"라고 부탁하면, 전혀 예상치못한 대답이 나올거라는 기대마져 하면서 말이다. 소위 "디커플링" 시대에 들어서 이제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봐야할 상황이 자꾸 발생하니, 적어도 그들의 민낯은 고사하고 도데체 무어라 우리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소개하는지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에 특히 더 그러하다. 그리하여 다음의 질문을 또다시 던져본다.
"과연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John Jeremiah Sullivan 은 미국 중부 테네시 출신의 기자 겸 저널리스트이다. <GQ>, <하퍼스 매거진> 등을 비롯 유수의 잡지사에 기고를 하고, 현재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전속 필진으로 활동중인 작가이다. 본 작, 펄프헤드로 2011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후로 언급할 "뉴 저널리즘 New Journalism"으로 특징되는 에세이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 뉴 저널리즘은 영미권의 잡지들에서 관찰되는 특징으로서 기사와 에세이의 절충적인 양식으로 자리잡은 장르이다. 일반적인 신문 기사들이 그렇듯이 시계와 같이 딱딱하고 정확한 사실 전달, 기자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건조한 문제가 아니라, 마치 문학의 그것처럼 세부 표사의 극적인 디테일, 필자의 의도나 느낌을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개입까지 한다. 따라서 논픽션의 기틀은 유지하되 소설적인 기법을 다양하게 차용하여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마치 사건을 "목도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다.
본 작은 이러한 뉴 저널리즘의 현재적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잘 접하지 못한 그 특유의 문체를 경험해보기 좋은 작품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가진 미국의 이미지와 다른, 미국인 저자가 느끼는 진짜 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접해보기에 상당히 강점이 있다 하겠다.(그리고 책 말미에 출판사의 후기에서도 이 목적을 언급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일종의 모음집 성격을 가지고 있고, 각 글들의 주제나 동기는 정말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으로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 한 가지는 일관되게 느껴진다. 그것은 현재 미국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써, 동시대에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과 그 뿌리, 그리고 나아가는 여정을 그들의 시각으로 그려내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3. 인상적인 부분...
처음 이 책을 접하면 - 약간이나마 이 책에 대해 전달받은 사전 정보와 달리 -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분명 에세이 집이라고는 하는데 소위 벽돌 두께의 큼지막한 분량이란! 더군다마 펼쳐든 목차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미국 문화에 꽤 익숙하다고 평소 자부하던 나부터도 도데체 종잡을 수 없으니... 그러나 호기심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던진 내 질문을 스스로 찾아보리라는 의무감마져 동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그 제목들을 선정한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다른 면을 접해본 기쁨이 나름 존재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인 그 외형과 달리 선정한 주제들은 꽤나 현시적이다. "트럼피즘"의 지지 기반이 된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반동을 연상케하는 대형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다룬 첫 장 "이 반석 위에서"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상흔이 남은 태풍 "카트리나"의 기억들, 그 속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난 영화같은 일화들을 그 이후의 장에서 다룸으로써, 현재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분명히 큰 트라우마를 안겼음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 엿보이는 "아메리칸 그로테스크"에서는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는 면을 보여준다. 전前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 차별과 매카시즘적인 공격들은 결국 "메디케어 Medicare"로 대표되는 복지정책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로 귀결되며, 이 준동의 밑바닥에는 "폭스 뉴스"로 대변되는 극우 레서시 미디어와 티파티 Tea-party 로 잘 알려진 보수 공화당을 지지하는 로비스트들을 등장시킨다. (심지어 이 자들이 자기 친척들이다.) 짐작컨데 민주당 지지자인 저자가 느끼는 이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서 훗날 "미 의회 점거 폭동(2021)"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건 나만의 우려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진 과도한 황홀감도 어두움도 없다. 다만 현장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생생함이 묻어있다. 이러한 현장감이 내가 당신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들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직도 대륙(유럽)에 대해서 느끼는 문화적, 역사적 열등감의 발로라고 느끼기에는 이미 오래전에 미국은 패권주의에 익숙해진 시점 아닌가. 오히려 그것보단 자신들의 고립된 대륙에서 아직도 그 기원에 대해 불분명한 고대의 문명들의 탐사와 재발견("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이라든지 "남부"로 대표되는 자연주의(때론 낭만주의)적 문학 운동의 마지막 장의 결말("미스터 라이틀:에세이),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부분이었지만 과소평가된 "블루스"의 알려지지 않은 흔적들과 그를 둘러싼 문화적 의의 평가와 보전에 대한 글("알려지지 않은 시인들") 등을 통해 자신들의 서사를 외부 시선과 상관없이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렇게 갈망한 자기들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로 보인다. 결국 "전통"이란 것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형성되어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역량과 세대의 자세에서 생겨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느덧 우리가 기억할법한 헐리우드 고전영화의 많은 작품들이 이제는 당당시 "고전 Classic"의 반열에 올라 끊임없이 오마쥬를 바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밴드 출신의 저자 자신의 경험은 숨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록 문화를 포함한 MTV 시대의 성장, 그리고 미디어 산업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은 확실히 감정이 있다. 그 누가 우스스탁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의 안티 테제로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상상이나 했겠는가("이 반석 위에서"). 게다가 "액슬로즈의 마지막 컴백"에서 엿보이는 노골적인 락에 대한 경배와 - 나는 이것이 편협하다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 "마이클"에서 나타나는 모타운 사운드를 넘어선 한 위대한 뮤지션의 최대 논쟁 지점 - 아동 성추행 혐의 - 는 지금도 명백히 유효한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모습이다. 우리가 오늘도 펍 Pub 에서 들려오는 각종 록 음악들,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하는 우리의 아이돌 그룹들의 뿌리에는 마이클 잭슨의 업적이 자연스레 녹아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레게 음악의 시발점인 밥 말리 & 더 웨일러스 Bob Marley & the Wallers 의 바로 그 에윌러를 취재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빌보드로 대변되는 미국 대중 음악의 한 가운데에서 온 몸으로 그 문화적 세례를 받은 저자의 예리한 느낌이 살아서 숨쉬는 느낌이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에세이 집이고 그들의 현재 시각과 공감대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정도로 미국 문화에 대해 선지식이나 당대의 이해도가 없는 독자들에겐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비춰질 여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마치 지금 화면에 나오는 미국 현지의 스탠딩 코메디 쇼를 볼때,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하는 부분에서 자막을 보아도 유머의 맥락을 몰라 어리둥절한 느낌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책은 주석이나 해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엄밀성을 요구하는 학술서나 전문 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도 아니다. 따라서 주석이나 해설글이 장황해지면, 자칫 가벼운듯한 느낌의 저자의 글들과 어우러지지 않을거라는 지점이 존재한다. - 그리고 나의 우려를 반영한듯 최대한 주석을 자제한 편집이 보인다. - 그러므로 이 책을 보다 더 다양한 독자들과 조우하게 하려면, 기존의 방식보다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미디어에서 그 역활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또한 내가 보기에 미국의 현대사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라고 믿는다. 1,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패권 다툼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6.25 전쟁과 베트남전으로 우리 역사와도 조우하는 지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나 그들 이전의 원주민들에 의한 역사들은 여러 이유로 인해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저 단편적으로 헐리우드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백인 중심"의 시각에서 다룬 일부만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원 즈음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은 독자들이 따라가기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구글 검색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의 소스가 존재하고, 접근성도 꽤 용이한 편이므로 보다 더 깊은 논의를 접해보고 싶은 독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읽어나가면 어떨까하고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구현하고 있는 "뉴 저널리즘" 문체의 한계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앞서 밝혔듯이, 이 글들은 뉴스 기사와 소설사이의 어딘가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낯선 글들이며 신선할수도 있지만, 거부감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미 부연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그들의 시장에서 자리잡은 이 쟝르가, 전혀 규모가 다르고 독자의 성향이 다르며, 언어가 다른 우리의 그것에서 얼마나 인상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인듯 하다. -그리고 출판사도 이를 비판하는 문제 인식을 거론한다.- 그러나 나는 대중들에게 이 문제를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뿐, 어떤 목적성이 들어갈 문제는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다만 꾸준히 이러한 글들을 소개한다면, 꽤나 가독성이 보장되는 이 쟝르의 글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결실을 맺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미국을 바라보도록 하자. "신대륙, 신국가"라는 의지의 표상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고, "구대륙"의 모순들을 피해 모여든 이민자들의 다양성이 혼재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넘어서 현재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기회의 땅"의 모습, 물질 문명의 극치를 선보이며, 그 이미지적 헤게모니를 장학한 거대 국가... 이 정도로 그동안 정리된 이미지를 뒤로 하고, 오로지 이 책에서의 느낌으로 재정의 해보는 것이다.
문자를 남기지 않아 지금도 그 신비함의 비밀을 간직한 원시적 대륙, 가장 현대적인 도시 문명과 가장 전원적인 자연 환경이 공존하는 드넓은 나라, 이제 비로소 자신들의 문화적 근간들 - 흑인음악, 남부문학, 헐리우드 영화 - 을 구축해낸 역동성의 나라, 그러나 아직도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간 견제가 팽배한 국가.. 이 정도가 아닐까?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오늘도 외신을 장식하는 그들의 뉴스를 좀더 이해해보면 어떨까...
그렇게도 자유 지향적이면서도 극도로 보수적인 그들의 내면, 패권주의를 보이지만 자신들의 대륙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의 뿌리,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한 문화적 배경을 대중문화와 영상매체를 통해 완전히 자기들 것으로 재편한 그들의 모습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이 모순적인 부분들을 보다 더 잘 드러낸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낮은 단계의 시도일지라도 서서히 우리의 인식을 바꿔주는 좋은 계기를 꾸준히 제공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펄프헤드 #존제러마이아설리반 #고영범 #알마 #알마출판사 #에세이 #미국문화 #신간
#마이클잭슨 #건즈앤로지스 #리얼리티쇼 #미국남부문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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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 2023-09-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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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산책(202309)
어느덧 선선(?)은 아니고 아직은 덥지만 곧 선선해질 것을 기대하면서 산책. (응?) 알음알음 한 권씩 산 것도 있고 왕창(?) 산 것도 있고. 어제 올리려고 했으나..... 일요일에 노트북 열기 넘나 귀찮은... 그런데 그걸 극복하고 노트북을 열어서 찍어 올린 다부장의 책상 사진 너무나 안 잊히네.......... 아고타 크리스토프, <잘못 걸려온 전화><아무튼>의 개정판일 거라고 의심은 했지만 <아무튼>일 줄이야. <아무튼>은 지금 내 책꽂이 어디 뒤 칸에 숨어 있는 것 같아서 ... + 더보기
잠자냥 2023-09-11 공감 (44)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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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이...
"펄프헤드"를 읽고 있다. 이제 막 첫번째 에세이 "이 반석 위에서" 를 읽었는데 읽다가 좀 말이 안되는 주석을 발견했다.바로 이 부분이 책 "펄프헤드"는 저자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고 2011년에 나왔다. 그런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말한다고 이렇게 주석을 달아놓으면 이거 말이 안되는거 아닌가?이 책 첫번째의 "이 반석 위에서"라고 제목을 번역한 글은 2004년 "Upon This Rock" 이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실린 글이고 따라서 2004년의 미국 대통령... + 더보기
망고 2023-10-18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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