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은이), 송은경 (옮긴이) 민음사 2021-04-09
정가
15,000원
10,500원
9.6
100자평 6편
책소개
“한 인간의 삶을 눈앞에 보듯 설득력 있게 풀어낸 이 초상은 독창성, 유머와 부조리가 뒤섞여 있으며, 궁극적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선데이 타임스》), “인간성과 계급과 문화를 가슴 저미게 파고드는 수법이 마술에 가깝다.”(《뉴욕 타임스 북 리뷰》) 등의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에게 본격적인 문학적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소설은 영국의 한 저명한 저택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생애 첫 여행을 떠나는 현재와, 그곳에서의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이 짜임새 있게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스티븐스는 여행하는 내내 ‘위대한 집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위대한 집사란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 복종, 이를 넘어선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현재까지 헌신해 온 영국 최고의 저택인 달링턴 홀과 그의 주인 달링턴 나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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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956년 7월 달링턴 홀 9
첫날 저녁 솔즈베리 38
둘째 날 아침 솔즈베리 74
둘째 날 오후 도싯주, 모티머 연못 178
셋째 날 아침 서머싯주, 톤턴 200
셋째 날 저녁 데번주, 타비스톡 근처 모스콤 220
넷째 날 오후 콘월주, 리틀컴프턴 313
여섯째 날 저녁 웨이머스 351
작품 해설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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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71
진정한 의미의 집사가 존재하는 곳은 영국밖에 없으며 그 외의 나라들에는 실제로 사용되는 칭호가 무엇이든 오직 하인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이따금 듣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편이다. 대륙 사람들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혈통들이기 때문에 집사가 될 수 없다. 오직 영국 민족만이 할 수 있다.
P.171
“켄턴 양, 부친께서 방금 작고하셨는데도 올라가 뵙지 않는다고 막돼먹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말아 주시오.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아버님도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처신하기를 바라셨을 거요.”
“물론입니다, 스티븐스 씨.”
“내가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실망시키는 게 될 거요.”
“압니다, 스티븐스 씨.”
P.182
당시 우리에게 세상은 이 저명한 저택들을 중심축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바퀴였으며, 거기에서 내려진 막강한 결정들이 부자든 가난뱅이든 바깥 주위를 돌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우리 중 직업적 야망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 힘닿는 대로 이 중심축에 다가가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P.195
“참으로 유감입니다, 나리.”
“스티븐스, 이 집은 유서 깊고 웅장한 진짜배기 영국 저택이오. 안 그렇소? 내가 돈을 지불한 것도 그 때문이지. 그리고 당신도 진짜인 척하는 얼간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통적인 영국식 진짜배기 집사요. 틀림없는 진품이다 이거지.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것이고 또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이오, 안 그렇소?”
P.274
하지만 이런저런 순간에 다르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앉아 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저쩌고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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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P.70김섬
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슬쩍 밀거나 약간만 비틀거리게 만들어도 가면이 떨어져 내려가면 뒤의 배우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점에서 말이다.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다. (70-71)
P.372리미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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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펜던트 (미국): 놀랍고, 색다르고, 가슴 뭉클한 책.
선데이 타임스: 『남아 있는 나날』은 하나의 승리다……. 한 인간의 삶을 눈앞에 보듯 설득력 있게 풀어낸 이 초상에는 독창성, 유머와 부조리가 교차되는 흥미진진함 그리고 궁극적으로 깊은 감동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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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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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파묻힌 거인>,<작가란 무엇인가 3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기념 리커버)>,<남아 있는 나날> … 총 169종 (모두보기)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던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해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다. 1986년 일본인 화가의 회고담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고,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1989년 『남아 있는 나날』을 발표해 부커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1995년 현대인의 심리를 몽환적으로 그린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로 첼트넘 상을 받았다. 2000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발표해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5년 발표한 복제 인간을 주제로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나를 보내지 마』가 《타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미도서협회 알렉스 상, 독일 코리네 상 등을 받았다. 2015년 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파묻힌 거인』을 발표했다. 그 외에도 황혼에 대한 다섯 단편을 모은 『녹턴』(2009)까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 낸 작품들로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으며, 2008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인’에 선정되었다. 2017년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적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1년 『클라라와 태양』을 발표했다.
옮긴이: 송은경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조안 해리스의 『블랙베리 와인』,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인간과 그 밖의 것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노암 촘스키의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 카렌 레빈의 『한나의 가방』, 피터 메일의 『프로방스에서의 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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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생의 황혼 녘에 비로소 깨달은
삶의 가치와 잃어버린 사랑
그 허망함과 애잔함에 관한 내밀한 기록
부커 상 수상, 전 세계 20여 개국 번역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
인생의 황혼 녘에 비로소 깨달은 삶의 가치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허망함과 애잔함을 내밀하게 그려 낸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송은경 번역)이 민음사에서 전면적 번역 개정을 거쳐 새로운 디자인과 판형으로 출간되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일본계 영국 작가로 현대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부커 상을 받으며 평단과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으로, 영어판만으로 이미 100만 부 넘게 팔렸고 20여 개국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은 영국 귀족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살아온 한 남자 스티븐스의 인생과, 그의 시선을 통해 근대와 현대가 교차되면서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작가 특유의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여인과 아버지, 그리고 30년 넘게 모셔 온 달링턴 경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말해 준다.
1930년대 영국의 한 장원을 배경으로 그려 낸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
『남아 있는 나날』은 “한 인간의 삶을 눈앞에 보듯 설득력 있게 풀어낸 이 초상은 독창성, 유머와 부조리가 뒤섞여 있으며, 궁극적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선데이 타임스》), “인간성과 계급과 문화를 가슴 저미게 파고드는 수법이 마술에 가깝다.”(《뉴욕 타임스 북 리뷰》) 등의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에게 본격적인 문학적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소설은 영국의 한 저명한 저택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생애 첫 여행을 떠나는 현재와, 그곳에서의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이 짜임새 있게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스티븐스는 여행하는 내내 ‘위대한 집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위대한 집사란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 복종, 이를 넘어선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현재까지 헌신해 온 영국 최고의 저택인 달링턴 홀과 그의 주인 달링턴 나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스티븐스가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맹목적인 믿음으로 모셨던 주인은 “선량하고 명예를 중시할 뿐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어두웠기 때문에” 나치에게 이용당했음이 밝혀진 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에 허망함과 상실감을 느낀 스티븐스는 그럼에도 집사라는 직분에 최선을 다한 자신의 직업관을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지난 시절을 정당화하려 든다.
집사의 품위에 앞서 존중되어야 했던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던 스티븐스는 결국 ‘성실하게 일상을 반복함으로써 악을 돕고 악에 이용당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스티븐스와 달링턴 경의 관계는, 영국의 지나간 역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절대적 가치에 매달리는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달링턴 홀이라는 극히 한정된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공간을 찾아오는 숱한 정치가들의 시선을 통해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있던 격동기의 영국과 세계정세를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다. 또한 대영제국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미국의 현실주의적인 기반으로 넘어가는 상황, 그 변화의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에 얽매이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스티븐스가 고집스레 지키고자 했던 장인정신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꽉 막힌 ‘시대의 잔여’로 상징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젠 나이가 들어 황혼을 여유롭게 맞이할 수도 있는 스티븐스가 작품 말미에서 새 주인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부분이다.
젊은 날 놓쳐 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기에, 그는 변화를 택하기보다는 다시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티븐스의 인생은 어쩌면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매우 유쾌하면서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책.”(도리스 레싱), “아름다움과 신랄함을 함께 그려 낸 수작.”(살만 루시디), “스토리, 문체, 작품성, 모든 점에서 놀라운 작품.”(맥신 홍 킹스턴) 등 여러 작가들도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황혼기에 깨달은 사랑,
그리고 엇갈림
1989년에 부커 상을 수상한 『남아 있는 나날』은 1993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국 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에마 톰슨이 스티븐스와 켄턴 양으로 호흡을 맞춰, 황혼 녘에 깨닫는 사랑 이야기로 또다시 화제가 된 바 있다.
스티븐스가 여행을 떠난 계기는 새 주인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오래전, 달링턴 홀이 명성을 떨치던 시절 총무로 같이 일했던 켄턴 양을 만나는 것이다. 여전히 그에게는 ‘미스’ 켄턴인 그녀의 갑작스러운 편지를 받고, 그는 그녀가 다시 달링턴 홀로 돌아오고 싶어 하고 그가 그녀에게 그러한 제안을 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믿게 된다.
육 일간의 여행 내내 스티븐스는 자신에게 각별했던 그녀에게서 받은 편지를 한 줄 한 줄 읊으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켄턴 양은 적극적으로 스티븐스에게 다가섰고 스티븐스 또한 그녀에게 사사로운 감정이 있었으나, 집사라는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해 왔다. 결국 그녀는 그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이 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또다시 자신의 감정은 감춘 채 공적인 업무를 전면에 내세우는, 그의 살아온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황혼을 맞이한 지금에야, 달링턴 홀의 전성기에 함께 일한 짧은 시간 동안 실은 그녀를 진실로 사랑했음을 그는 절절하게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재회했을 때조차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가슴에 묻어 둔 채, 그녀를 또 한 번 떠나보낸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사랑마저 외면하며 견고하게 자신만의 성을 쌓고, 황혼기에 이를 깨달아 가슴 아파하지만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변해 버린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스티븐스를 통해 독자는 지나간 사랑의 미열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
평점 분포
9.6
deux8836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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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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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쟁이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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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역시 집사로 평생을 살아왔고, 그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던 스티븐스. 그에게 세상은 '달링턴 홀'과 그 집에서 달링턴 경을 섬기고 집을 관리했던 삶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어떤 것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달려왔던 지난날. 달링턴 경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주인으로 패러데이 어르신을 모시게 된 스티븐스는, 1956년 여름, 난생 처음으로 휴가를 받아 여행을 떠난다. 젊은 날 달링턴 홀에서 함께 근무했던 켄턴 양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내디딘 여정. 그 길목의 굽이굽이에서 스티븐스는 지나간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깨닫게 될까.
여행을 떠났음에도 스티븐스의 마음은 오로지 '집사'와 그 직무의 '품위'에 머물러 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변의 여유로운 풍경이 아니라 과거 어느 한 때의 장면들이다.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했음에도 달링턴 홀에 방문한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것, 켄턴 양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외면했던 것 같은 과거의 단편들. 스티븐스는 집사로서의 '품위'를 위해서라면 아버지의 실수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어리숙함. '집사의 품위와 직무'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 외의 일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랐던 사람. 그랬기에 더욱 자신의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바로 스티븐스다.
그렇게 계속 집사로서의 품위와 긍지에 대해 강조하는 스티븐스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당신은 정말 그걸로 만족하나요? 지금까지의 삶에 조금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나요? 당신은 혹시 '품위'와 '자긍심'이라는 단어에 매달려 당신의 진짜 마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애처로울 정도로 품위와 자긍심을 재차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켄턴 양과의 만남에서 그는 정말 '직업적'인 도움만을 요청할 생각이었을까. 스티븐스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닐까. 그가 마지막 순간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삶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달링턴 경을 비난하지만 스티븐스는 그것은 자신의 손을 벗어난 일이고, 때문에 후회해봤자 소용없다고, 자신은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했다고 담담히 술회한다. 노력했던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앞으로 패러데이 어르신을 어떻게 모실 것인가 고민하는 이 남자 앞에서, 나는 겸허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누구도 그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음을, 지금 처해진 상황이 어떠하든 그 모든 것이 스티븐스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을 존중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졌다.
[클라라와 태양]이 출간되면서 개정되어 나온 <가즈오 이시구로> 시리즈. 그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처음으로 선택한 [남아 있는 나날]에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뭉클함과 애잔함을 느꼈다. 한 남자가 인생의 황혼녘에 담담하게 바라본 자신의 생애. 그리고 그 끝에서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긍지와 자부심'으로 다시 내일을 생각하는 한 존재를 그려낸 이 작품에 마음과 몸이 깊이 잠겨버렸다. 작품을 읽기 전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제목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어느 새 자취를 감췄고, 그 날들을 새롭게 채워갈 스티븐스의 모습에 조용히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 '스티븐스'일 수 있음을, 그렇기에 이것은 타인이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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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랜드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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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 민음사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p.364
자신의 젊음도 사랑도 뒤로 한 채 오직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온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의 저명한 저택, 국제회의 장소로도 유명했던 ‘달링턴 홀’에서 평생 집사로 살아온 스티븐스가 그 주인공이다. 새로운 주인으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그 집에서 일을 하는 그의 시점에서 보는 일상은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초반에는 집사의 위대함과 품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그가 책의 제목 ‘남아 있는 나날’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저자는 그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해답을 얻고 싶어 더 집중해서 읽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 집과 함께 남았군요.
일괄 거래에 낀 한 품목으로서.
p.369
달링턴 가문이 200년 넘게 소유해왔던 저택을 미국에 살던 패러데이 어르신이 인수를 하게 되고, 전 주인을 모셔 온 직원들의 높은 명성을 들었던 어르신이었기에 그들이 계속 남아주길 원한다. 그렇게 해서 남게 된 집사 스티븐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이 다섯 주 정도 미국에 돌아가 지내기로 했으니 그 기간 동안 집에만 머물지 말고 휴가를 떠라라는 권유를 한다. 집을 비우고 어딘가를 가본 적이 없는 스티븐스였기에 처음엔 휴가를 마다하다 추후 달링턴 홀에서 같이 일했던 켄텐 양의 편지를 받고 생각을 바꾼다.
켄턴양 그녀의 편지 어디에도 복귀 의사를 뚜렷이 밝힌 대목이 없었음에도 달링턴 홀 시절의 깊은 향수가 듬뿍듬뿍 밴 여러 구절들의 전반적인 뉘앙스로 그녀가 틀림없이 복직을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를 직접 만나 의사를 확인하고자 생애 첫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니, 이건 무슨 자신감?!)
여행 6일 동안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그를 통해 그가 어떻게 살아왔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본인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집사라는 직업을 가지고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달링턴 경에게 받쳐왔던 그는 여행 내내 위대한 집사가 무엇인지 집사의 품위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일화까지 들먹이며 정말 이 사람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사실 나는 달링턴 경께 모든 걸 바쳤습니다.
내가 드려야 했던 최고의 것을 그분께 드렸지요.
그리고 나니 이제 나란 사람은
줄 것도 별로 남지 않았구나 싶답니다.
p.370
자신의 앞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모시는 주인이 보증까지 할 정도로 믿음을 받아왔던 그는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위대한 신사에게 자신의 재능을 받쳤다고 말한다. 긴 세월 동안 그분을 모시면서 자신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고 그곳에서 저명한 인사들로부터 움직여지는 이 나라의 사안들을 처리하는 모습들을 보며 내심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티븐스 당신은 정말 진품이라고. 진정한 영국의 노집사. 이 집에 삼십 년을 넘게 있으면서 영국의 진정한 귀족을 모셔 왔다고 했소.
p.195
그래서였을까? 그가 이렇게 위대한 집사와 품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한 이유가?
위대한 집사와 품위라는 단어는 어쩌면 그의 인생을 대변하던 단어였을지 모르겠다. 친부의 임종을 지키는 일도 포기했고 동료 켄턴 양에 대한 감정도 뒤로 한 채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면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모셔왔던 주인을 통해 자신도 세상의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인이 히틀러에게 이용당하고 매국노로 지탄을 받다 폐인이 되어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스티븐스였기에 자신이 잘못 살지 않았음을 이리도 절박하게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자신이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때가 되면 쉬어야 하는 법이오.
그래요, 우리 둘 다 피 끓는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 거요.
p.372
「남아 있는 나날」은 역사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사이의 전간기를 배경으로 스티븐스의 시점으로 보는 당대 영국의 시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역사는 그저 하나의 소재로만 보였다. 자신의 젊은 날을, 사랑을 모두 뒤로 한 채 살아가야 했던 한 인물이 너무 안타까워 그만이 눈에 들어왔다. 집사로서의 품위는 가졌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갖지 못한 그가.
그리고 그를 통해 독자에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스티븐스처럼 황혼 녘 때쯤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았을 때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애태우지 말고 지금 현재를 즐기며 살라고 그리고 지금 가진 것도 더없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남아 있는 나날, 당신은 어떤 삶으로 채워왔고 앞으로 어떤 삶으로 채워나가고 싶은가?
내가 가진 가즈오 이시구로 저자의 책 4권 중 제일 마지막에 읽은 「남아 있는 나날」, 마지막에 읽기를 너무 잘했다며 셀프 칭찬을 하며 다음 말을 가슴 깊이 새겨본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p.372
ps. 마지막까지 새 주인과의 관계를 잘 이끌어 가기 위해 자신의 부족한 농담 실력을 키울 거라고 다짐하던 그, 정말 뼛속까지 집사이다. 그래도 그에게 이 농담이 상호 소통의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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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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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작가의 작품이라 펼친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만났었기에 믿고 읽는 작품이었다. 영국의 직업인으로서 위대한 신사를 섬기는 것을 소망으로 가진, 35년을 주인에게 인생을 바친 집사의 회고록이다. 자신의 아버지도 집사였기에 아버지의 절제된 감정들을 보면서 성장했을거라 짐작해 보게 된다. 집사의 아버지의 절제된 감정은 행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언제나 뚜렷한 감정의 흔적을 보이지 않는 표정들이 작품 중에도 흘러넘치고 있다.
주인의 뜻에 맞추며, 사고가 배제된 집사라는 직업. 감정의 절제, 자만심 배제하라는 요구, 복종의 자세가 집사의 직업적 의미이며 직업관이라고 믿고 살아온 나날들. 자신의 기나긴 35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가 모셨던 주인을 향했던 하나의 복종은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주인의 삶은 역사적으로 오류가 되는 오점을 남기며 흩어지는 날이 찾아오면서 저택과 집사라는 자신까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새로운 주인에게로 넘겨지게 된다.
국왕과 나라를 위해 아들이 영광스럽게 목숨을 바쳤구나 66쪽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70쪽
읽고 있는 동안 집사의 직업관에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감정까지도 배제하는 집사의 아버지, 그리고 집사의 감정까지도 아쉽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사에게 강요한 신사들의 요구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국왕을 위해, 나라를 위해, 주인을 위해, 지배계급을 위해 희생된 많은 영혼들의 삶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영국이 가졌던 그들만의 세계, 신사와 숙녀, 품위. 그리고 새로운 주인인 미국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들이 제법 대조적으로 집사에게 비추는 음영이 된다.
속물근성. 고리타분한 생각. 저명한 가문이라는 조건. 178쪽
소수의 지배자와 수억 수십만의 노예들만 존재하는 세상... 노예 상태에서는 결코 품위를 갖출 수 없습니다... 자유 시민으로 살 권리를 쟁취... 투표로 의원 나리들을 의사당에 앉혔다 빼냈다 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바로 진정한 품위입니다. 286쪽
민중이 고통받고 있어... 하염없이 세월만 보내고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지. 그저 하는 짓이라곤 논쟁하고 토론하고 늑장 부리는 게 전부야. 훌륭한 생각을 제안해 본들 이런저런 위원화를 거치느라 시간을 다 잡아먹다가 ... 308쪽
작가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작품을 흘려보내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문장 속에 깃발처럼 꽂아놓은 시선들을 놓치지 않게 한다. 그러한 문장들을 만나며, 시대를 떠올리며, 역사 속에 자리한 오점들을 지적한다. 역사 속에만 자리한 것이 아니라서 더욱 막막하기까지 하다. 이 시대의 국회 모습이기도 하다. 선거가 곧 몇 달을 앞두고 있다. 작품에서 의원 나리들의 자리의 존폐 위기를 작가가 제법 신랄하게 표현하기까지 한다. 국민을 우롱하며 자만한 모습들을 몇 년 동안 우리는 묵묵히 지켜보았고 우리의 권리를 위한 표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이와 같은 문장을 읽으니 작가의 시선과 작품이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작품에서도 젊은이들이 쓰러지면서 쟁취한 것이라 잊지 말라는 대화가 오가는 장면이 있다. 집사의 35년 세월은 <피라미드> 작품을 연상시키는 인생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저택의 직원 두 명을 해고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에 대응하는 집사와 켄턴 양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게 조명된다. 집사는 때늦은 깨달음의 시간들을 이 작품에 켜켜이 쌓고 있다. 여인을 향했던 마음까지도 함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어리석은 생각들이 당신 자신과 당신 몫의 행복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될 겁니다. 365쪽
퇴직 후의 인생이야말로 부부 생활의 황금기라고. 366쪽
우리들의 삶에 어리석은 생각들이 자리하지 못하도록 작품은 또렷한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 집사의 삶과 인생을 통해서 관습과 문화, 자의적인 삶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나날들이 가지는 회한들을 마주하게 한다. 집사가 꼿꼿한 자세로 일관되게 회고하는 여러 장면들도 잊히지 않는다. 그가 젊은 날 믿고 복종한 주인을 향했던 날들이다. 집사의 사고 범위와 복종하는 직업관을 모두 헤아리면서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경직된 사고와 관습의 한계가 가지는 위험성을 이 작품의 집사를 통해서, 집사의 아버지를 통해서도 만나보게 된다. 작품은 초반부와 중반부는 다소 지루함을 가졌지만 작가의 작품을 믿고 끝까지 읽기를 추천하게 된다. 후반부에 어느 마을에서 만나는 마을 주민들과 나누는 대화들도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작품이라니 감상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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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an 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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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feat. 고질독 20기)
📚소감
‘스티븐스=과거의 나‘라고 생각했다. 도장깨기하듯 여행하는 스타일도 그렇고, 집사의 품위를 자신의 존재 가치라고 여긴 부분도 성취에서 존재 가치를 찾았던 과거의 나 같았다. 전형적인 ISTJ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어서 흥미롭게 봤다. 스티븐스와 나의 차이는 스티븐스는 끝까지 우직하게 갔다는 것, 나는 중간에 융통성이라는 물꼬를 틀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스티븐스의 삶과 내 삶 중 어떤 것이 더 풍요롭거나 좋았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티븐스는 프로 정신을 선택했고, 나는 긴장 완화를 선택했다.
📚질문 만들기
1. 작가 조사
2.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총량을 알고 있나요?
3. 품위가 뭔가요?
4. ‘문제‘라고까지 부풀릴 일일까요?
5. 나의 여행 스타일은 어떤가요?
6. 같은 업무 지시를 여러 번 듣는다면?
7. 스티븐스의 선택,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8. 야망이나 포부가 있나요?
9. 찬성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 나의 반응은?
10. 정신적 긴장을 풀 때 사용하는 방법은?
11.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나요?
12. 스티븐스의 품위와 해리의 품위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13. 비판적 태도와 충성심은 함께 존재할 수 없나요?
14. 스티븐스의 무관심, 어떻게 생각하나요?
15. 농담으로 스티븐스의 품위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독서모임
📚인물탐구
📌스티븐스: ‘위대한 집사‘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
👉내 안의 ‘스티븐스‘는?
스티븐스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한 우물‘이었다.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라는 한 우물을 팠다. 내가 판 한 우물은 반주이다.
스티븐스와 비슷한 점이라면 감정 억압이다. 지금은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지만.감정을 절제하면서 살아왔던 세월이 길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 사건으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감당하는 게 너무 버거워서 자연스레 감정에 거리를 두게 되었다.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것보다 나 자신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금도 감정을 논리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켄턴 양: 스티븐스에게 밀당을 시도했으나 밀려났던 사람
어쩌면 켄턴 양은 스티븐스와 마지막으로 만나면서 스티븐스를 사랑했던 마음을 떠나보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켄턴 양이 흘리는 눈물에 복합적인 감정이 담겼을 것 같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 보내는 시원섭섭함이랄까. 하지만 스티븐스는 그제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시간을 돌릴 수 없는 이 순간에 와서야 ‘실제로 그 순간 내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켄턴 양의 업무적인 특징으로 보자면 스티븐스처럼 일을 잘하고, 불의에 못 참으나 현실에 순응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스티븐스가 보는 켄턴 양을 설명하고 있으니 스티븐스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한줄 정리를 했다.
다른 고질독 분이 [동백꽃]의 ‘점순이‘라고 해서 빵 터졌다. 정말 딱 맞는 인물이다.
👉내 안의 ‘켄턴 양‘은?
불의에 못 참는 것 같아 보이나 현실에 순응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좀 많이 닮았다.
📚질문
📌‘품위‘란?
내가 뽑은 두 번째 질문 ‘품위란 뭔가요?‘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스티븐스처럼 직업적인 품위를 생각하고 글을 썼다. ‘교사의 품위는 수업에서 나온다.‘ 스티븐스 같은 모습을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게,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를, 나는 ‘교사‘라는 점만 다를 뿐, 직업적인 부분에서의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인간 스티븐스의 품위를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에게 적용시켰을 때, 나에게 ‘품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서, ‘나는 어떤 품위를 가진 사람이기를 원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더니, 이때까지 살아온 나를 살펴보면 ‘최선을 다하는 삶‘을 품위로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최선‘이 걸렸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긴장 속의 삶을 살았는데, 품위란 긴장 속에 갖춰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늘 최선을 다하지 못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품위는, ‘애쓰지 않아도 드러나는 인격‘이라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반주를 오래 해서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반주처럼, 애쓰고 애쓰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다른 고질독 분의 ‘그럼에도 지금은 애써야 하는 단계‘라는 말에는 공감했다.
📌나의 신념은?
고질독에서 신념을 주제로 [앵무새 죽이기]와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다. 내 신념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적당하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한 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한다.‘를 말했지만, 마음이 썩 들지는 않았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맹목적 신념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스티븐스는 아이히만 같은 인물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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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의뜰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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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유럽을 보면 미국의 대공황과 독일의 히틀러가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는 시기로 영국으로선 격동기였다. 권력 인사들의 회의장소로 활용했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에서 오랜기간 집사로 일했던 스티븐스의 짧은 6일간의 여행기록이 들어있다고 한다.
집사라고 하면 금테 안경을 끼고 주인님의 스케줄을 착오없이 관리하며 저택은 먼지 한 톨 없이 청결함을 관리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책 속의 집사도 고지식하고 바른 정신의 소유자여서 빈틈이 없어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의 호의로 처음 여행을 떠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을 기뻐하는 것보다 불안감이 더 컷던 스티븐스는 여행중에 느꼈던 소박한 배려와 친절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기회를 맞는다.
충직한 집사로 어느 하루 허투로 보낸 날이 없었던 스티븐스는 자신의 영역안에서 완벽한 직업능력의 소유자다. 남들에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그 였으나, 주인 곁을 지켜야했기에 마지막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으로 향하는 사랑을 멈춰세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켄터양의 감정을 외면하고 만다.
그렇게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소하지만 작고 소중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 보는데, 자신의 삶이었다고 알고 있던 사실이 타인을 위한 삶이였음을 느끼게 됐을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도대감에 빠지게 된다. 스티븐스는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진정한 삶의 이야기가 가슴에 아주 천천히 스며들게 했다.
우리는 지금 현재의 자리가 아주 크고 중요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나와는 다른 사람이 존재하며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현재 삶에 안주해 있는게 편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가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들이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직시하는 남아 있는 나날은 그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지만 끝까지 자신의 직무를 놓지않는 그를 보며 인간의 본성이 변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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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 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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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 송은경 (옮김) | 민음사 (펴냄)
달링턴 홀의 집사로 살아온 스티븐스의 독백같은 소설이다.
책을 읽기 전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제목만이 주는 첫인상은 후회나 아쉬움, 미련 등의 감정이었다. 동명의 영화 제목만 겨우 들어봤을 뿐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읽어내려갔다.
개인적으로 원래는 기본 줄거리나 핵심 스포일러를 알고 난 후 소설과 영화를 보는 걸 즐기는 타입이다. 나중에 보니 복선이었던 것들을 처음부터 알고 보면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나날>은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읽은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의도보다는 소설의 주인공인 스티븐스의 시점을 쫒으며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해해보려 애쓰는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퇴를 고려해봐야 할 나이에 이른 집사 스티븐스가 일주일 간의 휴가 중에 20여년 전 달링턴 홀의 총무로 있던 켄턴 양을 만나러 가는 얼핏보면 별다를 것 없는 줄거리지만 그 여정에서 스티븐스가 회고하는 과거는 읽는 독자에게도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서, 집사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스티븐스가 희생하고 포기했던 것들은 제 삼자의 시각에서 보면 답답하고 또 답답한 구석이 많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켄턴 양이 좋아하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으며, 자신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달링턴 홀의 새로운 주인인 패러데이 씨의 농담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고 직업적으로 받아들여 주인의 눈높이에서 학습해 보려는 노력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신의 생각이나 자기철학을 잠재우고 오로지 주인의 집사로서 행동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되었던 두 하녀의 입장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집사로서 주어진 명령대로 행동할 뿐이다. 같은 일에 (결국은) 타협했지만 분노와 부당함을 표현했던 켄턴 양과는 달리 말이다.
234. 말해 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죠?
그토록 위대한 집사와 집사의 품위에 연연하던 스티븐스는 길을 잃고 우연히 들린 마을에서 자신을 귀족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품위란 신분과 다름아니었던걸까? 결국 그의 현실은 달링턴 홀과 함께 낀 일괄거래의 한 품목임에 불구하고 말이다.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품위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현실은...?
남아있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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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늘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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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남아 있는 나날』은 부커 상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193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평생을 집사로 헌신한 스티븐스가 새 주인을 만나고 생애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평생을 '위대한 집사'에 대한 자신의 직업관을 뛰어넘어 삶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복종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헌신이 있어야 하며 지금까지 영국의 달링턴 홀과 나리에 대한 헌신을 들려준다.
달링턴 귀족 가문의 장원을 자신의 삶의 전부로 여기고 헌신하며 살아온 집사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서 사랑마저도 떠나보낸다. 그리고 30년 넘게 모신 주인 달링턴 나리와 달링턴 홀을 드나든 수많은 정치가들이 있었지만 사람만 착했던 주인 나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치에게 이용만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맹목적으로 주인을 섬긴 스티븐스는 허망함과 상실감을 느끼는 건 잠시뿐 새로운 주인을 만나고서는 그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지켜 나가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아닌 것을 느꼈음에도 자신이 여태 쌓아 놓은 것들이 무너질까 봐 고집을 피우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 모습이 너무너무 안타깝다. 노년에 다시 손짓하며 찾아온 사랑을 또 외면해 버리고 마는 그 고집을 과연 신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면서 대영제국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의 삶을 산 달링턴 경과 스티븐스가 보여준 삶이 광장에 모이는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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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mpy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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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정통성과 프로페셔날만을 강조하다가 세상의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반대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인들은 세상의 변화에 한 걸음을 내 딛는 것을 두려워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둘 사이에는 세상의 변화를 무시하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일이 고귀하고 변함없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자리합리화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아닌 주위의 것들로부터 얻어려고 하는 것은 책의 주인공인 스티븐스도 현대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주인의 위대함이나 도덕적 청결함 위에 자신의 완벽한 집사가 되려는 스티븐스. 집이나 차, 직장, 학력 등이 자신의 가치로 보는 현대인. 우리의 우리 존재가 아닌 다른 것에 둘 때의 위험함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새로운 주인을 맞은 스티븐스가 주인의 권유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 여행은 총무를 맡았던 켄턴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 생기는 사람들의 호의 속에서 달린턴 경을 모시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진행된다.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 그리고 헌신을 하던 시절. 사사로운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아버지의 죽음도 유대인 하녀들을 해고도 켄턴에 대한 연민도 모두 완벽한 집사를 위해서 묻어둔다.
아집에 가까운 정통성은 자신이 모시던 달린턴 경이 몰락하더라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달링턴 경을 옹호하기도하고 때로는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한다.
결국 켄턴을 다시 만났을 때에도 하고 싶은 말을 결국하지 못한다. 집사로의 품위만을 위해 살아온 스티븐스가 갑자기 변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살아온 나날을 얘기하는 이 책은 남아 있는 나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이제껏 집사의 삶을 살아온 스티븐스가 앞으로도 새로운 주인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인간은 그렇게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1900년대 초 영국이라는 배경은 심미적 요소도 없었고, 이야기의 굴곡도 없었다. 스티븐스의 인생을 그려내며 아주 무덤덤하게 세상을 비꼬고 있는 느낌이다. 영국의 집사라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었지만 소설에 더 깊이 빠져들려면 영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공부가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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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 20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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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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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빈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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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하는 이에게 위로하듯 말을 건넨다. 지나간 것에 매이지 말라고. 몸서리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오늘을 소중히 하라고. 멈춰선 이에게, 주저 앉은 이에게 그리고 남은 기억에 발 묶인 이들에게 사람들은 늘 말한다. 현재에 충실하라고.
그러나 현재란 것은 애매모호하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좀처럼 분명히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시간이다. 곧 다가오거나 밀려날, 그래서 결코 마주칠 수 없는 어떤 순간이다. 그것은 감각이고 감정이다. 그들은 언제나 곁에 와 있다. 아무리 단단히 묶어놓아도 절로 풀려버리는 실타래처럼, 그것은 별것 아닌 일에도 언제든 툭 터져나올 것이다.
현재는 결코 마주칠 수 없거나 항상 곁에 있기에 분명히 인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현재성을 절실히 통감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때는 다름아닌 자기가 늦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이다. 얄궂은 일이다. 우리는 매번 지나간 뒤에만 그 일의 의미를 안다. 다음에는 다르리라 끊임없이 되내어봐도 우리는 늘 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 실수하고, 과오를 저지르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두 번 다시 없을 순간들을 후회들로 점철한다.
그 일은 과거에 벌어졌다. 돌릴 수 없고 다시 마주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기억이 그때의 떨림을 재현한다. 그 떨림이, 그때의 감각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나 감정은 현재의 것이다. 그렇게 과거는 현재에 머물며 현재를 끊임없이 밀어낸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시름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시름들은 때때로 과거와의 단절을 종용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삶은 통시적이다. 나는 언제나 하나의 연속선상 위에 있으며 과거와 단절될 수 없다. 진실로 현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에 대한 긍정은 과거에 대한 체념에서 오지 않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남아 있는 나날>에서 현재를 새롭게 맞이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과거를 들춰낸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분명하게. 그렇게 과거를 이루는 장면장면들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그들을 충분히 애도하고 난 후에야 이시구로는 ‘저녁’을 말한다.
근래에 보았던 소설 중에 가장 소설 같은 소설이었으며 가장 이야기 같은 이야기였다. ‘품위’라는 테마 아래 스티븐스라는 개인을 전 시대적 가치와 나란히 병치하면서도 그를 단순한 상징물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둘째날 아침, 솔즈베리]의 연회 장면에서 영국 혹은 아름다운 시절 그리고 달링턴 경과 스티븐스의‘품위’를 다루는 솜씨는 결말보다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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