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출신 작가들 셰익스피어 ‘위협’
런던. 한준엽 통신원 ()
승인 1993.06.24
루시디ㆍ월코트ㆍ세스, 정통 영국문학 변혁 주도
셰익스피어, 디킨스, 로렌스 그리고 포스터로 이어져 온 정통 영국문학이 대영제국 식민지 출신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변혁기를 맞고 있다.
제3세계 출신인 이들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사고하고 행동하면서도, 영국적이 아닌 소재들을 다양하고 특색 있는 문체로 그려낸다. 이들은 영문학은 물론 킹즈(또는 퀸즈)잉글리시라고 일컫는 정통 영어 자체를 뒤흔들고 재창조해 나가면서 이른바 ‘신세계 소설’또는 ‘범세계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해 가고 있다.
81년 인도 출신으로 《악마의 시》를 쓴 샐먼루시디가 영국내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터 프라이즈’를 수상한 이후 차츰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인도제도의 영국령 식민지였던 세인트 루시아섬 출신 시인 데렉 월코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정통 영문학에 변화를 불어넣었다.
이들 작가 가운데 올해 들어 가장 주목받는 작가는, 최근 장편 대하소설 《신랑감(A Suitable Boy)》으로 일대 파문을 불러일으킨 41세의 신예 비크람 세스(Vikram Seth)다. ‘인도가 낳은 제2의 톨스토이’ 오묘한 인간 심리와 인간 관계가 서로 맞부딪치고 교차하면서 전체 구성이 완벽하게 완성되어 가는 소설의 타지마할‘ 등등 그에 대한 찬사는 대단하다.
《신랑감》7주째 베스트셀러 1위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나 한때 옥스퍼드 대학과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세스는 지난 3월 이전만 해도 《금문교》 등 두세 권의 운문체 영어 소설과 시집을 낸 무명 작가였다. 그러나 지난 3월20일 영국고 미국에서 그의 첫 장편소설 《신랑감》은 출간 첫 주에 베스트셀러 순위 4위를 기록했고, 다음주에는 1위로 뛰어올라 연 7주째 선두를 지키고 있다.
집필 기간 8년에 총 80만 단어, 1천3백49쪽인 초거작 《신랑감》은 영국 출판사가 계약금으로 무려 4억2천만원, 미국 출판사가 3억2천5백만원을 각각 지불했다 책값이 최근 출간된 소설 중 가장 비싼데도 잇따라 매진돼 3판 출간을 준비중이다.
<더 타임즈>는 《신랑감》발간 전후 네차례나 특집 기사를 실어 세스의 작품 세계와 내용을 소개했다. 간결한 문장에 물 흐르듯이 읽히는 문체, 전편에 넘치는 극적 흥미와 읽는 재미가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견해다. 세스는 자기 작품이 성공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책이 틀에 박힌 전통양식을 고집하든 형식과 틀에서 자유롭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좋은 소설, 재미있는 책을 쓴다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재창조하고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재발건했을 뿐이다.”
쉽게 읽히고 재미를 제공하는 것을 강조한 이같은 작가의 견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란의 호메이니옹으로부터 암살 표적이 된 샐먼 루시디의 비판이 가장 신랄하다. 루시디는 최근 세스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신랑감》을 ‘멜러물과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라고 까지 혹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랑감》은 힌두교도 상류 가정의 딸인 라타가 홀어머니 루파 메라와 함께 어떻게 자기의 배우자를 선택하는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2백여 년간 지속된 대영제국의 인도 식민지 통치가 끝난 직후인 1950년부터 2년 동안이다. 식민지 통치와 왕정제도의 껍질을 벗어던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도의 독립 초기 시대상이 세스의 20세기적 감수성과 19세기 리얼리즘 수법으로 그려졌다.
주인공 라타 집안과 상류 계급인 네 집안 20여 명의 가족들이 엮어내는 출생과 죽음, 사랑과 결혼, 그리고 다른 계층 인물들과의 접촉과 갈등 등이 당시의 정치 사회 종교 상황과 맞물려 표출된다. 나아가 세스는 수천, 수만 명의 인간 군상을 갠지스의 물줄기처럼 작품 속에 끌어들여 개개인의 내면 세계로 침잠시키기도 한다. 옥스퍼드 대학 존 카레이교수는 “인도의 풍부한 다문화적 복합성이 세스의 활기 넘친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현대 영국인의 일상 생활이 단조롭다는 것은 바로 영국의 최근 현대소설이 지난날의 활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루시디로부터 세스까지 12년, 영국은 식민지 국가 태생 또는 제3세계 국가 출신의 비앵글로 색슨 작가들에 의해 영어의 범세계화 현상을 맞고 있는 것이다.
현대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앞으로 서머셋 몸이나 그레이엄 그린을 공부한 뒤, 루시디나 세스를 배워야 하는 영문학의 탈영국ㆍ다국적화 시대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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