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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한인연합교회 50년사’ 발간
기자명 김철 기자
승인 2024.09.18
Sydney’s 1st Korean church marks 50th anniversary
시드니 첫 한인교회의 호주한인사회 반세기 역사 조명
교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념촬영하고 있는 시드니한인연합교회 교인들
시드니의 첫 한인교회인 시드니한인연합교회(담임목사 조삼열)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보는 기념 역사서를 발간했다.
‘시드니한인연합교회 50년사’는 사실상 시드니한인사회의 50년 역사이고, 호주한인기독교계의 성장사 그 자체임이 책자에 게재된 방대한 자료 등을 통해 방증된다.
실제로, 시드니 한인이민역사와 한인교계의 흐름을 한눈에 꿰뚫게 해주는 방대한 자료의 보고(寶庫)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드니한인연합교회 50년사를 발간한 조삼열 목사는 “시드니한인연합교회를 세우셨던 선배 신앙인들의 간절함과 뜨거움 그리고 그 열정을 상기시키는 후세대들을 향한 역사 기록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 책자에는 시드니 한인교회의 1대 담임목사인 김상우 목사의 ‘대담자료’를 비롯해 이 교회의 질적 양적 팽창의 주역인 2대 담임목사 이상택 학장(아이오나 컬럼바 칼리지)과, 3대 담임목사인 문문찬 목사, 4대 담임목사 류성춘 목사, 5대 담임목사 우병진 목사 등의 축사 등이 담겼다.
또한 시드니한인연합교회를 거쳐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거나 한인연합교회에서 일시적으로 시무했던 다수의 목회자들 그리고 시드니한인연합교회 창설의 산파 역할을 맡은 변조은(John Brown) 목사의 회고담 등도 게재됐다.
‘시드니한인연합교회 50년사’ 표지
1대 김상우…2대 이상택
시드니한인연합교회의 초대 목회자들은 전체 호주한인동포사회와 다문화 기독교계의 전위대 역할의 유산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베트남전 종전 직후 한국인 철수 작전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1대 담임목사 김상우 목사는 일부 교인들이 “목회자 활동보다는 시드니 한인사회 전체의 문제에 너무 매몰돼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자, 호주에서의 목회활동을 접고 도미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목회자의 사회적 책임과 희생정신의 중요성을 호주한인사회에 각인시켰다.
김상우 목사는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 역사상 첫 아시아계 의원인 마크 김 의원과 연합교단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서 의료 선교를 하면서 임수경 방북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김진엽 박사의 부친으로 호주한인사회에는 널리 알려진 ‘사회운동가 성향의 목회자’였던 것.
그의 뒤를 이어 1980년 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상택 목사는1999년까지 20년 동안 시무하면서 시드니한인연합교회를 한인사회의 중심으로 성장시키고, 호주주류사회에 소수민족교회의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캔버라(1984), 아들레이드(1986), 골드코스트(1989), 케언즈(1994) 등에 첫 한인교회를 설립하는 등 전체 호주한인 이민자 사회가 시드니한인연합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동시에 청년 선교사 양성과 목회자 양성에도 주력하면서 다수의 목회자를 배출했다.
특히 연합교단 산하의 신학대학(UTC)에서 정규과정을 거친 목회자를 양성하면서 ‘호주인 대상 한인목회’의 시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이상택 목사는 한인 기독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던 ‘교회 구입 후 교단 봉헌’을 구현한 바 있다.
교회를 막대한 사유재산으로 바라보고 있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아픔을 미리 내다본 지도자의 혜안이 비치는 지점인 것.
그는 또 ‘남성 위주의 교회의 관습’ 타파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면서 호주한인교계의 첫 여성장로도 탄생시킨 바 있다.
이상택 목사(아이오나 컬럼바 칼리지 학장)는 “시드니한인연합교회는 한인 모두에게 어머니같은 교회”라며 “호주한인들의 영적 추억이 담긴 교회로서 경쟁의 교회가 아니라 축복과 사랑의 교회로서 다가올 또 다른 50년을 향해 어머니의 마음과 사랑으로 모두를 포용하고 섬기는 교회로서 계속 정진해달라”고 당부했다.
(왼쪽) 창설 50주년 기념예배를 주관하고 있는 조삼열 목사. 조 목사는 시드니연합교회의 6대 담임목사다. (오른쪽) 창립 50주년 기념 예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시드니의 첫 한글학교
시드니의 1호 교회인 시드니한인연합교회의 한글학교는 시드니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드니한국교육원 자료에 따르면 한인연합교회 부설 한글학교는 1984년에 등록됐다.
초창기 이민자사회의 어려움과 더불어 “영어만이 살길이다”는 초창기 1세대 부모들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시드니한인연합교회는 초창기부터 교회 본연의 역할과 더불어 이민자 자손의 정체성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시드니한인연합교회 한글학교에서 교육받은 전형적인 한인동포 1.5세 및 2세대들의 성공사례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 관계자는 언급한다.
전체 한인사회의 축제 한마당 ‘배구대회’
초창기 시드니한인연합교회는 한인이민자사회 그 자체였다.
시드니한인교회는 그러한 기대감에 부응하듯 등록 교인만을 위한 사회활동의 범주를 과감히 벗어나 전체 한인사회를 위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왔다.
그 대표적인 행사가 1979년 시드니한인교회가 창설한 ‘한인친선배구대회’다.
2012년까지 33년 동안 지속된 한인친선배구대회는 각 교회 청년들간의 교류의 장이었고, 더 나아가 전체 한인사회의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해당 책자에 ‘시드니한인연합교회가 교민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글을 기고한 주경식 목사는 “‘한인친선배구대회’는 시드니한인동포사회에서 가장 오랜 전통이 있는 체육행사로 많은 한인들에게 ‘교제의 장’을 열어주며 사랑받았던 축제였다”고 평가한다.
그야말로 한인교회가 전체 동포사회의 중심이었고 주역이었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기독청년지도자 교육의 전위대
시드니한인연합교회는 내재적 성장에 안주하지 않고 외연의 확대를 추구하는 교회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1974년 9월 8일 레드펀 회중교회에서 초교파적 교인 72명이 모여 창립예배를 가진 이후 50년 동안 시드니한인연합교회는 수많는 기독교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암울했던 시절 고국의 노동자 권익증진운동과 통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기 위해 한인연합교회는 연합교단차원의 청년선교사를 고국에 파견하는 궤적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시드니한인교회의 주일학교 문학의 밤 행사 등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발굴해 미국 할리우드로 진출한 마틴•레오 남 형제의 사례도 있다”고 역시 이 교회에서 청년시절을 보내고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정선일 목사(시드니 언약교회)는 상기시켰다.
김철 기자 editor@topdigital.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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