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6, 2022

【문학과 기록④】마츠이 타로와 브라질 text 나카사토 유타 - neoneo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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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기록④】마츠이 타로와 브라질 text 나카사토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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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eoneoweb2017
2020-09-20
, 문학 및 기록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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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떨어진 토지를 무대로 하는 소설을 읽을 때, 그 토지의 생활과 문화를 아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이다. 하지만 때로는 아는 삐걱거리는 것보다, 그 이형의 상모를 앞으로 서서 버리는 작품이 있다. 그 하나가 브라질로 이민으로 건너온 마츠이 타로의 소설이다.

 마츠이 타로의 소설은 브라질로 쓰여진 일본어 문학이다. 환갑을 맞아 은거하기에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 늦은 피의 작가는, 1917년에 고베시에서 태어나, 1936년에 아버지의 실업을 계기로 일가로 브라질에 건너, 20 17년에 서거. 일본에서는 '우츠로 배'(*1), '먼 목소리'(*2)라는 두 작품집이 간행되고 있다.


 작품집의 편자인 호소카와 슈헤이의 해설(*3)에 의하면, 마츠이의 소설은 「(1) 「이민 소설」(일계 사회 내의 이야기), (2) 사소설, (3) 변경 소설, (4) 미루타 소설, 이 네 가지 카테고리를 주로 정리한다. 그 중의 (3) 「변경 소설」에 해당하는 초기의 단편 「어떤 이민의 생애」(1970년 초출)(*4)에서는, 이발사를 생업으로 하는 남자의 몸의 상화를 통해, 마츠이가 집요하게 그려 무명의 이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선은 그 반생을 보고 싶다.

 시코쿠에서 태어난 남자는 먹는 부지에 곤란한 부모님께 데리고 십이세에 브라질로 이민. 상파울루 주 각지를 옮겨 살 때 부모님이 죽고 형 부부와 면 만들기로 생계를 세웠다. 남자가 20살이었을 무렵, 형의 지인 일가가 토지를 돌봐달라고 나타나, 남자는 그 장녀와 달려간다. 30km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거기의 역에서 형에게 발견되지만, 형의 이해하에, 원연의 집에 몸을 맡긴다. 그 가운데 지인 일가는 파라나주로 이전하고, 달리기 소동으로 마을에 어려워진 형 부부도 상파울루로 나간다. 남자도 판매에 나와 있던 분양지를 사고, 상파울루주 북서부의 노로에스테 지방으로 옮기지만, 분양지에 도착하면 거기는 원시림의 한가운데에서, 도끼로 나무를 벌채해 집을 세우는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상파울루에서 기성복의 하청 업무를 하고 있던 형은 반년도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죽어버린다. 그 무렵 노로에스테의 분양지에서는 남자의 아내가 임신하고, 남자도 아내도 말라리아에 걸린다. 아내의 몸에는 황달이 나오기 시작해 예정일보다 2개월이나 빨리 산만하다. 의사가 없는 오지의 조산으로 처자 모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깊은 숲의 오지에서 야마야키를 하여 토지를 열어내는 생활은 처자의 죽음이라는 굉장한 결말을 맞이한다.

“무언가 악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비난하라고 생각했습니다. 했다”

 남자의 '부조리'라는 말 뒤에는 '세 죽음' 외에도 고대우나 고임금을 갚아 권유한 국책으로서의 이민정책의 허위나 부모님의 결정에 의해 브라질로 데려왔다. 라는 불가항력한 측면, 모처럼 손에 넣은 토지가 원시림 속이었던 것 등에 농락되는 가운데, 남자가 손에 넣은 오빠와의 협동, 아내와의 사랑이 무너진 순간이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도 말라리아에 흩어져 가는 가운데, 죽여달라고 버려 화분이 되지만, 곧 쾌방으로 향한다.


 그 후 남자는 분양지를 떠나고, 오복 가게의 판매자, 중매의 손끝, 대장장이 등의 일에 일하면서 각지를 전전한다. 그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어, 장기 동료였던 이발사의 부모님에게 초대되어 제자로서 거주한다. 전쟁이 끝나고 발발한 승조와 패배의 항쟁에 휩싸인 부모님이 경찰에 구류되어 섬 이송이 되면, 가게를 지키면서도 이발사의 오카미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버린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돌아오고, 독립한 남자는 떠오르고 가게로서 면도나 가리비, 톱 등을 날카롭게 하면서 유랑한다. 그렇게 소금을 모아 마음에 드는 마을에서 이발사를 열었다.

 연옥으로 유랑하는 동안, 남자는 상파울루 주 오지에서 파라나 주까지 일본인 이민의 이주지를 방문했지만, 이전에 이주지였던 곳이 모습도 없고 황폐하고 있던 곳도 있고, 세상 의 변화를 눈으로 하고 다음과 같이 되돌아 본다.

“나의 여행에 나왔을 무렵은 아직도 사람의 마음도 따뜻하고, 식사나 하룻밤의 숙소에 부족한 일은 없고, 안에는 재미있어 나와 같은 흐름자의 견문을 (들)물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전후 경제의 인플레이션이 연결됨에 따라, 인심도 거칠어져, 정도 친절한 사람에게도 만나지 않는 한, 노숙하는 것 같은 눈에 띈습니다」

 유랑이란 나날의 숙소를 찾는 생활로, 한 곳에 잠시 거주하는 생활이 아니었을까. 흐름자로서, 날카로운 도구를 손에 점재하는 이주지를 찾아 걷는 생활도, 오지가 어떤 곳인지, 황폐해 버린 이주지도, 필자에게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남자가 거칠었다고 하는 인심의 변화조차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부터일까. 아마는 거칠기 이전의 인심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츠이 타로의 소설을 읽으면 모르겠다는 것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번역된 소설을 들여다보며 일본어로 쓰여진 소설에 한해도 완전히 다른 문화와 낯선 땅을 무대로 하는 작품은 많아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을 상상해 읽을 때와는 어떠한 위화를 안는 것이다. 그만큼 이질적인, 보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일본어라고 하는 것 외에 확실한 감촉으로 접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조차 안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필자가 일본어 문학을 읽으면서 「같은 것」이나 「알기」에 기대어서 어떻게 안주하고 있는지의 증거가 되는데.

 계속해서는 「(1) 「이민 소설」(일계 사회내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어느 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부터 생각해 가고 싶다. 「어떤 이민의 생애」에 있어서, 이발사의 부모님이 감겨졌다고 앞서 설명한, 승조와 패배의 항쟁이다. 일본의 패전 직후 브라질에서는 일본은 전쟁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승조와 일본은 전쟁에 졌다고 생각하는 패배 사이에서 항쟁이 일어나 일본인 이민사회를 분단했다고 한다. 마츠이에는 이 항쟁을 소재로 한 '김창'(1985년 초출)(*5)이라는 단편이 있다. 여기에서는 거기서 쓰여진 것을 기초로 한다.


「1945년 8월 15일, 상파울루의 신문은 어느 일면에도 「일본 무조건 항복」의 표제를 얹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보도했다」라고 하는 서두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 승리 패배 항쟁의 희생자가 된 등장 인물·코마키의 미망인의 회상을 토대로, 말하는 사람이 「상파울루주의 한 군에서 일어난 일 사건」을 기록한다고 하는 체재로 쓰여져 있다. 우선은 이야기의 근육을 쫓는다.

 패전을 고하는 신문을 손으로 일본인 마을로 돌아온 코마키의 소식에 의해, 취락의 가장과 청년 대표가 모이는 가운데, 코마키가 포르투갈어의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불안해지는 면면을 향해, 군조 오가라는 소문의 녹작이 일어나 말한다. 일본은 지지 않는, 조국을 믿으면 되지만 쾌보가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소리에 곳곳에서 박수가 오른다. 적측의 보도 등 믿을 수 없다는 녹작에 대해, 브라질에 들어가는 보도는 전세계에 내는 통신이 아닌가 고마키는 생각하지만, 이윽고 일본이 승리했다는 소문이 취락에도 들어온다.

「뭐든지 도쿄만에 집합한 적의 배를 코슈슈하라고 하는 것으로, 전부 가라앉았다고 해.

 아내의 방자가 들어온 이야기를 코마키에게 전한다. 의제의 토오루에 따르면, 상파울루 시내에서도 전승설이 유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후도 신문의 보도를 쫓는 코마키에는 전승설의 근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단편의 말하는 사람은, 후년, 승패 패배 항쟁으로 다수의 희생자를 낸 것은, 일본인의 기질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 아닐까라고 되돌아보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일본인」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작품 속에서는 명확하지 않다. 만일 브라질에 이민한 일본인으로서 작중에서 당시의 심리가 나타나고 있는 개소를 따라가고 싶다.

 우선은 일본은 지지 않는다는 녹작의 발언에 대해 뭘 이민으로서 그 심리는 이해할 수 있다고 코마키가 말하는 장면이다. 길어지지만 인용한다.

“불운하게 하고, 궁금증에 붙여, 이 정도로 매운 인내를 할 정도라면, 내지에서도 어떻게든 해 갈 수 있었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가장은 아마 혼자도 있어. 드디어 자립하고 드디어 생활도 안정 ,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이것이 우리 아이라고 의심할 정도로, 말의 불통, 사고의 차이가, 자제가 이 나라의 고등교육을 하게 하는 가정 정도는 아니고, 부모와 자식의 단절에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고 듣는다 그것은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사람이 받는 고통이겠지만, 입으로 하면 모든 것이 부조화, 부자유하고, 어쩐지 가슴 속에 녹지 않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1세에게 조국은 국가의 격을 넘어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높아지고 있었다"


 혹은 일본은 다른 분야를 제외하고도 전쟁은 지지 않는다고 전쟁 자체에 내기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작중에서는, 승조의 면면에 의해서, 전쟁을 이겼을 때는 식민지로 한 동남아시아에 이민한다고 하는 것이나, 이 땅 브라질에서 일본 문화를 계승해 나간다는 것이 꿈처럼 말해진다. 이와 같이 일본인 이민의 일상으로서 "일상은 일본인이 이 나라에 가져온 습관 속에 있어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는 이 나라와 자신의 동료만의 생활이다"라고 전승 설이 취락내에서 공기처럼 퍼지면 소외나 고립을 피하고 싶은 심정에 근거하는 행동으로 향하는 것도 추측되고, 작중에서는 의제의 토오루가 코마키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남은 모두가 흰색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흑이라고 하는 것이다」

 코마키에 의하면, 전승설의 급속한 확산의 배경으로서, 전승설이 「억압되어 온 이민의 심정에 딱 온다」라고 견해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 이야기의 근육에 돌아가고 싶다.

 이윽고 마을내에서는 코마키가 패배라고 명지되게 되고, 웬작들이 결성한 신도연맹, 이른바 승조가 마을을 차지하고, 패배는 코마키만이 된다. 전승을 알리는데 일부러 비합법의 결사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묻는 코마키가 라디오는 어디서 들을 수 있는 거야? 라고 하면, 특수 기관만이 수신할 수 있다고 의제는 말한다. 그 가운데 5일 전에 대선단이 일본을 출발하고 40일 후에는 브라질 거주 일본인의 총 인양에 온다는 소문이 유포된다. 그러나 사십일이 지나도 선단은 나타나지 않고, 전승의 실증에 실패한 승조는, 군내의 패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위패를 공원의 나무에 매달린다. 그 중에는 코마키의 이름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은 단지 조국의 승리를 믿고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승조는 그 신념에 반대하는 자를 암살한다는 소문이 뒤따른다. 소문은 입안에 퍼질 뿐만 아니라, 옆군에서 습격 사건이 일어나 혼자 죽이고 코마키도 습격자의 총탄으로 쓰러진다.

 이렇게 승리 패배 항쟁의 희생이 된 코마키이지만, 그는 전승설이 「억압되어 온 이민의 심정」을 발사했다고 인정한 뒤, 무엇인가에 의한 책략이라고 간과하고 있었다. '김창'을 따라 생각하면 일본인 이민자에게 희망을 속이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 전승과 함께 일본으로의 인양이라는 능숙한 이야기를 준비할 필요가 있고, 일본에의 인양이라는 희망이 아니면 이민 사이에서도 전승설을 믿는 층이 퍼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작중에서는, 패배라고 명명된 대장장이가 고마키의 아래를 방문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국 절대 불패의 신자는 따로 해도 일본 패전을 알면서 전승설을 부추고 있는 그룹이 있습니다. 책략은 없네요」

 대선단이 총 인양에 온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전승설을 믿는 이민 중에는, 토지를 팔아 일본국 지폐를 손에 넣은 사람이나, 토지나 가재의 일체를 정리해 인양선의 한 차례를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브라질에서 맛보아온 참을성이 드디어 보상받는다는 마음을 한 줄 희망으로 품기 위해 인양 소문은 믿을만한 이야기였을까. 전쟁에 베팅한 사람들이 패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양 이야기에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전승설이 퍼진 배경에는 모두가 흰색이라고 하면 흰색이라는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게다가 코마키가 말했듯이 이민 1세가 안고 있는 조국에 대한 믿음에 가까운 감정과 '억압되어 온 이민의 심정'을 거기에 거듭해 생각했을 때 일본에 있는 일본인으로서의 시점 로부터의 고찰에서는 수중의 절벽이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 버린다.

 장편 「우츠로 배」(*6)를 표제로 하는 작품집 「우츠로 배」의 띠에는, 「『일본인』/『일본 문학』의 임계」라는 말이 적혀 있다. 권말의 해설에 있는 작품 일람에 의하면, 「우츠로후나」는 1988년부터 94년에 걸쳐 제일부, 제2부가 집필되어, 2003년에 결말이 가필되었다. 타이가가 흐르는 브라질의 오지에서, 아무것도 아닌 알몸의 인간으로서 살 것을 갈망하고 내성하는 마리오 것 신서 계지. 그는 부부간의 트러블로 재산을 잃은 뒤, 일본인 이민사회로부터도 멀어져 돼지 사육으로서 살고 있었지만, 큰 불에 의해 가축을 잃고, 그 후 어부가 되지만 대홍수에 의해서 어장을 흘리는 등, 야생 의 힘과 대치하는 그 삶 속에서 어떤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 내 같은 얼굴이 있는 남자는 모르겠네」

 이때 문자 그대로 '일본' 밖에서 살아가는 마리오와 카미니시 계지는 브라질의 변경에서 일본인이 되는 것을 가리킬 때 자신과 비슷한 얼굴이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에 이른지, 혹은 일본인이 되는 것을 떠올리며 과거의 자신의 얼굴이 머리를 뛰어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물론 브라질에서의 혼인이나 국제결혼이 당연한 지금은 그 '얼굴'도 균일하지 못하고, 그 자체로 유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일본인 커뮤니티와도 등을 나누어, 오지에 들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추구한 이 작품에 있어서 마츠이 타로가 발한 이 한마디는, 일본이라는 틀이란 무엇인가, 라는 하나의 질문을 붙잡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작품군은, 무명의 이민으로서 죽어간 사람들의 기록으로서도 멀리 일본에야말로 던져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마츠이 타로 『우츠로 배 브라질 일본인 작가 마츠이 타로 소설선
』 (니시나리히코, 호소카와 슈헤이편, 마츠나이샤, 2012)
*3 호소카와 슈헤이 「변경을 상상하는 작가――마츠이 타로의 세계」(『우츠로후나』 소수
) (『먼 목소리』
소수
)

【서지 정보】

『우츠로 배 브라질 일본인 작가 마츠이 타로 소설선』
코단샤 문고 2010년 8월 발행 본체 1900


【집필자 프로필】

나카사토 유타(나카사토·유타)
문예 평론, 편저에 『반도론 문학과 아트에 의한 반란의 지세학』(가네코 유코편, 히비키 분사).



旅する日本語: 方法としての外地巡礼 : 中川 成美, 西 成彦, アンドレ・ヘイグ, 金 東僖, 杉浦 清文, 劉 怡臻, 呉 佩珍, 栗山 雄佑, 謝 惠貞, 三須 祐介, 中川 成美, 西 成彦: Japanes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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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する日本語: 方法としての外地巡礼 Tankobon Hardcover – March 25, 2022
by 中川 成美 (著, 編集), 西 成彦 (著, 編集), & 8 more

Paperback
¥2,860
Points Earned: 29pt
5 Used from ¥4,1909 New from ¥2,860


旅する日本語: 方法としての外地巡礼
朝鮮、台湾、沖縄、ブラジル――日本語が足跡を刻んだ「外地」。そこで生きた人々ひとりひとりの感情と記憶を、文学を通して喚起し、再現する試み。


Print length

349 pages


Product description

著者について
二〇〇九年~一一年、国際交流基金フェローとして立命館大学で客員研究員。カリフォルニア州スタンフォード大学東アジア言語文化科において博士号取得。現在、ハワイ大学マノア校東アジア言語文学部准教授。
専攻は近代文学・文化史から見た大日本帝国。特に植民地朝鮮と「不逞鮮人」を書いた作家・文化人について研究。
主な業績に「中西伊之助と大正期日本の「不逞鮮人」へのまなざし―大衆ディスクールとコロニアル言説の転覆」(『立命館言語文化研究』第二二巻第三号)、「植民地朝鮮の国境および国境警備文化」(三上聡太編『「外地」日本語文学研究論集』、「外地」日本語文学研究会、二〇一九年)、「「どうして、まあ殺されたんでしょう」夏目漱石、帝国、そして(反)植民地的暴力の「公然たる秘密」」(安倍オースタッド玲子ほか編『漱石の居場所―日本文学と世界文学の交差』所収、岩波書店、二〇一九年)「Colonizing Genres on the Imperial “Gaichi” (Outer Lands) : Taxonomic Anxieties, Mysterious Media Ecologie…

立命館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修士課程修了、高麗大学校韓国語韓国文学科博士課程修了。立命館大学衣笠総合研究機構客員研究員を経て、現在、高麗大学校民族文化硏究院硏究敎授及び立命館大学コリア研究センター客員研究員。
専攻は韓国の近現代詩文学。特に鄭芝溶・李箱など朝鮮語・日本語で創作した詩人を中心に研究。
主な業績に「植民地体験と翻訳の政治学―『朝鮮詩集』に収録された鄭芝溶の作品を中心に」(『立命館言語文化研究』第三三巻第一号)、「打破界線的人們―以李箱及「風車詩社」為中心」(黃亞歷・陳允元編『共時的星叢』所収、原點出版、二〇二〇年)、「朝鮮における「近代文学」と日本語詩」(『現代詩手帖』第六二巻第八号)、「鄭芝溶―日本で活動した朝鮮人詩人」(和田博文ほか編『〈異郷〉としての日本』所収、勉誠出版、二〇一七年)など。

立命館大学国際関係学部卒業。大阪大学大学院言語文化研究科博士後期課程単位取得満期退学、博士(言語文化学)。二〇一九年~二〇二〇年、英国リーズ大学大学院英語英文学研究科にて客員研究員。現在、中京大学国際学部准教授。
専攻は英語圏文学、比較文学。カリブ海諸島及び朝鮮半島における(旧)植民者の文学、特にジーン・リースや森崎和江を中心に研究。
主な業績に「少年時代の断片化された記憶、そして〈原体験〉―三木卓の『ほろびた国の旅』を読む―」(伊勢芳夫編『「近代化」の反復と多様性:「東と西」の知の考古学的解体』所収、溪水社、 二〇二一年)、「トリニダードの「ごろつき」と新植民地主義―アール・ラヴレイスの『ドラゴンは踊れない』にみるスラム住民たちの闘争の記録―」(森有礼・小原文衛編『路と異界の英語圏文学』所収、大阪教育図書、二〇一八年)、「(旧)植民地で生まれ育った植民者―ジーン・リースと森崎和江」(『立命館言語文化研究』第二四巻第四号)など。

明治大学教養デザイン研究科博士後期課程。
専攻は日本統治期の台湾文学。特に日本詩歌との関わりを中心に研究する。
主な業績に「植民地台湾における啄木短歌の受容について」(池田功編『世界は啄木短歌をどう受容したか』所収、桜出版、二〇一九年)、『王白淵と日本大正詩壇との関わり―『蕀の道』の詩群における野口米次郎文学の受容』(『文史台灣學報』(第一一期)所収、国立台北教育大学)、「Taiwan’s literature received the world literature from the name of “surrealism” carried by the Windmill Poetry Society」(WEN-CHI LI 、PEI-YIN LIN共編 『Taiwanese Literature as World Literature』所収、Bloomsbury)などがある。

一九九六~一九九八年シカゴ大学留学。筑波大学大学院人文社会科学研究科文芸言語専攻修了。学術博士(文学)。現在、国立政治大学台湾文学研究所准教授兼所長。
専攻は日本近代文学、日本統治期日台比較文学、比較文化。日本女性文学、とくに田村俊子、真杉静枝、津島佑子を対象に研究。
主な業績に『帝国幻想と台湾 1871―1949』(共著、花鳥社、二〇二一年)、『我的日本:台湾作家が旅した日本』(共編訳、白水社、二〇一八年)、『真杉静枝與殖民地台灣』(聯經出版、二〇一三年)、「「青鞜」同人をめぐるセクシュアリティー言説」(『立命館言語文化研究』第二八巻第二号)など。


Product Details
Publisher ‏ : ‎ 松籟社 (March 25, 2022)
Publication date ‏ : ‎ March 25, 2022
Language ‏ : ‎ Japanese
Tankobon Hardcover ‏ : ‎ 3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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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horaisha.com/main/book/9784879844231.html

<여행하는 일본어 - 방법으로서의 외지 순례>
나카가와 나루미・니시 나리히코 편저  2022년 3월 


내용 소개

조선, 대만, 오키나와, 브라질 - 일본어가 발자취를 새긴 「외지」. 거기서 살던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문학을 통해 환기, 재현하는 시도.

【주요 목차】 

【대담】 
여행하는 일본어」의 사정과 가능성(나카가와 나루미 × 니시 나리히코 )

【일본과 조선】 
제국 일본의 감시·식별 문화─“불신선인” 공포증─(앙드레·헤이그/추타 호장역)
식민지 체험과 번역 정치학 - 『조선시집』에 수록된 정용용의 작품을 중심으로 (김동정) 
식민자 2세와 조선─ 모리자키 와에시의 다이얼로그, 그리고 공진 에 대해(스기우라 키요후미) 

【일본과 대만, 그리고 오키나와】 
식민지 대만의 내지인에 의한 이시카와 케이키 수용(유이 키 臻) 
1930년대에 있어서의 아일랜드 문학의 국경과 대만 신문학(오유키 진) 
모 <재생> 할 수 없는 목소리 ─ 돗토리 마슌 「마의 본 하늘」론(구리야마 유스케) 

【보더리스의 시대】 
재일 대만인 작가 온마타유 「공항 시광」연구─ 「내면의 외지」라고 자타 표상 의 연동(사유정) 전쟁과 「동지」 서사─오오시마 나기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명반?『재견, 도쿄』로(미스 유스케 )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과 일본어의 장(니시나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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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저자・저자 소개

나카가와 나루미 (나카가와·시게미) ※편자 립교
대학 대학원 문학 연구과 박사 과정 수료. 박사(문학). 리츠메이칸 대학 문학부 명예 교수.
전공은 일본 근현대 문학, 비교 문학. 특히 일본 근현대 문학에서의 모더니티의 문제를 젠더나 국민국가 등의 다면적인 영역에서 고찰하고 있다.
주된 업적에 『전쟁을 요한다-70권의 소설 안내』(이와나미 신서, 2017년), 『모더니티의 상상력―문학과 시각성』(신요샤, 2009년), 『말하는 기억 ―문학과 젠더 스터디즈」(오자와 서점, 1999년), 「페미니즘의 桎梏 : 가부장제와 성폭력」(『일본 문학』 제69호), 「트래블 라이팅이라는 기구: 문학 과 투어리즘」(『쇼와 문학 연구』 제75호) 등이 있다.

니시 나리히코 (니시 마사히코) ※편자
도쿄 대학 대학원 인문 과학 연구과 비교 문학 비교 문화 박사 과정 중퇴. 리츠메이칸 대학 첨단 종합 학술 연구과 명예 교수.
전공은 비교 문학. 폴란드 문학, 이디시 문학, 일본 식민지 시대의 마이노리티 문학, 전후 재일 문학, 일본계 이민 문학 등 사람들의 '이동'에 따라 만들어진 문학을 폭넓게 고찰하고 있다.
주요 업적에 『목소리의 문학-사건에서 인간의 말로』(신요샤, 2021년), '외지 순례-'월경적' 일본어 문학론'(미스즈 서방, 2018년) , '바이링갈한 꿈과 우울'(인문서원, 2014년), '터미널 라이프 종말기 풍경'(작품사, 2011년) '세계 문학 중 '마이히메'(미스즈 서방 , 2009년, 『엑스트라 테리토리얼 이동문학론Ⅱ』(작품사, 2008년) 등이 있다.

앙드레 헤이그 (Haag, Andre)
2009년~11년, 국제교류기금 휄로우로서 입명관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 동아시아 언어 문화과에서 박사 학위 취득. 현재 하와이 대학 마노아 교동 아시아 언어 문학부 준 교수.
전공은 근대 문학·문화사에서 본 대일본 제국. 특히 식민지 조선과 '불신선인'을 쓴 작가·문화인에 대해 연구.
주요 실적에 '나카니시 이노스케와 다이쇼기 일본의 '불신선인'에 대한 눈빛 - 대중디스크와 콜로니얼 언설의 전복'('립명관 언어문화연구' 제22권 제3호), 국경 및 국경 경비 문화」(미카미 사토시 편 「「외지」일본어 문학 연구 논집」, 「외지」일본어 문학 연구회, 2019년), 「어째서, 뭐 죽였을까요」 나츠메 소세키, 제국, 그리고 (반) 식민지적 폭력의 '공연하는 비밀' 「Colonizing Genres on the Imperial “Gaichi” (Outer Lands) : Taxonomic Anxieties, Mysterious Media Ecologies, and Popular Empire Writing”(『립명관 언어 문화 연구』 제33권 제1호) 등.


金東惖(키무・돈히) 
입명관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과정 수료, 고려대학교 한국어 한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리츠메이칸대학 의가사종합연구기구 객원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 궁원?
전공은 한국의 근현대 시문학. 특히 정잔용·이상자 등 조선어·일본어로 창작한 시인을 중심으로 연구.
주요 실적에 “식민지 체험과 번역의 정치학―『조선시집』에 수록된 정용용의 작품을 중심으로」(『립명관 언어문화연구』 제33권 제1호), 「타파계선적 인구 ―이이상급 「풍차시사」위중심」(?亞?・陳允元編『共時的星叢』 소수, 원록출판, 2020년), ‘조선의 ‘근대문학’과 일본어 시」(『현대시수첩』 제62권 제8호), 「정잔용-일본에서 활동한 조선인 시인」 7년) 등.


스기우라 키요후미 (지나치다・키요후미)
립명관대학 국제관계학부 졸업. 오사카 대학 대학원 언어 문화 연구과 박사 후기 과정 단위 취득 만기 퇴학, 박사(언어 문화학). 2019년~2020년, 영국 리즈 대학 대학원 영어 영문학 연구과에서 객원 연구원. 현재 중경대학교 국제학부 준교수.
전공은 영어권 문학, 비교 문학. 카리브해 제도 및 한반도에서의 (구) 식민자의 문학, 특히 진 리스와 모리사키 와에를 중심으로 연구.
주요 업적에 "소년 시절의 단편화된 기억, 그리고 <원 체험>-미키타쿠의 '시련한 나라의 여행'을 읽는다''(이세 요시오편 ''근대화'의 반복과 다양성:' 동쪽과 서쪽의 지식의 고고학적 해체 소수, 오수사, 2021년), 트리니다드의 '고로츠키'와 신식민지주의-아르 라브레이스의 '드래곤은 춤출 수 없다'로 본 슬램 주민 들의 투쟁의 기록―」(모리 유례·오하라 문위편 “길과 이계의 영어권 문학” 소수, 오사카 교육 도서, 2018년), “(구) 식민지에서 태어나 자란 식민자 ―진 리스와 모리사키 와에」(『립명관 언어 문화 연구』 제24권 제4호) 등.


劉怡臻(류·이치ぇん)
메이지 대학교양 디자인 연구과 박사 후기 과정.
전공은 일본 통치기의 대만 문학. 특히 일본시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연구한다.
주요 업적에 「식민지 대만에 있어서의 계목 단가의 수용에 대해」(이케다 공편 「세계는 하키 단가를 어떻게 수용했는가」소수, 벚꽃 출판, 2019년), 「왕백연과 일본 다이쇼시단과의 관계-『방어의 길』의 시군에서의 노구치 요지로 문학의 수용』(『문사 타이완 학보』(제1일기) 소수, 국립 타이베이 교육 대학), 「Taiwan's literature received the world literature from the name of “ surrealism” carried by the Windmill Poetry Society”(WEN-CHI LI, PEI-YIN LIN 공편 'Taiwanese Literature as World Literature' 소수, Bloomsbury) 등이 있다.


쿠레하이진 1996~ 1998
년 시카고 대학 유학. 쓰쿠바 대학 대학원 인문 사회 과학 연구과 문예 언어 전공 수료. 학술 박사 (문학). 현재 국립정치대학대만문학연구소 준교수 겸 소장.
전공은 일본 근대 문학, 일본 통치 기일대 비교 문학, 비교 문화. 일본 여성 문학, 특히 다무라 슌코, 마스기 시즈에다, 쓰시마 유코를 대상으로 연구.
주요 실적에 『제국 환상과 대만 1871-1949』(공저, 하나토리샤, 2021년), 『아적 일본:대만 작가가 여행한 일본』 ), 『마스기 시치에 추식 민지대 완』(聯經出版, 2013년), ‘청동’ 동인을 둘러싼 섹슈얼리티 언설’(『립명관 언어 문화 연구』 제28권 제2호) 등.


쿠리야마 유스케 (쿠리야마 유스케) 
입명관 대학 대학원 문학 연구과 박사 후기 과정 수료. 박사(문학).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문학 연구과 초임 연구원.
전공은 근현대 일본 문학, 특히 메이토리 마사토를 중심으로 한 근현대 오키나와 문학을 중심으로 연구.
주된 업적에 「폭력의 기억을〈말하기〉하기 위해서--눈취 마사토 “눈의 안쪽의 숲”론”(『립명관 문학』제66호), “눈 앞의 울타리를〈교란〉하기 위해서- 또 요시에키 「조지가 사살한 이노」론」(『쇼와 문학 연구』 제8일집) 등.


사 惠貞(샤·케테이)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 수료. 박사(문학). 현재, 대만·문조 외어 대학 일본어 문학과 준 교수.
전공은 일본 근현대 문학, 일본 통치기 대만 문학, 월경 문학. 특히 요코코 리이치,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야마 아키라, 온마타 유, 이금봉을 중심으로 연구.
주요 업적에 『요코미츠 이치와 대만-동아시아에서의 신감각파의 탄생』(히토지 서방, 2021년), 「『색채를 가지지 않는 다사키 만들기, 그의 순례의 해』론― 순례의 의미를 둘러싸고」(『월경하는 중국문학』편집위원회편『월경하는 중국문학』 소수, 동방서점, 2018년), 「월경하는 노스탤지어―히가시야마 아키라『류』의 아웃로우상을 통해서」( 하야시 숙단편 『동아시아의 지식의 교류:월경·기억·공생』소수, 국립대만대학 출판중심, 2018년) 등.
또, 니시나리히코 『외지 순례―“월경적” 일본어 문학론』(미스즈 서방, 2018년)을 중국어 번역해(유선 문화, 2022년), 대만의 독자에게 소개해 있다.


미스 유스케
와세다 대학 대학원 문학 연구과 박사 과정 단위 취득 만기 퇴학. 1994년~96년 복단대학(상해)교환유학, 2010년~11년 중앙연구원 문철연구소(대만) 방문 학인.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문학부 교수.
전공은 근현대 중국 연극, 특히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지방극의 연구, 대만을 중심으로 한 중국어권의 섹슈얼·마이너리티 문학 연구.
주된 업적에 「림 회민 「체자」론―「동지 문학사」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둘러싸고」(『말과 그 히로가리』 제6호), 『『아키카이 관』에서 『홍伶 눈물』로― 근현대 중국문예작품의 남편과 “남성”을 둘러싸고”(『립명관 문학』 제667호) 등.






Wednesday, May 25, 2022

한인 1.5세 스타 목회자 성추문으로 드러난 민낯 - NEWS M

한인 1.5세 스타 목회자 성추문으로 드러난 민낯 - NEWS M



한인 1.5세 스타 목회자 성추문으로 드러난 민낯
Michael Oh
승인 2021.08.11

심각한 성추문 20년 넘게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교회 및 교단도 미온적 태도로 비판
피해자 인스타그램에 폭로로 새로운 국면 접어들어

[뉴스M=마이클 오 기자] 한인 1.5세 스타 목사의 과거 성추문을 둘러쌓고 파문이 일고 있다.

사건의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해당 교회와 소속 교단의 미온적이고 안이한 대응이 피해자와 주변에 더욱 큰 상처와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조슈아 정 목사 (유튜브 갈무리)

사태의 발단은 조슈아 정 (Min Joshua Chung) 목사가 일으킨 20년 전 성추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얼바나 샴페인 내 한인 캠퍼스 교회를 개척, 단시간 내에 다인종 교회로 급성장한 커버넌트 펠로우쉽 교회(Covenant Fellowship Church, CFC) 담임이었던 정 목사는 미주 지역 한인 2세대 목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이민한 한인 1.5세 목회자로서 특유의 친근함과 언변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를 위한 매력적인 사역을 통해 성공적인 캠퍼스 사역자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교회 목회뿐만 아니라 코스타를 비롯해 수많은 행사와 강연에 초청받았으며, 얼바나 신학대학교(Urbana Theological Seminary)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운전자 있는 차량 뒷좌석에서 심각한 “터치”?

미국 기독교 뉴스 미디어 [미니스트리 와치]는 지난 2019년 9월, 정 목사가 20년전 쯤에 ‘옷으로 가려진 여성 신체의 한 부분을 만졌다(‘touch’)는 것을 시인’했으며, 그녀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바로 멈췄다’는 내용의 교회 관계자 진술을 소개했다.

하지만 다른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진술은 사실과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미국 기독교 사건 탐사 매체 [로이 리포트]가 입수한 진상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2001년 정 목사는 시카고에서 얼바나 샴페인으로 이동하는 차량 뒷좌석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여학생에게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차량에는 운전 중인 다른 교인도 함께 탑승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로 더욱 충격을 전해주고 있다.

보고서는 “피해자의 음부에(in her private area), 원치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은 성적 삽입 행위(unwanted, non-consensual sexual penetration)를 했으며, “일리노이 주법에 따르면 강간/성폭행에 해당할 수 있는 사안(in a way that could be constituted as rape/sexual assault)”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피해자 교회의 내부 고발자 모임이 사건 피해자 및 증인 진술과 문자 메세지 등의 증거를 토대로 67쪽에 걸친 조사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124쪽에 걸쳐 더욱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기록한 보고서는 교단 진상 위원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 '라합의 편지들'에 올라온 피해 폭로(인스타그램 갈무리)

또 다른 트라우마를 부르는 반응들

사건 이후 정 목사의 반응은 피해자에게 더욱더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는 친구에게 피해 사실을 하소연한 후, 친구의 위로와 제안으로 정 목사에게 ‘자신은 원하지 않았던 일'이라며 항의를 했다. 하지만 정 목사의 반응은 오히려 자신과 피해자 간의 ‘개인적인 일’을 친구에게 알렸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후 정 목사는 피해자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사건에 대해 침묵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 과정을 지켜본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피해자는 이 기간 동안 자살 충동과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교회에서 이 사건을 인지한 교인이 늘어나고 이에 대한 공론화 목소리가 커지자, 정 목사는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라며 비난을 했다. 이로 인해 이들 대다수는 교회를 떠나기를 강요받거나, 실제로 떠나기도 했다고 한다.

사건에 대해 항의와 사죄를 요구하는 한 교인에게는 하나님의 꿈을 통한 계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자신은 '이 세대를 위한 등불이며, 자신의 회복을 위해서 계속 설교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로이 리포트]는 교회와 교단의 대응도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2019년 정 목사가 사임한 뒤 교인들은 부목사 출신 새로운 담임 목사에게 정 목사의 성추문을 조사하고 합당한 조처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담임 목사는 소문 확산을 축소하는데 주력할 뿐, 정 목사에 대한 조치나 피해자 보호에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14명의 내부 고발자 모임은 2020년 PCA(미국 장로교)내 한국교회 연합 KCP (Korean Central Presbytery, 이하 KCP)에 성추문 사건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와 진상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2001년 정 목사의 성추문 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가 저지른 성범죄와 교인 간에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을 축소 및 무마시키려는 혐의 또한 포함하고 있다.

같은 해 4월 KCP는 자체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 보고서는 청원서가 요청한 여러 사건 중 정 목사의 성폭력 혐의만을 다루었으며, 이에 대해 ‘성추행’으로 단정했다. 사건을 ‘성폭력’보다 가볍게 본 판결이다. 또한 조사 위원회는 사건에 있어 정 목사의 죄가 인정('guilty')되지만, 그가 그동안 충분히 회개했으므로 사역에 복귀해도 좋다고 판결했다. 또한, 그가 설교하지 않은 기간으로 죗값을 치른 것으로 판결했다.

판결 소식을 접한 9명의 교육 장로들은 즉각 비판 메시지를 내며 정 목사의 영구 자격 박탈을 요구했다. 이에 KCP 판결에 대한 무효화 투표가 실시 되었으나, 정족수 3분의 2 투표에 한 표 차이로 기각되었다.

내부 고발자들은 ‘매우 실망스럽지만 예상된 결과였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인터넷 성지 된 CFC 성추문 사태 폭로 인스타그램 계정

한편 사건 당사자와 교회 그리고 교단 모두 합당한 사건 처리와 피해자 회복을 외면하고 있을 때, 억압된 진실은 더욱 큰 목소리로 터져 나왔다.

2020년 5월 인스타그램 계정 ‘라합의 편지들 (@letters_from_rahab)’에 “저는 CFC로부터 육체적으로, 성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학대받았던 생존자입니다.”라는 내용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단순한 문구지만, 그동안 피해자가 커버넌트 펠로우쉽 교회에서 겪었던 내용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포스팅이다.

이후로 ‘라합의 편지들'에는 피해자가 겪은 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타임라인과 짧은 포스팅 형태로 올라왔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CFC를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이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한 포스팅도 쏟아졌다. 그 내용 가운데에는 교회 내에서 겪은 성폭력 및 추행 경험, 교회의 사건 축소 및 은폐 시도, 남성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교회 문화, 교회 활동에 대한 강박적 강요 등 충격적인 포스팅이 현재까지도 지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사건 내용을 보도하는 WBEZ Chicago 기사 (WBEZ Chicago 웹페이지)

개인의 일탈 이상의 문제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에는 더욱 깊은 우려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목회자의 권위와 영향력, 조직의 안정과 체면만을 중요시하는 교회와 교단의 문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빚어낸 비극이라는 것이다.

시카고 지역 뉴스 미디어 [WBEZ Chicago]는 “이번 문제는 단순히 Min Chung 개인 이상의 문제다!”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번 사태에 있어 CFC는 “학대를 위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아시안 교회의 체면 문화와 폐쇄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크리스천 데일리]는 이번 사건을 자세히 다룬 뒤 결론적으로 기사의 제목을 “유력한 한인 교포 목회자 성적 비위 혐의에도 불구하고 강단에 복귀”라고 정해 내보냈다. [미니스트리 와치] 역시 비슷한 내용의 기사 제목을 “장로교단, (성추문) 한국 교회 목사 제명 요구 거부”라고 정했다. 심각한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를 감싸고 도는 교회와 교단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참고기사>

https://julieroys.com/pca-min-joshua-chung-alleged-misconduct/

https://www.wbez.org/stories/a-reckoning-at-covenant-fellowship-church/7e19a80b-92bd-4ad8-a6f9-61edb114b46f

https://www.christianitydaily.com/articles/12804/20210804/prominent-korean-american-pastor-back-in-pulpit-despite-sexual-misconduct-allegations.htm

https://ministrywatch.com/presbyterian-group-denies-call-to-remove-pastor-of-korean-church-from-ministry

Thursday, May 12, 2022

Opinion | Whatever Happened to Identity Politics? - The New York Times

Opinion | Whatever Happened to Identity Politics? - The New York TimesJay 
OPINION

Whatever Happened to Identity Politics?

Opinion Writer

Over the past year or so, I’ve been returning again and again to one persistent question: Does the conversation around social justice, especially in the media and academia, actually serve the less fortunate and the oppressed?

These interrogations have been guided by a number of thinkers and writers, but I am particularly indebted to the writing of the philosopher Olúfẹ́mi O. Táíwò. In May 2020, Táíwò published an influential article in the Boston Review in which he outlined the way the once radical spirit of identity politics had been co-opted and redefined by elites who now use a similar language to further their own aims — a development he defines as “elite capture.” In his new book, “Elite Capture: How the Powerful Took Over Identity Politics (and Everything Else),” Táíwò, who is an assistant professor of philosophy at Georgetown, explores in greater detail how “the advantaged few steer resources and institutions that could serve the many toward their own narrower interests and aims.”

In an earlier newsletter, I gave an example of how elite capture works in the realm of racial justice:

Take, say, an upwardly mobile and educated Korean American banker whose parents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in 1975 as graduate students and another Korean American who has entered the country illegally, works as a delivery person and makes $9 an hour. If you reduce their stories to the atrocities of Japanese imperialism in early-20th-century Korea and the Korean War, as well as the day-to-day microaggressions experienced by all Asian men in America, the banker and the delivery driver become more or less indistinguishable from each other.

Everything that matters much more — the delivery driver’s poverty and his undocumented status — gets obscured by a broad telling of history and a few handpicked complaints about how white people ask, “Where are you from?” These instances of identity slippage remind me of a style of sleight-of-hand where the magician provides you tiny, seemingly identifying glimpses that trick you into thinking the card in his hand is actually the card he has secured in his pocket.


Táíwò sees this process everywhere (hence the “and everything else” subtitle to his book), not just in the United States, but internationally. His work has stuck with me because he grapples with these difficult ideas in a capacious and honest way that sometimes leads him into the types of contradictions that I find myself trying to resolve in this space. He, for example, does not dismiss all identity politics in the crude, almost scornful way that many of its modern critics do; nor does he embark on a crusade to root out every instance of elite capture that might be poisoning the well of social justice. Instead, he pursues an intellectual path that tries to meet people where they are. His critique isn’t of the idea of identity politics, but rather how it’s been co-opted and corrupted by elites.

The following conversation between Táíwò and me has been edited for length and clarity.

When did this idea of elite capture and the corruption of identity politics start occurring to you?

I was trying to position myself with respect to all these issues that folks in academic and organizing spaces talk about, whether it was immigration, racism or whatever. And a lot of what people were focused on in the spaces that I was in seemed like it made sense. If you’re a grad student studying racism, it makes sense to talk about racism in the university and in the classroom. But there’s a question about how that relates to the broader issue: How much does racism in general have to do with the particular racism that’s going on here on campus? I didn’t always agree with the people around me in terms of what the priorities should be.

What’s an example of something that happened on campus that you felt was blown out of proportion or myopic?

There was one event in particular, where a group of people had come to visit campus from an alternative high school for kids who had been railroaded out of other school systems. Working-class, Black and brown kids. And they had come to campus to see what we were doing. And this person from the medical school comes up to speak and gives this impassioned description of how racially insensitive the med school practices are, and it’s just one of those “read the room” moments — this is the furthest thing from what your audience on this particular day rightfully cares about. That was a clear moment where I realized, “Oh, it’s not just that people talk this way when it’s just us academics around.” I think some people have built this worldview where racism is what’s going on on campus, and what we need to do about it is change things here, in these particular spaces we happen to be in, as Black elites.


You’re talking in some ways about taking social and economic class out of these conversations about identity. How did this happen?

The recent story of the term “identity politics” isn’t super hard to grasp: The people in a position to study race and gender are disproportionately people with certain kinds of social support — disproportionately academics, and within that group of academics, disproportionately people from the fanciest institutions.

Part of what I try to argue in the book is that you don’t need a special ideological story to explain why this happens. The story of elite capture of identity politics is the same story of elite capture of society. In general, there’s more elite capture when there’s wider economic and political inequality between elites and non-elites, and there’s also more elite capture when the organizations and actions that exist to constrain elite impunity are smaller or weaker — organizations like unions, regulatory bodies.

Since the 1960s, both of these things have happened in the United States. In 1918, there was just the one “billionaire”: Rockefeller, standing atop Standard Oil. Now we have hundreds of them, alongside asset managers directing whole countries’ worth of investment capital. Then there’s the U.S.-led global offensive against the organized: In the 1960s, nearly a third of U.S. workers were unionized. Today it’s a tenth, and many of the unions that have survived have had to spend their time and attention playing defense. At the same time, tuition rates have skyrocketed in the fanciest schools that command an outsize portion of social attention and prestige — which affects both who is learning at these institutions and who can afford to stay in them long enough to teach at them. Vulture capital has descended on media, helping to explain the decline of local news and orienting the surviving media outlets around whatever their agenda is.

Put all this together and ask a simple question: Whose views about anything, oppression or otherwise, are likely to circulate in a social environment where so much economic and political opportunity is concentrated at the top? The people selected to be in a position to talk about or ignore class are chosen by processes and institutions that emerge from this same history, and it’s not particularly surprising that unserious analyses of the social world are the ones that win out in this kind of top-heavy political environment.

At the beginning of your book you talk about the international scope of the George Floyd protests, which drew in millions of people. And a lot of your work is about the ways in which action or discussion becomes inert through elite capture. But if identity politics has really been captured by elites and rendered inert, how do you explain the size of the protests?

This is part of why it’s important to me to reject the super-cynical take on identity politics. The view that everything is just a plot by the powers-that-be is wrong, and the protests of that summer are the most powerful way I could think of to put it. People really do think racism is wrong. It’s a victory of the era of the ’60s and ’70s, and of the global movement against colonialism and racism. And it’s that victory that is the reason for these kinds of draconian advances from the far right — fighting against trans kids and critical race theory. The question is, can we take that victory and win bigger victories, and get better things out of it? Can we get people not just to protest policing, but actually get policing to change?


I remember when the book “White Fragility” by Robin DiAngelo, a white academic, became a best seller during the Floyd protests. Soon it became a sort of ritual for people on the left to bash it because it seemed like the ultimate form of elite capture — a style of social justice for corporate meeting rooms. I agree with this view at some level, and I want to be critical of the book, too. But I sometimes wonder if it’s better to just ignore it, because the fact that the book exists does seem like an advance.

It’s clearly an advance. When I was a kid, the best-selling book on race that I remember was “The Bell Curve.” And God only knows what books were selling in my teenage years in the War on Terror era. If folks want to read Robin DiAngelo, I’m ecstatic. That’s not where we want the discussion to end, but if it’s starting there, I can work with that. Criticism is necessary, but it doesn’t really need to be Plan A. A lot of people don’t even necessarily disagree with a lot of the things that people of my political persuasion think. And I think the better approach is to start by saying, “Well, here’s what I think is true. Here’s what I think antiracism actually demands,” rather than going into attack mode and putting people on the defensive.

There’s a sharp critique in your work about how identity politics has been subject to elite capture. My own go-to example for Asian people is what happened after the Atlanta spa shooting: A lot of well-meaning Asian colleagues in the media started talking about microaggressions that they experienced in their own workplaces. I find this type of thinking bankrupt and weird because there’s a clear difference between working at one of these massage parlors and working at, say, Condé Nast. And yet I still feel this tinge of regret when I make these types of critiques. At some level, I feel like I’m providing ammunition for people who want to tell all Asian people to shut up. This is not something I want. How do you deal with it?

It’s difficult. There’s lots of criticisms of identity politics, but from the outside. I see at least three vantage points: a right-wing criticism of identity politics by those who are simply pro-oppression, whether functionally or self-consciously; the center and center-left, who don’t really have strong views about oppression but are pro shutting people up; and the “class-reductionist” left who have really strong views about oppression but are hostile to competing ways of framing that oppression.

I’m not on any of those teams, or making any of those points. My criticism of identity politics is “internal”: I’m on team identity politics! It’s good if people think about how social structures affect them and people like them, specifically, and treat that as a political starting point. And it’s hard to see how we could do better than changing one system of oppression to another system of oppression unless we had something like that going. The best I can do, I think, is be as clear as I can about what I think is baby and what I think is bathwater, so that people can distinguish this sort of internal criticism of identity politics from those three external ones. It also might help that my criticism of identity politics is so structurally focused, rather than being primarily centered around psychological or moral criticism of the choices elites make.

I want to talk a bit about an idea you discuss near the end of your book — “deference politics,” which is what happens when mostly white people turn themselves into “allies” and blindly follow the person of the oppressed identity. You write that deference politics “considers it a step toward justice to modify the interpersonal interactions in compliance with the perceived wishes of the marginalized. While the deference perspective isn’t entirely off base, it is potentially limiting and misleading.” Can you explain what you mean there?

Let’s say I’m in a particular conversation and I don’t have life experience with the thing that we’re talking about. At that moment I can take political direction from somebody who does have that relevant life experience. Deference politics means I’m going to find a person of some particular identity, and whatever that person’s thoughts or opinions or perspectives are, they’re also going to be mine.


Do you think that the way questions of race and justice are discussed in the elite spaces now essentially asks white people to take on a philanthropic role as opposed to a role in solidarity? Are people becoming too deferential?

Yes, I think that’s definitely happening. This is among my biggest gripes about the direction that identity politics has taken in elite spaces. I think it’s related to privilege as a governing framework. I don’t think that’s a helpful way of framing what advantages under the current unjust system really mean for people. I’m in so many spaces where people say “to be white” or “to be cis” or “to be a man” is to be in a position to make the system operate differently. And it just mystifies power relations. Whether or not someone has privilege, whether they are above or below you in the social hierarchy, is just a different question from whether or not this person has the requisite social power to do something.

Your prescription for how we can move past elite capture is what you call a “constructive political culture.” Can you explain what you mean by that?

Constructive political culture relates to the idea that we were just talking about, to ask: What is the thing that you’re trying to do in any given political interaction? One thing you could try to do is play it in the right kind of moral or aesthetic way. What is the thing that will signal my political radical bona fides in this interaction? That’s a question you could ask. But there is a different kind of question you could ask: What’s the most useful thing we could build together? How can we change the social landscape in a way that will be usable by us later, and by the people who come after us? That’s constructive politics. And the construction part is something that I mean literally. The thing that we should do might be to plant trees, literally plant trees, or it might be to build a certain kind of school. It might be building a social institution, or building a certain kind of knowledge base or an archive or database or something like that. But it’s about making these kinds of practical changes to the unfair environment that we’re in, instead of making changes to discourse.

Is the type of identity politics you’ve critiqued in this book an impediment to constructive political culture? And if so, what should we do about it?

Yes, it is an impediment. But it’s not as though there’s ever been a favorable political or social environment for this kind of political culture. Every time this kind of political culture has been built, it’s been in opposition to the cultural, political and capitalist status quo. The anticolonial movements of the post-WWII years, the anti-apartheid movement — they emerged in unfavorable environments, but they were still built, and they were built in the kinds of organizations that were tried and true examples of constructive politics, like unions. The boss may want to only pay some of us this and pay the rest of us that, but we’re going to bargain collectively, and we’re going to build a space where we struggle together for collective goals. That’s the kind of thing that can build solidarity across political differences.

What are some examples of things that excite you in that line of thinking?

Definitely the wave of unionization at Amazon and Starbucks. If there were more of these kinds of movements in tech, things like the Alphabet Workers Union, that would be even more promising. Formations like the Debt Collective, that are uniting people based on being indebted. I think of tenants’ activism that really accelerated during the pandemic, particularly in places like Kansas City, Los Angeles — all of those things are really promising kinds of mobilization. And the more we get together, the better we can get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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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Caspian Kang (@jaycaspiankang), a writer for Opinion and The New York Times Magazine, is the author of “The Loneliest Americans.”

Sunday, May 8, 2022

Toake Endoh Exporting Japan Politics of Emigration To Latin America | PDF | Japanese Diaspora | Immi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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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ake Endoh Exporting Japan Politics of Emigration To Latin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