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9, 2020

200809 Vladimir Tikhonov [한국인의 머리 속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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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을 처음으로 알게 된 1990년대에는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세계적 서열'의 의식은 다소....단순했습니다. 꽤나 단순한 상하 위계질서의 그림이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중진국'이었고, 그 위에는 '선진국 그룹', 그리고 그 밑에는 다양한 '후진국'들이 있었던 것이죠. '선진국'에 가서 잘 배워서 거기에서 받은 졸업장의 힘으로 나중에 금의환향해 국내에서 출세해야 했고, '후진국'에 가서는 오지 여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주로 선교나 투자, 현지 공장 관리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진국' 미국의 종교인 개신교를 가지고, '우리 한국인'들이 오히려 미국인들보다 전세계 각종 '후진국'에 더 잘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후진국 종교'로 인식됐던 이슬람만 해도 그때도 지금도 국내에는 한국인 신자는 겨우 약 4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선진국'들을 흠모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미군의 성범죄 등등을, 1990년대의 한국인들은 아주 강력하게 인식했습니다. 1970년대 일본인 기생 관광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주한미군의 강간이나 살인 등은 핫토피크이었습니다. 그런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명언 (?)대로 그 당시에 본인들의 위치를 '선진국의 문턱'으로 스스로 정의하는 한국인들은, 이미 예컨대 일본인의 기생 관광을 모방하기 시작했죠. 망해버린 동유럽으로 '백마타기 관광' 가기 시작한 건, 동남아 '섹스 관광'의 대중화가 시작한 건 다 그때이었습니다.

이 서열은 물론 미국발 인종주의의 영향 등도 다소 받았지만, 일면으로는 토착적인 빈부, 귀천, 학력 차별 패턴들의 외부로의 연장이기도 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국내로 치면 '많이 배운 양반'이나 적어도 토호, 부자쯤으로 인식되는가 하면, '후진국 사람'은 그저 국내 '공돌이, 공순이'의 외국인판이었습니다. 차별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사다리의 사회에서는, 이 차별의 패턴에 외국인들까지 포함시키는 것 역시 자연스럽기만 했죠. 연세대에서 뭔가를 가르친다는 미국 여권의 백인은 공손하게, 아주 정중하게 대해드려야 하는 '외국 분'이었지만, 이미 국내 영세 공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동남아시아 계통의 '산업연수생'들은 '동남아애들'로 통칭되곤 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도 - 나이와 관계없이 - 존댓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익힌 한국어도 거의 반말 일색이었습니다. 전통 사회 같았으면, '말을 절대 높이지 말아야 하는 대상'은 노비나 백정 등 '천민'이었는데, '동남아애들'은 1990년대의 한국에서 바로 이런 '천민'이 된 것이죠. 그 시기에 저와 같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그대학을 다녔던 한 동급생은, 한국에 언어 실습차 왔을 때에 재미있는 실험을 해본 바 있습니다. 택시 탔을 때에 피할 수 없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몇 번 사실대로 '러시아'라고 답하고서 그 다음에 몇 번 '핀란드'라고 속여서 이야기했습니다. 기사 아저씨의 말 형태나 웃어주는 빈도, 전체적인 친절도 등은, 이 두 경우엔 '천양지차'이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어서 남에게 갑질하느냐, 아니면 그렇게 되지 못해 울며겨자먹기 격으로 남의 갑질을 당하느냐,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하는, 완벽하게 위계적인 한국형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 위계상의 위치가 '불분명한' 외국인에 대한 대우 문제는 당연 '수수께끼' 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정상 어디에도 떠날 수 없는 '미국인 부하'를 두었을 때에 사역시키거나 성추행해도 되느냐는 것은, 1990년대로서는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당연히 (?) 그런 경우에는 일정 정도 갑질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같은 한국인'보다는 덜 당하곤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즉, 무력한 위치에 있는 잠재적인 갑질 대상이라 해도 미국 여권은 '그래도' 일정 정도까지 보호막이 되어 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1990년대말에는 미국에서 빈번히 취직이 안되어 결국 서울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에서 영어 회화 선생으로 들어오게 된 한 미국 여성을 알고 지냈습니다. 그녀의 자리는 매년 계약 연장해야 하는 비정규직 자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말로는, 그녀가 거의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비졍규직 교원 생활을 하면서 당한 것은 한 차례의 학과장의 언어적 성희롱과 두세 차례의 학과장의 사역 강요 정도이었습니다. 같은 위치에 있는 한국인 여성 비정규직에 비해 거의 '괜찮은 삶'처럼 보였던 것이죠. 한국인 남성 정규직 동료들은 그녀에게는 '정중하게는' 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제3자가 보는 앞에선 '막' 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저의 관찰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잘 정리됐던 1990년대의 한국인 머리 속에서의 '국제 질서'는, 신자유주의 세계가 최악의 대공황을 맞고 있는 금일에는 아주 크게 흔들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불평등의 시대에는 '국가' 단위의 위계 질서가 무의미해지니까요. 같은 대학에서는, 같은 한국인인  비정규직 교수가 연봉이 고작 1천5백만원이고 자기 집이 없는 반면 의대 정규직 교수의 연봉이 억대이며 다주택자라면, 이 두 사람은 아무리 여권 색깔뿐만 아니라 직장까지 같아도 이미 서로 다른 세계를 산다고 봐야 합니다. '평균적인 한국인'이 사라지는 동시에, '평균적 미군인'이나 '평균적 중국인'도 더 이상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세입자 중에서 적게는 25% (캘리포니아의 백인 가구), 많게는 43% (캘리포니아의 라틴계 가구)나 다음달 집세를 못내 강제 퇴거를 당할 위험에 처해지는 것은 세계 최고 부자 나라인 미국의 현재 현실입니다. '선진국'은 옛말이고 현재 미국은 가면 갈 수록 다수가 하층이나 중하층으로 살아야 하는 대중적 빈곤의 나라가 돼갑니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현재로서 미국에는 물론이고 한국에도 못미쳐도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중국 중상층의 숫자는 한국 총인구에 맞물리죠. 그러니까 국내에서는 가난한 중국인 노동자도 부유한 중상층 중국인 관광객도 다 도처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죠. 획일적인 '중국/중국인'의 위계적 위치 부여는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1990년대와 달리 앞으로 한국인 머리 속의 사다리는 '국가'가 아닌 '개인' 위주로 바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면 옛날과 달리 '어느 나라 사람'인지 따져 거기에 준해서 대우를 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의 '하는 일'부터 물어 은근히 소득 수준을 확인해서 거기에 따라 이 사람이 갑질의 주체냐 갑질의 대상이냐를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갑질 행위자와 갑질 피해자로 나누어지는 이 세상 자체가 과연 언젠가 본격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꿈 같은 이야기지만, 저는 앞으로 몇년 동안 경제적 침체 속에서 오히려 오늘날의 차별주의적 패턴들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물론 이 비관적인 상황을 직시하면서 거기에 대한 진보적인 대응을, 다 같이 준비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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