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주민판 영어 번역 신약성경 발간, 상처를 넘어 치유와 화해로
Michael Oh
승인 2021.09.25
“First Nations Version: An Indigenous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미국 원주민 언어로 된 신약성경 영어로 재번역
원주민 학살과 억압으로 뿌리와 언어를 말살당한 역사, 백인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져
백인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표현으로 다시 읽는 성경
[뉴스M=마이클 오 기자] “큰 영혼이 사람의 세상을 사랑해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내는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주었다. 그와 그의 길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은 나쁜 끝에 이르지 않을 것이고, 결코 사라지지도 않을 다가오는 세상, 아름다움과 조화가 충만한 세상의 생명을 얻을 것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미국 원주민의 언어를 영어로 재번역한 구절이다. 최초의 원주민본 신약성서 “First Nations Version: An Indigenous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의 일부다.
First Nations Version: An Indigenous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과 테리 와일드만 (RNS 캡처)
지난 8월 31일 InterVarsity Press(IVP)를 통해 출판됐다. 이번 출판을 주도한 원주민 출신 감리교 목사 테리 와일드만은 이 번역본이 기독교인과 원주민 모두 성경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번 성경 번역본은 와일드만이 20년 전부터 구상하고 추진해온 결과라고 한다. 호피 부족 목회자로 재직할 당시 우연히 창고에서 발견한 호피어 신약성경을 영어로 재번역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20년 노정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한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한다. 호피 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노인들이 호피어를 쓰고 아이들도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호피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른 부족 상황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 원주민 정복 시절,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원주민 언어를 사용 시 벌을 주면서 언어를 말살시킨 결과다.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대신 정복자 백인의 영어로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 복음에 대한 왜곡과 오해 그리고 단절도 경험하게 되었다.
와일드만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원주민의 고유한 사고방식과 언어를 담은 영어 성경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고 한다.
“90% 넘는 원주민이 그들의 언어를 말하거나 읽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원주민 표현을 담은 영어 성경 번역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와일드만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번 성경 번역의 이유와 배경을 밝혔다.
“예를 들어 ‘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의미하는) 본뜻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죠. 원주민뿐만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처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원주민에게는 이 ‘죄’라는 단어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그들에게 ‘죄’는 '말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왜냐하면 원주민들이 기숙학교(원주민 어린이를 수용하는 시설) 갇혀 있을 때 그들의 말(언어)을 하면 매질을 당하며 죄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원주민으로 태어난 것, 혹은 원주민으로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죄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죄’라는 단어는 절대로 성경의 바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경험한) 잘못된 용법에 갇혀 올바른 의미를 배울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표현을 찾게 된 것입니다. 종래의 잘못된 의미 대신 새롭고 또 바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죄’라는 단어 대신 ‘깨어진 길’, ‘나쁜 마음’ 등을 사용하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성경 번역은 비원주민에게도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 번역은 단지 원주민에게 주어지는 선물만은 아닙니다. 우리 원주민이 주류 문화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니까요. 성경을 원주민의 관점에서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믿어요.”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받은 와일드만은 성경에 나오는 단어와 개념을 원주민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통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원주민 언어를 영어로 번역하는데 필요한 인력 또한 부족한 상황 가운데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번역 작업을 이어가면서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고 한다.
아내 댈레인과 함께하는 음악 사역 “레인 송”과의 콜라보도 했다. 새롭게 번역한 구절에 음악을 입혀 “성스러운 책에 담긴 위대한 이야기”라는 앨범을 발표, 2008년 미국 원주민 음악상을 받기도 했다.
와일드만은 수많은 원주민 부족 센터와 원주민 자치 교회와 모임으로부터 응원과 격려가 이어져 힘을 얻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원주민 청소년들은 마치 그들 부족의 어른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다고 재미있어했다고 한다.
이런 작업이 쌓이면서 성경 전체를 번역해야 한다는 요청이 더욱 밀려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와일드만은 우선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선택받은 자의 탄생”과 사복음서를 엮어 만든 “큰 영혼이 우리 가운데 걸어왔을 때”라는 책을 냈다.
이런 과정에서 2015년 원북 캐나다라는 출판사의 대표로부터 성경 번역 지원금을 받아 본격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와일드만은 이 일을 “창조주 하나님이 이것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고 하는 응답”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와일드만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다양한 부족 문화와 교회 배경을 가진 남녀노소로 구성된 번역 위원회를 만들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영어 번역본을 대조하여 작업해나가기 시작했으며, 약 200여 개의 키워드를 새롭게 번역해나갔다.
이런 작업을 바탕으로 원주민 번역본은 하나님의 이름을 다양한 원주민 문화에 익숙한 ‘위대한 영혼’이나 ‘창조자’ 등으로 바꾸기도 하고, 다양한 성경 인물의 이름도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반영하여 새롭게 이름 붙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는 “해방하는 창조주”, 아브라함은 “만국의 아버지”라는 새 이름을 얻기도 했다.
와일드만은 이런 과정이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운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복음서에 제국주의적 색채를 벗겨내고 원주민의 방식대로 읽히도록 하는 작업이 중요한 만큼, 성경이 쓰인 본래의 문화를 반영하는 언어와 의미를 정확하게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 8월 31일에 원주민 판 영어 신약성서 완역본을 출간했다. 출판사는 IVP(InterVarsity Press)로 와일드만이 원주민 IVP 영성 개발 및 리더쉽 디렉터로 일해 온 곳이기도 하다.
체로키족 출신 메간 머독 크리쉐케 원주민 IVP 전체 디렉터는 새롭게 번역된 신약성서를 받아든 학생들이 많은 애정을 느끼고 있다고 전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여전히 영어로 된 번역본이긴 하지만, 마치 우리가 직접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성경 번역본은 원주민을 위한 것이고, 또 원주민화 된 것이기도 하다. 더는 다른 문화를 통해 신앙과 영성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와일드만은 이번 번역본 출간의 소감을 전하면서, 원주민과 비원주민 사이에 있는 장벽을 무너뜨리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번 번역본 출간이 비원주민이 원주민에 대한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며, 원주민과 비원주민을 둘러싼 역사와 화해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이 번역본이 이런 과정을 위한 대화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미니스트리 와치] 9월 1일자 기사 “First Nations Version Translates the New Testament for Native American Readers”와 테리 와일드만의 인터뷰 “The First Nations Version New Testament: An Interview with Terry Wildman”를 발췌 번역 및 편집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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