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移民者(이민자) 소설'의 큰 별… 오바마도 그녀 팬 - 조선일보
미국 '移民者(이민자) 소설'의 큰 별… 오바마도 그녀 팬
[인도계 美작가 줌파 라히리, 소설 '저지대' 한국어판 출간]
인도 이민자의 가족사·갈등 차분하고 담백한 언어로 그려내
오 헨리 문학상·퓰리처상 수상
"오바마와 나의 공통점은 미국을 2개 시선으로 본다는 것"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4.04.07 03:00
인도계 미국인 작가 줌파 라히리(47)의 장편 소설 '저지대(The Lowland)' 한국어판(서창렬 옮김·마음산책 출판사)이 나왔다. 라히리는 1999년 오 헨리 문학상과 2000년 퓰리처상을 받아 단숨에 미국 문학의 큰 별로 떠오른 작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독하는 작가로 손꼽는다. 2010년 오바마가 라히리를 대통령 직속 인문예술위원회 위원에 위촉했을 정도다. 오바마는 지난해 추수감사절엔 서점에서 라히리의 신작 소설 '저지대'를 사기도 했다. 오바마가 연휴 기간 중 직접 읽거나 선물하려고 산 책 스무 권 중에 '저지대'가 들어 있었다.
'저지대'는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난 형제의 각기 다른 인생을 바탕으로 삼은 소설이다. 형은 1960년대 말에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자연과학자가 돼 미국 사회에 정착한다. 하지만 동생은 인도에서 정치에 휘말려 처형된다. 동생의 죽음 이후 그 가족이 50년 가까이 겪는 이야기가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소설의 무엇보다도 가족의 의미를 다루는 것”이라며 인도계 미국인 가족을 주로 그린 줌파 라히리.
라히리는 인도 벵골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부터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살았다. 그녀는 인도 이민자 가족 구성원의 갈등이나 젊은 인도계 미국인의 정체성 찾기를 다룬 소설을 주로 써왔다. 오늘의 미국 문학에서 '이민자(移民者) 소설'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그녀의 장편 '저지대'도 인도와 미국이란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가며 전개되는 소설이다. 라히리는 오바마가 '저지대'를 샀다는 소식을 듣곤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오바마는 나처럼 미국을 두 겹의 시선으로 본다"고 했다.
'저지대'는 인도 캘커타의 낮은 습지에서 시작해 거의 50년에 걸친 어느 가족사(家族史)를 다룬다. 우기(雨期)가 끝나면 물이 고이던 저지대에서 놀던 형제의 성장기가 소설의 도입부다.
형 수바시는 화학, 동생 우다얀은 물리학을 전공한다. 서구에선 기성 체제를 타파하려는 학생 혁명이 뜨겁고, 인도에선 과격 좌파가 소작 농민을 선동해 폭력 혁명 노선을 추구하던 때였다. 동생은 좌파 폭력 혁명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그러나 가족을 책임지려는 형은 미국 유학을 떠난다. 형이 로드 아일랜드에서 해양학자가 된다. 동생은 지하 혁명가로 활동하더니 결국 경찰 살해 혐의로 처형된다. 동생은 임신한 아내 가우리를 남겨두지만 시댁 식구들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잠시 고향에 간 수바시는 가우리를 불쌍히 여긴다. 그는 동생의 아이를 밴 가우리와 결혼한다.
가우리는 수바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에서 새 삶을 누리려고 결혼을 허락한다. 가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다. 그녀는 딸을 낳고도 공부를 계속하더니 어느 날 자신의 삶을 찾아 딸 키우기를 외면한 채 집을 나선다. 그녀가 철학교수가 되는 동안 세월은 또 흐르고 딸이 마흔에 접어드는 시대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저지대'는 역사에 휘말린 가족사(家族史)를 다루지만 시대보다 개인의 실존을 더 중시한다. 거대한 역사가 지나가는 상황 아래 이뤄지는 개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뤘다. 소설 속 인물들이 반세기에 걸쳐 걷는 삶의 여로를 담백하고 차분한 언어로 그려냈을 뿐이다. 역사의 저지대에 가라앉은 개인의 실존을 쿨하게 다룬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내 소설에 정치적 함의(含意)는 있지만 정치 소설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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