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오늘 북한 봉수호 ‘침투’
North Korean drug ship ‘Pong Su' still remains mysterious
주양중 편집고문/이사
업데이트 2026.04.16

(사진=AAP): 2003년 호주 북동 해상에서 호주 해군에 나포된 북한 봉수호의 선원 31명이 사건 발생 관할 구역인 빅토리아주로 강제 압송되고 있다.
[호주 미스터리] 세계를 놀래킨 2003년 4월 16일 새벽
빅토리아주 와이강 연안 침투, 도주, 나포, 그리고 추방
2003년 4월 16일 꼭두새벽 칠흙 같은 어두움 속에 멜버른 남서쪽 138 km 지점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인접한 인구 1200명의 해안 마을 로네이로 연결된 와이강( Wye River) 연안에 소형보트 한 척이 접안한다.
그리고 이 소형보트를 타고 뭍으로 내린 2명의 동양계 남성은 시가 1억6000만 달러 상당의 헤로인 150kg 을 대기하고 있던 다른 2명의 동양계 남성에게 인계한다.
헤로인을 인계 받은 2명의 남성은 같은 해 3월 관광비자로 호주에 미리 들어와 대기하고 있던 중국 여권 소지자였다.
인터폴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잠복해있던 호주연방경찰은 헤로인을 인계받은 2명을 현장에서 체포했고, 소형보트에서 내린 2명의 운반책을 추적했으나 1명은 현장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고, 다른 1명만 붙잡았다.
경찰은 생포한 1명이 북한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150 kg의 헤로인을 싣고 온 모선은 남태평양 상의 도서국가 ‘투발루’ 국적으로 위장한 북한 선박 ‘봉수호’라는 사실을 알고 추적에 나선다.
2003년 4월 20일…봉수호의 ‘나포’
호주 해공군의 합동 추적을 받은 봉수호는 최대한 빨리 공해상으로 벗어나기 위해 전 속력으로 동쪽으로 향했지만 심한 파도로 도주에 실패한다.
파도를 피해 다시 북상하던 봉수호는 결국 나흘 후인 4월 20일 오전 호주 해군에 의해 호주 북동 해상에서 나포된다.
나포 당시 선박에 승선해 있던 31명의 선원 모두 호주 해군에 체포돼 압송됐고, ‘사상 최대 규모의 헤로인 밀반입 사건’에 연루된 봉수호 나포 소식은 전 세계 언론의 톱 뉴스를 장식했다.
호주는 물론 영어권 국가 언론들은 일제히 “마약 제조 및 밀매를 통한 북한의 외화벌이 의혹이 현실로 입증됐다”고 북한을 신랄히 비난했다.
미국 국무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봉수호 사건을 통해 당시 김정일 정권이 해외 마약 밀반출에 직접 연계돼 있음이 드러났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다우너, 북한 대사 초치 ‘경고’
호주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렉산더 다우너 당시 외무장관은 전재홍 주호 북한대사(당시 북한 대사관 개설 상태였음)를 외무부로 초치해 “북한정부의 헤로인 제조 및 해외 밀매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제기했다.
(사진=AAP) 외무부로 초치된 전재홍 당시 북한대사에게 봉수호 사건과 관련해 강력한 항의를 표명하는 알렉산더 다우너 당시 외무장관.
(사진=AAP)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을 만나고 외무부 청사를 빠져 나오는 전재홍 대사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손사래만 치며 함구했다.
아무튼 호주 해상에서 나포된 북한 국적 봉수호의 선원 31명은 모두 기소됐다.
2005년 8월…봉수호 핵심 선원 4인 본재판 회부
치안 재판소에서 예비 재판이 시작된 후 31명의 선원 가운데 27명은 “마약 운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나 곧바로 추방됐다.
하지만 나머지 4명 - 정치보위부원 최동성, 선장 송만선, 갑판장 이만진, 기관장 이주천 - 은 본 재판에 회부됐다.
이들 4명에 대한 본재판은 2005년 8월 시작됐고, 첫 재판에서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무죄를 일제히 주장했다.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봉수호 핵심 선원 4인에 대한 재판은 결국 2006년 3월 5일 빅토리아주 최고법원(Supreme Court of Victoria)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2006년 3월 5일 …봉수호 선원 ‘무죄' 평결
배심원 전원 이들 4인방의 기소 죄목 모두에 대해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무죄평결을 내렸고, 이들은 곧바로 북한으로 추방됐다. 연방경찰은 이들에 대해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결국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봉수호 헤로인 밀반입 사건의 운반책으로지목된 31명의 북한 선원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 한 마디로 용두사미의 사건이었다.
시드니 총영사관에 파견돼 재직했던 국정원 소속의 신 모 영사는 당시 본지 취재진에게 “북한 당국이 이들 4명의 변론을 위해 막대한 재판비용을 모두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2006년 3월 23일…세상에서 사라진 봉수호
무죄평결 2주 후인 2006년 3월 23일 봉수호는 시드니 인근의 바다에서 호주공군의 훈련 목표물로 격침 침몰됐다.
호주정부는 “북한 및 국제사회의 마약 조직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봉수호 관리 비용이 막대한 이유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고, 일부 친 북한 인사들은 ‘증거인멸’이라는 항변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봉수호 선원으로부터 헤로인을 전달받으려 했던 중국계 헤로인 사범들은 호주 법원으로부터 중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다.
봉수호 사건의 실체는?
그렇다면 북한 선박 ‘봉수호 헤로인 밀반입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호주의 양대 유력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디 에이지의 발행처인 9 미디어는 지난 2019년 당시 사건을 전례없이 깊숙이 들여다보는 10부작 팟캐스트 '봉수호의 마지막 항해'(The Last Voyage of the Pong Su) 를 제작해, 계열사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다시 증폭시키고 북한의 마약 제작 및 밀매 의혹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환기시켰다.
이 같은 사회적 반향을 촉발시킨 9 미디어의 ‘봉수호의 마지막 항해’라는 제목이 내걸린 10부작 팟캐스트는 “(남태평양 상의 도서국가) ‘투발루’의 깃발을 내건 허스름한 선박 봉수호의 선체 안으로 들어가면 너무도 깨끗하게 소장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선체 벽면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내걸려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디 에이지는 해당 10부작 팟캐스트 제작을 위해 북한 국적의 전장 106미터의 3700톤급 화물선 ‘봉수호 헤로인 밀반입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호주연방경찰로부터 관련 동영상 등을 입수해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팟캐스트의 제작 및 진행을 맡은 중견 언론인 리차드 베이커 기자는 당시 수사에 가담했던 연방경찰 관계자, 봉수호 선원의 변론을 맡은 호주의 법정 변호사들, 주변 증인 등을 두루 인터뷰했다.
특히 베이커 기자는 봉수호 선원들을 변론한 호주 법정 변호사의 관점을 집중 조명함과 동시에 기소된 북한 선원들이 어떻게 막대한 변론 비용을 조달했는지에 대해서도 추적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즉, 봉수호 사건의 처음과 끝, 그리고 수많은 미스테리 들을 심층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호주 미스터리] 세계를 놀래킨 2003년 4월 16일 새벽
빅토리아주 와이강 연안 침투, 도주, 나포, 그리고 추방
2003년 4월 16일 꼭두새벽 칠흙 같은 어두움 속에 멜버른 남서쪽 138 km 지점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인접한 인구 1200명의 해안 마을 로네이로 연결된 와이강( Wye River) 연안에 소형보트 한 척이 접안한다.
그리고 이 소형보트를 타고 뭍으로 내린 2명의 동양계 남성은 시가 1억6000만 달러 상당의 헤로인 150kg 을 대기하고 있던 다른 2명의 동양계 남성에게 인계한다.
헤로인을 인계 받은 2명의 남성은 같은 해 3월 관광비자로 호주에 미리 들어와 대기하고 있던 중국 여권 소지자였다.
인터폴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잠복해있던 호주연방경찰은 헤로인을 인계받은 2명을 현장에서 체포했고, 소형보트에서 내린 2명의 운반책을 추적했으나 1명은 현장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고, 다른 1명만 붙잡았다.
경찰은 생포한 1명이 북한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150 kg의 헤로인을 싣고 온 모선은 남태평양 상의 도서국가 ‘투발루’ 국적으로 위장한 북한 선박 ‘봉수호’라는 사실을 알고 추적에 나선다.
2003년 4월 20일…봉수호의 ‘나포’
호주 해공군의 합동 추적을 받은 봉수호는 최대한 빨리 공해상으로 벗어나기 위해 전 속력으로 동쪽으로 향했지만 심한 파도로 도주에 실패한다.
파도를 피해 다시 북상하던 봉수호는 결국 나흘 후인 4월 20일 오전 호주 해군에 의해 호주 북동 해상에서 나포된다.
나포 당시 선박에 승선해 있던 31명의 선원 모두 호주 해군에 체포돼 압송됐고, ‘사상 최대 규모의 헤로인 밀반입 사건’에 연루된 봉수호 나포 소식은 전 세계 언론의 톱 뉴스를 장식했다.
호주는 물론 영어권 국가 언론들은 일제히 “마약 제조 및 밀매를 통한 북한의 외화벌이 의혹이 현실로 입증됐다”고 북한을 신랄히 비난했다.
미국 국무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봉수호 사건을 통해 당시 김정일 정권이 해외 마약 밀반출에 직접 연계돼 있음이 드러났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다우너, 북한 대사 초치 ‘경고’
호주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렉산더 다우너 당시 외무장관은 전재홍 주호 북한대사(당시 북한 대사관 개설 상태였음)를 외무부로 초치해 “북한정부의 헤로인 제조 및 해외 밀매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제기했다.

(사진=AAP) 외무부로 초치된 전재홍 당시 북한대사에게 봉수호 사건과 관련해 강력한 항의를 표명하는 알렉산더 다우너 당시 외무장관.

(사진=AAP)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을 만나고 외무부 청사를 빠져 나오는 전재홍 대사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손사래만 치며 함구했다.
아무튼 호주 해상에서 나포된 북한 국적 봉수호의 선원 31명은 모두 기소됐다.
2005년 8월…봉수호 핵심 선원 4인 본재판 회부
치안 재판소에서 예비 재판이 시작된 후 31명의 선원 가운데 27명은 “마약 운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나 곧바로 추방됐다.
하지만 나머지 4명 - 정치보위부원 최동성, 선장 송만선, 갑판장 이만진, 기관장 이주천 - 은 본 재판에 회부됐다.
이들 4명에 대한 본재판은 2005년 8월 시작됐고, 첫 재판에서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무죄를 일제히 주장했다.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봉수호 핵심 선원 4인에 대한 재판은 결국 2006년 3월 5일 빅토리아주 최고법원(Supreme Court of Victoria)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2006년 3월 5일 …봉수호 선원 ‘무죄' 평결
배심원 전원 이들 4인방의 기소 죄목 모두에 대해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무죄평결을 내렸고, 이들은 곧바로 북한으로 추방됐다. 연방경찰은 이들에 대해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결국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봉수호 헤로인 밀반입 사건의 운반책으로지목된 31명의 북한 선원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 한 마디로 용두사미의 사건이었다.
시드니 총영사관에 파견돼 재직했던 국정원 소속의 신 모 영사는 당시 본지 취재진에게 “북한 당국이 이들 4명의 변론을 위해 막대한 재판비용을 모두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2006년 3월 23일…세상에서 사라진 봉수호
무죄평결 2주 후인 2006년 3월 23일 봉수호는 시드니 인근의 바다에서 호주공군의 훈련 목표물로 격침 침몰됐다.
호주정부는 “북한 및 국제사회의 마약 조직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봉수호 관리 비용이 막대한 이유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고, 일부 친 북한 인사들은 ‘증거인멸’이라는 항변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봉수호 선원으로부터 헤로인을 전달받으려 했던 중국계 헤로인 사범들은 호주 법원으로부터 중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다.

봉수호 사건의 실체는?
그렇다면 북한 선박 ‘봉수호 헤로인 밀반입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호주의 양대 유력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디 에이지의 발행처인 9 미디어는 지난 2019년 당시 사건을 전례없이 깊숙이 들여다보는 10부작 팟캐스트 '봉수호의 마지막 항해'(The Last Voyage of the Pong Su) 를 제작해, 계열사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다시 증폭시키고 북한의 마약 제작 및 밀매 의혹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환기시켰다.
이 같은 사회적 반향을 촉발시킨 9 미디어의 ‘봉수호의 마지막 항해’라는 제목이 내걸린 10부작 팟캐스트는 “(남태평양 상의 도서국가) ‘투발루’의 깃발을 내건 허스름한 선박 봉수호의 선체 안으로 들어가면 너무도 깨끗하게 소장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선체 벽면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내걸려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디 에이지는 해당 10부작 팟캐스트 제작을 위해 북한 국적의 전장 106미터의 3700톤급 화물선 ‘봉수호 헤로인 밀반입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호주연방경찰로부터 관련 동영상 등을 입수해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팟캐스트의 제작 및 진행을 맡은 중견 언론인 리차드 베이커 기자는 당시 수사에 가담했던 연방경찰 관계자, 봉수호 선원의 변론을 맡은 호주의 법정 변호사들, 주변 증인 등을 두루 인터뷰했다.
특히 베이커 기자는 봉수호 선원들을 변론한 호주 법정 변호사의 관점을 집중 조명함과 동시에 기소된 북한 선원들이 어떻게 막대한 변론 비용을 조달했는지에 대해서도 추적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즉, 봉수호 사건의 처음과 끝, 그리고 수많은 미스테리 들을 심층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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